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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6-04 18:58:48

임진왜란(1972)

KBS 금요드라마
임진왜란 (1972)
壬辰倭亂
파일:20240109_130520.jpg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장르 시대극, 사극
방송 시간 금 / 오후 8:40 오후 7:50
방송 기간 1972. 5. 5. ~ 1973. 4. 6.
방송 횟수 43부작
제작 KBS
채널 KBS


<colbgcolor=#dddddd,#010101><colcolor=#000000,#dddddd> 연출 임학송
극본 김희창
출연 주현, 장민호, 박근형
1. 개요2. 출연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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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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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20240109_130546.jpg
임진왜란에 등장하는 이순신의 모습
배우는 주현
1972년 5월 5일 ~ 1973년 4월 6일까지 매주 금요일 오후 8시 40분에 방영되었던 KBS 사극 드라마. 임진왜란 당시 혼란스러웠던 조선의 모습을 그렸다. 극본은 김희창이 했으며 연출은 임학송이 맡았다.

당시에는 흔하지 않았던 야외 녹화를 감행해 신선한 느낌을 줬으며, 특수효과에 신경을 많이 써 볼만했다고 한다.

2. 출연진

==# 방영 목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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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무제2.png
파일:20240118_144331.jpg
혼란스러운 조정 동래성 전투
파일:무제3.png
파일:20240118_144307.jpg
조선 침략을 계획하는
도요토미 히데요시
대신들과 회의 중인 선조
<rowcolor=#ffffff> 회차 방영 날짜 내용
1972년
1회 5월 5일
2회 5월 12일 홀로 길을 떠나는 사명의 의중은 헤아릴 수 없는 것이 나라를 위하는 마음은 청년길보나 이율곡이나 선조나 전부 마찬가지이다. 길보와 사명은 나그네길에서 어느새 친구가 되고 이율곡은 어전회의에서 10만양병을 상소한다.
3회 5월 19일
4회 5월 26일 일본 첩자를 풀어준 고을 현감은 조정에 사실이 알려질까 두려워 마침내 사명대사와길보에게 은퇴할것을 전한다. 한편 조정에서는 오성이 항복 안휴를 이덕형의 패기에 넘친 애국심으로 당쟁을 수습하려 애쓴다. 지병으로 낙향한 이율곡은 나라 걱정으로 마음에 병이 더 도져 한스런 눈을 감으니 그를 아는 백성의 통곡이 산천 방방곡곡에 끊일줄을 모른다.
5회 6월 9일
6회 6월 16일 정여립 역적 모의에 장정들이 모여 시기만을 기다린다. 한편 중의연은 황해도로 가 지원을 요청하다 동조한 중의엄의 배반으로 모의 사실이 조정에 알려진다. 그러는 동안 길보와 소라의 순박한 정은 갈수록깊어간다.
7회 6월 23일 정여립 사건의 여파는 마침내 조정에 까지 파급돼 영의정 이산해를 비롯하여 좌의정 유성룡은 자기들까지 역적 명부에 들어있지 않나 전전긍긍하는 반면 선조의 부름으로 우의정인것과 동시에 사건의 수습을 하명받은 정철은 주모자들을 가차없이 잡아들인다. 한편 잘못된 판단으로 명부에 올려진 이발, 이호형제는 점점 다가오는 증오의 그림자를 인식한다.
8회 7월 7일 선조와 김번은 비원에 나가 한가롭게 보내는데 정철 영의정 이산해 좌의정 유성룡과 함께 민심수습책으로 세자 책봉문제를 건의키로한다. 그러나 막상 영의정은 당일 발뺌을 하고 나타나지 않아 정철은 하는 수 없이 혼자 선조에게 상소하나 이미 김번의 계략으로 정철은 무참히 낭패를 당한다.
9회 7월 14일 선조 25년 부산포 부두에 외국 사신들이 들어섰다. 부산포 청사 정달은 조정으로부터의 선의관이 도착하지않아 안절부절인데 통역하는 사람마저 없어 애를 태운다. 왜로부터의 사신 다찌바나는 광폭한 성품으로 호전적인 군인이라 같이온 대마도령주 종,그리고 겐쇼 승과도 의견이 맞지않아 자주 충돌하는데...
10회
11회
12회
13회 8월 18일 조총으로 인해 억울하게 하옥 당한 양버들과 주모는 울산 좌병사 이각을 원망한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은 충의로 뭉친 갈처사와 길보에게 까지 알려져 울산으로 구명의손길을 뻗친다. 이듬에 길보와 사명은 오랜만에 해후를하고 모두 변장하여 잠입하는데 성공한다. 이때 일본에서는 실권을 장악한 도요토미가 조선 침공의 야욕을 품기 시작한다.
14회
15회
16회 9월 29일 선조는 왜사들이 우리나라 국방과 관련된 정보를 캐갔다는 소식을 듣자 크게 분노했다. 분노한 선조는 곧 어전 회의를소집하고 명령한다. 전국을 샅샅이 점검하여 만반의 태세를 갖추려고 했으나 명나라의 장군들은 반론을 편다. 작은 섬나라 일본이 바다를 건너 침략을 꾀한다고는 상상 할수 조차 없다고... 바로 어즈음 유성룡.은 전라 좌수로 정읍 현감인 이순신을 천거하지만 신하들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하는데 나라의 위기는 조금씩 다가온다...
17회 10월 6일
18회 10월 13일 여수가 본영인 전라좌수영에서는 이순신이 부임하기 전 수사 원균이 매일 술과 놀이로 세월을 탕진하고 있었다. 마침 새수사로 이순신이 부임한다는 소문이 널리퍼져도 이곳 백성들은 기대는 커녕 더 못살 게 되는게 아니냐고 한숨만짓는다. 한편 일본에 간 통신사들은 마침내 도요토미를 만나 선조왕의 친서와 예물을 전한다.
19회 10월 20일
20회 10월 27일 전라좌수사에 부임한 이순신은 괄할구역의 장병과 군기를 점검했으나 전임 원균의 형편없는 통솔로 아무 쓸모없이 된것을 절감하고 낙담한다. 그러나 그중에는 성실하고 총명한 부하도 있어 이순신은 곧 해이해진 군기를 바로잡는 한편 보수작업에 손수나서고 한편으로는 군관 나대름을 불러 새로 창안한 거북선 설계도를 내놓으며만들것을 지시한다.
21회 11월 3일 신묘년 겨울 이순신 장군이 거북선을 열심히 만들고 있을 무렵 일본에서는 도요토미가 수십만의 장정을 훈련시키고 전선 수백척을 건조하여 조선 침략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러나 조정에서는 당파싸움에만 열을 올리고 있어 성개축에 나온 백성들을 모두 돌려보내는데 이러한 혼란한가운데 이순신의 거북선은 완성된다.
22회 - 부산 전투
1부
11월 10일 임진년 4월, 기어이 일본은 수많은 군선과 병력을 동원하여 부산진에 상륙침략을 개시한다. 당시 부산진성의 첨사 정발은 절영도로 놀이를 갔다가 갑작스런 침략을 당해 즉시 성으로 돌아와 백성들과 군사 1백여명과 함께 죽음으로 성을 사수할것을 다짐한다.
23회 - 부산 전투
2부
11월 17일 1592년 4월 13일 오후에 부산에 상륙한 왜장 소서행장은 그의 부하 1만 8천여명을 데리고 하루를 보낸후 14일 불 과 1천여명이 지키는 무산성을 공략. 회의장군 정발은 용감히 싸웠으나 중과부족으로 대적 할수가 없었다. 첫번째 침공은 과감하게 막아냈으나 조총을쏘아대며 물밀듯이 쳐들어오는 적을 활로써는 막아내지 못하고 최후의 일인까지 모두 전사하고 만다.
24회 - 동래성 전투 1부 11월 24일
25회 - 동래성 전투 2부 12월 1일 동래부사 송상현은 왜장 고니시의 계략으로 성문 앞에 끌려온 애첩을 향해 계속 활을 당긴다. 격분한 고니시는 총공격을 명하니 송상현은 1백여명의 군사로 첫번째 공격은 잘 막아냈으나 물밀듯이 조총의 신무기로 쳐오는 적을 막아낼수는 없었다. 송상현을 비롯 백성들과 1백여명의 군사들은 최후의 한사람까지 싸우다 장렬히 전사하고만다.
26회 12월 8일
27회 12월 15일 부산과 동래성을 함락시킨 일군은 그 기세를 몰아 계속 북진하고 있었다. 소문을 통해 일본의 침략을 알게된 백성들의 인심은 흉흉해지고 이 소식은 조정에까지 알려져 매일 어전회의를 열려고 하나 무슨 이유인지 선조는 어전회의에 참석하지 않는다. 지방에서는 끊임없이 장계가 올라와 구원병을 요청하는데도 조정은 속수무책, 나라의 앞 날은 어둡기만 하다.
28회 12월 22일
29회 12월 29일
1973년
30회 1월 5일 나고야성에 있는 도요토미는 조선에서의 승전보고와 산더미처럼 쌓아놓은 전리품에 무척 만족해한다. 에도성의 성주인 도쿠가와를 불러들인 도요또미는 조선의 승전을 자랑한 후 에 자신이 직접군대를 지휘하겠다는 뜻을 밝히는데 도쿠가와는 반대한다. 도쿠가와의 의외의 반응에 도요토미는 역심을 품게 되는데.
31회 1월 12일
32회 1월 19일 북쪽 오랑캐를 무찌른 공으로 벼락 출세한순 변사 이 일은 종사관 윤섬 박호와 함께 조령을 넘어 상주로 내려갔다. 그러나 단한명의 군사도 없는 이일은 판관 권길을 시켜 모병하니 끌려온 백성들은 모두 굶주리고 가난한 농민들이라 훈련이 될턱이 없고 사기 마저 저하 되어있다. 이윽고 협공을 당한 군사는 모두 순절하고 이일은 말을 타고 도망간다.
33회 1월 26일
34회 2월 2일
35회 2월 9일 충주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서울에 전해지자 서울 에서는 서로 피난갈 준비로 떠들썩하다. 매동과 신여호는 이 곳까지 후퇴하여 일전의 결심을 굳게 하지만 물위의 기름 일뿐 묘책이 없다. 한편 궁중에서는 곧 왜적이 서울로 쳐 올라온다는 전갈에 적을 맞아 싸울 생각 보다는 피난 갈 준비에 분망하다.
36회 2월 16일
37회 - 이순신 장군 1부 2월 23일 이순신 장군은 임진년 5월 4일 새벽 야음을 틈타 출동 한다. 구국의 열의와 애국충정으로 전라좌수영을 떠난 이순신장군의 함대는 위기에 처한 원균을 구하고 옥포 앞바다에서 적의 대군을 발견한다.
38회 - 이순신 장군 2부 3월 2일 이순신의 함대에 참패한 왜적은 패배를 설욕하기위해 여수본영까지 첩자를 침투 시키고 장비도 크게 중강한다. 임진년 5월 29일, 이순신 장군은 두번째 출동명령을 내린다. 마침 썰물때라 물이얕아진 사천 앞바다에 쾌속정을 보내 유인작전을 펴자 취중이던 왜장은 아군쾌속정을 발견, 즉각 나포 명령을 내린다. 그물에 뛰어든 왜적의 함대에 아군함대는 쏜살같이 돌진하고 이옥고 승전의 북소리가 울린다.
39회 3월 9일
40회 3월 16일
41회 3월 23일
42회 3월 30일
43회 - 계월향편 4월 6일 임진년 6월 14일. 왜군이 평양성을 점령하자 평양성의 방어책임을 맡았던 김응서는 평양성의 탈환계획을 세우고 공격9지점을 탐색하기 위해 왜적의 수비진을 점검하러 나선다. 우연히 평양성 근처에서 애첩 계월향을 만난 김응서는 월향에게 피신을 권고하는데 월향은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구국의 제물이 될 결심을 밝히며 평양성으로 들어갈것을 고집한다. 장도를 가슴에 품고 계집종과 함께 성안에 들어가는 애첩의 뒷모습을보는 김응서의 가슴은 착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