최근 수정 시각 : 2024-10-12 21:03:30
소련이
8월 8일에 참전을 개시하자마자
한반도의
라선시를 거쳐
청진시로 쳐들어오는 장면. 이어
38선 이북 지역을 모두 장악하면서 전쟁이 끝난다. 이때
서울의
조선총독부는
8월 20일까지
소련이
서울을 점령한다고 생각하여 안전을 위해
여운형을 일시적으로 총독부에 내세웠다는 얘기도 있다.
1. 개요2. 소련 만주 침략3. 당황한 조선총독부
[clearfix]청진 상륙 작전은
소련군이
만주 전략 공세 작전의 일환으로 일부가
라선시에 상륙한 후, 곧바로
8월 13일에
청진시에 상륙한 것을 말한다. 그러나
일본군의 강력한 저항으로 인해 정작
청진시 지역은
8.15 광복 이후에 전쟁이 끝난다.
2. 소련 만주 침략
8월 8일에
소련은
일본에 선전포고를 개시하면서
8월 9일에 바로
만주국을 침략한다. 이미 잡병이 되어버린
관동군을 무장해제하며 일부는
한반도의
웅기와
나진시로 진격한다. 이 지역은
소련이 최소
8월 11일부터 상륙하면서
8월 15일 이전에 일찍 해방되었다.
웅기와
나진시에 상륙한 소련군은 곧바로
청진시로 돌진,일본군과 치열하게 싸웠는데 이 전투가 한반도에서 가장 길게 벌어진 전투였다. 이 동안
8월 15일 정오가 되어
한반도에서는
광복의 환호가 넘쳐나는 동안 이 지역은 계속
소련군과
일본군이 전투를 벌이는 도중이었다. 이때 소련군엔 고려인인
정상진이라는 사람도 끼어있었으며,
청진시 수용소에 갇혀있던
한국인들을 모두 해방시켜주었다.
3. 당황한 조선총독부
8월 15일 항복하기 3시간 전인 오전 9시경,
조선총독부는
소련의 남하를 대비해
여운형을 얼른 총독부로 내세운다. 이는 조선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일본인의 안전을 위해서였다. 그러나 여운형 역시
건국준비위원회를 내세우면서
경성일보와 경성방송국을 비롯해
대학교 역시 일시적으로 조선인들의 손아귀에 넘어가는 듯했다.
8월 18일에는 계속
서울에서
여운형이 사람들을 불러모아
건국준비위원회를 차근차근 진행해 나가는 동안 북쪽은
소련군이 점령했다. 그러나
소련군이 남쪽으로 내려오지 않자,
조선총독부는
건준을 강제 해산시켰다. 그리고는
미국에게 여러가지 면에서 거짓말을 하는 등 행패를 부렸다. 그후
미국이
조선총독부에서 권력을 이양받자
일본군은 물러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