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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24 23:52:38

우맹

사기(史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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優孟
생몰연대 미상

1. 개요

1. 개요

중국 춘추시대 초나라의 인물. 사기의 골계열전에 등장한다.

옛날 춘추시대에 초나라에는 우맹이라는 이가 있었는데, 그는 본디 노래부르는 사람으로 키는 8척에 언변이 좋은 것으로 유명했다.

초장왕때 일이다. 초장왕은 말을 몹시 아끼어 비단 옷을 입히고, 말을 위한 집을 짓고, 침대에서 쉬게 했다. 또한 말에게 매일 대추와 육포를 먹였는데, 이렇게 먹이니 말이 제대로 살 수가 있나. 얼마 지나지 않아 말은 지나치게 살이쪄서 병사했다. 아끼는 말이 병사하자 몹시 상심한 초장왕은 신하들에게 상복을 입으라 명하고, 말의 장례를 대부의 예로 장사지내겠다고 공표를 한다. 당연히 신하들은 말 따위가 사람과 같은 예로 장사지내진다는 것에 경악하여 들고 일어났고 초장왕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감히 말로 인해 간언하는 자가 있으면 목이 성치 못할 것이다."
이에 신하들은 겁을 집어먹고 초장왕에게 차마 간언하지 못했다. 이 소식을 들은 우맹은 궁궐로 가 크게 통곡을 하니 초장왕이 놀라 우맹에게 그리 서글피 우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묻자 우맹이 답하길.
"왕 께서는 평소에 말을 사랑하셨고, 초는 당당한 대국이니 어찌 이를 대부의 예로 장사지내지 못하겠습니까? 그런데 대부의 예로 지내는 장례는 너무나도 박합니다. 청컨데 군주의 예로 장례를 치르십시오."
"어떻게 치르라는 말인가?"
"원컨데 속널은 옥으로 조각하여 만들고, 가래나무에는 화려한 조각을 새기어 겉널을 만드십시오. 단풍나무, 녹나무, 느릅나무로 횡대를 만들고 군사들을 동원하여 묘혈을 파게 만드십시오. 그리고 노약한 이들을 불러 봉분을 쌓게 만드십시오. 그 후 제나라와 조나라의 사신들을 열을 지어 앞서게하고, 한나라와 위나라의 사신들은 그들의 뒤에 세워 호위하게 하십시오. 사당을 세워 태뢰[1]로서 제사를 지내게하고 만호의 읍에 봉하십시오. 이러면 사람들은 초나라의 왕은 사람보다 말을 귀하게 여긴다고 생각하지 않겠습니까?"
"과인의 잘못이 이렇게 크단 말인가! 그렇다면 어찌해야하는가?"
"청컨데 육축의 예로 장례를 지내시어, 부뚜막을 겉널로 삼고 구리솥을 속널로 삼아, 생강과 대추로 맛을 내고, 목란으로 비린내를 잡으시어 쌀을 넣어 제삿밥을 만들고 불로 수의를 입혀 사람들 내장에서 장사지내십시오."
이에 초장왕은 죽은 말고기를 요리해서 신하들과 맛나게 나눠먹었고, 사람들 입에 이 일이 함부로 오르내리지 못하게 하였다. 이렇듯 우맹이 현명하고 익살스런 사람임을 잘 알던 손숙오는 우맹을 잘 대해주었는데, 후일 그가 병에 걸려 세상을 떠날 날이 다가오자 아들을 불러 이렇게 말했다.
"내가 죽으면 필시 너는 가난해질터이니, 후일 우맹을 만나거든 단지 손숙오의 아들이라고만 말하여라."
그리고 손숙오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말대로 아들은 땔나무로 간신히 끼니나 잇는, 아니 입에 풀칠이나 하면 다행인 생활을 하게 되었다.[2] 그러던 그가 어느날 장에 땔나무를 팔러가던 때에 우연히 우맹과 마주치게 되었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시길, 선생을 만나거든 단지 손숙오의 아들이라고만 말하라 하셨습니다."
이 말을 들은 우맹은 아들에게 조금만 더 집을 떠나지말고 기다리라고 한 후에, 의관을 손숙오처럼 꾸미고 손숙오의 행동거지와 말투를 연습하길 일 년이 되자, 그 행동과 언행이 손숙오와 똑같아 초장왕과 측근들조차 속아넘어갈 수준까지 되었다. 그리고 장왕이 연회를 베풀자 우맹은 그 앞에 나아가 축수하니, 장왕의 측근들은 손숙오가 살아돌아온 것이라 여겨 놀라 자빠질 지경이었고 장왕은 손숙오가 우맹의 몸을 빌어 돌아온 것이라 여겨 우맹을 재상에 임명하려고 했다. 그러자 손숙오로 변장한 우맹이 말하길.
"청컨데 집에가서 부인에게 의견을 물어봐야겠습니다. 3일의 말미를 주시면 돌아와 재상의 자리에 앉겠습니다."
그리고 3일이 지나 돌아온 우맹에게 장왕이 물었다.
"부인이 뭐라고 말했는가?"
"부인이 삼가 재상자리를 하지 말라고 하며, '초나라의 재상 자리는 사람이 할 짓이 못됩니다. 손숙오와 같은 이가 초나라의 재상이 되어 청렴결백한 관리로 초왕을 패자의 자리에 오르게 하였으나,[3] 그의 아들은 송곳하나 꼿을 땅도 없어 땔나무를 팔아 끼니를 때우고 있습니다. 기어코 손숙오처럼 되신다면 내가 자살하고 말겠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고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불렀다.
산골에 살며 밭을 갈아도 끼니를 때우기는 힘들어
몸을 일으켜 벼슬아치가 되었으나 탐욕스럽고 비루한 자는 재물을 남기고
부끄러운 줄 모른다
몸은 죽어 집은 부유해지나 부정을 저질러 큰 죄를 범해 패가망신하는 일이다.
탐관오리들은 무슨 할 일이 있겠는가!
청백리가 되어 법을 받들고 맡은 바 직책에 충실하여 죽을 때까지 감히 부정을 행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청백리가 과연 무슨 일을 할 수 있겠는가!
초나라 재상 손숙오는 죽을 때까지 청렴했으나 이제 처자는 굶주려 땔나무를 팔며 끼니를 때운다.
청렴한 벼슬아치로 살아서 무엇하냐!

장왕은 노래를 들은 즉시 우맹에게 사과했고, 손숙오의 아들을 불러들여 땅[4] 을 내리고 손숙오의 제사를 받들게 했으니, 손숙오의 후사는 10대가 넘도록 끊기지 않았더라. 이는 우맹의 덕이 컸다.

여담으로 우맹의 행적이 기록된 사기의 골계열전에서는 그가 순우곤으로부터 100년 뒤의 사람이라 기록되어 있는데 정작 초장왕은 순우곤이 섬겼던 제위왕으로부터 수백년 전 사람이다. 또한 우맹이 제나라, 조나라, 위나라 한나라를 언급하는데 그런데 넷 다 한자로 초나라와 함께 전국시대에 전국칠웅이라 불린 국가들로 이중에서 조, 위, 한은 초장왕 시대에는 없던 나라다.


[1] 고대 중국에서 소, 돼지, 양 각 한 마리씩을 잡아 음식을 준비하여 손님을 접대하거나 제사를 모시는 것을 말한다. 제후들만이 행할 수 있는 주례 중의 하나다. [2] 실제로 손숙오는 재상으로 있었으면서도 워낙 청렴결백해서 재산이고 뭐고 없었다(...) 더군다나 손숙오는 가문의 자리를 능력을 보고 물려주었기에 사후 가문의 자리는 손숙오의 아들이 아니라 조카가 계승했다. 이러니 손숙오의 아들이 가난에 찌드는건 당연한 일 [3] 이는 사실으로 초장왕 자신부터가 "제환공에게 관중이 있었다면 내게는 손숙오가 있다." 라고 말하기도 했다. [4] 여기에도 몇가지 설이 더 붙는데 손숙오는 죽기전에 아들에게 만약 임금이 땅을 내리거든 척박한 땅을 달라고 하라고 유언을 남겼다. 그 말대로 손숙오의 아들은 아버지의 유언대로 척박한 영지를 받았고, 워낙 외지고 척박한 곳이라 다른 대부들 그 누구도 그 땅을 탐내지 않았고 손숙오의 아들은 그 땅을 부지런히 일궈 대대손손 먹고 살수 있는 기반을 마련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