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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청현 (연변 조선족 자치주) | ||
http://www.wangqing.gov.cn/
1. 개요
조선어: 왕청현외래어 표기법: 왕칭현
중국어 간체: 汪清县
중국어 정체: 汪淸縣
한어병음: Wāngqīng xiàn
중화인민공화국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의 현이다. 면적은 8,994 km², 인구는 25만여 명이고, 전체 인구 중 조선족 비율은 30%이다.
2. 역사
청나라 초기에 이 지역은 백두산으로 인한 봉금지대의 일부분이었다. 다만, 만주 팔기에 속한 쿠얄라부(庫雅拉部)의 뇨후트씨(鈕呼特氏)[1]가 이 지역에 살고 있었기에 이 지역을 그들의 세습좌령(世襲佐領)으로 삼았으며, 영고탑장군에 속하게 했다.그 뒤 1881년( 광서 7) 혼춘부도통(琿春副都統)의 관할 지역이 되었고, 1902년(광서 28)에는 연길청(延吉廳) 소속이 되었다가 얼마 뒤 연길부(延吉府) 소속이 되었다.
그러다가 1910년( 선통 2) 길림성 연길부와 혼춘청(琿春廳)의 일부 지역을 각각 쪼개어 왕청설치국(汪淸設治局)을 신설하였다. 이 시기, 서일 등 대종교 신자들이 이 지역으로 망명해와 항일비밀결사 중광단(重光團)을 설립하기도 했다. 신해혁명 직후인 1912년에는 왕청설치국이 승격되어 비로소 왕청현(汪淸縣)이 되었다.
1914년 6월, 왕청현은 길림성 연길도(延吉道)[2] 관할이 되었다가, 1929년 도제(道制)가 폐지되자 길림성 직할의 3등현(三等縣)이 되었다.
만주국이 수립된 뒤 1934년 12월 간도성(間島省)[3]에 편입되었다. 1939년에는 연길현 북부 지역의 일부가 왕청현 관내에 편입되었다. 1943년 10월 1일, 간도성, 목단강성(牡丹江省)[4], 동안성(東安省)[5]이 통합되어 동만총성(東滿總省)이 되었다. 1945년 5월 28일, 동만총성이 폐지되자, 다시 간도성에 속하게 되었다.
1945년 8월 일제의 패망으로 만주국이 멸망한 뒤 왕청현은 중화민국 국민정부에 의해 쑹장성(松江省)에 속하게 되었다. 1952년 9월 3일 연변 조선족 자치구[6]가 성립되자 이에 편입되었다.
3. 행정
3개의 가도와 8개의 진, 1개의 향이 위치해 있다.
가도(街道): 대천가도(大川街道), 신민가도(新民街道), 장영가도(长荣街道) 진(鎭): 왕청진(汪清镇), 대흥구진(大兴沟镇), 천교령진(天桥岭镇), 라자구진(罗子沟镇), 춘양진(春阳镇), 복흥진(复兴镇), 백초구진(百草沟镇), 동광진(东光镇) 향(鄕): 계관향(鸡冠乡) |
4. 관련 문서
[1]
신해혁명 이후 낭(郎)씨로 고쳤다.
[2]
도(道)는
북양정부 시기에 성 아래에 설치된, 현보다 상위의 행정구역 단위이다. 장기적으로는 성을 폐지하고 도를 최상위 행정구역으로 삼는 구상이 있었으나,
중화민국 국민정부 수립 후 이를 폐지하고 성정부가 현을 직할하는 체계로 수정하였다. 그러나 성 정부가 60~100개에 달하는 현을 관리하기 어렵다는 문제로 인해 1934년에 성정부의 출장소 성격인 행정독찰전원공서를 도입하였고, 이것이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후 전구 제도로, 다시 지구 제도로 개편된 것을 거쳐 현대의 지급행정구 체계로 이어진다.
[3]
지금의
지린성
연변 조선족 자치주
연길시가 성도였고,
훈춘시·
투먼시·
왕칭현·
허룽시·
안투현 등을 관할했다.
[4]
지금의
헤이룽장성
무단장시가 성도였고,
무단장시 닝안시(寧安市)·무링시(穆棱市)·둥닝시(東寧市) 등을 관할했다.
[5]
지금의
헤이룽장성
지시시 미산시(密山市)·후린시(虎林市),
솽야산시 라오허현(饒河縣)·바오칭현(寶淸縣) 등을 관할했다.
[6]
1955년 8월 30일 연변 조선족 자치주로 바뀌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