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이슨 이스링하우젠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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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이스링하우젠의 수상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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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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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 | 2005 |
2004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세이브왕 | ||||
에리크 가녜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 |
제이슨 이스링하우젠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아르만도 베니테즈 ( 플로리다 말린스) |
→ |
채드 코데로 ( 워싱턴 내셔널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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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슨 이스링하우젠 Jason Isringhause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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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제이슨 데릭 이스링하우젠 Jason Derik Isringhausen |
출생 | 1972년 9월 7일 ([age(1972-09-07)]세) |
일리노이 주 브라이턴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루이스&클락 커뮤니티 칼리지 |
신체 | 190cm / 106kg |
포지션 | 마무리 투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 입단 | 1991년 드래프트 44라운드 ( NYM) |
소속팀 |
뉴욕 메츠 (1995~1997, 199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9~200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2~2008) 탬파베이 레이스 (2009) 뉴욕 메츠 (2011)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2012) |
기록 | 무결점 이닝 (2002.4.13.[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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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동한 전직 야구선수. 통산 300 세이브를 기록하고 두 차례 올스타에 선정될 만큼 한 시대를 풍미한 마무리 투수였다.2. 선수 경력
고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뉴욕 메츠에게 지명됐다. 마이너리거 시절 대단한 잠재력을 보여줘서 같이 메츠 마이너에서 강속구를 뿌리며 삼진쇼를 보여준 좌완 빌 펄시퍼, 우완 폴 윌슨[2]과 함께 제너레이션 K[3]라는 찬사와 관심을 팬과 기자들 사이에서 받을 정도. 하지만 이 강속구 3인방은 마이너에서의 활약과 높은 기대치에 비해 멘탈을 제대로 잡지 못했고, 메츠가 이들에 대한 과도한 자신감때문인지 제대로 숙성시키지 않고 20대 초의 나이에 바로 메이저리그로 올려서 던지게 하는 바람에, 급작스런 메이저리그 승격에 따른 적응 실패 및 마이너에서 삼진잡느라 당한 혹사로 인해 세 명 모두 탈이나서, 펄시퍼는 토미존 서저리를 받고, 이스링하우젠과 윌슨은 관절와순이 찢어져 수술을 받았고, 그로인해 복귀후 구속이 떨어지며 과거의 위용을 잃고 폭망했다.이스링하우젠 역시 1995 시즌 중반부에 콜업되어서 14경기에 선발 등판해 9승 2패 2.81이라는 환상적인 성적을 거두면서 메츠팬들의 가슴을 설레게 해줬지만, 치명적인 단점이 있었으니 바로 유리몸이었다는 것이다. 대량실점을 허용하자 공수교체 직후 분을 못이겨서 더그아웃의 쓰레기통을 마구 내리치다가 손목이 부러지는가 하면 심지어 결핵에 감염되기까지. 결국 한창 메이저리그에 자리를 잡았어야 할 시기인 97,98 시즌을 거의 부상으로 날려버리고 99 시즌부터 본격적으로 불펜진으로 보직을 변경하지만 이스링하우젠의 발전 가능성을 매우 낮게 본 바비 발렌타인 당시 메츠 감독에 의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로 시즌 중간에 트레이드된다.
오클랜드로의 이적은 이스링하우젠 커리어의 전환점이었는데, 발렌타인을 비웃기라도 하듯 애슬레틱스에서 포텐을 터뜨리면서 마무리 투수로 변신에 성공해 빌리 빈의 웃음꽃을 활짝 피워줬다! 2000년에는 33세이브를 거두면서 생애 최초로 올스타에 선출되는 한편, 2001년에도 34세이브를 거두면서 메이저리그의 정상급 마무리투수로 발돋움한다. 이 시기 막 머니볼이라는 새로운 트렌드를 내걸었던 오클랜드는 이스링하우젠의 활약과 함께 아메리칸 리그를 휩쓴다.[4]
하지만 오클랜드의 마무리 투수로 뛰면서 남긴 흑역사급 사건이 있으니 2000년 8월 8일 뉴욕 양키스 원정경기 9회말 3:2에서 마무리 하러 나왔다가 공두불이라는 희대의 기록을 남겼다. 등판하자마자 버니 윌리엄스와 데이빗 저스티스에게 연속으로 초구 백투백 홈런을 맞고 이기는 경기를 거의 2분 만에 공 2개로 날려버린 사건이다. 공두불 영상으로 보기.
이때부터 오클랜드는 좋은 선수지만 마무리로 장기계약하는 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어 재계약하지 않았으며, 2001 시즌을 끝으로 자유계약으로 풀린 이스링하우젠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로 이적하고 절정의 기량을 보여준다. 특히 2004년과 2005년의 포스는 가히 아름다웠는데 2004년에는 47세이브를 거두면서 팀 역대 최다 세이브 기록을 경신하는 한편[5] 2005년에는 39세이브에 ERA 2.14를 기록한다. 당연히 팀도 잘 나가서 2002, 2004, 2005 시즌 모두 중부지구 우승을 차지한다. 다만 우승에는 늘 한발이 모자라서 2002년에는 배리 본즈가 이끄는 샌프란시스코에게 NLCS에서 패배했으며, 2004년에는 저주에 시달리던 모 팀에게 월드시리즈에서 패하였고 2005년에도 지구 라이벌이었던 휴스턴 애스트로스에게 NLCS에서 패배한다.
하지만 너무 무리했던 탓인지 2006년부터 이스링하우젠은 정점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는데, 2006 시즌 겉보기 성적은 35세이브 ERA 3.55로 평범해보였지만 롤러코스터의 극치였으며[6] 결정적으로 엉덩이 부상으로 8월 중에 시즌 아웃되고 만다. 그의 자리를 대신하여 마무리 자리를 꿰찬 선수는 애덤 웨인라이트. 한가지 웃픈 것은 이스링하우젠의 전성기 시절 늘 아슬아슬하게 눈 앞에서 놓쳤던 월드시리즈 우승트로피를 이스링하우젠이 시즌 아웃되자마자 차지했다는 것.[7] 다행히 다음 시즌인 2007년에는 성공적으로 복귀하여 32세이브 방어율 2.48을 기록하고 올해의 재기상을 수상하기도 하지만, 2008 시즌 다시 부진했다. 결국 시즌 중간에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토니 라루사 감독에 의해 마무리 자리에서 밀려났고 시즌 말미에는 팔꿈치 건염과 힘줄 부상으로 인해 방출되고 만다. 2000년대 중반 카디널스 왕국의 주역 치고는 너무도 쓸쓸한 말로.
이후 2009 시즌 탬파베이 레이스로 이적했지만 꼴랑 9경기 던지고는 토미존 서저리를 받았다. 30대 중반의 인저리 프론 계투 선수를 환영할 구단은 그리 많지 않았고 우여곡절 끝에 신시내티 레즈와 마이너 계약을 체결했지만 끝내 메이저리그 콜업에 실패한다. 이후 옛 친정팀 뉴욕 메츠와 마이너리그 계약을 체결한 이후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활약을 바탕으로 셋업맨으로 활동하다가 팀의 주전 마무리 프란시스코 로드리게스가 밀워키 브루어스로 트레이드된 이후로는 마무리로 활동한다. 2011년 8월 15일에는 샌디에고와의 경기에서 세이브를 거두면서 마침내 커리어 통산 300 세이브를 달성한다. 여담이지만 이 300번째 세이브는 이스링하우젠의 커리어 마지막 세이브. 그리고 이미 부상과 나이로 인하여 이스링하우젠은 그리 신뢰가 가는 불펜투수가 아니었고[8] 결국 2011 시즌 종료 후 다시 팀을 옮겨야 했다. 그가 커리어 마지막 팀으로 선택한 곳은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 2012 시즌을 끝으로 이스링하우젠은 현역 은퇴를 선언했고, 통산 커리어는 51승 55패, 300세이브, ERA 3.64. 은퇴후에는 고향 일리노이 주의 한 대학교에서 코치를 하고 있다.
이후 2018년부터 카디널스의 산하 마이너팀 투수 인스트럭터를 역임할 예정이다. 같은해 명예의 전당 후보로도 올랐지만 한표도 얻지 못하고 그자리서 곧바로 광탈했다.
[1]
대릴 워드,
호세 비스카이노,
훌리오 루고
[2]
벤치 클리어링 과정에서
카일 판스워스에게 피떡이 되도록 얻어맞은 그 선수 맞다.
[3]
Generation K, 당연히 여기서 K는
삼진을 의미한다.
[4]
다만 우승은 못했다. 그 시기
시애틀 매리너스가 한 시즌 116승을 찍는 미친 페이스를 보여줬고 가을 야구에서는
양키스가 4년 연속 월드시리즈 진출에 3년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이라는 기염을 토했기 때문에.
[5]
이 기록은 나중에
트레버 로젠탈에 의해 2015 시즌에 깨진다.
[6]
4월 ERA 6.00 > 5월 ERA 0.77 > 6월 ERA 5.25 > 7월 ERA 0.69 > 8월 ERA 5.06.
이 시기 카즈 팬들의 반응.
[7]
심지어 2006 시즌 카디널스는 역대 최약체 월드시리즈 우승팀으로 꼽힌다. 시즌 성적이 83승이었으니2013년 보스턴의 우승과 더불어 최근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미스테리 중 하나.
[8]
2011 시즌 당시 ERA가 4점대였고 세이브 성공률도 70%가 안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