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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장두석 |
초명 | 장질석 |
호 | 해관 (海觀) |
출생 | 1938년 11월 8일 |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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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 2015년 3월 25일 (향년 76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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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민족주의 의학자. 하지만 실상은 전통을 가장한 유사의학자에 불과한 인물이다.2. 생애
태어나자마자 거의 죽을 뻔해 집 밖에 버려 두었으나 살아났고 그로 인해 한쪽 눈이 뒤집힌 채 멀었다고 한다. 실제로 보면 한쪽 눈은 엉뚱한 곳을 향해 휙휙 돌아간다.출생 당시 가족들은 얼마 못 가 죽을까봐 호적에도 올리지 않고 거적떼기에 말아 집 밖에 내놨지만 살아남아 3년 뒤 사촌동생과 함게 호적에 올려졌다고 한다. 호적에 올려진 이름은 '장질석'으로 이유는 어머니가 천한 이름을 지어야 오래산다는 믿음 때문에 그렇게 지었다고 한다. 청소년기에 불치병들을 가지고 온갖 병원을 다녔고 광주시내 병원이란 병원은 전부 돌아다녔지만 소용없었다고 한다. 그러던 중 어머니한테 무작정 "서울에 가겠다"며 집을나와 산에서 살면서 자연의학을 터득했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좌파 성향, 그것도 NLPDR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운동가적 면모로는 ‘소년 빨치산’ 활동을 시작으로 조봉암과 친분을 쌓고 진보당, 야학운동, 가톨릭농민운동, 신용조합운동, 5·18항쟁 등에 참여하면서 수차례 옥고를 치렀다고 주장했지만 근거가 희박하다. 그는 1938년생이고 조봉암이 1898년생인데 그 나이로 40살 차이나는 조봉암과 친분을 가졌을 리가 만무하며 조봉암이 사형당한 때가 1959년인데 이때 그의 나이가 22살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조봉암이 나름 초대 농림부장관을 지내고 대선 출마까지 했던 거물 정치인인데 그런 정치인이 10대 후반의 애송이랑 대선 출마를 했을 때 우연히 마주쳤을 수는 있더라도 친분을 쌓았을 리가 없고 결정적으로 그는 광주에서만 활동했지만 조봉암은 해방 후 중앙에서만 일했다. 거기에 조봉암은 강화도 출신으로 인천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광주랑 연이 있을 리가 없다. 거기다 하다못해 처가라도 그쪽 출신이라면 모를까 그런 것도차도 아니다.
어쨌든 이후에도 좌파 민족주의 운동에 참여하고 후원하였다. 5.18 민주묘지에서 열린 장례식에 백기완 등이 참석하고 자주시보에서 장례식 기사를 내준 것을 보면 좌파 계열에서는 꽤 유명한 인사였던 듯하다. 그가 죽을 때까지 엉터리 유사과학을 주장한 것도 좌파 민족주의에 심취하여 자신의 이론을 민족의학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1975년부터 죽을 때까지 전국 25곳에 ‘민족생활학교’를 열고 전통의학을 강의했자. 민족생활학교를 공사해 1년에 4회 100명을 교육할 수 있게 되었다. 민족생활학교 양현당 현판식에는 박준영 전라남도 도지사와 강기갑 민주노동당 의원 등 고위인사가 참석했으며 장석웅 당시 전교조 위원장도 교육관을 방문한 적이 있다.
사람을 살리는 단식 등 10여권의 책을 냈다. 2 사람일보에도 건강법을 투고했고 그의 사이트 '건강아이' 에서는 무료 건강상담을 해 줬다.
2009-10-25 뿌리 깊은 느티나무 -장두석 민족생활의학자로 광주KBS '집중인터뷰 이사람'에 출연했다.
의학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주장은 전형적인 유사과학에 속한다. 그의 글에선 '천지신명의 조화'나 '우주 변화의 질서', '하늘의 기운'과 같은 알듯말듯한 표현이 자주 등장한다. 특히 ‘오만하고 분수에 넘친 자본주의 문명’과 ‘안을 들여다보면 오직 무지와 탐욕만 있을 뿐 텅 비어있는 현대의학이란 신흥종교’, ‘자신들의 무지를 가리기 위해 진단에는 거의 도움이 되지 않는 기계에 의한 테스트만을 습관적으로 남발하는 의사’들에 대한 증오 발언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사회가 혼란하고 질서가 무너지고 예의염치는 병들고 법도는 무너지면서 탐욕과 이기로 인해 모든 병을 부르게 되며 식·의·주생활을 우리 민족의 전통 생활양식대로 완전히 바꾸면 병 치료는 물론 예방까지 된다는 것이 그 요지다. 조선 시대 평균수명을 생각해 보면 말이 될 리가 없다.
그는 소년 시절 사경을 헤매다 입산한 후 질병 없이 자연에 순응하며 사는 야생동물을 보고 큰 깨달음을 얻은 뒤 병이 완치되는 체험을 통해 자연의학에 눈떴다고 하며 그의 이론은 음양 오행론에 깊이 기반하며 현대의 각종 질병은 전통 미풍양속의 상실과 배금주의의 팽배, 서구화된 의식주 등에서 비롯된다고 봤다. 특히 단식의 중요성을 강조했는데 암을 비롯한 모든 질병은 먹은 음식이 배설되지 않아 독소가 몸에 쌓여서 나타나는 것이기 때문에 단식으로 몸을 대청소하고 전통 발효음식과 천연식품의 섭취를 통해서만 다스릴 수 있다고 주장했다.
'싱겁게 먹으라'는 것은 국민을 병마의 구렁텅이로 몰아 넣어 병원으로 끌어내는 의사들의 탐욕과 사치에 불과한 행위이며 오히려 ‘맵고 짜게 먹어야 건강하게 산다’고 강조했는데 염분의 과잉섭취 때문에 고혈압이 오는 게 아니라 미네랄이 없는 정제염을 먹기 때문에 칼슘 부족으로 고혈압에 걸린다는 주장이다. 발효되지 않은 음식을 먹으면 장에 혐기성 미생물이 급증하여 장염을 일으키고 활성산소가 많아져 몸이 망가진다고 주장했다. 끓인 물을 식혀서 화초나 물고기에게 주면 금방 죽어버리니 생수를 마셔야 한다거나 숙변은 만병의 근원, 암은 극 알칼리성 체질에서 나타나는 신체이상이란 주장 등도 설파했다. 물론 그의 모든 주장들은 현대의학과는 전면 대치되는 개똥철학이다.
더불어 ' 현미밥 채식'으로 유명한 대구의료원 황성수 박사와도 같이 강연회를 가진 적이 있다. 황성수가 채식주의 사이비 종교인 칭하이 무상사 국제협회 신도라는 주장이 있지만 사실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다. 이 사람도 동물성 식품이 암과 성인병의 원인이라고 주장하는 등 전문성 논란이 많다. 전문의이기는 한데 식품영양학과는 거리가 먼 신경외과 전문의다. 가정의학과나 내과 전문의 중에 이 사람에게 동조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보면 답이 나온다.
하지만 김치를 멀리하고 싱겁게 먹는 게 고혈압 예방에 좋다라고 주장하는 황성수와 그는 극과 극인데 이 항목을 봐도 알겠지만 그는 닥치고 짜게 먹어야 좋다고 주장하던 사람이다. 그래서 이후 서먹서먹하게 지냈다고 한다.
둘 다 자연의학계에서는 매우 유명한데 황성수도 만만치 않은 유사과학 엉터리 논리를 내세우고 있으니 주의할 것. 고기나 다른 동물성 식품은 절대 먹지 말고 오로지 식물성 식품만, 그것도 가공하지 않은 것만 먹어야 무병장수한다고 하는 황성수도 만만치 않게 문제가 많다. 아직도 산성체질설을 붙들고 있는 수준이다.
허현회와 함께 찍은 사진.
한편 관절염 치료 카레로 유명한 허현회는 장두석 본인이 직접 인정한 그의 후학이자 신봉자였으며 그가 '건강아이'에도 다수의 칼럼을 기고한 바 있다. 그와 허현회는 많은 부분에서 서로의 사상을 공유했으며 그는 허현회를 '거대한 기득권 의료계의 벽을 절감하며 숨죽이고 있을 때 용감하게 다윗의 돌팔매를 던지고 나선 혁명가' #라고 극찬하기도 했다.
허현회에 관해선 기사와 블로그, 백괴사전, 허현회 어록 등을 참고하면 좋다. 입을 다물 수 없을만큼 충격적인 주장들이 넘쳐난다. 나무위키에도 동물병원이 알려주지 않는 30가지 비밀 등 허현회와 관련된 항목들이 일부 존재하는데 이것들만 보아도 허현회와 그가 어떤 인물인지는 대략 감이 잡힐 것이다.
그가 운영하던 양현당의 건축비용은 1,900여 평생회원의 모금을 통해 마련되었으며 이곳에선 단식/생채식/운동법/관장법/풍욕/냉온욕 등에 관한 교육을 초급과정 11일 95만원, 중급과정 21일 170만원, 고급과정 31일 225만원(2012년)의 참가비로 매달 진행하고 있다. 그가 모금 및 교육, 저술, 언론 활동을 지속할 수 있었던 근본적인 원동력으로 보인다. 안전한 예방접종을 위한 모임 측의 현대의학에 관한 태도 및 그 대안과 장두석/허현회의 주장이 놀랍도록 완벽히 일치한다.
그는 죽기 수개월 전까지 유튜브에서 건강 썰을 풀다가 반북한 후 2015년 3월 25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향년 만 76세. 국립 5.18 민주묘역에 안장되었다.
3. 저서
- 생활과 건강, 장두석, 사)한민족생활문화연구회
- 흰 두루마기 자락 휘날리며, 칠순문집발간위원회, 정신세계사
- 사람을 살리는 단식, 장두석, 정신세계사
- 사람을 살리는 생채식, 장두석, 정신세계사
- 민족생활의학, 장두석, 정신세계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