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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 1집 The US Rage To See The Way We RULE (1995.01.01) |
정규 2집 Danny Wid Boyoung (1997.03.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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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B79D84><colcolor=#000000> 유채영 Yu ChaeYoung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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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김수진 (Kim SuJin) |
출생 | 1973년 9월 22일 |
경기도 안양시 | |
사망 | 2014년 7월 24일 (향년 40세) |
서울특별시 연세대학교 의료원 세브란스병원 | |
발인 | 2014년 7월 26일 |
서울특별시 연세대학교 의료원 세브란스병원 | |
묘소 | 경기도 파주시 광탄면 용미리 서현추모공원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62cm|40kg| O형 |
가족 | 어머니[1], 배우자 김주환[2] |
학력 | 안양예술고등학교 (무용학과 / 졸업) |
종교 | 기독교 ( 개신교) |
소속사 | 봄날엔터테인먼트 (2008년 6월 ~ 2014년 7월 24일) |
150Entertainment (2013년 4월 ~ 2014년 7월 24일) | |
데뷔 | 1989년 하이틴 잡지 '여학생' |
1989년 푼수들 1집 Rock 'n' Roll Go | |
1994년 쿨 정규 1집 너이길 원했던 이유 | |
링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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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가수이자 방송인.2. 특징
1988년 잡지 모델을 시작으로, 그룹 '푼수들'로 가요계에 데뷔했다. 이후 혼성그룹 쿨의 창단 멤버로 잠깐 활동하다 1집 이후 탈퇴하고, 유로팝 혼성그룹 어스(US)를 결성해 활동하기도 했다. 어스 이후에는 솔로가수로서 음악 활동을 하면서 방송에서 특유의 밝은 에너지로 대중들에게 많은 호감을 얻었던 멀티 엔터테이너라고 할 수 있다.가수, 배우, 예능인으로 활동했으며, 2007년부터 2010년까지 각종 예능 방송에서 활발하게 활동했지만, 2013년 위암 말기 판정을 받고 몇 달 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났다. 그 후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유채영의 모습을 잊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고, 안티도 거의 없었던 호감형 방송인이었다.
활동 내내 아주 밝고 재미난 말투와 오버 액션을 보여, 여러 영화에서 감초 역할로 등장 했는데, 실제로 그녀의 성격 또한 밝고 개방적일 거라는 선입견을 가진 이들이 많았지만, 실제 그녀의 성격은 정반대로 내성적인 편이었다고 알려지며, 마음씨가 아주 여려 주변 사람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천사 같은 성품을 가졌던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그래서 당시 그녀의 죽음에 안타까움을 표하는 연예계 인물이 아주 많았을 정도다. 특히 절친이었던 배우 김현주는 남자친구보다 더 나를 사랑해 주는 사람, 만약 내 뒤통수를 치는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다 용서할 수 있을 것 같다라고 얘기하였다.
본업인 가수 활동에서도 탁월한 춤 솜씨와 시대를 앞선 유로댄스, 일렉트로니카 장르를 적극 도입 하는 등 여러 방면에서 끼가 넘쳤던 인물이다.
3. 활동
자세한 내용은 유채영/활동 내역 문서 참고하십시오.4. 생전 모습
방송에서 보였던 오버 액션을 하며 몹시 망가지는 모습은 실제 성격과 아주 달랐으며, 내성적인 성격을 감추고 방송에 임했다고 한다. 그리고 유채영과 관련된 어떠한 인물도 유채영의 평소 행실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으며 "너무 착했던 사람"이라고 평가받았다.[3]활동 당시에도 모 방송에서 안티들의 얘기를 직접 듣는 방송이 있었는데 유채영에 대한 비판을 하자 바로 눈물을 흘리며 어쩔 줄 모르는 모습이 보여지기도 했으며, 남편에게 프로포즈하는 방송 <체인지>에서도 한없이 마음 여리고 감성적인 모습을 보여 시청자들에게 진한 감동을 주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유채영이 사망하고 나서도 아직도 많은 대중들과 방송 관계자들이 그리워하고 있다고 하며, 생전 그와 각별했던 쿨의 멤버 이재훈이나 배우 김현주는 사망 이후에 두어 차례 언급을 하여 유채영을 아주 그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평소 팬들 아끼는 마음도 대단해서, 길 가다가 팬을 만나고는 너무 고마워 하면서 아이스크림을 사 줬다는 일화도 있었고 팬 카페 <가디스>가 생기자 모 방송 녹화중 눈물을 흘리며 언급하는 장면도 있었다. 이외에도 유채영이 팬 카페에 몇 년간 계속 글을 남겨준 팬에게 직접 만나 인사를 전해주고 싶다며, 그 회원분이 어디에 사시는지만 말씀 해 준다면 찾아 가겠다는 내용을 올린 게시글도 존재하며, 연예인 의식 하나 없이 팬들에 대한 사랑을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는 겸손한 연예인이었다.
그랬기에 유채영을 잊지 못하는 팬들이 아직까지도 팬 카페 <가디스>에 그녀를 그리워 하고 추억하는 글을 올리고 있으며, 유채영의 남편도 팬 카페를 통해 유채영을 그리워 하는 글을 자주 남긴다.[4]
5. 위암 투병과 사망
2013년 10월 몸상태가 좋지 못해 건강 검진을 받았더니, 위암 말기라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아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받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로 인해, 당시 진행 중이던 라디오 방송 진행자가 김경아로 교체되었다.이후 암 투병 후 약 9개월이 지난 2014년 7월 21일 병세 악화로 사경을 헤매는 상태라는 기사가 보도 되었고, 많은 사람들이 기적이 일어나길 빌었지만, 24일 오전 8시 경 끝내 영면하고 말았다. 향년 만 40세의 젊은 나이이며, 41세 생일의 불과 두 달 전이었기에 많은 사람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기사.
하지만 투병 이후 좋지 못한 건강 상태임에도 불구하고 말년에 라디오를 진행할 때도 본인이 처한 환경이 어찌 되었든 간에 항상 애청자들을 우선으로 생각하고, 일요일 방송 때는 다음날이 월요일인 점을 감안해서 애청자들이 월요병에 걸리지 않도록 유난히 큰 웃음을 유발 시켜 잠시나마 시름을 덜어내는 편이었다고 한다.
대중을 생각하는 참다운 연예인이었고, 주변 평판 또한 호의적이었다고 한다. 안티가 거의 없었고. 이처럼 대중을 생각하고 배려심 깊은 연예인을 잃게 되어 안타까울 따름이다. 그리고 이를 방증하듯 유채영의 빈소에 많은 동료 연예인들이 조문을 왔다. 평소에 친한 사이였던 배우 김현주는 그녀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 보았다고 한다.[5]
유채영 생전에 어느 방송에서 방영되었던 장면들로 고인의 생전 식습관[6]이라고 해서 이랬기 때문에 병에 걸린 거라는 논지로 기사를 작성하거나 블로그에 올리는 사람들이 있는데, 고인드립이므로 각별히 주의하자.
사실 암이라는 것은 단순히 식습관 뿐만 아니라 타고난 체질, 유전, 정신적 스트레스에도 영향을 많이 받는 질병이다. 즉, 명확한 발병 원인이 없다는 의미이다. 몸 관리를 철저히 하며 살아온 사람도 예상할 수 없는 원인으로 발병하는게 암이다. 유채영은 과거 음반 제작자로부터 억대 사기를 당하고 심하게 마음 고생을 한 적이 있었는데, 위암의 발병 원인은 이와 무관하지 않다. 유채영이 사망한 지금에 와서 과거 식습관 문제를 거론한다는 건 사람에 따라 '죽을 만했으니깐 죽었다' 라는 식의 곡해된 의미로 받아 들여질 수 있다. 또한 해당 방송에서 나온 유채영의 식습관 문제는 이미 전부 개선이 되었다고 한다.[7]
사망 6일 후 히든싱어3 이재훈 편(2014년 8월 30일 방영)을 녹화한 이재훈이 마지막 소감에서 과거 동료였던 그녀를 언급하며 추모했다.
6. 여담
가수로서 역량이 떨어지는 것도 아니고, 그럭저럭 곡도 괜찮았지만, 상황이 따르지 않아 운이 극히 좋지 않았다.방송에서 보인 코믹한 이미지 때문에 가려서 그렇지 가창력도 그렇게 나쁘지 않고, 굉장히 드문 음색에 음역대도 은근히 넓다. 신체 조건도 늘씬한 체형에 미모까지 갖췄고, 춤 실력도 아무런 댄스 트레이닝도 한 적이 없음에도 수준급.
사실 가수 커리어는 불운의 아이콘 소리를 들을 만큼 슬펐다. 초기에 창단 멤버로 잠깐 활동했던 쿨은 그녀가 탈퇴하고 난 후, 말 그대로 대박을 내면서 수많은 스테디셀러 히트곡을 발표했으며, 노래방 기기 등록 곡 2위를 기록할 정도의 국민그룹이 되었다. 이후 결성한 그룹 어스도 1집은 어느 정도 인기를 끌었지만, 1집 이후 탈퇴하게 됐고, 솔로로서 대성할 기회였던 '이모션'은 모든 걸 다 갖춰놓고 소속사 때문에 해괴망측한 컨셉으로 나온데다 이정현이라는 괴물급 상대 때문에 묻혀버렸다.
2집에서는 일렉트로니카를 접목한 유로댄스 음악 Shake를 타이틀곡으로 내세웠고 음악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았지만, 오히려 시대와 트렌드를 너무 앞서가서 실패했다. 다만, 그것보다는 예능에서의 너무 망가지는 컨셉으로 어필하던 이미지 때문에 대중들이 가수로서 유채영을 어색해 한 것과 소속사 문제가 더 컸다.
이후 김지훈과 트로트 혼성 앨범을 발표 하기로 했으나, 김지훈의 고사로 불발 되었다.[8] 게다가 10년 만에 복고풍의 좋아[9]로 겨우 컴백을 하고 보니, 이번에는 컨셉이 당시 한창 주가를 날리던 손담비와 중복. 이 바람에 곡명을 바꿔, 의상 컨셉을 바꾸다 몇 달 활동도 못 하고 마무리 했다.
가수로서는 별다른 성과를 거두지 못했어도 연기력이나 예능감이 아주 출중해서 여러 작품에 감초 역할로 출연해 호평을 받았으며, 예능 방송 활동 당시에도 큰 오버 액션을 하거나 막춤을 추는 게 주된 컨셉이었음에도 거의 안티가 없이 호감도가 아주 높은 연예인이라 현재까지도 대중들에게 유채영은 좋은 이미지로 기억되고 있다.
[1]
유채영 본인은
외동딸로, 아버지께서 일찍 작고하여 가족은 어머니와 본인 뿐이었다. 유채영이 사망할 당시에는 어머니가 살아계셨으나, 현재 근황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2]
상당한 애처가로, 매년 그녀의 팬카페에 그녀를 추모하는 글을 남기곤 한다.
[3]
사실 본인이 쿨때도 서세원쇼에서 악의없이 자신을 크게 다치게 한 사람을 용서한 일을 말한 적이 있었다. 쿨 이전 다른 무명 그룹일때 "지나치게 큰 귀걸이"를 하고 버스에 탔다가 버스가 급정거하는 순간 옆의 키가 작던 여성 승객이 귀걸이가 순간 손잡이인줄 알고 붙잡아서 귀가 찢어져 피가 질질 흘렀는데 괜찮다며 용서하고 병원에 가서 자비로 치료했었다고 한다. 당시 소속사 사장과 그룹 동료들도 무슨 귀걸이가 손바닥보다 더 크냐고 했었다고. 본인이 잡은 컨셉이었다고 한다.
[4]
작성한 글들이 언론에 보도되는 일에 대해서 매우 힘들어 하고 있으며 확대해석되거나 다른 의미로 해석되는 것이 힘들다고 했다.
[5]
여담으로 김현주는 2014 ~ 2015년에
가족끼리 왜 이래에서
차순봉의 장녀이자 첫 째인
차강심 역으로 출연하였는데, 차순봉이 위암 말기 판정을 받은 이후 그간 행적과 불효녀에 대한 속죄 및 오열 연기가 굉장히 애절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담당 배우 김현주의 말로는 실제로 친한 친구가 이른 나이에 병으로 영면하였기에 극 중 몰입이 가능했다고 한다.
[6]
커피 한잔에 시럽을 3'컵' 넣는다거나 하루종일 탄산음료를 물처럼 마시고 과자나 빵 등의 군것질거리를 끊임없이 먹는 수준이였다. 가수, 예능 활동을 해야하니 정상적인 식사를 거르는 것까지 포함하면 암 이전에 건강에 심각한 악영향을 주었을 식습관이다.
[7]
다만 모든
암이 생활 습관으로 인해 생기는 것은 아니며, 특히
백혈병의 경우는 생활습관과 큰 관련이 없지만 위암은 원인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것이 나쁜 생활습관, 특히 식습관이나 음식으로 유발되는 위장질환이다. 유채영은 말기암 환자였기 때문에 식습관을 개선했다한들 이미 회복하기엔 늦은 시기였음을 감안해야한다. 고인의 이미지를 위하는 마음으로 잘못된 정보를 퍼뜨리는 것은 지양하자.
[8]
그녀가 게스트로 출연 한 MBC every1 '네버 엔딩 쇼를 하라'에서 이 사실을 언급했으며,
김지훈은 이 프로그램의 고정 패널이었다.
관련 기사
[9]
신사동호랭이 작사 작곡