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탄 사보의 수상 이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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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MVP | ||||
1999-2000 | → | 2000-01 | → | 2002-03[1] | |
세르지오 히칼도 ( 알 힐랄 FC) |
→ |
졸리 ( 수원 삼성 블루윙즈) |
→ |
테르삭 차이만 ( BEC 테로 사사나) |
세르비아의 前 축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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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eee,#191919> 이름 |
졸탄 사보 Zoltan Sab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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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 등록명 | 졸리 | |
출생 |
1972년
5월 26일 SFR 유고슬라비아 SR 세르비아 솜보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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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20년
12월 15일 (향년 48세) 세르비아 공화국 스렘스카 카메니차[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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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적 |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 →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 세르비아 공화국 ) → 세르비아 공화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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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83cm, 78kg | |
직업 |
축구선수(
센터백 / 은퇴) 축구감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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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속 | 선수 |
제딘스트보 스베토자르 밀레티치 (유스) FK 라드니츠키 솜보르 (~1991 / 유스) FK 하이두크 쿨라 (1991~1992) FK 보이보디나 (1992~1996) FK 파르티잔 (1996~2000) 수원 삼성 블루윙즈 (2000~2002) 아비스파 후쿠오카 (2002) 잘라이게세그 TE (2003) AEK 라르나카 (2003~2004) FK 믈라도스트 아파틴 (2004) FK 시멘트 베어친 (2005~2008) |
감독 |
케치케메티 TE (2007~2009 / 수석 코치) FK 라드니츠키 솜보르 (2009~2011) FK 하이두크 쿨라 (2011~2012) FK 보이보디나 (2012 / 수석 코치) PFC 리텍스 로베치 (2013~2014 / 수석 코치) FK 도니 스렘 (2014~2015 / 수석 코치) FK 보이보디나 (2015 / 수석 코치) FK 프롤레테르 노비 사드 (2016) FK 야고디나 (2016) FK 프롤레테르 노비 사드 (2016~2017) FK TSC 바츠카 토폴라 (2017~20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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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졸탄 사보 ( 세르비아어(키릴):Золтан Сабо, 헝가리어: Szabó Zoltán, 1972년 5월 26일~2020년 12월 15일)은 세르비아 출신의 외국인 선수로 2000년부터 2001년까지 K리그에서 활약한 선수이다. 등록명은 졸리.2. 선수 생활
2.1. K리그 이전
세르비아 사회주의 공화국 보이보디나 자치주에서 헝가리계 세르비아인으로 출생, 1990시즌 자국리그의 하이두크 쿨라에서 데뷔한 졸리는 1991년부터 1996년까지 FK 보이보디나 팀에서 활약하였고, 1996년부터 2000년까지 파르티잔 베오그라드팀에서 활약하였다. 동구권에선 나름 인지도가 있었던 선수였다.2.2. K리그
2000년 시즌 초반 부진으로 성적이 급전직하한 수원 삼성 블루윙즈는 외국인선수 리빌딩을 하고 있었다. [3] 사샤 드라쿨리치와 비탈리 파라흐네비치를 모두 일본으로 보낸 수원은, 1997년부터 수원의 핵심 수비수로 활약해온 올리를 J리그의 제프 유나이티드로 6개월 임대 후 완전 이적으로 내보내기에 이른다. 이에 수원은 올리의 공백을 메워줄 듬직한 수비자원이 필요했고, 바데아의 추천을 받아 졸리를 데려오게 되었다. 이적료는 40만 달러에 연봉은 72,000달러의 조건이었다고.. 2000년 후반기에 합류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졸리는 19경기에 출전하여, 주특기인 대인 마크와 공중볼 경합을 바탕으로 올리의 공백을 무색케 할 만큼 좋은 활약을 보여주었다. 덕분에 2000시즌 초반 곤두박질을 치던 팀의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게된다. 2001년은 졸리의 해로 불려도 손색이 없을 지경이었는데, 2001년 제20회 아시아클럽선수권(현 AFC 챔피언스 리그)에서 졸리는 안정감있는 수비를 바탕으로 수원의 아시아 재패에 큰 공헌을 하였으며, 이를 인정받아 제20회 아시아클럽선수권대회 MVP를 수상하게 되었던 것. 그야말로 최고의 한해를 보냈다. 그러나 이듬해인 2002년 졸리는 아디다스컵 2경기에만 출장해 퇴장 1회를 기록한 뒤, J리그의 아비스파 후쿠오카로 이적하며 한국과의 인연을 정리하였다.2.3. K리그 이후
2002년 아비스파 후쿠오카에서 뛴 졸리는 2002/03시즌 헝가리 잘라이게세그 TE와 2003/04시즌 키프로스의 AEK 라르나카[4], 2004/05시즌에는 고국 세르비아의 FK Mladost Apatin을 거쳐 2005년부터 2008년까지 FK Cement Beočin에서 활약한 것을 마지막으로 선수 생활에 종지부를 찍었다.3. 감독 경력
선수 생활 은퇴 이후 헝가리의 케치케메티 TE에서 수석 코치직을 맡으며 코치 경력을 시작했다.이후 세르비아의 FK Radnički Sombor의 지휘봉을 잡으며 감독으로 데뷔했고, 하이두크 쿨라[5]의 감독을 역임하기도 했다. 2017/18시즌에는 세르비아 수페르리가의 FK TSC 바츠카 토폴라에 풋볼 디렉터직으로 선임되었고, 2018/19시즌부터는 구단의 감독직까지 함께 역임하며 구단의 중심축으로 활약했다.
그러나 지난 2020년 12월 15일 급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인해 48세의 나이로 생을 마감했다.[6] [7]
4. 에피소드
올리는 지능적이고 터프한 수비수였다면, 졸리는 이름 따라가듯 졸라 거친 수비수였다. 하지만 경고와 퇴장을 밥먹듯이 먹으면서도, 좋은 수비를 보여주어 김호 감독의 신임을 얻었다.졸리하면 2001년 대전팬 난입사건을 빼 놓을 수 없다. 2001년 6월 24일, 수원과 대전 시티즌의 경기가 벌어진 수원종합운동장. 문제의 발단은 후반 45분 데니스가 반칙으로 얻어낸 프리킥을 빨리 차라고 대전 선수와 수원 선수간 실랑이를 벌이다 수원의 졸리와 대전 콜리가 나란히 심판의 징계를 받는데서 시작됐다. 당시 왕종국 주심은 콜리에게 퇴장을 지시한뒤 졸리에게는 옐로카드를 뽑았으며, 곧 이어 레드카드를 내 보였다. 졸리가 2장의 옐로를 받았다는 제스쳐인것. 그러자 졸리는 손가락 하나(경고 1회를 뜻함)를 들어 보인 뒤 태연히 자기편 스크럼속에 들어가버렸다. 관중들은 분명 퇴장당했어야 할 졸리가 경기에 참가해 의아스럽게 여겼다.
공교롭게도 고종수가 찬 왼발 프리킥이 졸리의 키를 넘어 골문 안으로 들어가, 수원이 3:2로 앞서 나간 순간 대전 서포터스는 왜 퇴장 당한 선수가 경기에 참여하는가, 노 골이다 며 흥분, 경기장에 난입했고 이태호 당시 대전 감독 등 대전 관계자들이 격렬하게 항의해 경기장은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이에 대해 왕 주심은 앞서 수원 조성환에게 준 경고를 졸리에게 준 것으로 착각했다가 기록 카드를 보니 아니어서 졸리에 대한 판정을 번복했다. 고 밝혔다. 하지만, 흥분이 가라앉지 않은 대전 서포터들도 심판 면담을 요구하며 경기장 근처를 떠나지 않고 항의를 벌였다. 결국, 이 사건으로 인해 왕종국 주심은 사퇴하였지만, 이후 대전팬들이 왕종국 심판을 비판하는 전단을 게재, 왕종국 주심은 대전 서포터스를 명예 훼손, 초상권 침해, 허위 사실유포 등의 혐의로 고소하며, 이 사태는 2001년 내내 계속되었다.
졸탄 사보가 졸리가 된 이유는 수원 구단이 졸리가 영입되기 전까지 맹활약을 했던 올리처럼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졸리로 지었다고 한다. 다행히 제몫은 해주었으니 이름은 잘 지은 셈.
5. 관련 문서
[1]
2001-02 시즌은 수상기록 미상.
[2]
급성 심정지로 사망했으나, 구 유고 지방 전역을 커버하는 언론인 Sport Klub에 따르면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도 그의 죽음에 관련
있다고 한다. 실제로, 사망한 그는
양성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3]
수원 외국인선수 문서를 꾸준히 읽어온 사람들은 눈치챘겠지만 당시 수원은 성적만 좀 안나왔다 싶으면 뻑하면 외국인을 갈아치웠다.
[4]
당시 AEK 라르나카는 키프로스 컵에서 우승하며 구단 역사상 최초의 우승컵을 들어올리기도 했다.
[5]
2013년 구단의 재정적 문제로 해체되었다.
[6]
감독의 급작스러운 사망으로 인해 2020년 12월 17일로 예정되어있던 인지야와의 경기 또한 연기되었다.
[7]
한편 현지 언론에 따르면 졸리는 코로나 양성 판정을 받은 이후 심장마비로 사망하였다고 한다.
국내 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