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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9-02 00:20:33

조숙(삼국지)

曹淑
? ~ 232년
1. 개요2. 생애3. 미디어 믹스

1. 개요

삼국시대 위나라의 여성이자 황제 조예의 딸로 예주 패국 초현 사람.

2. 생애

232년에 요절해 시호를 평원의공주(平原懿公主)라 했으며, 명제가 조숙을 위해 묘를 세웠다. 이미 죽은 진씨의 종손 진황의 관을 꺼내 조숙과 합장시켰으며, 명원황후 곽씨의 사촌동생 곽덕을 후계자로 해서 진씨 성을 잇게 하면서 평원후로 책봉해 평원의공주의 작위를 계승하게 했다.

<진군전>에 따르면 조예가 조숙이 죽자 한 달이나 장례를 치르면서 조정의 사람들에게 흰 옷을 입히고 아침저녁으로 통곡하게 하자, 진군이 너무 과하다고 상소를 올렸지만 조예는 듣지 않았다. 진군의 상소 내용을 보면 조숙은 8살도 안되는 나이에 요절한 것으로 보인다.

역사상 공주의 신분으로 최초로 시호를 받은 인물로 손성이 이에 대해 크게 비판해서 예법에 부인이 이미 봉작을 받는 전제가 없는데 아이에게 대읍을 봉하는 것이 가능하겠냐고 했으며, 곽덕이 조씨와 종족이 다르면서 다른 부류에 빌붙어 공로가 없고 친속도 아니면서 모친의 작위를 이어받은 정리와 전제에 위배되는 것이라 주장했다.

조숙이 요절했을 때 조식이 【沬】魏陳王曹植平原懿公主沬(위진왕조식 평원의공주 애도)를 지어 조숙을 애도하였다. 그러나 조식의 이 행동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위험하였다. 조예의 부친이자 위 문제인 조비 문서에서도 볼 수 있듯이, 조비는 친동생이었던 조식을 죽음 직전까지 몰아가는 등의 핍박을 가하였다. 조식이 지은 칠보시(七步詩)에 이러한 내용이 잘 나타나 있는데, 조예도 부친의 기질을 물려받아 조식이 올린 상소에 꼬박꼬박 답장은 잘하면서 등용은 절대로 허락해주지 않는 2대에 걸친 핍박이었다.

정사 삼국지 《위서》 <명제기>에 조식에 대한 내용이 수록되어 있는데, "조예가 친정을 나가자 일부 신하들이 옹구왕 조식을 옹립하려 했다"는 내용이다. 조예 입장에서는 조식이 부친의 후계 경쟁자이자 반역을 모의할지도 모르는 요주의 인물이었을 텐데, 딸의 죽음을 애도하기 위해 그런 인물을 공개적으로 황궁으로 불러들여 추도사를 쓰게 한다? 굉장히 말이 되지 않는 행동이다.

게다가 조식은 이백 두보가 나타나기 전까지 중국의 시성으로 불릴 만큼 문학적 재능이 뛰어난 인물이었다. 조예 입장에서는 조식이 친척이었던 만큼, 부친이 평생 증오하고 죽이려 했던 인물인 만큼 조식에 대한 문학적 명성은 익히 들었고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3. 미디어 믹스

드라마 대군사 사마의에서는 235년에 죽은 것으로 나오고 명제가 조숙의 죽음에 대해 크게 슬퍼하다가 갑자기 신하 한 명을 칼로 죽이며, 그러면서 다 죽여버리겠다고 날뛰다가 벽사가 옥체를 보존하라면서 아직은 사마의와 싸워야 한다고 상기시킨다. 그러자 명제가 이제 가족이 없다면서 어머니, 아버지가 없고 딸인 조숙마저 떠났다고 탄식한다.

그러면서 조예가 이 모든 것이 곽조 때문이라면서 곽조에 대한 증오를 더욱 불태우며, 조숙의 죽음을 구실로 삼아 조예가 곽조가 주술을 통해 조숙을 저주해 죽게 만들었다는 죄목을 만들어 곽조를 죽게 한다.

파일:Cao Shu Heroes of the Three Kingdoms.jpg
삼국군영전 시리즈에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