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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소설 속 엑스트라의 주인공 김하진의 딸이자 '히로인 레이첼과의 사이에서 나온 소환수'이다.
첫 만남은 적으로 만나게 되었는데 김하진이 적의 계략을 방해 및 성장을 위해 유물을 선점하기 위해 절망의 마녀로 미리 찾아가며 만나게 된다.
2. 성격
매우 긍정적이고 선하며 작풍의 힐링과 행복을 주는 성격
3. 작중 행적
3.1. 원작 김하진의 본편행적 및 레이첼 외전 몽중화 이전
김하진과는 적으로 만나게 된다.김하진이 자신의 결의를 다지며 어두운 길도 망설이지 않을 것이라며
3.2. 레이첼 외전 몽중화에서
ㄷㄷ3.3. 웹툰 연재후 변경된 작중 모습
4. 능력
4.1. 재능
절망의 마녀의 능력을 그대로 이었지만 레이첼과 김하진의 영향으로 마녀보다는 정령사의 가깝게 능력을 구사한다.4.2. 체질
기본적으로 베이스가 식물이기 때문에 씨앗에서 시작한 뒤 레이첼의 피를 건내 받고 어린아이의 모습이 되었다.이론상 새싹상태로 작품이 진행되기 때문에 하진과 레이첼의 사랑을 받고 무럭무럭 자라면 식물이 되고 꽃처럼 아름답게 빛난 다음
열매가 맞지만.... 내용변경의 폐해로 모습이 나오지 않았기에 불명이다
4.3. 기예
웹툰에서 개그 및 작 중 가볍게 넘어가는 분위기지만 아동 방치, 및 학대라는 중범죄를 당하면서도 긍정적인 모습을 잃지 않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이는 웹툰이 아닌 원작 소설에서 보면 기예로 평가 되게 되는데
이는 논란 부분에서 후술
보인다. 하지만 이는 웹툰이 아닌 원작 소설에서 보면 기예로 평가 되게 되는데
이는 논란 부분에서 후술
4.4. 김하진
에반젤을 기르면서부터 육아에도 상당히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매일 아파트에 혼자, 나중엔 고양이랑 두고 다녀서 독자들 중 빨리 레이첼을 만나기를 바라는 이들이 있었지만 이제는 강남구의 고급 아파트에 살면서 자주 외출도 보내고 친구를 사귀어오는 걸 흐뭇하게 여긴다. 그런데 친구가 윤승아의 조카, 채나윤과 친한 윤승아에게 개인 정보(특히 딸이나 마찬가지인 에반젤의 존재)를 흘리는 것을 불안하게 여기는 독자들도 있다.
4.4.1. 에반젤의 친구
- 유령 늑대: 에반젤이 주인공 김하진을 위해 첫번째로 만든 권속이다. 주인공의 능력치를 상승시키기도 하지만 주인공이 위험할 때 뛰어나와 적으로부터 보호하는 능력도 있다. 위험을 느끼는 능력이 감각이 높고 섭취를 통해 본인의 능력을 강화하는게 가능하다. 하진의 비장의 수가 되어서 하진도 늑대의 강화를 위해 따로 훈련을 시키고 늑대용 갑옷을 발주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비원의 탑에서 스파르탄과 산누리가 새롭게 합류한 이후, 에반젤에게 돌아갔다.
- 유령 호랑이: 에반젤이 김하진을 위해 만든 소환수 이며 소환수들 중에서 유령늑대와 함께 가장 강력하다.
- 기타 무수히 많은 소환수들: 에반젤은 김하진을 위해 김하진이 가르치는 각종 동물들을 죄다 소환수로 만들고 있다.
4.5. 레이첼
에반젤의 엄마
5. 논란 비판 및 작품이 범죄자 옹호물로 변질된 이유
이 개인 문서가 쓰여지게 된 이유로 결과적으로 에반젤은 원작소설에서 가장 충격적인 엔딩이었던 김하진과 대장 이어주기에 가장 큰피해자가 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원래는 작중에서 언제나 보살펴주는 보호자와 언제나 힘들지 않게 위로해주며 사랑을 끊임없이 쏟아내는 딸이라는 나름 평범한 관계였었 김하진과 에반젤 둘의 관계가...
작 중 무리한 내용 비틀기로 단순 내용진행의 편의로 넘어갈 수 있었던 에반젤과 김하진이 가지는 관계성은 위색단 대장이라는 존재 하나때문에 졸지의 가정폭력범이자 파괴범과 그로 인해 평생 트라우마를 가지고 살아가는 피해자라는 충공깽의 모습으로 변모하게 되었다.
이는 결코 과장이나 음해가 아니며 원작 소설 작 중 그대로 드러나는 부분인데 이 결말로 인해 이전 까지의 모든 행적 자체가 논란 거리로 변모하며 결과 하나로 인해 원인과 과정의 끊없는 악순환을 낳게되는 일로 변모하게된다.
이유는 작중 중반까지는 김하진은 나름 에반젤을 챙기고, 레이첼과의 관계도 진전시키며 자연스럽게 에반젤을 소개시키려 하는등 싱글대디로써 부족하게나마 육아를 하며 큰 문제가 없었고 언제나 생명의 위기가 곁에 있었기에 에반젤과 같이다니거나 소개시키는 등의 여러모로 애로사항이 있었다. 나름데로 보호자로서의 의무를 저버리지 않은 상황이었으나...
하지만 갑자기 김하진이 위색단 대장에게 눈이 돌아가는 식의 연출을 하며 모든 일을 망치게 된다
여기서 작가는 갑자기 위색단 대장을 김하진의 메인히로인으로 밀어주기를 감행하는데 문제는 이 과정에서 에반젤에게 어떠한 설명도 없이김하진이 갑자기 대장에게 반하며 에반젤의 육아를 포기하게 되는 식의 연출이 일어난다.
그 후 원래까지 잘 만나고 있던 레이첼을 김하진의 갑작스러운 행보의 못 만나게 되자 평소 아무리 힘들어도 화 한 번 내지 않던 에반젤은 김하진에게 제발 레이첼을 만나게 해달라고 화내며 애원하게 된다.
하지만 이 애원을 김하진은 가차 없이 무시하는데 그 후 자신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이유로 바쁘다는며 에반젤을 방치시킨채 위색단 대장이랑 지 할 일 하러 떠나버린다.
그 후 김하진의 무시속에서 에반젤은 혼자 남게 되어버리자 김하진이라도 돌아오기를 기다렸지만 끝까지 믿고 기다린 끝에 에반젤에게 돌아오게 된 건 방치를 넘어서 유기나 다름없는 부모로서 자식에게 할 수 있는 최고의 학대였다.
대장에게 세뇌라도 당한 건지 김하진은 에반젤의 사정은 따지지 않고 유아상태나 다름 없는 에반젤을 자기 집에서 내 쫓고, 또다른 피해자이자 에반젤에겐 엄마라 할 수 있는 레이첼에게 보내게 되는데 그 후 자신의 소환수이자 그렇게 아끼던 모습은 온데간데 사라지고 위색단대장이랑만 다니며 김하진은 본편 완결 시점까지 에반젤이 처음부터 없었던 것처럼 어떠한 관심도 주지 않은 채, 위색단 대장과 결국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레이첼은 어린나이의 생이별을 겪은 에반젤을 불쌍히여겼고 버림받은 에반젤을 통보식으로 맞게 됨에도 사랑으로 키워 곁에서 지키게 된다.
결국 본편의 완결시점에서 김하진 시점으로는 어떠한 언급도 없는채로, 마지막에 마지막까지 아빠가 엄마 곁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며
김하진이 언젠가 레이첼을 돌아봐주기를... 그리고 자신을 다시 찾아주기를 바라며 어떠한 원망도 하지않은채, 절대로 돌아오지 않을 자신의 부모를 죽여놓고 자식과의 관계도 파탄내버린 여자랑 잘 먹고 잘 살 아빠를 생각하며 끝난다.
진짜 문제는 이게 정말 원작 소설 내용이라는 거다. 이 피폐물 작품 여주 배경으로 써도 될 사연으로 인해 4년전에 욕이란 욕은 다 먹고 작가도 자신이 잘 못 했다고 팬들에게 휘둘려 작품에게 못할짓을 한 짓에 대해 그러면 안됐다고 반성했고
외전에서나마 위색단 대장이라는 설정 자체를 없애버리며 무사히 마무리 짓는 듯했지만 그마저도 결국 포기를 못해 다시 등장시키거나 애매하게 끝냈으며 외전에서 에반젤이 바란 결말은 결국어떻게 마무리 된지 모를 열린결말이고, 결국 외전이기때문에 작 중 본편에서는 레이첼과 에반젤은 결국 사랑하는 이에게 상처+ 가족이 살아있는데 어린 나이에 자신의 잘못이 아닌 그저 어른의 사정으로 인해 부모 둘 중 한명과 생이별 이라는 막장 전개가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친딸은 아니지만 소년만화와 다름없는 장르의 소설에서 주인공이 저런 일을 한다는 것 부터가 주인공 자격 실격이고 작 중 인물들을 등장인물로 보더라 하더라도 싸패나 소시오패스나 다를 바 없느 행동이며 레이첼은 유일하게 김하진이 이성으로 본 사람 인 만큼 김하진을 인간혐오자 캐릭터 붕괴, 모든 악의 원인이자 작품을 망치게 해 버린 작품성을 훼손시킨 범죄자 미화물이나 다름없는 내용의 장본인으로 만들어버렸기 때문에 이런 내용이 진행되는 것 부터가 잘못되고 일어나면 안되는 일이다
결국 이 엔딩으로 인해 작 중 김하진이 에반젤에게 했던 모든행동들이 논란이 되게 되었는데
작 중 첫 만남은 비록 몬스터와 모험가의 관계로 만났고
비 선공이긴 하지만 몬스터 상태인 에반젤을 제압 후 만나게 되었기에 큰 문제가 안되었다.
가만히 있다면 사람을 공격하거나 원작처럼 악의 조직의 휘둘리기 때문이니 올바른 판단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 후 오랜시간 씨앗상태였기 때문에 피를 주기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고 보호하고 있었다는 상태가 정확하다 볼 수 있다.
그리고 직후 문제가 발생하게 된다.
에반젤은 작중 김하진이 위기에 빠진 레이첼을 구해주며 얻은 피로 개화 상태가 되어 살아 움직이게 되었고 레이첼을 위협하는 렝거스티를
김하진이 방해하며 다시만나 레이첼을 닮은 어린아이의 상태로 진화하게 된다.
즉 레이첼과 닮고, 레이첼의 영향을 받으며 자신을 키워주고 살 계기가 되어준 김하진을 아빠, 자신에게 피를 공급해주고 진화하게 해준 레이첼을 엄마라고 부르며 부모자식간의 유대감을 확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는데...
그런데 이 가족의 형성과정에서 레이첼은 어떠한 정보도 받지 못하고 김하진의 이윤추구적인 성향으로 인해 일방적으로 에반젤의 탄생의 기여를 하게 된다.
심지어 가장 큰 문제는 에반젤은 태어나자마자 이 일의 대한 설명을 하지않은 김하진으로 인해 붙어있고 싶은 엄마와 생후 몇분만에 생이별을 하게 된다.
물론 같은 학교를 다니는 만큼 여차하면 첫 변신때 썼던데로 씨앗형태의 모습으로 변한 것처럼 만나는 거야 다 시 만날 수 있지만 김하진은 중 후반까지 에반젤을 집에 방치시킨채 단 한 번도 레이첼을 만나게 해주지 않는다.
하지만 여기서는 나름대로 참작의 여지가 있는데 초반까지의 에반젤의 정체성은 소환수라는 부분이 유지되고 이는 충분한 유대과정을 거친 중후반에나 가서야 자식과 부모관계로 인정되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라고 볼 수 있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레이첼과 김하진이 매우 친밀한관계가 아니기때문에 오히려 에반젤의 꿈인 김하진과 레이첼이 한 가정을 이루게 되는데 차질이 생길 수 있으므로 여러모로 참작되었다.
그리고 초 중반인 큐브편을 다루는 웹툰에서 볼 수 있듯이 김하진은
나름 홀로 에반젤에게 사랑을 쏟으며 자신이 번 돈을 아끼지 않으며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새로운 친구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죄책감을 느껴서라도 해주는 등 점차 자식을 대하듯이 챙기는 모습을 보인다.
하지만 여기서도 문제가 되는데 작중 김하진은 학생신분이기 때문인지 레이첼을 기숙사에 방치시킨채 자신의 일을 보러나간다.
이는 분명한 아동 방치로 영유아에서 아동 수준으 지능을 가진 레이첼은 밤까지 김하진을 기다리고 문 앞에서 자거나 밤 늦게 돌아오는 김하진을 맞이하는등 애정결핍의 모습의 모습을 보인다.
심지어 밤에 자다가 김하진이 보고싶어서 찾아온 행동이 웹툰에서만 5번이 넘어가는등 애가 부모를 너무 좋아하는데 자주 만나지못해 체온을 그리워하는 모습을 분명하게 보인다.
그래도 나름데로 웹툰에서는 김하진이 에반젤을 잘 챙기며 품에서 떠나보내지 않고 언제나 자기전까지 바라봐주며 식사를 직접챙기고 열심히 노력하는 등 편의 주의로 넘어가는 원작과 달리 직접적으로 책임지려는 모습을 보인다
에반젤도 이에 따라 웹툰에서는 긍정적인 성향이 더욱 강해져서 인형들과 즐겁게 놀거나 혼자서도 잘 있는등 씩씩하게 나마 웃으면서 기다리고 버티는 모습을 자주 비친다.
하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닌 미봉책이며 이해대해 김하진은 어떠한 해결책을 제시하거나 하다못해 주말에 몰래 에반젤 데리고 나가서 놀아주거나 엄마를 몰래라도 만나게 하거나 보게 해주는 등에 필요한 행동은 하지않고, 그냥 유령 친구들이랑 놀라며 방치하는등 돈 많고 바쁜 아빠의 전형적인 모습을 보인다.
이는 작중 심화되는데 작중에서 김하진이 던전에 갇히거나 오랜시간 일을 비우는 일들이 생기게 되는데 직접적으로 에반젤을 데리고 다니는 일들을 제외하면 소환수만 빌리고 여전히 에반젤은 알아서 놀라며 방치시키는 이용할 거만 이용하며 나름 챙긴다는 식으로 점점 변화되는 식의 연출이 되는데 원작소설 중후반에 레이첼과 관계성을 심화시켰다면 해결 할 수 있는 문제였으나
결국 위에 위색단 대장이랑 맺어지면서 김하진은 주인공임에도 초반에는 방치 중반부터는 애를 도구취급 후반엔 일방적인 유기후 호적에서 제하는 모습을 보이며 어떠한 처벌도 받지않는 졸지의 악당이자 최종보스가 되어버렸다.
사실 에반젤이라는 캐릭터 자체가 작가가 작품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엿 볼 수 있느 캐릭터라고 볼 수 있다.
애초에 주인공은 작가의 대변인이고 작품의 지대한 영향을 끼치는 존재다 그렇기에 작 중 김하진이 에반젤의 대한 책임을 지지않으려는 모습을 통해 작품의 대한 작가의 생각을 엿 볼 수 있는데
비록 작품이 소설이지만 작품내에서 김하진과 에반젤 레이첼은 히로인과 히어로라는 캐릭터 이전에 부모와 자식이라는 가정으로 먼저 이어진 상태였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히로인과 다르게 관계의 책임이라는 또 하나의 역할이 부여되었고 어떠한 결과가 있더라 하더라도 이는 다른 히로인들과 차별화된 관계성이라고 볼 수 있다.
즉 김하진이 대장이나 채나윤, 유연하 등과 만나다가 헤어지게 되면 그건 어쩔 수 없는 선택이고 상처는 남겠지만 인간적인 자유의 대한 것이기 때문에 어떠한 물의나 책임을 지지 않는다 그냥 연인끼리 만나다 헤어진 것이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다.
하지만 에반젤은 자식이고 다른 누구도 아닌 김하진의 의도로인해 세상에 나오게 되었으며 오히려 레이첼은 연인보다는 피해자나 조력자의 가까운 관계다 물론 레이첼이 김하진을 좋아하게 되면서 정상참작이 되었지만 애초부터 김하진의 책임이 있기에 지고 숙이면서 들어가야 하는 관계인 부분이다.
물론 김하진은 작 중 다른 등장인물들을 소설속 캐릭터로 여긴다는 설정이 있지만 작 중에 이타적인 몇몇 행보를 본다면 이는 개연성에 맞지 않고 실제 김하진은 레이첼을 다른 등장인물과 다르게 여긴다는 공식설정이 있기에 이걸 근거로 따지는 건 작품성을 훼손시키고 설정을 붕괴시키는 자충수에 가까운 것이라는 거다.
즉 김하진은 모든 히로인들의 관계에서 우위를 가지지만 오직 레이첼과 에반젤에 대해서는 일방적으로 김하진의 행적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 때문에 이 관계성에는 책임이 있으며 그렇기때문에 다른 히로인고 다르게 레이첼과 이루어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은게 불쾌한 요소가 되어버린 것이다.
둘은 애초부터 연인이라는 관계이전에 모르는 사이에 에반젤이라는 가정으로 묶여버렸고 이는 연인이 헤어지게 된다고 해서 사라지지 않기때문에 가정의 구성원으로서 책임이 남게된다. 만약 둘이 헤어지게 된다면 상처받을 사람은 둘 중 한명이 아닌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해도 에반젤은 가장 크게 상처를 받을 것이기 때문에 못할짓이 되어 버린다.
이점이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가장 불쾌한 점이다애가 부모님 이랑 같이 살고 싶다는게 우리가 생각하는 보편적 정서이지 않은가.
당연히 꿈 꿀 수 있는 내용이고 당연히 그렇게 해야하며 거기에 대해 책임을 져야하는게 부모라는 존재이다. 레이첼은 실제로 피해자나 다름없음에도 이를 행했고, 김하진은 외전에서도 결말에 가서는 이를 끝까지 책임지지 않은채 레이첼에게 떠밀어버리는 행태를 하게된다.
연인이 아닌 부모로서 당연히 져야할 책임을 다하지 않은것이다.
이는 작품을 대하는 작가한테도 그대로 드러나는데 작품속 주인공은 작가에게 자식이나 다름없는 입장이다.
그러나 작가는 그때 당시 몇몇 목소리 큰 극성 독자의 말만 믿고 자신이 원래 그리려했던 책임질 수 있는 내용이 아닌 위색단 대장이라는 억지 설정을 독자에게 책임을 미루며 넣게 된다.
하지만 위색단 대장팬들은 결국 목소리만 컷을뿐 원하는 것을 어느정도 얻자 책임을 지지않고 곧 바로 떠나갔고 그들의 목적을 이뤄주고 남은 대가는 다른 모든 작품을 사랑하는 팬들의 원망이었다.
즉 독자와 주인공만 위색단대장에게 놀아난게 아니라 가장 중요한 작가 본인조차 위색단 대장이라는 캐릭터에 홀려 자신이 책임져야하는 작품 그 자체를 망쳐버린 것이다.
결국 김하진은 자신을 기다려주고 그리워하는 자식과 아내나 다름없는 사람을 책임지지 않고 도망친 희대에 쓰레기가 되어버렸고
작가는 위색단 대장 편한번 들어줬다가 작품의 개연성과 자신의 신념을 책임지지 않아 평생 먹을 욕이란 욕을 다 먹고 엄청난 고통의 시달려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1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많은 이들이 이 내용을 회자하고 있고 문서로 남길만큼 엔딩의 변경을 바라고 있다.
결과적으로 정리하면 김하진과 레이첼 그리고 에반젤은 작중 연출을 통해 연인이라는 관계성이 아닌 가정이라는 공동체적 관계성을 먼저 가지게 되었고 이는 다른 히로인들과는 다른 결정적 차이점이며 자유롭게 헤어질 수 있는 연인과 달리 자식을 책임져야하는 부모라는 입장에서 내용 진행이 원만히 이루어지지 않아 벌어지게 된 일이라고 볼 수 있다.
유아나 다름없는 어린 에반젤의 부모님랑 같이 살고싶다는 소원보다 성인이자 책임 져야할 나이인 김하진이 바라는 연인과 이루어져야하는 소원이 우선시 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웹툰에서는 원작과 달리 김하진이 에반젤을 매우 잘 돌보고 있고 나름대로 작품진행이 되면서 달라질 수 있을 거라는 희망때문에 기대가 되보는 부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