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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6 08:44:15

오와리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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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uby(尾, ruby=お)][ruby(張, ruby=わり)][ruby(国, ruby=のくに)]
尾張國 / 오와리국
파일:오와리국 지도.png
기본 정보
별칭 비슈([ruby(尾, ruby=び)][ruby(州, ruby=しゅう)])
소속 도카이도
현재 영역 아이치현 서부
국력 상국(上国)
행정구역 8군 69향
주요 시설
코후 미에현 이나자와시
코쿠분지 오와리 코쿠분지([ruby(尾張国分寺, ruby=おわりこくぶんじ)])
코쿠분니지 아이치현 이나자와시추정
이치노미야 마스미다 신사 ([ruby(真清田神社, ruby=ますみだじんじゃ)])
오미와 신사 ([ruby(大神神社, ruby=おおみわじんじゃ)])

1. 개요2. 역사3. 역대 번주 및 당주4. 현재 지명

[clearfix]

1. 개요

오와리국([ruby(尾張国, ruby=おわりのくに)], 구자체: [ruby(尾張國, ruby=をはりのくに)])은 도카이도에 속한 율령국이다. 7세기 무렵부터 이 지명이 기록된 내용이 발견되고 있다. 현재 아이치현 서부 일대에 해당하며, 나고야시 일대가 이 지역에 해당한다. 별칭은 비슈(尾州)이다.

2. 역사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 일본 센고쿠 시대의 쟁쟁한 인물이 여기 출신이다. 3개 하천 하류에 형성된 비옥한 노비(濃尾) 평야가 있어 수확량이 매우 높았고, 혼슈 동부에서 교토로 가는 길목이라 교통이 좋아 자연스레 상업이 발달하여, 다른 지방과 비교하면 꽤 살기 좋은 축에 속했다고 한다. 센고쿠시대 당시 농민봉기가 빈번하게 일어나던 우에스기 겐신 에치고국이나 다케다 신겐 카이국 오닌의 난 이후 쑥대밭이 되어버린 킨키 일대에 비하면 확실히 살기 좋은 땅이었다. 따라서 타 지방보다 먹고 살 만하니 악바리가 약해, 오와리 병사는 3명이 뭉쳐야 미카와국 병사 1명을 감당할 수 있다는 말이 있었다. [1] 여기에다 카이국[2] 병사는 미카와 병사보다 강하다는 속설도 생겨났다. 다케다가 오다와 교전 중에 쓴 것으로 추정되는 코요군감에도 오와리 병사는 약병(弱兵)이었으나 이마가와의 동국[3] 무사와 싸우면서 단련되었다고 서술한 부분이 있다. 오다의 병사가 약탈품을 둘러싸고 도쿠가와의 병사와 싸우다 수적으로 열세였던 도쿠가와의 병사에게 깨졌다는 기록이 있다는 걸 보면 그냥 낭설은 아닌 것 같다.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에도 막부가 세워지면서 오와리 일대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4남인 마츠다이라 타다요시의 차지가 되고 오와리는 본성의 이름을 따 키요스 번으로 개명한다. 그러나 1607년에 타다요시가 28세의 나이로 요절하면서 대가 끊기게 되자 당시 고슈 번주이자 이에야스의 9남인 요시나오가 오와리로 전봉되면서 오와리 번으로 다시 개명했다. 이 요시나오의 가계가 에도 막부의 고산케(御三家)중 필두인 오와리 도쿠가와 가로서, 이 시기 이후 본성이 키요스 성에서 나고야 성으로 바뀌며 이후 나고야가 일대의 중심지가 되는 계기가 되었다.

3. 역대 번주 및 당주

4. 현재 지명


[1] 정확히 따지면 미카와 동쪽의 산악지대 사람 이야기이다. 미카와 동부는 오와리와 달리 척박한 산지가 많았다. [2] 평야가 거의 없는 척박한 지형이라 다른 지방에선 보통 수확량의 6할을 세금으로 거둘 때, 카이는 5할만 거뒀는데도 불구하고 카이 영민들이 타지방 사람들보다 잘 먹고 잘살았다는 기록이 없다시피한 땅이었다. [3] 스루가국 [4] 혹은 도쿠가와 츠나나리라고도 함. [5] 최후의 오와리 번주. 마츠다이라 카타모리의 친형. [6] 여기서부턴 오와리 도쿠가와 후작가 당주. 도쿠가와 요시카츠의 서양자. [7] 마츠다이라 슌가쿠의 4남. 요시아키라의 서양자. [8] 이 대에 화족제 폐지로 후작 작위 상실. [9] 동명의 마지막 쇼군과는 이름만 같다. 이름 한자는 아예 다름. 요시토모의 서양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