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의 해적기. 후에 새뮤얼 벨라미가 와이다호(Whydah)를 새 기함으로 삼을때도 같은 깃발을 사용하였고 후대에 만들어지는 졸리 로저들은 대부분 이 모양을 따르고 있다.
에드워드 잉글랜드(Edward England)
?~1720년
1. 소개
아일랜드 출신의 해적. 8백만 달러(2008년 기준)를 약탈하여 포브스 선정 해적 12위에 뽑혔다.2. 생애
일설에 따르면 아일랜드에서 에드워드 시거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고 전해지며 초기에는 자메이카에서 영국을 오가는 배 슬루프의 선원으로 일을 시작했으며 1717년에 해적인 크리스토퍼 윈터[1]에게 나포되어 해적이 되면서 이름을 에드워드 잉글랜드로 바꾸고 바하마 제도의 프로빙스로 간다.1718년에 우즈 로저가 뉴프로빙스의 해적을 소탕하자 그 곳을 탈출하고 소형의 슬루프를 타고 해적 선장으로 시작하며 대서양을 횡단하면서 배 몇 척을 나포하는데 아프리카의 해적 소굴인 마다가스카르의 요한나로 가서 기함과 몇 척의 작은 슬루프로 해적 선단을 만들어 자신의 요새를 만들었으며 자신이 나포한 대형 선박인 펄호를 무장하여 아프리카를 돌아다니며 배들을 약탈하였다.
이렇게 아프리카 및 인도양 항로에서 3년간 악명을 떨쳤지만 다른 해적들과는 다른 점도 있어서 정말 필요하지 않은 한은 절대 포로를 죽이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1720년 동인도회사의 상선인 카산드라를 나포하여 선장인 제임스 멕크레인과 일부 선원을 포로로 하고 7만 5천 파운드의 화물과 보석을 수확하고 자신의 부하들 중에 존 테일러라는 항해사를 중심으로 죽은 동료들에 대한 복수를 포로에게 하려고 하자 이를 풀어주었다.
하지만 이런 방침에 반발한 부하들이 존 테일러를 중심으로 하여 반란이 일어나 그에 대한 충성을 지킨 세 사람의 부하와 함께 모리셔스 섬에 버려졌고, 가까스로 탈출해 마다가스카르로 갔지만 거기서 구걸하다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