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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57:47

이두연(1915)

성명 이두연(李斗淵)
일본식 성명 松谷斗淵
성순(聖順)
본관 전의 이씨[1]
생몰 1915년 9월 5일 ~ 1944년 1월 22일
출생지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 매화리
(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
추서 건국훈장 애국장

이두연은 1915년 9월 5일 강원도 울진군 원남면(현 경상북도 울진군 매화면) 매화리에서 이석룡(李錫龍)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1938년 10월 28일 임시헌· 남원수· 노하순 등 울진 출신 인사들이 중일전쟁의 장기화에 대비하면서 조선독립 및 농민사회제도의 개혁을 목적으로 주도·조직한 창유계(暢幽稧)에 가입·활동하였다. 창유계는 일본 경찰의 감시를 피하기 위해 '계' 형태를 가장하여 소규모 조직으로 운영되었으며 1942년 11월까지 5차례에 걸쳐 회합을 가지면서 조직의 결속 강화와 반일선전 활동의 확대, 동지 규합에 주력하였다.

그러나 1943년 3월 일본 경찰에 의해 조직이 탄로나 와해되면서 그도 검거되어 혹독한 고문을 받다가 1943년 12월 18일 대구지검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에 대해 기소중지로 불기소처분을 언도받고 출옥하였다. #

그러나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1944년 1월 22일 순국하였다.

가족으로는 아내 파평 윤씨가 있다.

1982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표창이 추서되었으며, 1991년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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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전서공파 양간공파 27세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