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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2 10:01:21

님로드 작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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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사관에 돌입하는 SAS 대원들[1]

1. 개요2. 테러범의 요구 사항3. 테러범과 인질들의 위치4. 전개 과정
4.1. 사건 발단4.2. 인질 살해4.3. 구출 작전 준비4.4. 님로드 작전4.5. 사건 종료
5. 성공한 작전, 어두운 이면6. 후일 파우지 나자드의 행보7. 등장 매체

1. 개요


주영 이란 대사관 점거농성 사건(The Iranian Embassy Siege) / 님로드 작전(Operation Nimrod)
گروگان‌گیری سفارت ایران در لندن

1980년 4월 30일 오전 11시 20분에 발생한 주 영국 이란 대사관 인질사건을 영국 특수부대 SAS가 진압한 사건. SAS의 이름을 본격적으로 알린 중요한 사건으로, 대테러전 역사에 한 획을 그은 작전으로 평가받는다.

2. 테러범의 요구 사항

이 사건을 저지른 테러범들은 여느 중동 국가의 테러범들처럼 분수를 모르고 영국에 대들다가 진압당한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리스트쯤으로 잘못 알려졌지만 이들의 테러 동기는 종교도 아니었고 목표도 영국 정부가 아니라 이란 호메이니 정권이었다.

이들은 이란 내 아랍인 독립운동[2] 단체인 아라비스탄 해방을 위한 민주혁명운동(الجبهة الديمقراطية الثورية لتحرير عربستان Democratic Revolutionary Movement for the Liberation of Arabistan: DRMLA) 소속으로 이란 남서부의 유전 지역 아라비스탄(Arabistan)[3]의 해방과 자치를 요구했다.

당시 이란 정부에서 아라비스탄으로 파견한 아마드 마다니 장군은 호메이니의 도살칼이라는 별명이 붙을 정도로 잔인하게 아라비스탄의 아랍인들을 학살했다. 21세기처럼 스마트폰으로 만행의 현장을 찍어 인터넷에 올릴 수 있는 것도 아니었고 이들의 참상을 세계에 알릴 길은 외신기자들의 특파뿐이었는데 당시 서방 주요 언론들은 아라비스탄에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도 몰랐다. 결국 DRMLA 측에서는 테러리즘 말고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이들이 공격 목표를 영국의 이란 대사관으로 삼은 것은 1979년 호메이니에 의한 이란 혁명 주 이란 미국 대사관 인질 사건 이후 영국을 비롯한 서방세계와 이란의 관계가 냉랭해져서 영국 정부가 자신들을 도와주거나 돕지는 않더라도 진압작전만은 펼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나 이는 명백한 오판이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종전 이후 영국은 웬만하면 타국과 정면으로 대립하지는 않는다는 외교정책으로 선회했고 서방과 관계가 험악해진 이란과의 관계를 회복할 기회가 필요한 상황이었다. 그리고 여기서 이들은 한 가지 더 오판한 것이 있었다. 대사관 내 4명을 제외하면 이란인들이 인질의 대다수(22명)였기 때문에 이란 정부가 협상에 응해 줄 것이라고 예상했지만 이들의 생각과는 달리 이란 정부는 이들의 생각 이상으로 자국민의 생명을 경시하는 집단이었다. 즉 이란 정부는 '인질들을 죽이든 말든 니들 맘대로 해라'라는 식이었다. 거기서 죽는 이란인의 피값을 아라비스탄에서 받겠다며 되레 협박조로 나온 것이다. 만약 대사관의 이란인들이 살해된다면 아라비스탄의 아랍인 탄압을 더욱 강화하는 명분으로 쓰기에 더할 나위가 없었다.[4]

테러범의 우두머리인 오안 알리 무하마드(Oan Ali Mohammed)는 다음과 같은 성명을 발표했다.
"하나, 우리는 인권과 제반 법적 권리를 요구한다. 둘, 우리는 아라비스탄 지역민의 자유와 자치를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셋, 우리는 수감된 91명의 아라비스탄 애국자의 해방을 요구한다. 만약 이러한 요구를 5월 1일 정오까지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대사관을 인질들과 함께 폭파할 것이다."
이들은 본인들의 요구사항을 충족시켰을 시 외국으로 도주할 수 있는 물자와 항공기도 요구했다. 원래 오안의 요구사항은 이란의 석유 매장고인 아라비스탄의 자치와 독립을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아라비스탄의 석유 매장량과 지역적인 가치만으로도 이란 정부는 22명의 인질 정도는 죽어도 좋다는 마음이었기 때문에 요구사항을 동지들의 석방으로 바꾸었다.

3. 테러범과 인질들의 위치

사건 초기의 빠른 대응과 도청기, 감시 카메라 등의 장비를 통해 인질들의 위치와 테러범의 위치도 빠르게 파악할 수 있었다. 인질들은 대부분 2층에 위치하였고 구출 작전을 방해하기 위해서 테러범들은 4명의 영국인 인질들을 끌고 이 층 저 층, 이 방, 저 방으로 옮겨다니면서 인질들의 위치를 계속해서 바꿨다. 덕분에 5층 건물인 대사관에서 이리저리 옮겨다니던 영국인 인질들을 구출하기 위해서는 사방에서 인질 구출팀이 투입되어야만 성공적인 구출작전을 실행할 수 있었다. 테러범은 인질들을 끌고 다니는 몇몇 동료들을 제외하고 3층의 소파에 앉아서 대사관에 설치된 TV로 밖의 상황을 관찰하고 있었다고 한다.

4. 전개 과정

4.1. 사건 발단

1980년 4월 30일 '아라비스탄 해방을 위한 민주혁명운동' 소속의 괴한 6명이 런던 프린세스 게이트 16번지의 이란 대사관에 난입했다. 1명의 영국 경찰 트레버 록 순경을 포함한 26명을 인질로 잡은 테러범들은 Vz.61 기관단총과 브라우닝 하이파워 권총, 소련제 RGD-5 수류탄으로 무장하고 있었다.[5] 이들은 이라크의 지원을 받았기 때문에 훈련 수준도 꽤 높았다.[6]

런던광역경찰청은 바로 테러 대응팀과 협상팀을 대사관으로 파견하는 한편 대사관 주변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하고 경계테이프까지 쳐서 민간인들의 접근을 막았다. 여기서 테러대응팀이 빠르게 대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당시 대사관 인질 중 한 명이었던 록 순경으로부터 긴급신호를 전파받아 빠르게 조치했기 때문이었다.

협상가들이 테러범과의 협상을 이어가는 한편 다른 정부 요원들은 벽에 도청장치를 설치하고 초소형 광학 카메라를 들여보내는 등 자칫 발각될 시 인질의 목숨이 위험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능숙하게 임무를 수행했다. 또 영국 정부는 이들의 발각 위험을 낮추기 위해 주변 도로나 주택에서 공사를 진행하거나 항공기를 더 낮은 고도로 비행시켜 소음을 만들었다.

SAS 역시 사건 현장으로 급파되었는데 전투복을 입고 현장에 들어서기에는 언론의 노출 위험도가 높아 자칫하면 테러범들에게 구출작전이 들통날 위험이 있어서 사복 차림으로 현장에 들어왔다. SAS 대원들은 현장에 도착하자마자 2인 1조로 건물을 정찰하며 인질을 구출해야될 건물에 대해서 치밀하게 계획했다. 영국 정부는 성공적인 작전을 위해서 거의 1대1로 대응되는 크기의 이란 대사관 모형을 만들어 SAS 대원들을 도왔으며 대사관의 청사진과 설계도면 등을 제공했다.

4.2. 인질 살해

대사관을 모두 점거한 오안은 여성과 환자를 우선적으로 석방시키고 협상팀의 반응을 두고보고 있었다. 협상은 대사관 내의 전화기로 이뤄지고 있었다. 하지만 영국 협상팀은 이에 대해서 별다른 답변이나 요구사항을 반영하지 않았고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이 더 지나고 계속 협상팀이 반응을 보여주지 않을 시에는 인질들을 살해하겠다고 BBC를 통해서 직접 협박하기까지 했다.

하지만 영국 정부는 이에 대해서도 역시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고 흥분한 테러범 두목 오안은 며칠 전부터 테러범에 대해서 불만이 많았던 대사관 공보 담당관 아바스 라바사니(Abbas Lavasani)를 살해하고 시신을 대사관 밖으로 던져 놓았다. 결국 상황이 이 정도로 급박하게 흘러가자 영국 정부도 SAS를 본격적으로 투입하기로 결정했다.[7]

4.3. 구출 작전 준비

작전 투입 전 대사관 모형과 완전히 똑같은 모형을 이용해 실전과 비슷한 작전환경을 구성하고 상황에 맞는 조치를 바로 취하기 위해서 여러 장비들이 지원되어 SAS 대원들은 실전과 같은 훈련을 진행할수 있었다. 이들에게 지급된 장비는 상단에 플래시라이트가 장착된 H&K MP5A3 기관단총과 브라우닝 하이파워 권총, 사각형의 나무 틀에 붙은 돌파용 폭약, 그리고 당시 영국군의 제식 방독면이었던 S6 방독면과 무광 검정 전투복 등이었다.[8]

먼저 SAS의 계획은 Hit from above로 말 그대로 위에서 기습한다는 작전이었다. 상세하게는 가장 먼저 선두가 옥상에서 진입하여 5층을 빨리 소탕하며 다른 팀들은 발코니와 창문등으로 침투해 내부를 소탕하고 그 외의 지원팀이 인질들을 구출하는 흐름이다. 옥상과 5층 소탕 그리고 3, 4 층 소탕을 맡은 1, 2팀이 옥상에 도착해 하강을 시작하였다. 첫번째 강하조는 무사히 발코니에 착지하였지만 두번째 강하조가 실수로 발코니 유리창을 깨뜨리는 바람에 소리가 협상팀과 전화로 협상을 진행하던 테러범 두목 오안에게 노출되고 말았다. 이에 진압작전이 발각되자 곧바로 SAS는 돌입작전을 시행했다.

4.4. 님로드 작전

돌입명령이 떨어짐에 따라 최우선 투입조인 1팀이 옥상으로 투입되었다. 3층 계단과 4층 사이에 있었던 테러리스트는 SAS의 투입을 알아챔과 동시에 폭발한 섬광탄으로 인해 시력을 잃고 비틀거렸다. 이때 SAS 대원 중 3팀에 속했던 발코니 돌파조 한 명은 테러범과 같이 있던 인질들에게 엎드리라고 지시하는 한편 인질이 대피하자 창문을 폭파하고 건물로 돌입했지만 폭발력이 강해 발코니 왼쪽 지지대와 벽 한쪽에 커다란 금이 가고 건물 내부에도 구멍이 나 버렸다. 그것 때문에 건물붕괴의 우려가 있자 건물 후문 쪽에서 침투를 계획한 4팀과 5팀은 돌입을 포기했고 폭발물을 사용하는 대신 대형 망치로 창문과 경첩을 박살내고 건물로 돌입하였다.

이때 발코니로 진입하던 2팀 팀장의 레펠이 꼬여서 허공에 매달리는 사태가 벌어졌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창문 가까이서 폭발한 섬광탄 하나 때문에 발코니 커튼에 불이 붙었고 2팀 팀장의 다리에 불이 붙었다. 2팀장은 불을 끄려고 레펠을 이리저리 흔들었지만 소용이 없자 아예 줄을 잘라서 겨우 탈출했다. 하지만 불이 꺼졌을 땐 이미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고 말았다. 무전으로 2팀장의 고통스러운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그는 묵묵하게 본인의 임무를 수행했다.

한편 테러범이 위치한 3층에서 대사관 비서실에서 권총과 수류탄을 들고 있는 테러범 두목 압둘 오안을 발견했다. 오안이 창문 밖에서 레펠 강하를 시도하려는 SAS 대원에게 권총을 발사하려고 하자 사실상 대사관의 보안경비원이었다는 이유로 테러범의 인질 사살 대상 0순위였던 록 순경이 오안에게 달라붙어서 오안을 넘어뜨렸으며 곧바로 돌입한 3팀 대원 중 한 명이 록 순경을 옆으로 비키게 했고 오안이 일어서기도 전에 그를 사살했다.

SAS 대원들이 테러범 두목을 사살하고 록 순경을 구출한 후 3층에서 난 총 소리를 듣고 다른 테러범 타미르 모하메드 후세인이 권총을 들고 3층 계단으로 올라와 집무실로 걸어왔다. 금방 3팀의 돌입조에게 발각된 타미르는 섬광탄이 코앞에서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비틀거리며 대사관 집무실로 도망쳐 버렸다. 몇몇의 인질들이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인질이 사살당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3팀 2인조가 타미르를 쫓아 집무실로 돌입하는 한편 또다른 돌입조인 4팀이 3층으로 올라와 3팀과 합류했다. 집무실의 문을 박살내고 돌입한 SAS 대원들은 순식간에 타미르를 사살해 버렸는데 부검 당시 타미르의 몸에는 20발 이상의 9mm 탄환이 박혀 있었다고 한다.

옥상 진입조인 1, 2팀이 화상으로 부상당한 2팀 팀장과 함께 발코니로 들어온 한편 대사관 회계 사무실 쪽에 2팀이 하나둘 들어왔다. 이쪽 사무실에는 테러범들이 구출팀의 투입을 우려해 문쪽에 신호가 오면 직접 발화시켜 폭발물을 터뜨리는 부비트랩이 문쪽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당시 대원들은 부비트랩의 존재 여부를 확인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부비트랩에 점화를 시도하던 샤키르 술탄 사이드라는 테러리스트가 창문 돌입을 시도하던 다른 2팀 대원에게 발각되었는데 그 대원은 즉시 건물내부로 섬광탄 하나를 투척했다. 순식간에 강력한 섬광이 사이드의 눈을 마비시켰고 SAS 대원의 총격을 피해 겨우겨우 텔렉스실로 도망쳤다. 총기 고장과 레펠 사격으로 정확한 사격이 불가능했던 2팀 대원은 사이드를 따라서 텔렉스실로 쫓아갔는데 이미 사이드가 인질들 3명에게 권총을 발사한 직후였다. 이 중 한 명은 심장을 다행이 빗나가 엉덩이에 총알을 맞았고 다른 한 명은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테러리스트가 총격을 가한 덕분에 총격을 받지 않았지만 3번째 인질인 31세의 학생인 알리 사마자데는 스콜피온 기관단총의 총격을 받아 이미 사망했다. 총알이 소진된 총을 던져 버린 사이드가 텔렉스 실에서 빠져나가려고 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를 쫓아왔던 SAS 대원들에 의해서 순식간에 사살당했다.

무사히 전원이 대사관 돌입에 성공한 2팀 대원들은 회의실 근처에 위치한 암호실로 들어가 여성 인질들을 확보하고 중앙계단 돌입에 나섰는데 이때 잠복했던 마키 하눈 알리라는 테러범을 발견했다. 다리에 심한 화상을 입었던 2팀 팀장은 알리를 보자마자 사격했는데 몇 발의 총알을 얻어맞은 알리는 바로 쓰러졌다.

테러범 6명 중 4명을 사살하고 인질들의 절반 이상을 확보한 대원들은 화장실과 집무실 및 기타 사무실을 점검하면서 인질의 유무와 테러범들을 확인했다. 곳곳에서 "Clear!"이라는 소리가 들려왔고 인질들 중에 테러범이 숨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에 인질들의 얼굴에 덮개를 씌우고 한 명씩 계단을 따라 1층으로 보내졌다. 가장 우선적으로 테러범 중에는 여성이 없었기 때문에 여성 인질인 5명이 대사관을 빠져나왔는데 덮개를 씌우기 전에 대사관 직원이었던 여성 인질 한 명과 SAS 대원 한 명이 인질들 사이에서 수류탄을 터뜨리려고 하는 '사키르 압둘 랏힐'이라는 테러리스트를 발견했다. 이 남자는 파이살이라고 알려진 테러리스트였는데 인질들 및 다른 SAS 대원들과 섞여 있었기 때문에 총기를 발사할 수 없었지만 그 대신 테러범을 발견한 SAS 대원은 MP5를 돌려쥐고 뒤쪽에서 개머리판으로 랏힐의 뒤통수를 가격했다. 순식간에 랏힐은 1층 계단 밑으로 굴렀고 그를 확인한 건물 하층부 돌입조인 4팀 대원이 넘어진 랏힐을 사살했다.

테러범 6명 중 5명이 무력화되었지만 아직 테러범 한 명이 남아 있었고 건물 내부는 CS 가스탄과 섬광탄의 화재 연기로 인해 연기로 자욱했다. 소개된 여자 인질 5명을 제외하고 19명의 인질들이 신체 수색과 테러범 확인을 위해 대사관 앞의 정원에 엎드려 있었는데 이때 마지막 테러리스트인 파우지 바다비 나자드가 숨어 있었지만 같이 있었던 인질 중 한 명이 이 테러범을 알아보고 대원들에게 이 사실을 알려 체포됐다. 아래 문단에서 하술되지만 이때 나자드는 SAS 대원의 월권행위로 사살될 뻔했다.

테러리스트 중 유일한 생존자인 파우지 나자드는 2008년에 중년의 나이로 가석방되어 영국에서 연금을 받으면서 조용히 살고 있다. 석방되기 한참 전에 아라비스탄 독립운동의 근간 자체가 이란 정부에 의해 박살났고 아라비스탄에 남은 동료들도 죽거나 투옥됐으며 아라비스탄에 돌아가 봤자 이란 정부에 의해 처형될 게 뻔해서 고국에 돌아가지도 못한다. 파우지 나자드 본인은 영국 망명을 원했지만 영국법에 의하면 테러범은 망명하는 것이 불가능하므로 기각되었다. 그래서 2008년 석방 당시 이란에서 나자드를 송환하라고 요구했는데, 돌아가자마자 이란 정부에 의해 끔살 당할 것이 뻔하므로 영국정부는 인권법을 근거로 송환을 거부했다. 이후 나자드는 개명해서 같은 아랍인들이 운영하는 직장에 다니고 있다. 나자드의 석방 당시 트레버 록이 위험인물을 석방시켰다고 비판했지만 몇 년이 흘러 나자드가 조용히 사는 모습을 보고 마음을 바꿨는지 그를 용서한다고 언론에 밝히기도 했다.

4.5. 사건 종료

이렇게 5명의 테러범을 사살하고 1명을 체포함으로써 대사관의 테러리스트는 모두 무력화되었으며 돌입 과정에서 화재로 부상을 입은 2팀 팀장을 제외하면 SAS 대원들은 부상자가 없었다. 다행히 화상을 입었던 2팀 팀장은 완치 후 복귀했다. 무엇보다도 치밀한 계획설계 덕분에 20여명 정도의 인질 중에서 작전 이전에 처형당한 인질 1명을 제외하면 작전 중 사망한 인질은 단 1명뿐이었다. 인질들이 방마다 고르게 분포해 있었음에도 돌입팀은 하나하나 세밀하게 인질들을 구출해냈다. 작전 성공 소식에 SAS의 지휘부와 언론사 그리고 내각 수뇌부, 영국 국민들과 전 세계가 환호하였다. 영국 정부는 당국이 무력을 행사하면 인질들의 절반 정도인 10명을 사살당할 수도 있다는 예측을 했지만 놀라운 SAS 대원들의 돌입작전과 인질의 협조, 정부의 치밀한 계획 등으로 인해서 작전은 성공리에 막을 내렸다. 테러범을 사살하고 인질들을 무사히 구출하는 데 걸린 시간은 단 11분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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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질들이 무사히 구출되기까지 SAS 대원들은 언론의 카메라 앞에서도 방독면과 검은 전투복을 벗지 않고 거의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조용히 본인들이 타고온 수송차량을 타고 런던의 SAS 전초기지인 리젠트파크 막사로 복귀한 대원들은 이곳에서 남편과 기다리고 있었던 마거릿 대처 총리와 만났다. 대처 총리는 모든 대원들과 악수하면서 이들이 해낸 놀라운 성과를 격려했다. 물론 대처 총리와 기념 사진을 찍을 때까지 방독면은 절대로 벗지 않았다.[9] 소식을 들은 로즈 중령도 성공적인 소식에 안도했다고 한다. 이후 SAS에 지원하고자 하는 젊은 층들이 대폭 늘어났다고 한다.

이런 군사적 성과에 고무됐는지 SAS는 대처가 대모를 자청할 정도로 아끼는 부대가 됐다. 이 사진 말고도 SAS와 찍은 사진이 수두룩하며 심지어 인질 구출 훈련에 본인이 인질로 참여까지 했고 SAS 지휘관에게 자신과 바로 연결될 수 있는 전화까지 놔 줄 정도로 가까이 여겼으며 이 전화로 SAS 지휘관이 포클랜드 전쟁 당시 아르헨티나가 도입한 엑조세 미사일의 프랑스 생산공장 사보타주하겠다는 막나가는 말까지 할 정도로 가까웠다. 물론 이건 대처도 안받아줬다

이후 이 사건은 마법의 불꽃 작전, 엔테베 작전, 에어 프랑스 8969편 납치 사건과 함께 가장 성공적인 인질 구출, 특공 작전의 대표적 사례로 남았으며 SAS 대원들이 작전 중 사용했던 검은 전투복과 방독면, 섬광탄, 기관단총의 명작 MP5 등의 장비는 전 세계의 수많은 대테러부대들의 기본 장비로도 채택되어 일반적으로 '대테러부대'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를 형성했다.

5. 성공한 작전, 어두운 이면

진압 작전 당시 남자 인질들이 갇혀 있었던 방에 있었던 테러리스트 2명이 인질들에 의해 설득되어 무기를 창밖에 버리고 하얀 깃발을 들고 있었던 게 방송 화면에 잡혔지만 곧 진입한 두 SAS 요원들에게 사살되었다. 해당 SAS 요원들은 항복한 테러리스트들이 무기를 들려고 했다고 생각해 사살했다고 주장했으며 이후 재판에서 정당 살인(justifiable homicide/lawful killing)으로 판결났다. 그리고 진압 작전 당시 인질들 사이에 숨어 있던 파우지 나자드가 발각되었을 때 SAS 대원 한명이 그를 내부로 다시 끌고 데려가 사살하려고 했지만 전세계에 생방송되고 있다는 걸 알고 곧 그만두었다.[10] 당시 전문가로 이루어진 대테러부대가 악감정에 이끌려 살인을 저지르려 했다는 점을 들어 비판을 받았다. 위 상황을 다룬 기사 (영문)

6. 후일 파우지 나자드의 행보

7. 등장 매체


[1] 오른쪽에 창문을 넘는 대원은 프라이스 대위의 모델이 된 John McAleese라는 대원이다. [2] 이란의 주 민족은 아랍인이 아니라 페르시아인이다. [3] 이란에서의 공식적인 명칭은 후제스탄(Khuzestan). 이란의 주 민족인 페르시아인이 아닌 아랍인이 주로 거주하고 있다고 해서 '아라비스탄'이라는 이름이 붙었으며 이들은 대부분 이란의 국교인 시아파가 아닌 수니파를 신봉한다. [4] 아라비스탄의 아랍인들은 발루치인, 쿠르드인과 함께 이란 정부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5] 인질극에 사용된 무기들은 이라크의 외교 전용행낭(diplomatic bag or diplomatic pouch)을 통해 들어온 것이었는데 면책 특권을 통해 공항에서 짐 검사를 하지 않고 통과할 수 있기 때문이다. [6] 그리고 약 4개월 뒤 이란-이라크 전쟁이 발발했다. [7] 이때 어찌나 언론에서 사망자가 나왔다고 보도되었는지 당시 사실상 작전 총책임자였던 마이클 로즈 중령(당시 제22공수특전연대장이었고 님로드 작전 이후에도 포클랜드 전쟁에서 특수작전을 지휘했으며 특수전사령관과 제2보병사단장을 거쳐 중장으로 진급해 야전군사령관과 보스니아 유엔보호군사령관을 역임하고 대장으로 명예 진급한 뒤에 퇴역했다.)이 노발대발했다고 전해진다. 대처 수상이 작전을 명령하고 긴장감이 조성되었던 시기에 사망자가 나와 상황이 악화되었는데 언론마저 이를 끈질기게 보도했으니 속이 타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8] 일부 대원들은 MP5SD와 MP5K를 사용했다는 주장이 있다. [9] 테러리스트의 보복 및 신상을 이용한 각종 방해공작이 있을 수 있기 때문에 대원들이나 그 가족들의 안전을 위해서 대원들의 신상정보는 최소 2급 기밀에 해당하는 정보로 지정한다. 그래서 화상을 입은 2팀 팀장도 신상이 공개되지 않았다. [10] 이는 해당 사건을 다룬 BBC 다큐멘터리에서도 당시 작전 참가자의 인터뷰를 통해 넌지시 언급된다. [11] 지금은 이 이름이 아니다. 출소하면서 이름을 바꿨다. [12] 이민자와 저소득층이 많은 낙후된 지역이다. [13] 이란인은 페르시아인으로 아랍인과 인종도 다르고 종파도 다르다. 게다가 페르시아인과 아랍인은 원수지간처럼 사이가 좋지 않기 때문에 이란측에서는 협상을 받아줄 의사가 없었다. [14] 테러범들은 아랍연맹 국가들과 같은 아랍인이고 이슬람 종파도 같다. 그래서 영국이 그냥 이들을 국외로 보내주길 바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