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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2-06 18:00:41

의유당일기

파일:의유당일기.jpg

1. 개요2. 작자 논란3. 내용4. 의의

1. 개요

意幽堂日記. 조선 순조 29년, 1829년에 의유당 연안김씨(延安金氏)가, 혹은 영조 48년, 1772년에 의유당 의령남씨(宜寧南氏)가 지은 여류 수필. 의유당관북유람일기(意幽堂關北遊覽日記)라고도 부른다.

2. 작자 논란

원래 의유당일기는 그동안 이병기(李秉岐)가 작품 원문에 교주를 붙여 최초 출판할 때 밝힌 의유당 연안김씨(延安金氏)를 책의 저자로 보았다. 이병기는 1947년 책을 발행하면서 다음과 같이 소개하였다.
연암 김씨의 의유당이라는 당호를 지닌 한 여사의 작품으로 순조 29년 가을에 남편 이희찬이 함흥 판관으로 부임하매 의유당도 따라가 그 부근의 명승 고적을 찾아다니며 보고 느끼고 생각하는 바를 그 붓으로 적은 것이다.

그런데 이후 연구가 진행되면서 논란이 일어났다. 훗날 의유당의 또 다른 작품을 모아놓은 의유당유고가 발굴되면서 다른 이상한 점들이 발견되었고, 또 의유당일기의 내용과 이병기가 비정한 창작 연대가 일치되지 않았던 것이다. 때문에 1977년 국어 국문 학회와 한국 문학 논총에 류탁일 교수가 논문을 게재한 것을 시작으로 지속적인 연구 끝에 의유당은 연안 김씨가 아니라 같은 당호를 쓴 의령 남씨이며 창작 연대 역시 1829년이 아니라 60년 앞선 1772년으로 보는 견해가 높아지고 있다.

3. 내용

의유당 연안 김씨가 남편 이희찬을, 혹은 의유당 의령 남씨가 남편 신대손(申大孫)을 따라 서울을 떠나 남편의 임지인 함흥에 도착하여 그 주변의 명승들을 구경한 내용이다. 내용 구성은 다음과 같다.

4. 의의

여성의 손으로 한글로 지어진 최고의 기행 문학 작품으로 꼽힌다. 특히 동명일기에서 보이는 뛰어난 묘사와 자유분방한 필치는 어디에도 찾아보기 힘들며 이러한 점을 인정받아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수록되었다.

또한 춘일소흥과 영명사득월루상량문은 번역 문학적 맥락에서 주목받고 있으며 당대 여성 문학가의 문학 향유 양상과 번역 솜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특히 사물을 관찰하는 격조 높은 안목과 탁월한 표현력은 지은이의 문학적 역량이 어떠한가를 보여준다.

조선조 여성의 대표적인 수필 문학 작품으로 그 가치가 높을 뿐만 아니라, 기행, 전기, 번역 등을 포괄하는 작품으로 18세기 조선조 여류 문학 연구의 귀중한 자료다.

훗날 발굴된 의유당유고는 의유당이 50세 이후에 지은 작품들을 그녀 사후에 묶은 책으로, 의유당유고에는 그녀 말년의 삶에 대한 기록이 조금씩 나타난다. 의유당유고에 의하면 의유당은 훗날 모두 12남매를 출산하였지만 한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잃고 만다. 젊어서는 자뭇 활달하고 재치발랄하여 남편을 따라 남북으로 뛰어다녔지만, 말년에는 따르던 남편과 자식들 대부분을 잃고 쓸쓸히 곤궁한 말년을 보낸 것이다. 의유당유고의 작품들은 의유당일기와는 달리 활달하고 자유분방한 기세가 느껴지지 않으며, 그녀 특유의 섬세한 관찰은 여전히 두드러지지만 젊었을 적의 자유분방한 필체는 더이상 드러나지 않는다. 의유당일기, 특히 동명일기를 읽어 본 후 의유당유고의 글을 읽으면 어딘가 모르게 강개하고 애절한 기분을 느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