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제임스 오들리 James Audley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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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318년경 ~ 1369년 8월 23일 | |
출생지 | 잉글랜드 왕국 옥스퍼드셔 오들리 | |
사망지 | 프랑스 왕국 퐁트네르콩트 | |
아버지 | 제임스 오들리 | |
어머니 | 에바 드 클라버링 | |
직위 | 가터 기사단 단원,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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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기사. 백년전쟁 시기 프랑스 왕국에 맞섰다. 흑태자 에드워드의 기사이자 친구로 유명하다.2. 생애
1318년경 잉글랜드 왕국 옥스퍼드셔 오들리에서 기사 제임스 오들리와 에바 드 클라버링의 사생아로 출생했다. 1346년 이전에 잉글랜드 국왕 에드워드 3세의 장남 흑태자 에드워드의 기사로 발탁되었고, 평생 에드워드 왕자와 함께 하며 친분을 두텁게 다졌다. 1346년 크레시 전투에 참전했고, 1347년 1차 칼레 공방전에도 참여했다. 1348년 가터 기사단의 기사로 선임되었다.1355년 흑태자의 슈보시에 참여했으며, 1346년 푸아티에 전투에 참여했다. 당대 연대기 작가 장 프루아사르에 따르면, 그는 최전선에서 프랑스군에 맞서 싸웠으며, 전투가 끝난 뒤 "살아있기보다는 죽은 것처럼 보일 정도로" 매우 지치고 상처를 많이 입은 상태로 발견되었다고 한다. 에드워드 왕자는 그를 왕실 천막으로 데려가서 정성껏 간호하게 했으며, 그가 가장 용감한 기사였다고 칭송하며 500마르크의 연금을 수여했다. 그는 이 돈을 전투 중에 자신을 시종들었던 4명의 종자에게 나눠줬고, 다시 에드워드로부터 600마르크의 추가 연금을 받았다.
이후 에드워드 왕자에 의해 샤랑트마리팀의 올레롱 영주에 선임되었으며, 1359~1360년 존 챈더스와 함께 샹파뉴 원정을 떠나 라페흑떼쑤주아흐 성을 공략했다. 1361년 잠시 잉글랜드로 돌아와 글로스터 성주를 맡았고, 1362년 기옌으로 돌아온 뒤 1366년 흑태자로부터 기옌 지방의 통치를 위임받았다. 1369년 백년전쟁이 재개되자 에드워드 왕자의 부관으로서 푸아투와 리모주 전역에 파견되었다. 그는 배리와 투르네에서 여러 차례 습격 작전을 수행했고, 캠브리지 백작 에드먼드 드 랭글리와 함께 라로슈쉬르용 공방전을 수행해 공략에 성공했다.
그러나 도중에 중병에 걸려 퐁트네르콩트로 은퇴했고, 1369년 8월 23일에 그곳에서 사망했다. 그의 장례식은 푸아티에에서 성대하게 치러졌고, 푸아티에 대성당에 안장되었다. 그러나 1562년 칼뱅파에 의해 무덤이 파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