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나희덕의 시집 『그곳이 멀지 않다』에 수록된 시.2. 시 전문
천장호에서 나희덕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것도 비추지 않는다 불빛도 산 그림자도 잃어버렸다 제 단단함의 서슬만이 빛나고 있을 뿐 아무것도 아무것도 품지 않는다 헛되이 던진 돌멩이들 새떼 대신 메아리만 쩡 쩡 날아오른다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 |
3. 해설
전체는 2연 7행이며, 앞의 1연이 6행, 뒤의 2연이 1행으로 분량상 1연 쪽으로 무게 중심이 치우쳐져 있는 형태의 시행배열을 보여 준다. '~다'로 건조하게 끝나는 문체들은 운율감을 형성하며 화자의 단호한 어조를 드러낸다.이 시는 얼어붙은 겨울의 호수의 차가운 표면에 어떤 것도 파고들지 못하고 튕겨져 나가는 것을 바라보던 화자에게 그것이 대답 없는 누군가의 태도처럼 생각된다는 내용이다. 1행에서 겨울의 한기에 얼어붙은 호수는 아무 것도 비추지 못하는 존재로 묘사된다. 2행에서는 구체적으로 '불빛'과 '산그림자'가 호수에 더 이상 비쳐지지 않음을 말한다. 3행에서는 그러한 호수가 자신의 단단함을 날카롭게 드러내고 있을 뿐임을 설명한다.
4행에서는 호수를 아무것도 받아주거나 품지 못하는 차가운 불모의 상태로 설명한다. 5행에서는 호수에 던져버린 돌멩이조차 헛되이 튕겨져 나갈 뿐인 상황이다. 6행에서는 새 떼들마저 사라져 버린 호수에 던진 돌이 부딪쳐 나는 소리만이 메아리처럼 울린다.
마지막 행에서는 느닷없이 '네 이름'을 부르는 일도 이와 마찬가지로 가서 닿지 못하고 반사되어 버리는 차단된 행위임을 표현한다.
이 시의 주제는 존재와 소통하고자 하는 의지이다. '얼어붙은'이라는 시각적 심상으로 표현된 것으로 보아 시적 배경이 겨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화자는 어떤 것도 튕겨내는 그 얼음을 냉정한 차단막처럼 느끼는데, '아무것도'를 반복적으로 표현함으로써 이를 더욱 강조한다. 그리고 "새 떼 대신 메아리만 쩡쩡 날아오른다"의 행에서는 청각의 시각화를 통해 아무 생명체도 없는, 새 떼마저 사라져버린 곳에서 돌멩이가 얼음에 부딪쳐 나는 소리들만이 메아리처럼 울리는 것을 공감각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런데 호수를 얘기하던 1연과 달리 돌연 2연에서 '네 이름을 부르는 일이 그러했다'로 시적 전환을 꾀한다. 이는 시적 화자의 의도가 2연에 집중되어 있음을 뜻한다. 즉, 시적 화자가 민감하게 느끼는 냉정하게 차단된 호수의 이미지는 그 자체가 아니라 기실 ‘네(너)’로 표현되는 어떤 사람, 연인, 나아가서는 가 닿고 싶고 소통하고 싶은 어떤 존재를 상징하는 것이다.
4. 여담
시의 주요 장소인 '천장호'는 충청남도 청양군에 실제로 존재하는 호수다.[1]
[1]
면적 1,200ha로,
칠갑산 동쪽 대치(한티)에서 흐르는 개울을 막아 7년간의 공사를 거쳐
1979년 관개용
저수지로 축조되었다. 칠갑산자연휴양림에서 11㎞ 떨어진 칠갑산 산등성이에 자리잡고 있으며, 깨끗한 수면과 빼어난 주변 경관이 어우러져 청양명승 10선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른 봄이면 빙어를 낚는 낚시꾼들로 붐비며, 산등성이에 정자가 있어 호수의 경관을 내려다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