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쑹성 吳淞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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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 | 바둑기사 |
출생 |
1945년
4월 4일 중국 푸젠성 푸톈시 |
사망 |
2007년
12월 23일 (향년 62세) 호주 시드니 |
단급 | 九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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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중국의 바둑 기사. 천주더 九단에 이어 두 번째로 九단에 오른 중국 바둑계의 원로 기사이다. 1970년대 4인방들의 횡포에 중국 바둑계가 크게 고생하던 시절 덩샤오핑에게 비밀리에 탄원서를 전달해 바둑과 체육은 손대지 말라는 지시를 내리게 했다고 한다.2. 생애
1945년 중국 푸젠성 푸톈시에서 태어났다. 1985년 호주로 이민을 갔는데, 대외적으로는 중국의 바둑 해외 보급 정책의 일환이라고는 했지만, 중국 공산당과의 사이가 좋지 않은 것도 주요 이유가 되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호주에서 고생을 하다가 1988년 한국 바둑의 열기에 일환으로 다음 해인 1989년부터 한국으로 와서 한국기원 객원 기사로 활동했다. 이때 이름의 한자를 한국어로 그대로 읽은 '오송생'으로 활동하여 한국의 올드 바둑팬들에게는 그 이름으로 잘 알려져 있다.1996년 제1회 삼성화재배 세계바둑오픈 본선 1회전(32강전)에서 마샤오춘을 꺾는 이변을 일으키기도 했다.[1] 원로급의 기사이고, 느긋하게 바둑에 전념할 수 있는 환경이 아니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더욱 대단한 일이다.
아내와 이혼 후 21세 연하 여성 쑨위에홍(孙月红)[2]과 재혼했다.
1999년 2월 중순 한국기원 객원 기사 생활을 접고 중국으로 귀국해서 동북기패학교(东北棋牌学校) 부교장에 취임했고, 2000년에는 중국 위기 협회 양성 센터 사범을 맡았다.[3] 2007년 12월 23일 호주 시드니에서 뇌출혈로 사망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