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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8:17:58

장천(탕음현령)

張遷
생몰년도 미상
1. 개요2. 생애

1. 개요

후한 말의 인물이며 자는 공방(公方)으로 연주 진류군 기오현 사람이다.

2. 생애

그의 선조는 주나라의 장중으로부터 거슬러 올라간다고 하며, 장량, 장석지, 장건 등 대대로 한나라에 공을 세워 기여했다고 한다. 경방의 주역을 익혔고 권변과 책략에 밝아 젊어서 군의 일을 맡아 잘 수행했으며, 여러 차례 종사관을 수행하면서도 잡음이 없었다고 한다.

낭중이 되었다가 곡성장으로 옮겨 8년간 다스리면서 선정을 베풀었으며, 한나라 조정이 정치가 부패하면서 장각 태평도를 모아 수만 명의 신도들을 이끌고 184년에 황건적의 난을 일으키자 청주, 서주, 유주, 기주, 형주, 양주, 예주 등 8주가 이 난에 휘말려 각지의 주군들이 약탈되고 관리들이 살해당했다. 황건적이 일어난 초기에 평성시가 불탔지만 장천의 선정 덕분인지 곡성현만 불타지 않았다고 한다.

탕음현령으로 옮겼고 그가 탕음현령으로 부임하자 곡성 사람들이 그의 공덕을 칭송하는 의미에서 비석을 세웠으며, 이 비석은 한고곡성장탕음령장군표송(장천비)으로 훗날 명나라 초기에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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