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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7-18 21:55:02

은전 한 닢

1. 개요2. 원문3. 여담
3.1. 어떻게 생긴 은전인가?3.2.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나?
4. 관련 패러디 모음

1. 개요

피천득의 수필. 제6차 교육과정 국어 교과서 (상)에 수록되었다.

작가가 상하이에서 본 거지 이야기를 수필로 쓴 글이다.[1] 은전 한 닢을 그저 갖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기어이 만들어낸 늙은 거지의 마음을 통해 인간의 물욕과 성취의 기쁨 등을 한데 압축해 이야기한다. 대단히 짧지만 그만큼 농밀하고 강렬한 뒷맛을 남긴다.

인상이 강한 탓에 인터넷 상에서 많은 수의 패러디가 나왔고 윤오영의 방망이 깎던 노인, 김소운의 피딴 문답, 박지원의 허생전과 함께 잘 패러디되는 4대 작품으로 꼽힌다.

2. 원문

내가 상해에서 본 일이다.

늙은 거지 하나가 전장[2]에 가서 떨리는 손으로 일 원짜리 은전 한 닢을 내놓으면서,
"황송하지만 이 돈이 못쓰는 것이나 아닌지 좀 보아 주십시오."
하고 그는 마치 선고를 기다리는 죄인과 같이 전장 사람의 입을 쳐다본다. 전장 주인은 거지를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돈을 두들겨 보고
"하오(좋소)."
하고 내어 준다. 그는 '좋소'라는 말에 기쁜 얼굴로 돈을 받아서 가슴 깊이 집어 넣고 절을 몇 번이나 하며 간다. 그는 뒤를 자꾸 돌아보며 얼마를 가더니 또 다른 전장을 찾아 들어갔다. 품 속에 손을 넣고 한참 꾸물거리다가 그 은전을 내어 놓으며,
"이것이 정말 으로 만든 이오니까? " 하고 묻는다.
전장 주인도 호기심 있는 눈으로 바라보더니,
"이 돈을 어디서 훔쳤어?" 거지는 떨리는 목소리로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러면 길바닥에서 주웠다는 말이냐?"
"누가 그렇게 큰돈을 빠뜨립니까? 떨어지면 소리는 안 나나요? 어서 도로 주십시오."
거지는 손을 내밀었다. 전장 사람은 웃으면서
"하-오(좋소)."
하고 던져 주었다.

그는 얼른 집어서 가슴에 품고 황망히 달아난다. 뒤를 흘끔흘끔 돌아다보며 얼마를 허덕이며 달아나더니 별안간 우뚝 선다. 서서 그 은전이 빠지지나 않았나 만져 보는 것이다. 거친 손가락이 누더기 위로 그 돈을 쥘 때 그는 다시 웃는다. 그리고 또 얼마를 걸어가다가 어떤 골목 으슥한 곳으로 찾아 들어가더니 벽돌담 밑에 쪼그리고 앉아서 돈을 손바닥에 놓고 들여다보고 있었다. 그가 어떻게 열중해 있었는지 내가 가까이 선 줄도 모르는 모양이었다.
"누가 그렇게 많이 도와 줍디까?"
하고 나는 물었다. 그는 내 말소리에 움찔하면서 손을 가슴에 숨겼다. 그리고는 떨리는 다리로 일어서서 달아나려고 했다.
"염려 마십시오, 뺏어가지 않소."
하고 나는 그를 안심시키려 하였다.

한참 머뭇거리다가 그는 나를 쳐다보고 이야기를 하였다.
"이것은 훔친 것이 아닙니다. 길에서 얻은 것도 아닙니다. 누가 저 같은 놈에게 일 원짜리를 줍니까? 각전(角錢) 한 닢을 받아 본 적이 없습니다. 동전 한 닢 주시는 분도 백에 한 분이 쉽지 않습니다. 나는 한 푼 한 푼 얻은 돈에서 몇 닢씩 모았습니다. 이렇게 모은 돈 마흔 여덟 닢을 각전 닢과 바꾸었습니다. 이러기를 여섯 번을 하여 겨우 이 귀한 '대양(大洋)' 한 푼을 갖게 되었습니다. 이 돈을 얻느라고 여섯 달이 더 걸렸습니다."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렀다. 나는
"왜 그렇게까지 애를 써서 그 돈을 만들었단 말이오? 그 돈으로 무얼 하려오?"
하고 물었다. 그는 다시 머뭇거리다가 대답했다.

"이 돈 한 개가 갖고 싶었습니다."

3. 여담

3.1. 어떻게 생긴 은전인가?

파일:daeyang.jpg

출처: numista

작중에서 등장하는 대양(大洋)은 광동어로 은원(銀圓)의 속칭인데 당시 중화민국의 화폐였으며 무게 26.4g, 순도 89%, 순은 함유 23.496g이다. 하지만 당시 중화민국의 경제가 혼란스러워서 화폐도 종류가 다양했기 때문에[3] 정확하게 어떤 은전이었는지 확신할 수는 없다.

1914년[4] 발행된 위안스카이의 초상이 새겨진 은원은 위와 같은 형태였다. 대양 가운데는 1927년 1933~1934년 발행된 쑨원이 새겨진 은원도 있다. 단, 이 수필의 배경은 1932년이라 1933~1934년 은원이 문제의 은전이었을 가능성은 없다.

파일:gakjeon.jpg
파일:dongjeon.jpg

한편 각전(角錢)은 100원짜리만한 소형 은화인데 원래 명목상의 가치는 대양의 5분의 1 가치이나 대양과 순도[5]가 달라 실제 가치는 더 낮은 대양의 6분의 1 정도로 통용되었다. 마찬가지로 같이 언급되는 동전도 원래 명목상의 가치는 대양의 100분의 1 가치이나 당시의 혼란했던 시대상으로 인해 실질 가치는 대체로 300분의 1 정도로 통용되었다고 한다. 수필에서 동전 48닢을 각전으로 바꾸었다거나 각전을 여섯 번을 바꾸어서 대양을 얻을 수 있었다는 내용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3.2. 어느 정도의 가치가 있나?

1935년 중화민국 국민정부가 도입한 고정환율제에서는 다양 한 닢은 파운드 스털링화 1실링 2.5펜스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 당시의 1실링은 현재의 2.76파운드와 같은 가치를 가진다. 계산 그러므로 대양 1닢을 현재 원화로 환산하면 약 5,000원~10,000원 정도다. 내부에 포함된 귀금속 은의 가치로 따지면 2014년 1월 현재 은 1그래뇰(3.75그램)이 2,500원 정도이므로 15,000원 정도가 될 것이다. 참조

이에 따르면 작중에서 거지가 눈물을 흘리며 기뻐하는 은전 한 닢의 가치는 1만원권 지폐 한장 정도로 보면 될 것이다. 물론 빈부격차, 물가 등을 고려하면 체감 수치는 더 높을 것이다.

귀금속의 채굴기술 발전과 누적채굴량 증가, 물가상승 및 생산력 증가등의 다양한 변수가 있기 때문에 1930년대와 21세기의 화폐가치를 1파운드 대 원화 또는 귀금속 일정량의 가격만을 기준으로 1:1 비교하는 것은 어렵다. 이게 정말 의미 있는 비교로 성립하려면 물가변동 및 사회의 총 생산량 변화와 이로 인한 소비수준 향상 등을 모두 고려하여 동일 수준의 구매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추산해야 하고 이 부분은 전문 역사학자들도 명확한 수치를 제공할 수 없어 '대략' 이라는 단서 하에 높게 보면 얼마, 낮게 보면 얼마라는 식으로 범위로 설명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히려 작중 내용을 바탕으로 체감 가치를 비교해 보려면 '각전 한 닢을 받아본 적도 없고, 동전 한 닢을 주는 사람도 백에 하나가 드물다'는 내용에서 기본적으로 구걸하는 걸인이 그나마 쉽게 받을 수 있는 것이 동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으므로 이 '동전 한 닢'을 21세기 초 한국에서 구걸하는 사람이 비교적 쉽게 받을 수 있는 '천원권 지폐'와 비슷한 체감 가치를 가지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여 비교하는 것이 더 적절할수도 있다. 이렇게 보면 동전 48 닢=각전 1 닢이므로 각전은 대략 4~5만원 수준, 다시 각전 6 닢=은전 1 닢이므로 대양 은전 한 닢의 가치는 현대 한국인이 체감하기로는 25~30만원 정도에 해당할 것이라 짐작할 수 있다.[6]

약간 다른 방법으로, 30년대의 상하이의 풍경을 묘사한 다른 작품이나 자료와 비교해 볼 수 있다. 당시의 생활상을 다룬 작품들을 보면 대략 간단한 식사(두유와 중국식 빵) 한 끼에 지불하는 것이 동전이고 각전 한 닢이면 고급스럽지는 않더라도 술과 고기를 배불리 먹을 수 있는 것으로 묘사된다. 이 경우 당대 중국 상하이와 현대 한국의 생활수준 및 구매력 차이 때문에 정확히 각 화폐를 어느 정도의 금액으로 환산해야 할지 명확히 설명하기는 어렵지만 어쨌건 은전 한 닢의 가치가 수십만원 정도의 체감가치를 가졌을 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은전 한 닢을 얻기 위해 거지가 견뎌야 했던 욕망의 무게가 어느 정도였는지를 느끼기도 좀 더 쉬워질 것이다. 거지에게 은전 한 닢이란 6개월 이상의 기간 동안 당장 주린 배를 채울 수백번의 끼니 또는 거지 신세의 고단함을 잠시 잊게 해 줄 대여섯차례의 술과 포식을 포기함으로써 얻어낸 욕망의 상징 그 자체였던 셈이다. 뭐, 당장 굶어 죽을 지경은 아니니 할 수 있는 일이었겠지만... 어쨌건 현대 한국인이 느끼는 만원권 지폐 한 장보다는 훨씬 큰 체감가치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높다.

또는 1930년대 중화민국의 대양 은화 1닢이 중화민국의 화폐체계에서 1원(1圓)에 해당하는 일종의 기준화폐였음을 바탕으로 생각해 볼 수 있다. 1930년대 중국의 물가에서 (특히 산업화와 근대도시화가 상당 수준 진행된 만주나 동남해안지역 기준으로) 한 달에 10원(1圓) 정도면 부자는 아니라도 특별히 부족함이나 모자람 없이 어느 정도 여유있는 생활을 할 수 있는 수입으로 여겨졌고 재산이 만원(10000圓) 정도 있다고 하면 부자로 평가받기에 모자람이 없는 정도였으며 동전 한 닢이 빵과 두유, 각전 한 닢에 술과 고기안주 정도로 여겨진것과 마찬가지로 여자가 나오는 서양풍의 고급스러운 술집에서 호사스러운 술자리를 한번 차리는 데 드는 비용이 대략 1원(1圓), 즉 은화 한 닢 정도로 여겨지고 있었던 것. 게다가 당시 중화민국의 혼란스러운 경제사회상 및 화폐체계에서 난잡하게 발행되어 신뢰성이 떨어지는 지폐에 비해 귀금속의 가치가 보장되는 은화가 가지는 상대적, 상징적인 가치 역시 무시할 수 없었던 것.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물론 본 수필의 주제에서 은화의 화폐적 가치 자체가 그렇게까지 중요한 것은 아니지만) 당시의 은화 한 닢은 어지간한 부자가 아닌 한 '별 것 아닌 푼돈' 취급당할만한 것은 아니었고, 따라서 당대의 독자들 역시 하루 동냥해서 하루를 생존하기도 빠듯한 늙은 거지가 대부분의 독자들에게도 그리 작다고는 할 수 없는 '그 돈 한 개'를 그렇게까지 가지고 싶어한 마음과, 그것을 위해서 얼마나 힘들게 애를 써야 했는지를 어느 정도라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게 되는 것.

사실 화폐적 가치도 가치지만 이 소설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남들이 보기엔 별 거 아닌 것 같아도 누군가에게는 절대적으로 소중할 수도 있다는 것을 말하고자 함이니 화폐적 가치가 10만원이든 100만원이든 크게 중요한 것은 아니다. 2008년에 시사매거진 2580에서 화제가 된 '7잡 알바 아저씨' 이종룡은 잘나가던 사장이었다가 IMF로 폭망하고 빚더미에 올라앉았는데 10년만에 7잡 알바 끝에 3억을 갚은 뒤 눈물을 흘리는 모습이 나왔다. 은전 한닢의 거지에겐 은전 한 닢이 눈물을 흘릴 만큼 간절하게 소중했듯 아저씨에겐 3억 역시 그만큼 소중했던 것이다. 아저씨에겐 3억을 모으기 위해 10년이란 세월이 걸렸으며 그 3억을 갚은 뒤 눈물을 흘렸다. 당시 엄청난 화제였으나 결국 안타깝게도 아저씨는 지나치게 잠을 줄이며 일한 끝에 건강이 악화되어 병에 걸려 사망했다. 그야말로 생명을 갉아먹으면서 목숨을 내던지며 불태운 끝에 빚을 갚은 셈이다. 이처럼 목표 하나에 꽂히면 그것이 목숨보다도 더 절대적으로 중요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4. 관련 패러디 모음



[1] 수필을 '일상생활에서의 체험을 토대로 한 문학'이라고 보는 관점에서 본 수필의 극적 전개가 필요 이상으로 작위적이라는 견해도 있는데 수필 중에서 진짜 실화의 비율은 그리 높지 않으며, 수필의 에피소드가 실화여야 할 이유는 없다. 실제 겪은 일을 극적으로 각색하라는 이야기는 수필 작법서에도 나온다. 수필이라는 분야는 꼭 '실제 겪은 일을 쓴 글'이라기 보다는 '딱히 형식 없이 가볍게 쓴 문학'이라고 보는게 더 낫다. [2] 錢莊. 중국에서 환전(換錢)을 업으로 하던 상업 금융 기관. [3] 중국은 땅이 매우 넓어 성별로도 만드는 동전이 다 달랐고 군벌들이 전쟁비용을 충당하려고 화폐를 남발한 경우도 많았다. 그래서 아예 멕시코 영국령 홍콩, 인도차이나 등 외국의 화폐를 쓴 지역도 많다. 심지어 A성에서 흔하게 쓰였던 돈을 B성에 가져가니 못 쓰는 경우도 비일비재했다. [4] 그러나 발행년도는 1914년으로 되어있어도 실제로는 발행년도만 바꾸지 않은 채 이후에도 계속 발행했다고 하며 심지어 중화인민공화국이 들어선 후인 1950년대에도 한시적이긴 하지만 발행했다고 한다. [5] 대양은 보통 순도 90% 언저리이나, 각전은 1915년 이전까지는 80%였고 이후 계속 낮아져서 1920년대 들어서는 50%로 크게 떨어진다. [6] 2022년 기준으로 한국 금 한돈 가격이 30만원임을 참고해 볼 수 있다. [7] 마지막에 블레기의 소매치기가 인상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