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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16 01:14:32

존 드 베레(7대 옥스퍼드 백작)

성명 존 드 베레
John de Vere
생몰년도 1312년 3월 12일 ~ 1360년 1월 24일
출생지 잉글랜드 왕국 옥스퍼드
사망지 프랑스 왕국 랭스
아버지 알폰스 드 베레
어머니 제인 폴리옷
아내 모드 드 배틀스미어
자녀 존, 토머스, 오브리, 로버트, 마가렛, 모드, 엘리자베스
직위 옥스퍼드 백작
1. 개요2. 생애3. 가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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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장군. 제7대 옥스퍼드 백작. 백년전쟁 시기에 프랑스군에 맞섰다.

2. 생애

1320년 3월 12일 제5대 옥스퍼드 백작 로버트 드 베레의 셋째 아들인 알폰스 드 베레와 기사 리처드 폴리옷의 딸인 제인의 외아들로 출생했다. 백부인 제6대 옥스퍼드 백작 로버트 드 베레는 1329년에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로부터 자신이 자손을 남기지 못한 채 사망했을 때 그가 옥스퍼드 영지를 물려받는 것을 허락받았다. 1331년 4월 17일 로버트 드 베레가 자손을 두지 못한 채 사망하자, 그가 제7대 옥스퍼드 백작에 선임되었다. 그는 5월 17일에 왕에게 경의를 표하고 공식적으로 옥스퍼드 백작이 되어 의회에 출석했다.

1334~1335년 에드워드 3세의 스코틀랜드 원정에 참여했으며, 백년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프랑스 해군으로부터 런던과 에식스 해안을 방어할 책임을 맡았다. 1340년 봄 제11대 워릭 백작 토머스 뷰챔프와 함께 200명의 병사를 이끌고 가서 플란데런 백국에서 프랑스군과 맞서고 있던 제1대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를 도우라는 지시를 받았다. 그러나 두 사람은 4월이 되어서야 도착했고, 그나마도 겨우 24명만 이끌고 왔다. 게다가 토머스 뷰챔프는 두 사람이 도착하기 전에 프랑스군에게 사로잡혀 버렸다. 이 때문에 그는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하다가 잉글랜드로 돌아갔다.

1342년 에드워드 3세의 브르타뉴 원정에 참여한 뒤 모를레 전투에 참여했으며, 1343년 스코틀랜드군에 포위된 로크마벤 성을 구원하는 임무를 수행했고, 1345년 브르타뉴에서 원정을 벌여 약탈물을 챙기고 잉글랜드로 돌아가던 중 악천후로 인해 해안에 표류되었고, 현지인에 의해 약탈물을 대거 강탈당했다. 1346년 여름 에드워드 3세의 노르망디 원정에 참여했고, 크레시 전투에서 흑태자 에드워드를 보좌했다. 장 프루아사르에 따르면, 그는 에드워드 왕자가 프랑스군에게 포위된 걸 보고 급히 왕에게 지원군을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에드워드 3세는 "그가 박차를 가하도록 내버려둬라"며 거부했다고 한다.

이후 1차 칼레 공방전에 참여했지만 도중에 중병에 걸려 잉글랜드로 귀환했고, 1355년까지 요양 생활을 했다. 1355년 흑태자 에드워드의 부관으로 합류했고, 흑태자의 슈보시에 참여해 서퍽 백작 로버트 우퍼드, 솔즈베리 백작 윌리엄 몬타구와 함께 도르도뉴 계곡을 행진하고 튀렌 자작령을 침공하는 1,000명의 분견대를 지휘했다. 그의 장병들은 튀렌의 수많은 마을과 성을 점령한 뒤, 1357년까지 주변 지역을 약탈하고 프랑스군으로부터 튀렌을 사수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1356년 9월 19일, 존 드 베레는 푸아티에 전투에서 워릭 백작과 함께 선봉대를 지휘했다. 워릭의 병력이 프랑스군을 정면에서 대적하는 동안, 그는 궁수들을 이끌고 프랑스군 측면으로 이동한 후 화살 세례를 퍼부어 적에게 심대한 타격을 입힘으로써 승리에 기여했다. 1359 ~ 1360년 에드워드 3세의 랭스 원정에 참여했으나, 1360년 1월 24일 랭스 공방전을 치르던 중 전사했다. 사후 에식스에 있는 베레 가문의 매장지인 콜린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