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의 대외 전쟁·분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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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淸越戰爭청나라와 떠이선 왕조가 충돌하여 일어난 전쟁으로 1788년부터 1789년간 총 1년동안 지속되었다. 동다(Đống Đa) 전투로도 불린다.
2. 배경과 과정
떠이선 왕조는 대월의 마지막 왕조로 청월전쟁의 배경을 설명하기 위해 떠이선조의 전조(前朝)인 후 레 왕조를 언급할 필요가 있다. 떠이선 왕조의 수뇌부들은 후 레 왕조의 제후국인 응우옌씨 정권의 폭정에 불복하고 혁명을 일으켜 응우옌씨 정권을 멸망시킨 다음, 후 레 왕조를 괴뢰로 전락시킨 찐씨 정권마저 멸망시켜 찐가(鄭家)의 뒤를 이은 실권자가 되었다. 사실 떠이선의 수뇌부 중 한명이자 북평왕에 봉해진 응우옌반후에(광중)가 찐씨를 멸하고 명목상으론 찐씨가 뺏은 권한을 황제 현종(顯宗)에게 봉환하였으나 말 그대로 '명목'에 불과했고 그동안 대월을 실질적으로 양분하던 두 세력을 없앤 만큼 영향력이 클 수밖에 없었다. 즉 레 왕조 입장에선 찐씨 정권이나 떠이선 당이나 자신들을 괴뢰로 전락시킨 막부라는 점에서 다를 게 없었다.이후 현종의 뒤를 이은 소통제는 떠이선 왕조의 독주를 견제하고자 멸망한 찐씨의 잔당인 찐봉을 정왕으로 책봉하였으나 찐봉 역시 재기를 노렸고 소통을 폐위하려는 시도를 보이자 응우옌흐우찐(阮有整)을 끌여들여 찐봉을 폐위시켰지만 응우옌흐우찐 역시 시간이 지나자 찐봉에 맞먹는 권신이 되었다. 이후 응우옌흐우찐이 당시 떠이선 왕조의 영토 응에안(乂安)을 레 왕조에 돌려놓으라고 꽝쭝에게 강압적으로 명하자 분노한 꽝쭝은 응우옌흐우찐을 향한 북벌을 시도했다. 결국 응우옌흐우찐이 떠이선 군에게 처형당하자 소통제는 그 화살이 자신에게 향할까 두려워 청나라의 건륭제에게 사신을 보내 개입을 요구했다.
청군의 20만 군대가 개입했다는 소식에 떠이선 군은 결국 북방을 포기하고 돌아갔으며 건륭제의 대리로 파견된 손사의가 레 왕조를 대리로 통치하게 되었다. 그러나 손사의는 방탕하게 지냈으며 방비에 신경을 쓰지 않았기에 곧 전력을 가다듬고 북벌을 시도한 응우옌반후에의 군대에 의해 청군은 속수무책으로 패배하였고 그 소식을 들은 손사의는 옥새 등 귀중품들은 버린 채 몸만 챙겨 청나라로 도주했으며 떠이선군의 성공적인 북벌로 인해 통치의 정당성을 잃어버린 민제 역시 청나라로 도주하여 레 왕조가 멸망하였다. 이후 마지못해 꽝쭝을 인정한 건륭제는 그를 안남국왕(安南國王)으로 봉했고 이로서 전쟁은 종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