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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15 10:41:16

천리마축구단

천리마축구단
원제 The Game of Their Lives
장르 다큐멘터리
등급 전체 관람가
상영시간 80분
감독 대니얼 고든(Daniel Gordon)[1]
국가 영국
개봉일 2002-10-21

1. 개요2. 줄거리3. 출연진4. 주목할 대사5. 축구단가6. 평가7. 기타

1. 개요

천리마축구단은 영국 BBC 출신의 대니얼 고든 감독이 2002년에 제작한 다큐멘터리 영화. 1966 FIFA 월드컵 잉글랜드에서 맹활약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이야기를 그린 영화로 알려져 있다. 대니얼 고든 감독은 미들즈브러 출신인데 어린 시절 부모님에게서 북한 축구 대표팀의 활약상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들어 그들을 직접 만나고 싶었고 그를 계기로 이 영화를 제작, 연출하게 되었다고 한다. 2002년 BBC에서 방송되었다.

2. 줄거리

때는 지금으로부터 36년 전,[2]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맹활약했던 북한 선수들. 그러나 그들의 행방은 그 이후로 전혀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그들을 만나기 위해 영국인 대니얼 고든 감독이 직접 평양을 방문했다. 그리하여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이었던 명례현과 당시 선수단 중 생존해 있는 선수 7명까지 도합 8명의 인물들을 만나 그 당시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인터뷰를 하면서 이 영화가 시작된다.

당시 북한은 천리마 운동을 통해 한참 경제개발에 나서고 있던 때로 스포츠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두어 자신들의 체제를 선전하고자 한다. 그런데 1966년 잉글랜드 월드컵 때 FIFA는 축구계를 양분하고 있던 유럽과 남미에 표를 몰아주고 그에 비해 약체인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에게는 이 3대륙을 묶어 1장의 티켓만을 부여하였다. 그 때문에 아프리카에서는 이 같은 FIFA의 차별에 분노하여 집단 보이콧을 강행했고 한국 또한 북한과의 맞대결을 부담스러워 하여 이 대회를 불참했다.[3] 결국, 월드컵 예선은 북한과 호주의 대결로 압축되었다. 그러나 당시는 냉전 상황이었고 북한과 호주는 서로를 국가라고 인정하지 않았던 시대였기에 원칙 상으로는 홈&어웨이 방식으로 치러져야 하지만 북한은 호주로 가서 경기를 치르는 걸 거부했고 호주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중립 지역인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2경기를 모두 치르기로 했다. 당시, 호주 선수들은 북한을 얕잡아보고 별 다른 대처를 하지도 않았고 북한도 폐쇄적인 체제 탓에 호주에 대해 거의 파악이 안 되어 있었다. 그러나 두 팀이 대처한 자세는 매우 달랐는데 북한은 호주의 전력이 전혀 파악되어 있지 않아 프놈펜에 머무는 동안 호주의 훈련 모습을 면밀히 관찰했던 반면 호주는 7년 동안 국제경기를 치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선수들 대부분이 축구종가 영국에서 건너온 선수들이라는 점만 믿고 북한을 업신여겼다. 그렇게 치러진 두 팀의 대결에서 놀랍게도 북한은 1차전에서 6 : 1 대승을 거두었고 2차전에서도 3 : 1 대승을 거두어 합계 9 : 2로 호주를 물리치고 본선 진출 티켓을 따냈다.

북한 선수들이 멋지게 월드컵 본선 진출 티켓을 따내자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 그들에게 위대한 수령님이라고 불리는 김일성은 "우리 팀이 아시아, 아프리카, 오세아니아를 대표해서 출전하는 만큼 가서 1~2팀이라도 이기고 돌아오라."는 과업을 부여한다. 선수들은 김일성이 내린 이 과업을 달성해야 하는 과제를 안게 된다.

당시 북한은 소련, 칠레, 이탈리아와 함께 4조에 속했다. 이탈리아야 예나 지금이나 말할 것도 없는 우승후보였고 1960년대 소련은 동구권의 강호였으며 칠레 또한 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강팀이었다. 이렇게 강팀들의 틈바구니에 있었던 북한은 전혀 주목을 받지 못하고 있었던 터라 마치 고래 싸움에 낀 새우처럼 보였다. 북한은 같은 공산권 국가인 동유럽을 돌면서 몇 차례 평가전을 치러 전력을 다지고 영국에 도착해 1차전에서 소련과 맞붙었다. 소련은 북한이 왜소한 피지컬을 해결하기 위해 기동력 중심의 속도전을 펼친다는 점을 익히 알고 있었고 우세한 피지컬을 이용해 육탄전으로 북한 선수들을 찍어 눌렀다. 결국, 경기는 소련의 3 : 0 승리로 끝났지만 경기가 치러졌던 미들즈브러 지역 언론들은 반칙과 완력을 앞세운 소련의 더티 플레이를 비난했고 오히려 그에 당당히 맞서 싸운 북한 선수들의 경기력을 칭찬했다.[4] 그리고 2차전 상대는 전 대회에서 3위를 차지한 남미의 칠레였다. 북한은 이번 경기에서도 빠른 주력을 앞세운 플레이로 칠레를 괴롭혔지만 골을 넣지 못했고 오히려 전반 26분에 내준 페널티킥 골로 0 : 1로 끌려갔다. 패색이 짙어지던 북한은 후반 43분에 터진 박승진의 동점골로 1 : 1 무승부를 기록해 구사일생했다.[5]

그리고 마지막 운명의 3차전. 3차전 상대는 월드컵 2회 우승팀이자 당시 도박사들의 예측으로 우승 확률이 3번째로 높은 팀이었고 지아니 리베라, 산드로 마촐라, 자친토 파케티, 지아코모 불가렐리 등과 같은 스타 플레이어들로 도배된 팀인 이탈리아였다. 당시, 이탈리아는 1차전에서 칠레를 가볍게 2 : 0으로 격파했지만 2차전에서 소련에 0 : 1로 패해 1승 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반면, 북한은 1무 1패의 전적을 기록하고 있었다. 북한으로서는 반드시 이 경기를 이겨야 8강에 진출할 수 있었고 이탈리아는 소련이 칠레를 잡아주는 전제 하에서 무승부만 해도 괜찮았다. 이탈리아는 북한을 다소 얕잡아보고 초반부터 공세적으로 나갔으나 처음 3번의 결정적인 기회가 북한 골키퍼 리찬명의 선방에 의해 가로막히고 설상가상으로 전반 34분, 주장 지아코모 불가렐리[6] 박승진에게 태클을 걸다 부상을 당하면서[7] 10명이 뛰는 처지가 되었다.[8] 그러던 전반 41분, 박두익이 운명의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후 이탈리아는 계속해서 북한을 상대로 몰아붙였지만 결국 북한의 골문을 열지 못했고 그렇게 경기는 모든 이의 예상을 깨고 북한의 1 : 0 승리로 돌아갔다.

8강에 진출한 북한은 미들즈브러를 떠나 리버풀로 향했다. 미들즈브러에 있는 동안 그 지역 주민들은 북한 선수들을 열렬히 응원했고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이 마치 자신들의 팀인 양 직접 버스까지 대절해 리버풀로 원정 응원을 떠났다. 북한 선수단은 미처 다음 숙소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는데 마침 8강에 갈 줄 알고 김칫국을 마셨다 광탈 이탈리아 선수단이 묵기로 한 수도원이 비게 되어 대신 그곳에 묵기로 했다. 그러나 종교는 인민의 아편이라는 공산주의 교육을 받아온 북한 선수들에게 수도원이란 곳은 매우 낯선 분위기였다. 그 탓에 제대로 휴식을 취하기가 어려웠다.

북한의 8강 상대는 전 대회 우승팀인 브라질을 격파하고 올라온 포르투갈이었다. 비록 북한이 앞 경기에서 이탈리아를 상대로 승리를 거두긴 했지만 브라질을 깨고 올라온 포르투갈에는 당해내기 어렵지 않겠는가란 예측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이게 웬 걸? 북한은 경기 시작 1분도 채 되지 않아 박승진의 선취골로 1 : 0으로 앞서갔다.[9] 기세가 오른 북한은 계속해서 속공으로 포르투갈을 몰아붙였고 전반 21분, 리동운의 추가골로 2 : 0으로 앞서갔다. 관중들은 일제히 "We want three!(우리는 3번째 골을 원한다.)"를 연호했고 북한은 그 기대에 부응해 바로 1분 뒤 양성국의 추가골로 스코어를 3 : 0으로 벌렸다. 이렇게 경기는 북한의 완승으로 끝나는 듯했으나..... 포르투갈에는 흑표범이라 불리는 에우제비오가 버티고 있었다. 전반 중반까지 0 : 3으로 뒤지는 상황이 되자 에우제비오는 그 때부터 힘을 내기 시작했다. 전반 27분에 북한 수비의 허점을 뚫고 만회골을 터뜨렸고 전반 42분에는 북한 수비수 신영규의 반칙으로 얻어낸 페널티킥을 성공시켜[10] 순식간에 2 : 3으로 점수를 따라붙었다. 후반전 동안은 잠그고 수비를 강화하기만 해도 이길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했던 북한 선수들은 지능적으로 시간을 끄는 방법을 몰랐고 그저 최선을 다해 뛰는 것밖에 몰랐다. 결국 후반 11분, 에우제비오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말았고 불과 3분 뒤에 수비수 림중선의 반칙으로 또 페널티킥을 허용해 에우제비오에게만 4골을 허용하며 스코어가 3 : 4로 역전되고 말았다. 그리고 후반 33분, 상대의 세트피스 찬스에서 아우구스토에게 굿바이 쐐기골을 얻어맞으며 결국 3 : 5로 역전패를 당하고 말았다. 그러나 관중들은 훌륭한 경기력을 보여준 북한 선수들을 극찬했고 북한 선수들도 아쉬운 마음을 뒤로 하고 관중들의 열렬한 응원과 찬사를 받으며 퇴장했다. 그런데 이 같이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던 북한 선수들은 이 대회 이후 행방과 근황에 대해 전혀 알 수 없다.

3. 출연진

다큐멘터리 영화 특성 상 이 영화에는 전문 배우가 아닌 일반인들이 출연했다.

4. 주목할 대사

다큐멘터리 영화다 보니 딱히 명대사라고 하기는 그렇지만 그래도 몇 가지 주목할 만한 대사들이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인물들이 대니얼 고든 감독과 가진 인터뷰에서 특기할 만한 대사들은 다음과 같다.
기본은 우리가 선수권대회에 참가하면서 우리가 무엇을 참고했는가? 해서 구라파 선수들하고 하려면은 투지, 완력 첫째 이것이 있어야 되겠다. 해서 또 위대한 수령님께서 축구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잘 달리는 것이며 다음으로 잘 차는 것과 기묘한 전술이라는 걸 말씀드렸단 말입니다.
- 명례현 감독의 인터뷰 중

갑자기 김일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것에 대해 어색해하실 분들이 많으실 건데, 사실 북한에서 발간되는 주요 학술 논문 서문은 항상 수령 김일성의 말씀을 언급하면서 시작하고, 마무리 문단에도 수령의 말씀이 옳았다, 또는 이치에 부합한다는 식의 내용이 들어간다고 한다. 북한에서 제1의 권위를 인정받는 학자의 글을 찾아봐도 마찬가지. 아무튼 이 대사는 당시 북한 축구 대표팀이 어떤 부분을 중점적으로 육성했는지를 바로 알 수 있다. 당시 북한 팀은 평균신장이 165cm밖에 안 되었는데[16] 이를 보완하기 위해 남들보다 한 발 더 뛰고 더 빨리 뛰는 것으로 열세인 피지컬을 극복하려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체력과 정신력, 스피드를 중점적으로 육성했다고 볼 수 있다.
이 날[17]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국을 떠나는 우리 대표단을 친히 불러주시어 사랑의 한품을 안아주시고 정말 우리가 이제까지 유럽이나 남아메리카 팀들이 독점하고 있던 세계선수권대회[18] 본선 경기에 아시아, 아프리카, 대양주를 대표해서 우리 유색인종이 처음으로 참가한다고 하시면서 이 참가하는 것만으로도 대단히 영광스럽다고 하시면서 정말 가서 1~2팀이라도 이기고 돌아오라는 광명적인 교시를 주셨습니다.
- 림중선의 인터뷰 중

이 대사는 어떻게 보면 거의 이 영화에서 유일하게 북한 체제를 비판적으로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스포츠를 통해 체제 선전을 하려는 과거 공산주의 국가들의 모습을 림중선의 인터뷰를 통해 에둘러 까는 듯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이 대사가 나온 곳은 그 유명한 김일성의 동상이 있는 곳에서였고 또 그 다음 장면이 림중선을 비롯한 선수들이 김일성을 회상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이라 김 씨 정권에 대한 세뇌가 매우 심각하다는 걸 간접적으로나마 확인할 수 있다.
우리는 월드컵 선수들의 사인을 모았죠. 난 북한 팀의 숙소인 공항 호텔까지 가서 박두익 선수의 무릎에도 앉아봤어요. 파란 셔츠가 멋지더군요. 다들 똑똑하고 예의 바르고 행복해 보였죠. 사인 받으려는 애들이 많았는데 난 운좋게 모두의 사인을 받았고 아직도 간직하고 있어요. 앞으로도 소중히 간직할 거예요.
- 미들즈브러 축구팬의 인터뷰 중

이 인터뷰는 당시 미들즈브러의 축구팬인 한 시민과의 인터뷰에서 나온 말이다. 당시 소년이었던 그는 친구들과 함께 북한 팀이 묵고 있는 숙소를 찾아가 선수들에게 사인을 받았고 인공기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북한을 응원했다고 한다. 이 때 북한 선수들이 얼마나 미들즈브러 시민들에게 인기를 얻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심지어는 미들즈브러 시장도 속도전을 앞세운 북한 팀의 플레이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았고 북한 선수들을 만나 악수를 나눴다고 한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북한에 대해 매우 심한 편견을 갖고 있었는데 적어도 이 때 북한의 이미지는 지금보다 훨씬 더 좋았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경기 전부터 승리감에 들떠 있었죠. 그게 오히려 침착성을 잃게 한 것 같아요. 아무튼 비기기만 해도 8강행은 확실한 데다 상대편은 우리보다 한참 열등해 보였죠.
- 지아니 리베라의 인터뷰 중

이 인터뷰는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출전 선수이자 과거 AC밀란의 전설적인 패스 마스터로 유명한 지아니 리베라가 당시 북한과의 경기를 앞두고 있었던 이탈리아 선수들이 전반적으로 어떤 마음을 품고 있었는지를 밝힌 내용이다. 즉, 이탈리아 선수들은 북한이 한참이나 열등해 보였고 누가 봐도 약체라고 생각해 제대로 된 분석도 대비도 하지 않았다는 걸 말해주는 것이다. 결국, 경적필패라고 이탈리아는 그 경기에서 북한에 0 : 1로 패하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이러한 이탈리아 선수들의 태도를 볼 때 경적필패라는 말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를 다시 한 번 깨닫게 한다.
오른발 차기는 아마 내가 이 백발백중. 명중률이 내가 비교적 높았습니다.
- 박두익의 인터뷰 중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박두익이 득점 당시에 느낀 소감을 말하는 대목이다. 당시 북한은 시종일관 밀리는 경기를 했지만 몇 안 되는 역습 찬스를 잘 살린 끝에 대어 이탈리아를 1 : 0으로 꺾고 아시아팀 최초로 월드컵 2라운드에 올라갈 수 있었다.
내가 지키는 골문이 저 골문이 비록 작은 골문이지만 나는 그 때 이게 내 뒤에는 우리 조국이 있고 또 우리 조국의 인민들이 날 지켜보고 있다는 거. 내가 골을 먹으면 우리 조국의 명예가 추락되고 우리 수령님께서 그 우리들에게 주신 과업을 수행하지 못한다는 이런 것으로 해서 정말 죽어도 나는 이 문을 사수해야 한다는 그런 높은 자책감으로 해서 골문을 지켰습니다.
- 리찬명의 인터뷰 중

이 인터뷰는 그 유명한 이탈리아와의 경기에 대한 인터뷰 중에 나온 말이다. 북한이 전반 41분에 넣은 박두익의 선제골로 1 : 0으로 앞서게 되자 이탈리아는 10명이 뛰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해서 공격적으로 밀어붙이며 북한의 골문을 열려고 했는데 그 때 골키퍼로 활약했던 리찬명이 자신이 그 당시에 들었던 생각, 소회 등을 털어놓은 대목이다. 이 대목에서 그가 김일성이 내렸다는 그 과업을 성취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부담감을 짊어졌는지 알 수 있다. 영화에서 언급되지는 않았지만 당시 리찬명의 나이는 겨우 19세였다고 한다.[19] 19세의 어린 골키퍼가 얼마나 큰 부담감을 안고 경기에 임했는지 알 수 있다. 아무래도 이 때 멘탈을 다 써서 포르투갈전 때 5실점을 한 게 아닐까?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The Game of Their Lives' 즉, 그들의 일생의 게임이라는 뜻인데 그 의미가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대사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끔찍했죠. 이제 웃으며 얘기할 수 있지만 공항에 도착하니 성난 군중이 기다리고 있더군요. 몰래 빠져나가려다 들켜서 망신만 당한 선수들도 있었죠. 출구가 여러 개 있었는데 어디서나 토마토가 날아왔어요. 난 용케 몰래 빠져나왔죠. 발이 빨랐거든요.
- 산드로 마촐라의 인터뷰 중

북한과의 경기에서 참패하고 조별리그에서 광탈한 뒤 한밤 중에 몰래 이탈리아로 귀국했지만 축구팬들에게 들켜 썩은 토마토 세례를 받은 것에 대한 이야기다. 여담으로 이 때 축구팬들이 선수들에게 던진 채소의 명중률은 이탈리아 선수들이 북한 골문에 갈긴 슛의 명중률보다 훨씬 더 정확했다고 한다. 이로부터 44년 후 남아공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이 때보다 더 최악의 역사를 쓰게 되는데 이 때에도 축구팬들은 썩은 토마토를 준비하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왜 그럼 우리한테 졌는가? 이거 볼 때 첫째로 정신사상력에서 졌습니다. 우리한테. 정신사상력에서. 그 다음에 두 번째는 걔네들이 뜻밖에도 한 점 실점하다니까 조급한 나머지 집단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개인 경기를 했단 말입니다. 이게 말하자면 기술 만능이 우리 집단력 앞에 깨져나갔단 말입니다.
- 명례현 감독의 인터뷰 중

이 인터뷰는 이탈리아와의 경기에서 1 : 0으로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한 명례현 감독의 분석이다. 다소 생소한 단어들이 등장하지만 정신사상력을 정신력, 집단력을 조직력이라고 바꿔보면 꽤 합리적인 분석임을 알 수 있다. 이 영화에 출연한 당시 이탈리아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였던 산드로 마촐라 지아니 리베라 모두 당시 이탈리아 선수들은 북한을 얕잡아봤다고 밝혔다. 즉, 상대를 업신여기고 제대로 된 분석도 대비도 하지 않은 채 안일하게 경기를 나선 것에서 이미 이탈리아는 정신력 싸움에서 북한에 패했다고 본 것이니 꽤 타당한 의견이라 볼 수 있다. 또 두 번째 이유에 대해서도 산드로 마촐라는 "초반에 3번의 기회를 놓치자 슬슬 불안해졌죠. 설상가상으로 주장( 자코모 불가렐리)이 실려나가면서 우린 10명만 남게 됐어요. 10명 만으로도 우리는 충분히 강했지만 이미 초조와 불안감이 팀의 사기를 갉아먹고 있었죠."라고 말했고 뒤이어 "그 때 기분은[20] 분함과 당혹감, 반격을 하고픈 마음이 간절했죠. 근데 뜻대로 풀리지 않더군요. 우린 이미 냉정을 잃은 상태라 팀워크는 깨지고 선수들은 제각기 따로 놀고 기술을 전혀 살리지 못했죠. 그 때 우린 너무 어렸던 것 같아요."라고 말해 명례현 감독이 내린 분석과 정확히 일치했다. 단어만 생소할 뿐 조금만 생각해 보면 명례현 감독이 내린 분석은 매우 타당한 분석이라는 걸 알 수 있다. 아무리 그래도 명례현 감독도 한 평생 축구로 먹고 산 사람이다.
해서 제가 뽀르투갈과의 경기에서 세 번째 골을 넣고 우리가 3 : 0으로 이겼을 때 순간적이나마 좀 승리에 도취했다고 생각합니다.
- 양성국의 인터뷰 중

북한 VS 포르투갈의 경기에서 북한의 3번째 득점자 양성국이 포르투갈에 역전패하게 된 이유를 밝힌 인터뷰이다. 즉, 3 : 0이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로 앞서게 되자 승리에 도취한 나머지 전열이 흐트러지게 되었고 그 탓에 이후 5골을 내리 먹히며 결국 허망하게 역전패를 당했다고 밝힌 셈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실수를 2002년 한일 월드컵의 세네갈과 브라질월드컵 유럽 지역예선에서의 독일이 되풀이했다.[21]
뽀르투갈의 총 반공격에 우리가 대응할 수 있는 육체적 준비. 말하자면, 기력이 약간 떨어지는 이런 분위기였고 그 다음에 우리가 그 세 알을[22] 먼저 넣고 그 승리를 유지하기 위한 이런 경험이 풍부하지 못했다는 것. 말하자면, 시간을 보내는 경기를 잘 할 줄 몰랐다는 것.
- 림중선의 인터뷰 중

역시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북한이 역전패를 당하게 된 것에 대한 당시 북한 팀 주전 수비수 림중선의 분석이다. 앞에서 본 양성국의 분석과 종합해 볼 때 먼저 3골을 넣고 난 뒤 북한 팀은 승리에 도취되어 전열이 점점 흐트러졌고 거기다 전반 25분도 채 되지 않아 3골을 때려 넣어 오버 페이스를 한 탓에 시간이 갈수록 기력이 점점 떨어져 가는데다 국제 경기 경험이 부족해 템포를 조절하는 능력, 지능적으로 시간을 끌고 잠그는 능력이 부족했기 때문에 역전패를 당하게 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같은 두 사람의 분석은 매우 타당하다. 그러니까 사창가 가서 힘 다 빼는 바람에 졌다니 하는 그런 축알못들의 헛소리는 과감히 무시해 주자. 축구 볼 줄 아는 사람이면 북한이 역전패 당할 만 했다는 걸 단번에 알 수 있다. 실제 영화 속에 비쳐진 북한의 경기 모습을 보면 3골 차로 앞서고 있는 데도 무리하게 "돌격! 앞으로"를 하는 상황이 계속되었고 그 탓에 에우제비오의 침투를 제대로 저지하지 못했다. 이 같은 내용은 당시 잉글랜드 월드컵을 취재했던 영국의 스포츠 신문 기자 데이비드 레이시도 지적한 내용이었다. "국제경기 경험이 풍부한 팀이라면 더 바짝 긴장하면서 최대한 시간을 끌었을 텐데 북한은 점점 흐트러졌죠."라고. 그 기자 뿐 아니라 심지어 당시 경기를 중계했던 영국 아나운서조차도 "북한이 국제경기 경험이 조금만 더 많았더라면 최대한 리드를 뺏기지 않는데 주력할 텐데요."라고 했고 후반전 휘슬이 울리기 전에도 "북한이 수비만 강화하면 4강도 가능합니다."[23]라고 하며 지능적으로 시간을 끌고 잠그기를 해야 한다고 조언했을 정도였다.
이 때 북한 팀이 보여주었던 약점은 현재까지도 잘 개선이 되지 않고 있는 부분인데 국제경기 경험 부족이 원인인지 북한 축구의 특징은 템포 조절 능력이 매우 떨어진다는 것이다. 자신들보다 한 수 아래의 팀을 상대할 때는 압승을 욕심내어 무리하게 돌격하다가 도리어 허를 찔려 비기거나 패배하는 경우가 많고 또 자신들보다 한 수 위의 팀을 상대할 때는 어설프게 잠그기를 했다가 도리어 가패를 당하며 어이없게 패배하는 경우가 많다. 이 같은 북한 축구의 약점을 제대로 알면 왜 그들이 포르투갈과의 경기에서 3점 차로 앞서고도 결국 역전패를 당했는지 정확히 알 수 있다.
영국 인민들이 우리에 대한 우리 선수들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았다는 거 우리 역시 인민들에 대한 감정이 아주 좋았다. 그 다음에 이 축구가 단지 실무적인 그저 승패나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는 거. 우리가 어디 가서 경기를 해도 다 거 친선을 도모하고 이런 데 근본 거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 박두익의 인터뷰 중

이 영화에서 마지막으로 나온 북한 축구의 영웅 박두익의 인터뷰다. 박두익의 이 말은 매우 중요하고도 인상적인 말이다. 축구 뿐 아니라 모든 스포츠 경기는 그저 승패나 가르는 경기가 아니라 친선을 도모하고 평화를 추구하는데 그 근본 목적이 있다는 걸 지적한 말이기 때문이다. 월드컵이라는 대회 자체가 세계의 모든 나라가 한데 어울려 축구를 통해 친선을 도모하고자 하는 목적으로 출범한 것임을 감안하면 더더욱 옳은 말이다. 지금은 다소 돈놀이로 변질이 된 월드컵의 모습을 보면 이 같은 박두익의 말은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5. 축구단가

이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게는 축구단 노래가 있었다. 이 노래의 제목이 바로 한국 상영 때 영화 제목이 된 천리마축구단이다. 이 영화에 출연한 선수들이 이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 있는데 가사는 다음과 같다.
조국의 영예를 두 어깨에 걸머진
우리는 영광스런 천리마축구단
그 어떤 강적도 단매에 엎어
조선 사람 본때를 보여주리라!
(중략)[24]
남홍색 공화국기 하늘 높이 휘날리자!

조금 살벌한 가사긴 하지만 우승후보 이탈리아를 상대로는 그들이 말하는 조선 사람의 본때를 보여준 것 같다.

6. 평가

폐쇄적인 체제 탓에 다소 베일에 가려진 당시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에 대한 뒷이야기와 선수들의 근황을 살펴볼 수 있는 점에서 이 영화는 충분한 가치가 있다.

1966년 대회가 끝난 후 남한에서는 "북한 선수들이 포르투갈과의 경기 전 날 술집에서 여자들을 끼고 술을 퍼마셨다 힘을 다 빼서 졸전을 벌이다 졌다. 그래서 김일성이 빡쳐서 선수들을 수용소에 집어넣었다."라는 소문이 나돌았고, 지금까지도 생명력을 발휘하고 있다. 그러나 당시 북한 선수들이 술집에서 여자들을 끼고 술을 퍼마셨다던지, 사창가에 드나들었다는 이야기는 확인되지 않은 정보이며, 현지인들도 이탈리아전에서 승리를 거두었을 때에도 술이 아니라 레몬에이드로 축배를 들며 건전하게 즐겼다고 증언했다.

거기다 최소한 이 다큐멘터리에 나온 감독과 선수들은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다니고[25] 건강상태도 양호한 것으로 보아 북에서도 상당한 대우를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몇몇은 꽤 고위층으로 출세한 듯 하다. 특히 이 영화를 보면 촬영 당시 리찬명의 경우는 조선인민군 축구 팀 감독으로 재직 중이었으며 림중선 역시 최상급축구련맹전의 룡남산 축구단 감독으로 있었다. 양성국 역시 우리나라로 치면 실업리그에 해당하는 공장 노동자 축구 팀 감독으로 있었다. 박두익의 경우는 아예 북한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도 역임한 바 있었다. 이런 점을 보면 갈전 패배나 사창가 출입 등이 문제가 돼서 축구팀 전원이 귀국직후 정치범수용소에 끌려갔다는 소문은 사실이 아닐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다만 이 다큐멘터리에 출연하지 않는 다른 사람들의 행방에 대해선 전혀 알길이 없다. 명례현 감독을 포함해서 인터뷰에 응한 출연자들이 다른 동료들에 대해선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는 것도 이상한 부분으로, 1966년 대회 당시 북한 선수들의 평균 연령은 만 25세였다고 하니 36년이 지난 2002년이면 고작 환갑 정도에 불과한 나이인데 명례현 감독과 선수 7명만 생존해 있다는 건 다소 이해하기 어렵다. 고난의 행군을 거치면서 식량난 때문에 북한의 평균 수명이 극단적으로 짧아졌다고는 하지만, 이들은 북한 입장에선 체제를 빛낸 영웅들로 핵심계층에 해당하는데 식량난으로 고통받았을 꺼라고는 보기는 힘들다. 이때문에 월드컵 직후 대표팀 전원이 수용소에 끌려갔다는건 낭설이지만, 최소한 몇명은 여러가지 문제에 휘말려서 숙청된게 아니냐는 추측도 존재한다. 탈북자 출신 동아일보 기자 주성하가 이런 주장을 하고 있는데 당시 북한 선수들이 사창가를 드나든 건 루머이며, 그 때문에 수용소를 갔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일축했다. 다만 주장 신영규는 집안이 지주 집안이라는 사실이 발각되어 숙청되었고 1967년 김일성이 갑산파를 제거하는 과정에서 애꿎은 일부 축구 선수들이 이에 휘말려 숙청되었다고 주장하고 있다.[26]

한편 위키백과를 참조하면 이 때 인터뷰를 했던 선수들 외에도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이 더 있는 것 같기도 하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망 연도가 표기가 안 되어 있는 사람들이 몇 명 더 있다는 말이다. 그냥 단순히 얼굴 팔리기 싫어서 인터뷰 안 나온 것 뿐인가? 다만 당시 북한 팀의 주장이었던 수비수 신영규는 1996년 벨라루스에서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고 이 때 인터뷰에 응했던 박승진도 2011년에 사망한 것이 확인되었다.

여하튼 이 다큐에 출연한 인물들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의 행방이나 처우 등에 대해서는 통일 이후에나 제대로 알 수 있을 듯하다.

또 선수들이 영국에 체류하는 동안 미들즈브러 주민들과 스스럼없이 교류하는 장면을 보면 "북한도 사람 사는 곳이구나!"하는 느낌을 들게 하기도 한다. 당시 미들즈브러에 사는 어린이들이 자발적으로 북한 선수들이 묵는 캠프를 찾아가 사인을 받고 인공기가 그려진 셔츠를 입고 북한을 열렬하게 응원했다고 한다. 더욱이 북한 팀이 8강전을 치르기 위해 리버풀로 이동했는데도 미들즈브러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북한 팀을 응원하기 위해 리버풀까지 원정 응원을 간 사실은 그만큼 당시 북한 선수들이 현지인들의 열렬한 성원을 받고 있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밖에도 리찬명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인터뷰를 하는 장면에서 평양 초등학생들을 비추는 장면이 있는데 그 때 평양 초등학생들이 카메라가 신기한가 자기 얼굴 찍힐려고 죄다 앞으로 몰려서 렌즈 앞에 다가가는 장면이 나오는데 우리나라 초등학생들이 뉴스 촬영 때 자기 얼굴 찍히려고 카메라 앞에 다가가고 손 흔들고 하는 모습 같아 그 모습이 꽤나 귀엽다. 어딜 가나 애들은 다 똑같네.

한편 북한 축구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다 보니 북한 체제에 대한 비판이나 북한의 실상들이 자세히 묘사되어 있지 않아 북한에 대한 시각이 흐려질 위험이 있다는 지적도 존재한다. 하지만 이런 다큐멘터리에 북한에 대한 비판이 꼭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 반공논리에 가깝다. 어차피 북한당국이 이 다큐멘터리를 허가해주는 조건에 정치적 논란을 배제하겠다는 감독의 약속이 있었을 것이고, 북한의 열악한 사정은 굳이 직접적으로 묘사 하지 않아도 충분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7. 기타

대니얼 고든은 이후 계속해서 북한을 드나들면서 두편의 다큐멘터리를 더 만들었다. 평양의 여학생을 다룬 어떤 나라(A State of Mind, 2004년)와 월북 미군을 다룬 푸른 눈의 평양 시민(Crossing the Line, 2006년)이다.


[1] 포탈 사이트 다음에선 다니엘 고든으로 표기하고 있다. [2] 영화 개봉 당시인 2002년을 기준으로 한다. [3] 덕분에 불참한 대가로 벌금을 지불해야 했다고 한다. [4] 영화 설명에 따르면 미들즈브러는 프리미어리그에서 다소 약체 구단이었기 때문에 미들즈브러 주민들은 은연 중에 약팀인 북한을 응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5] 림중선의 인터뷰에 따르면 그 때 느낌은 암흑 속에서 광명을 본 듯한 느낌이었다고 한다. 하긴 그 경기도 지면 바로 광탈이었으니까. [6] 옛날 선수라 다소 생소하겠지만 이 사람은 1960년대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미드필더로 볼로냐 FC의 레전드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탈리아에서 시즌 최고의 미드필더들에게 그의 이름을 딴 불가렐리 상을 수여하는 것만 보아도 그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다. 그러나 국가대표 생활은 상당히 불운했는데 A매치 출전이 29경기에 불과해 명성에 비해서는 다소 적은 편이며 결정적으로 그가 출전한 2번의 월드컵( 칠레 월드컵 잉글랜드 월드컵)에서 이탈리아는 모두 조별리그에서 광탈했다. [7] 불가렐리가 박승진을 향해 태클을 걸었는데 박승진의 몸이 공중으로 떴다가 그대로 불가렐리의 다리 위로 떨어졌다. [8] 당시는 선수 교체 제도가 없었기 때문에 출전한 선수들은 무조건 90분 풀타임을 뛰어야 했고 한 선수가 부상을 당해 경기를 뛸 수 없는 상태가 되면 그 선수가 빠진 상태로 경기를 치러야 했다. [9] 공식 기록에 따르면 23초라고 한다. [10] 이 대회에서 북한은 유독 상대의 페널티킥에 약했다. 이 대회에서 북한이 기록한 실점은 9실점인데 그 중 3실점이 페널티킥이었다. 사실 그것도 이유가 있는데 골키퍼 리찬명의 키가 겨우 170cm(5피트 7인치)에 불과한 단신이었다는 게 문제였다. 그 때문에 상대 킥커가 골대 상단으로 슛을 갈겨 버리면 키가 작은 리찬명으로서는 아무리 방향을 잘 잡아내도 막기가 어려웠다. [11] 명례현 감독은 림승휘의 포지션을 그 당시 용어인 레프트 하프로 소개했다. [12] 참고로 박승진은 북한 축구 선수들 중 월드컵에서 최다 득점을 기록한 인물이며 현재까지도 그 기록은 유효하다. [13] 당시 대표팀에서 가장 많은 골을 넣었기에 공격수로 오해 할 수 있으나, 명례현 감독은 박승진의 포지션을 그 당시 용어인 라이트 하프로 소개했다, 오늘날 우측 수비형 미드필더를 뜻한다. [14] 명례현 감독은 양성국의 포지션을 레프트 윙이라고 소개했다. [15] 명례현 감독은 한봉진의 포지션을 라이트 윙이라고 소개했다. [16] 이는 가장 최근 대회인 2014 FIFA 월드컵 브라질에 출전한 팀들 중 가장 평균신장이 작은 칠레 대표팀(176cm)보다 10cm이상 작은 것이다. 물론 그 때와 이 때는 50년 가량의 시차가 있다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 [17] 북한이 잉글랜드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하고 캄보디아에서 귀국한 그 날을 말한다. [18] 북한에서는 월드컵을 세계 축구 선수권대회라고 부른다. 여기 출연한 선수들도 모두 그렇게 말했다. [19] 위키백과에 따르면 리찬명은 1947년 1월 2일 생이라고 한다. 북한은 우리와 달리 만 나이를 쓰므로 그 당시에 리찬명은 19세가 맞다. 참고 [20] 박두익의 선제골이 들어갔을 때의 기분을 말한다. [21] 취소선이 그어져 있지만 이는 결코 드립이 아니다. 2002년 때 세네갈은 우루과이와의 조별리그 3차전에서 전반전에만 3골을 넣어 3 : 0으로 크게 앞서갔는데 이 때문에 승리에 도취된 탓인지 후반전에 완전히 개판이 되어버렸고 그 틈에 우루과이가 맹추격하여 순식간에 3 : 3으로 따라붙었다. 만일 세네갈이 1골을 더 내주어 역전패를 당했다면 승자승 원칙에서 우루과이에 밀려 조별리그에서 광탈할 뻔했다. 2014년 브라질 월드컵 지역 예선에서도 독일은 스웨덴과의 경기에서 후반 11분까지 4골을 넣으며 4 : 0으로 크게 앞서갔으나 이후 승리에 도취된 탓인지 완전히 개판이 되어버렸고 그 틈에 스웨덴이 후반 17분부터 남은 30여 분 동안 대반격을 감행해 4골 차라는 압도적인 점수 차를 극복하고 4 : 4 동점을 만들었다. 참고로 국제 경기에서 4점 차 점수가 따라잡힌 건 그 때가 처음이었다. [22] 북한에서는 골을 알이라고도 한다. 즉, 1골, 2골을 1알, 2알이라고도 한다는 것. [23] 하프타임 때까지 스코어는 아직 3 : 2로 북한이 이기고 있었다. [24] 가사가 있는데 어르신들이 잘 기억이 안 나는 모양인지 유독 중간에 2소절 정도를 웅얼거려서 잘 알아들을 수가 없다. [25] 형태로 보아 국기훈장과 로력훈장인 듯하다. [26] 다만 이것도 추후 검증이 필요하다. 북한의 언론은 관제언론인데다 평양 지역의 일은 타 지방에 잘 알려지지도 않는다. 그러므로 탈북자 본인이 직접 체험한 북한 경제의 실상, 인권 실태 등에 관한 것이라면 몰라도 정권 내부의 정치적인 문제에 대해서는 걸러 들을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