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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4-17 02:29:57

이자림(고려 거란 전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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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등장인물 ]
||<tablewidth=100%><width=1000><tablebgcolor=#676767,#010101><bgcolor=#454545><color=#ffffff><-3> ||
그 외 등장인물 및 특별출연은 등장인물 ( 고려· 거란· 기타 국가) 문서 참고.
[ OST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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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상]]
서도밴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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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장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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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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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겨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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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문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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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70707><colcolor=#fff> 이자림
李子琳
파일:고거전 이자림.jpg
캐릭터
지위 화주 방어사 (24 ~ 27회)
→ 권서경판관 (27 ~ 29회)
→ 상서우승 (29 ~ 32회)
등장회차 24 ~ 32회
배우
전진우[1]

1. 개요2. 작중 행적
2.1. 24 ~ 26회2.2. 27회2.3. 28 ~ 29회2.4. 30 ~ 32회(최종회)
3. 묘사4. 어록5. 여담

[clearfix]

1. 개요

KBS 대하드라마 〈 고려 거란 전쟁〉의 등장인물.

2. 작중 행적

2.1. 24 ~ 26회

24회에서 '화주 방어사'라는 직책으로 첫 등장해 동북면 행영병마사로 부임한 강감찬 일행을 환대하면서 장수들을 소개한다. 이때 평생 군사 일을 한 적 없는 강감찬을 멸시하는 중랑장 도용수를 비롯한 동북면 장수들 중 유일하게 강감찬에게 호의적인데, 아무래도 본인도 문관 출신이기에 동질감을 느끼는 듯하다. 이후 강감찬과 함께 군영을 순시하다가 열약한 상황[2]을 보고, 이런저린 핑계를 댔지만, 오히려 군인들을 잘 챙겨주지도 못하고 휘어잡지도 못했다며 꾸짖자 "6품의 문관 출신이 저 무관들에게 뭘 어찌하겠냐?"는 식으로 답한다. 이에 강감찬이 도용수를 만나러 가자 도용수는 강감찬을 모욕을 줄 목적으로 병사들과 대련을 시키자 처음에는 도용수를 비판하다가 이후 그 제안을 받아들인 강감찬이 오히려 도용수를 굴복시키자 큰 감명을 받았고, 주눅 든 도용수에게 "모든 문관이 나처럼 심약한 것은 아니다!"라고 일갈한 뒤 강감찬에 이어 자리를 떠난다. 이후 아리타가 이끄는 반고려 성향 여진족과의 전투에서 후방에 있다가 기습으로 위기에 빠진 강감찬을 구하는 활약을 한다. 강감찬보다 조금 나은 검술로 강감찬 주변의 적을 제압한 뒤 쓰러졌던 강감찬을 일으키면서 "검술을 더 연마하십시오." 라고 한 말은 덤.

25회에서 여전히 도용수와 함께 여진족과의 전투를 끝내고 쉬고 있던 중[3] 개경에서 동북면으로 달려온 강감찬을 맞이했다.[4] 이후 그에게서 개경의 상황을 전달받은 뒤 도용수와 군사들을 이끌고 강감찬과 함께 반란을 진압하기 위해서 출전한다. 이후 26회에선 원정황후의 교서를 받긴 했지만, 진실을 알고 있는 강감찬의 지시로 밤새 달려 개경에 도착했지만, 이미 현종이 반란군에 의해 굴복된 뒤였다. 이에 도용수와 함께 현종을 호위하려고 했지만, 끝내 실패하고 군사들과 함께 동북면으로 돌아갔다.

2.2. 27회

27회에서 화주 방어사로서 임기를 마치고 개경으로 돌아왔는데, 경계를 섰던 군사들이 갑자기 이동하자 그 뒤에서 따라 들어왔다.[5] 마침 사직한 관리들의 빈 자리를 채우라는 현종의 요구에 검교태사 수문하시중 유진과 함께 입궐한 중추사 강감찬이 이자림을 언급하자 현종과 독대하게 되었다. 현종을 독대하면서 권서경판관[6]으로 임명되었고, 이어 현종의 부탁으로 반란군에 의해 개경 밖 흥륜사에 있던 김씨 부인(훗날의 원성황후)에게 편지를 전달하고, 현종이 따로 부탁할 것이 있다면서 밀지를 품고 개경을 떠나며, 궐에서 나갈 때 반란군들을 살피면서 나갔다. 직후 서경의 서북면행영도병마사 유방과 그 곳에 있던 노전, 조원, 김종현에게 전한 밀지는 최질과 박진을 포함한 반란군 수뇌부들을 모두 척살하라는 명이다.

2.3. 28 ~ 29회

서북면행영도병마사 유방과 그 곳에 있던 어사중승 노전, 서경판관 조원, 감찰어사 김종현과 함께 반란군 수뇌부를 토벌할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박진의 계략으로 유방이 서경의 군사들을 이끌고 통주성으로 이동[7]하려고 하자 이를 간파하면서 유방을 말리나 유방의 단호함에 결국 노전, 조원, 김종현과 일부 장수들과 군사들과 함께 서경을 지키게 했지만, 장수들과 군사들마저 반란군에 밀려 통주로 떠나면서 결국 본인들이 현종을 맞이했고, 자신은 최질에게 멱살까지 잡히면서 협박을 당해야만 했다. 그날 밤 거사 실패의 우려에 대해 한탄하다가 때마침 나타난 김씨 부인에 의해 지채문이 온다는 사실을 알고 놀란다.[8] 이후 이들과 현 상황에 대해 의논하다가 연회를 이용해 처단하기로 결정하고, 현종에게 연락하는 것은 김씨 부인이 절에 사는 사람으로 변장해 현종에게 넌지시 알려줬다.

연회가 시작될 때에 김훈을 제외한 반란군 수뇌부들이 술을 마시면서 희희낙락거리는 동안[9] 노전, 조원, 김종현과 뒤에 시립하고 있었다가 막판 현종과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해당 회차의 최후반과 이어진 29회 초반 현종의 명으로 무희로 변장한 지채문과 도용수를 비롯한 군사들이 최질을 비롯한 반란군 수뇌부를 처단할 때 노전, 조원, 김종현은 현종을 호위하고 자신은 급하게 연회장 밖을 나오면서 그 곳에 있던 최질 휘하의 군사들이 연회장으로 들어가려고 하자 이를 막고는 다음과 같이 말하면서 이들이 연회장으로 가지 못하게 했다. 이는 현종과 지채문 등이 반란군 수뇌부들을 모두 척살하게 한 결과로 이어졌다.[10]
멈춰라! 너희들은 모두 물러가라!
(최질의 부장 : 대체 무슨 일입니까?)
폐하께서 대역죄인 최질을 처단하라 명하셨다! 지금 지채문 장군이 그 명을 받들고 있다!
(최질의 부장 : 지... 지채문 장군이요?)
너희는 최질의 군사들이 아니라 폐하의 군사들이다! 그걸 잊었느냐!
이후 조원과 개경에서 올라온 겸교태사 수문하시중 유진을 비롯한 재상들[11]과 함께 현종을 알현하면서 진실을 들었고, 친조를 이행하기 위해 알현하려 온 거란의 사신을 현종이 억류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그리고 현종이 서경에 남으며 통주성에 있던 군사들을 열병할 때 조원과 갑주를 차려입고 재상들과 같이 참여해 현종의 연설을 듣는다. 그리고 시간이 흘려 1018년[12]이 되자 '상서우승'아 되어 유진을 비롯한 재상들과 같은 색의 관복을 입고 회의의 말석(과거 장연우가 앉던 자리)에 앉으면서 현종이 진행한 나성 축조[13]에 관해 "장기적인 공성전은 불리하나 기병은 저지할 수 있다."라고 의견을 제시한다. 그리고 다음 날 조회에서 거란의 침입에 맞서 동원령을 내려달라는 서북면 행영도통사 강감찬의 '대회전 계획'에 비록 현장에서 발언하지 않았지만, 긍정의 신호를 보냈다.

2.4. 30 ~ 32회(최종회)

30회 초반부터 현종과 다른 신료들과 회의장에서 함께 전황을 듣다가 거란군이 전투를 치르지 않고 곧장 개경으로 남하하고, 이에 현종이 개경을 사수한다는 선언을 내리자 참지정사 유방과 중추원부사 노전, 우상시 지채문, 급사중 황보유의와 함께 갑주[14]를 입고 개경 외곽 마을들에 대한 청야를 실시하고 개경 안으로 들어온 백성들 중 병장기를 받은 백성들에게 훈련장에 가서 훈련받으라고 안내를 한다. 31회에서는 유방, 노전, 지채문, 황보유의와 함께 금교역 전투를 치르는데, 자신은 황보유의와 함께 언덕에서 매복하다가 거란군을 향해 활을 쏘는 모습이 나왔다. 그리고 마지막회에선 귀주 대첩의 대승 소식에 다른 대신들과 기뻐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였다.

3. 묘사

문관 출신으로 상관임에도 휘하 무관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는 심약한 모습을 비추지만, 이와 별개로 전장에서는 제 몫을 다하면서 강감찬보다 전투 능력도 출중한 편이다. 미간을 가로지른 눈꺼풀 위 칼자국 상흔[15]를 통해 그 역시 전방에서 산전수전을 겪어왔음을 유추할 수 있다. 다만, 그 역시 이 드라마 묘사에 있어서 피해자라고 볼 수 있는데, 이는 다른 인물들에서도 여러 번 언급된 드라마 메인 작가의 무리한 각색으로 인한 것이다. 실제 이자림[16]은 주도면밀하고 과감한 성격인데, 현종 때의 공적이라 할 만한 ' 김훈·최질의 난의 진압'도 처음부터 끝까지 그가 계획을 마련하고 실행한 것이다.

하지만 드라마에서는 현종의 밀지를 전한 것과 현종의 명으로 지채문, 도용수 등이 반란군 수뇌부들을 처단할 때, 그들이 데리고 온 군사들이 연회장에 진입하는 것을 막아선 일 외에는 주도적인 공이 없고, 계획은 현종과 훗날 원성황후로 불리는 김씨 부인이 계획[17]하고 처단은 지채문과 도용수를 비롯한 동북면의 군사 일부가 벌였다. 즉, 실제 이자림의 가장 큰 공적도 실제로는 개경에 머물던 김씨 부인과 아예 등장하지 말아야 할 가상인물인 박진을 작가가 띄워도 너무 띄운 탓에 이자림의 실제 행적을 제대로 묘사하지 못한 영향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더해서 반란군 수뇌부를 처단하기 직전에 자신을 본 최질에 의해 멱살을 잡힌 모습도 나왔는데, 실제 기록에는 나오지 않지만, 이들 반란군 수뇌부(김훈과 최질)에게 큰 견제는 받지 않았을 확률이 더 높다는 증거가 있다. 사실 이자림은 거란에 대해 드라마에서 강경파로 나오는 강감찬, 최사위보다 더 강경한 입장의 인물로 현종 사후 덕종 때에 거란의 문제를 둘러싸고 황보유의와 대립했다는 기록이 『고려사』 열전에 실려 있다. 또한 동북면에서 '방어사'라는 무관직도 겸했기 때문에 김훈과 최질이 이자림의 의심한 적이 없었거나 이 드라마가 반란에 대해 과장되게 표현하였다고 볼 수 있는데, 현재까지의 시청자들의 평가는 후자 쪽이 더 높다.[18]

4. 어록

(강감찬을 구해준 후 웃으면서) 검술을 좀 연마하십시오.
축하드립니다. 병마사께서 거두신 첫 승입니다.
멈춰라! 너희들은 모두 물러가라!

(최질의 부장 : 대체 무슨 일입니까?)

폐하께서 대역죄인 최질을 처단하라 명하셨다! 지금 지채문 장군이 그 명을 받들고 있다!

(최질의 부장 : 지... 지채문 장군이요?)

너희는 최질의 군사들이 아니라 폐하의 군사들이다! 그걸 잊었느냐!

5. 여담


[1] 왕과 나》에서 김일손 역, 《 인수대비》에서 계양군 역을 맡았다. 그의 부친인 전무송 KBS 대하드라마에 총 4번 출연하였는데, 이 중 《 태조 왕건》의 파진찬 최승우와 《 무인시대》의 두두을, 그리고 이 드라마와 비슷한 시대를 다룬 《 천추태후》에서는 이지백 역으로 유명하다. [2] 좁은 막사 안에 병사 50명이 자며, 그마저도 교체를 안 해 얇아진 이불로 덮고 잔다. 심지어 전투 기록 등을 담은 일지도 곳곳이 누락되어 있다. [3] 얼마나 격렬했는지 얼굴이 피범벅이었다. [4] 당시 강감찬은 '중추사'에 있었지만, 그를 맞이할 때 '병마사'라고 호칭했다. [5] 때마침 반란군들은 거란의 친조 요구에 전쟁 준비를 하려고 했지만, 중간에 동북면 군사들에게 자신들의 권력을 뺐길까봐 전전긍긍했다. [6] 드라마에서 현종이 그를 "서경판관에 임명한다."라고 했지만, 실제로는 인물 설명 자막에 나오듯이 '권서경판관'이 맞다. [7] 박진과 최질은 현종을 모시고 서경에 머문 후 통주가 아닌 귀주로 우회해 거란으로 들어갈 계략을 꾸민다. [8] 이자림이 흥륜사에 들려 지채문과 김씨 부인에게 현종의 편지와 소식을 전한 후 지채문은 동북면 중랑장 도용수와 그 곳의 군사 일부를 이끌고 서경으로 잠입했으며, 김씨 부인도 현종의 편지를 읽고 단신으로 서경에 도달해 그 곳을 점령한 반란군의 눈에 띄지 않게 숨어있었다. [9] 김훈은 봉두난발해서 최질 일파에 의해 연회장에 꿇어앉아 있었고, 박진 부자와 최구는 따로 술을 마시다가 낌새를 눈치채는 듯하였으나 최구는 지채문에게 제압당했고, 박진은 양자 박영의 블러핑에 조금 안심한 채 박영과 한참동안 술을 마셨다. [10] 따로 술을 마시던 박진은 이후 양아들 박영에게 진실을 듣자 충격을 받고 그를 목졸라 죽인 후 활을 들고 현종이 있던 연회장으로 가서 그에게 활을 쏘지만, 전전승지 양협으로 인해 실패했고, 결국 지채문에 의해 참혹하게 죽는다. 그리고 이자림의 행동은 단순히 지채문과 부하들의 반란 제압을 돕는 것 뿐만 아니라, 최질의 군사들을 최질과 선을 긋게 함으로써 '(최질이 시켜서 했을 뿐일테니)반란 가담의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뜻이기도 했다. 최질의 부하들도 단순히 '지채문'이라는 이름만 듣고 겁을 먹어 가만히 있던 것이 아니라, 이 말의 의미를 알았기에 들어가지 않은 것. 이를 몰랐다면 본인들의 부귀영화를 방해하는 현종과 그 부하들이 자신들의 우두머리를 제거하는 것을 가만히 놔두지 않았을 것이다. [11] 문하시랑평장사 최사위, 참지정사 최항, 중추사 채충순과 강감찬 [12] 이때 1015년부터 1017년 동안 있었던 일을 언급하는 나레이션 중반부터 강감찬이 현종 앞에서 설명할 때 같이 자리해 있는 모습이 보이는데, 당시 고려의 수도 주변에 나성을 쌓아야 한다고 강감찬이 건의할 때 이자림은 김훈 최질의 난이 진압되고 돌아와 급사중이 된 황보유의와 함께 나성을 축조한다. 이 나성은 전쟁이 다 끝나고 현종 재위 후반부인 1029년에 완성되며, 이자림은 그 공으로 국성인 '왕씨' 성을 하사받아 ' 왕가도'가 된다. 여담으로 본래 이름인 '자림'도 1020년경에 '가도'라고 바뀌는데, 자세한 건 '왕가도' 문서 참조. [13] 지방 개혁과 역참과 관련해서는 묵묵히 경청했다. [14] 노전, 지채문과 함께 과거 강조나 양규가 도순검사 시절 입었던 갑주를 착용하나 두르는 망토가 푸른색이다. [15] 사실 이 상처는 배역을 맡은 전진우가 2015년 당시 교통사고에 의해 생긴 실제 흉터인데, 여기에 분장을 거쳐 길이를 눈꺼풀까지 늘린 덕분에 나름 전장에서 잔뼈가 굵은 인물로 보였다. [16] 위 각주에도 언급했듯이 이후 개경 외곽의 나성을 축조한 공으로 국성을 하사받는다. 참고로 고려시대에는 유독 인물들의 개명이 많은 편이며, '강감찬'만 해도 원래는 '강은천'으로 불리다가 과거에 합격해 관료 생활을 시작하면서 개명한 것으로 추측된다. [17] 처음 계획은 현종이 세웠으나 이미 눈치 챈 박진에 의해 일부 틀어질 때 서경에 잠입한 김씨 부인이 '연회'를 활용한 계획을 세운다. [18] 『고려사』 열전에 따르면, 서경에서 장서기라는 직책을 맡아 사람들의 서경 사람들의 인심을 얻었기에, 김훈과 최질도 이자림이 권서경판관으로 임명되는 것에 딱히 의심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게다가 강감찬, 최사위와 같은 대 거란 강경파 문신들을 차별하지도 않았다. 애초에 '김훈과 최질이 반목했다'라던가 '반란을 일으킨 무관들과 일부 호족이 자신들이 부귀영화를 위해 군주를 적국에 팔아넘기려 했다'라는 드라마 속 이야기 자체가 실제 역사에서는 도저히 찾아볼 수 없는 '창작을 넘어 왜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메인 작가는 이러고도 변명을 할 셈인가? [19] 전진우는 해당 드라마에서 주인공 천추태후를 맡은 채시라와는 인수대비에서 같이 출연한 적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