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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4 17:22:32

이승장

1. 개요2. 생애
2.1. 임관 전2.2. 임관 후
3. 가족관계


李勝章
(1137 ~ 1191)

1. 개요

고려의 문신. 자는 질부(質夫).

2. 생애

2.1. 임관 전

상주 경산부( 경상북도 성주군) 출신. 친부 이동민(李棟民)은 개경의 사학에서 수학하고 을과에 등제해 관직이 권지감찰어사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승장은 장성하기 전에 부친을 여의었고 이승장의 모친은 의식(衣食)을 해결하기 위해 재혼한다. 이승장의 의붓아버지는 집안이 가난했기에 이승장이 친자식과 같은 일에 종사하기를 바랐는데, 이승장의 모친이 고집하기를,
첩은 의식을 해결하기 위해 백주(栢舟)에 부끄럽게 됐습니다.[1] 그러나 유복자는 다행스럽게도 이제 소년(成童)이 되어 학문에 뜻을 두고 있으니, 반드시 그 아버지의 본래 문하(徒)에 돌아가게 함으로 유업을 잇게 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내가 지하에서 전 남편의 얼굴을 어떻게 다시 볼 수 있겠습니까?[2]

라고 하니, 이승장은 모친의 결단 덕분에 개경으로 상경해 부친이 수학하던 문헌공도 솔성재(率性齋)에 입학하게 된다. 어려서부터 글로 이름을 날렸고 훗날 관직이 추밀원사에 이른 김평(金平)은 이승장의 학교 친구였는데, 둘의 우정은 수학을 마친 이후에도 계속돼 후일 김평이 말하기를 '가장 두텁게 아는(知最厚)' 사이였다고 할 정도였다.

이승장은 김부식의 아들 김돈중의 문생으로 의종 22년(1168) 봄의 진사시에서 2등으로 선발된다. 김돈중은 문하에 있는 이승장을 아꼈지만 장원 급제하지 못한 것을 안타깝게 생각했는데, 같은 해 가을에 과거에 (장원으로) 급제한 이후에는 "내가 과거에서 사람을 얻었다는 것을 여기에서 볼 수 있구나."[3]라며 기뻐한다.

2.2. 임관 후

이승장의 임관 초기는 무신정변 발발과 비슷한 시점이다. 명종 2년(1172) 관성현[4]의 현위로 부임했는데 이듬해인 명종 3년(1173) 여러 군에서 '묵은 원한을 갚기 위해' 수령을 죽이는 소란이 일어난다. 고려사절요를 참조하면 이 해 겨울 10월부터 3경 4도호 8목부터 군현, 관이나 역참에 이르기까지 무신들이 지방관으로 임용됐는데, 이들이 전임 문신 수령들을 사적으로 제재한 것으로 보인다. 무신의 그림자는 이승장이 부임해있던 관성현에까지 드리웠으나 평소에 아꼈던 백성들이 적극적으로 변호함으로 이승장은 목숨을 건진다. 이승장은 그 길로 가족을 데리고 낙향해 경서, 사서를 읽으며 은거한다.

이승장이 관직에 돌아온 것은 정중부의 계략으로 이의방이 죽임을 당하고 4년 뒤, 정중부가 집권중이던 명종 8년(1178)의 봄이었다. 상경한 이승장은 직사관에 발탁된 것을 시작으로 흥위위녹사참군 겸 권직한림에 이른다. 명종 13년(1183) 서장관으로서 금나라에 사신으로 가는 기거랑 최효저를 따라갔으며, 그 공으로 대관승 겸 동문원녹사가 된다. 이후 사문태학박사를 지내고 또 관직이 여러 번 바뀌어 태자를 보좌하는 첨사부사직에 이른다. 명종 21년(1191) 겨울의 정기 인사에 권지감찰어사에 임명되고 이듬해 3월에 감찰어사[5]가 된다.

이승장은 부친이 생전에 오른 권지감찰어사에 임명된 뒤 명종 22년(1192) 2월부터 중풍을 앓았다. 병은 깊어졌고 9월 초하루에 55세의 나이로 사택에서 죽는다. 같은 달 15일 불교 의례에 따라 화장됐고 명종 23년(1193) 4월 24일 불일산 북부 기슭에 장사된다. 이승무의 아들들은 기거랑 지제고에 있던 부친의 벗 김평을 찾아가 묘지명을 지어줄 것을 부탁한다.

3. 가족관계


사의서령을 지낸 조씨의 딸과 결혼해 4남 2녀를 둔다. 장남 이송무는 진사시에 급제하며 차남 이백중은 병과에 급제한다.


[1] 백주는 시경에 나오는 시로 지아비를 잃은 여인의 지조를 노래한다. 백주에 부끄럽다는 것은 지조를 지키지 않고 재가했음을 뜻한다. [2] 妾以衣食故見愧栢舟. 然其遺腹幸今成童志于學, 必宜投屬厼父本徒, 俾踵遺塵. 若不厼, 則吾何面復見先夫於地下. [3] 吾擧得人, 可見於此. [4] 이승장의 고향 경산부에 속한 현이다. [5] 어사대( 사헌부)의 종6품 관직으로 정원은 10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