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정치인 이완구의 논란 및 사건사고를 서술하는 문서이다.2. 논란
2.1. "대통령 각하" 언급 논란
새누리당 원내대표 시절 “ 박근혜 대통령 각하”라고 불러 논란이 된 적이 있다.[1]청와대에서 열린 새누리당 지도부와 박근혜 대통령의 오찬 자리에서 이완구 원내대표가 인사말 도중 "대통령 각하"를 세 번 언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이완구는 “‘각하’는 다른 의미”라며 “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 등 외국 수반에게도 외교적으로 각하라고 부르지 않느냐. 권위주의와 권위는 다르게 받아들여야 한다”고 해명했다.
2.2. 경남기업 회장 자살 사건
검찰 수사의 압박을 못 이기고 성완종이 자살하고 만다. 게다가 성완종은 죽기 직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이완구를 비롯한 몇 명에게 뇌물을 줬다는 증언과 쪽지를 남겼다. 당연히 정치계는 패닉 상태가 되었고, 이완구 총리에 대한 청문회도 이루어졌다. 결국 사건 이후 이완구는 식물총리로 전락해 버렸고, 취임 70일 만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사직하며 정치생명에 심대한 타격을 입었다.청문회 도중 '목숨을 걸고 맹세한다', '충청도 말이 좀 그렇다'라는 발언을 해서 야권은 물론 여권에서도 안좋은 소리가 나왔다. 조선일보 ytn 중앙일보 또한 같은 충청권 인사인 성완종 前 회장을 '알지도 못한다'는 발언도 일부 논란이 되기도 했다.
참고로 리스트 내 친박 인사들 중에서 기소된 사람은 이완구 뿐이다.[2] 정치평론가들은 정치권에서 최대한 실드를 쳐줄려고 했는데 본인의 발언이 문제가 돼서 못 구해준 듯하다고 추측했다.[3] 적극적이고 강인한 성격 덕분에 비교적 수월하게 총리가 됐는데 정작 그 때문에 총리를 관두게 됐으니 아이러니.
그런 충격이 상당한지 본인도 이 사건 이후 쭉 자택에서 칩거 중이다. 썰전 강용석의 발언에 따르면, '(총리가 되어) 모든 것을 다 이뤘다고 생각한 순간, 모든 것을 잃어버려 충격이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이 사건이 이완구에게 큰 스트레스를 주어 혈액암까지 재발하고 끝내 목숨까지 앗아간 셈이 되었다.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되었고, 재판에서는 성완종의 수행비서들과 경남기업 전 부사장이 출석해 돈을 쇼핑백에 담아 건넸다고 진술하였다. 2016년 1월 29일 1심에서 징역 8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4] 그러나 2016년 9월 27일 항소심 법원은 성완종 리스트를 증거로 인정하지 않고 무죄 판결을 선고하였다.
2017년 12월 22일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 판결을 받았다. 판결 후 “하나님께서 ‘너 정치 잘해라. 이 사건에선 결백했지만, 그렇게 이 나라 정치인들이 국민들한테 떳떳하냐’라고 묻는 의미도 있다” “진영 논리에 갇히지 않고 나라가 잘되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소회를 밝혔다.
이후 경향신문을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걸었다. 경향신문이 비타500 박스로 뇌물을 받았다고 기사를 작성했는데, 이 것이 허위사실이며 정치적 생명이 끝났기 때문에 소송을 걸었다고 밝혔다. 억울함을 호소하면서 ''경향신문 보도 때문에 손자가 할아버지는 비타500을 좋아한다고 생각한다."라고 한 대목이 압권.
허나 1심에서 패소했다. 이유는 "허위사실로 명예가 훼손된 것은 맞으나, 공직자의 도덕성 등에 대한 의혹 제기로 악의적이거나 타당성을 잃은 공격이 아니다"는 것. 이에 이완구는 납득하기 어렵다며 항소했지만 2심 재판부도 1심의 판단이 옳다며 항소를 기각했다. #
[1]
각하는 대통령을 부르는 옛 경칭이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은 각하라고 불렀으나,
윤보선,
최규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은 각하라고 부른적이 한 번도 없다. 하지만
이명박을 다시
각하라고 부르자고 논란 된 적이 있다. 이명박은
가카라는 별명이 생기기도 했다.
[2]
유일하게 같이 기소된 새누리당
홍준표 경남도지사의 경우 친박이 아닌 비박계열이다. 그리고 결국 2심에서 뒤집히면서 당시 구 여권의 수권후보까지 되었다.
[3]
다른 관점에서는 총리 인준된 인사들이 하나 같이 부적격 판정 받고 낙마하다보니, 민주당 내에서도 현 정부에 너무 발목잡는게 아니냐는 말이 나올 정도였고, 그래서 이완구에 대해서는 암암리에 봐준 측면이 있다고 한다.
[4]
그리고 이와 함께
제20대 국회의원 선거도 불출마를 선언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