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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8-19 16:59:21

조계사(대화정)

1. 개요
1.1. 건축
1.1.1. 정각원1.1.2. 황건문1.1.3. 구 조계사종
1.2. 같이보기

1. 개요

일제강점기 경성부에 세워졌던 일본식 사찰. 종로구에 있는 조계사와는 다른 절이다. 현재의 동국대학교 위치에 있던 로 당시 그 지역를 대화정[1]이라고 불렀다는 것 때문에 대화정 조계사(大和町 曹溪寺)라고 부르는 경우가 많다. 동국사처럼 한국에 들어온 일본식 사찰이었다.

당시 조계사 소유 부지는 현 동국대학교뿐만 아니라 장충단공원, 앰배서더 호텔, 그리고 지금의 하숙촌과 대한극장 앞까지 아우르는 광대한 면적이었다고.

바로 옆인 현 서울신라호텔 자리에는 이토 히로부미를 위해 세운 절 박문사가 있었지만, 해방 이후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철거된 듯하다.

1.1. 건축

1.1.1. 정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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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3.bp.blogspot.com/20170225_152801.jpg

이 조계사의 본당은 원래 조선의 궁궐이었던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건물이었다. 총독부가 매물로 내놓은 경희궁의 전각을 1926년에 사들여 조립했던 것. 해방 이후 대화정 조계사의 부속 건물들은 철거되고, 조계사 부지에 동국대학교 건물들이 세워지면서 본당인 숭정전만 남았다. 그리고 숭정전이 1976년 지금의 위치로 이동된 후 정각원으로 바뀐 것이다.

경희궁 복원 당시 환원하는 것이 논의되었지만 숭정전 건물의 내부 변형이 너무 심해 경희궁으로 환원되지 못했다. 그리고 경희궁에는 새롭게 복원한 숭정전 건물이 생겼다.

1.1.2. 황건문

파일:attachment/HGgate.jpg

동국대학교의 황건문. 훼손이 심하다.

황건문(皇建門)은 원래 평양의 궁궐인 풍경궁 정문이었다. 크고 시원하게 뻗은 기둥들의 아름다움으로 이름이 높았다. 1925년에 일본사찰이었던 경성 대화정 조계사에서 이 문을 사들여 산문으로 쓰게 된다. 1926년 8월에는 폭우로 인해 황건문 지붕이 반이 붕괴되어 당시 돈으로 2천만원의 피해가 났다.

해방 이후 이 대화정 조계사 자리에 동국대학교가 건립되고, 황건문은 동국대학교 정문으로 이용되었다. 그러나 1971년 학생회관이 옆에 신축되면서 현대식 건물과의 부조화와 유지보수부실로 인해 학교당국에서 해체/철거하였다. 이후 주춧돌마저 도서관 근처로 치워지고, 현판은 도서관에 보관되어 있다. 그렇게 유일한 풍경궁의 건축은 우리 손으로 폐기물이 되어 사라졌다. 동국대학교의 흑역사 중 하나.

참고로 옆의 박문사에는 경희궁 정문인 흥화문을 가져와서 산문으로 삼았고, 이후 흥화문은 박문사 자리에 들어선 서울신라호텔의 정문으로 쓰이다가 복원된 경희궁으로 반납되었다. 한편 박문사가 뜯어온 경복궁 선원전은 어디갔는지 알 수 없고, 박문사를 건설한 업체가 신라호텔을 건설했다는 주장이 있다. 포스팅

1.1.3. 구 조계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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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정 조계사에 있었지만 폐사된 뒤 태고사[2]로 옮겼다. 광복 이후 국보에서 해제되면서 위작이냐 진품이냐를 놓고 논쟁이 뜨거웠지만 현대의 조사 결과 신라시대 범종이 맞다는 설이 대세. 그러나 국보 재지정 논란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이다. 현재는 경기도 파주시 보광사에 소장 중이다.

1.2. 같이보기



[1] 해방 이후 필동으로 개칭되었다. [2] 조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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