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이반코 (영어: Ivanko, 불가리아어: Иванко) |
출생 | 미상 |
사망 | 미상 |
직위 | 불가리아 보야르 |
반란 대상 | 알렉시오스 3세 |
[clearfix]
1. 개요
동로마 제국 앙겔로스 왕조의 반란자. 불가리아 제2제국 차르 이반 아센 1세를 살해하고 제국에 귀순했지만, 알렉시오스 3세에게 반란을 일으켰다가 진압당했다.2. 생애
쿠만족 출신으로, 페터르 4세와 이반 아센 1세의 봉기를 지원하여 보야르 직위를 받았다. 그러던 1196년 가을, 타르노보에서 열린 회의에서 아센을 살해했다. 니키타스 호니아티스는 그가 이런 일을 저지른 동기에 대해 두 가지 이야기를 전한다. 첫번째 이야기에 따르면, 당시 포로로 잡혀 있던 이사키오스 콤니노스가 그에게 딸을 시집보낼 테니 아센을 죽이라고 설득했다고 한다. 또다른 이야기에 따르면, 그가 아센의 아내의 여동생과 성관계를 맺다가 발각당하자, 그가 죽임을 당할 것을 우려했다고 한다. 둘 중 어느 쪽이 맞는지는 분명하지 않다.그는 동로마 제국 황제 알렉시오스 3세에게 구원을 요청했고, 황제는 마누일 카미치스를 파견했다. 그러나 군중에서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이를 수습하느라 더 이상 진군할 수 없었고, 페터르는 그 사이에 타르노보로 쳐들어갔다. 그는 도저히 이길 수 없다는 걸 알게 되자 콘스탄티노폴리스로 도주했다. 그는 황제에게 알렉시오스라는 이름을 받았고, 플로브디프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으며, 이사키오스 콤니노스의 딸 테오도라와 결혼했다. 그는 불가리아군을 모으고 지역의 요새를 재건해 불가리아의 침략을 저지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그러나 1198년 불가리아 차르가 된 칼로얀의 회유를 받아들여 제국에 반기를 들었다. 마누일 카미치스가 이를 막으려 했으나 오히려 사로잡혔고, 그는 마누일을 타르노보로 보내버렸다. 동로마 제국이 그의 반란에 신경을 집중하는 사이, 칼로얀은 트라키아에 있는 콘스탄티아 요새를 공략하고 파괴했으며, 1199년 부활절에 바르나를 공략했다. 1200년, 알렉시오스 3세는 그에게 평화 협약을 맺자고 제안했다. 그는 젊은 약혼자를 보내고 자신의 영역을 인정할 것이며, 황제가 자신을 해치지 않는다고 성경에 맹세하라고 요구했다.
황제는 그렇게 해주겠다고 약속하고, 사위 알렉시오스 팔레올로고스와 테오도로스 라스카리스를 파견했다. 그는 협약을 논의하기 위해 그들을 만나러 갔다가 현장에서 체포되어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압송되었다. 이후의 행적은 기록이 미비해 알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