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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선수 경력/201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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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의지 선수 경력
두산 시절 전체 경력
2006년 2007년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1차 FA
2023년 2024년
NC 시절 전체 경력
2019년 2020년 2021년 2022년 2차 FA
국가대표 경력
2015 프리미어 12 2017 WBC 2018 아시안 게임 2019 프리미어 12 2020 올림픽 2023 WBC
아마추어 시절 경찰 야구단 시절


1. 시즌 전2. 페넌트레이스3. 총평4. 관련 문서

1. 시즌 전

본인의 첫 풀타임 시즌을 마친 후 스프링캠프에서 수비를 중점으로 연습했다.

2. 페넌트레이스

3. 총평

2011 시즌부터는 주전자리를 확실히 굳히면서 팀에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잡았다. 이는 2011년 상무에서 복귀한 김재환이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을 뿐만 아니라 부상때문에 2군에 내려가 있어서 그런 것도 있고 최승환 용덕한같은 백업포수들이 양의지의 기량에 못미치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그랬었을 수도 있다.[1] 하지만 그 해 2군에서 복귀하는 유망주 최재훈이 있었기 때문에 주전 경쟁을 피하기는 힘들었다.

가장 놀라운 기량 향상은 도루저지 부분. 지난 시즌 33개의 도루를 잡아 0.248의 도루저지율을 기록하였으나, 2011년에는 지난 시즌의 두배가 넘는 74개의 도루저지(리그 1위)를 기록하였으며, 도루저지율 역시 0.408(리그 2위)로 괄목할 성장을 보였다. 양의지는 풋워크가 빨라졌고, 공빼는 동작이 간결해졌고, 어깨 통증이 없어졌다는 것을 원인으로 꼽았다. 다만 포수로서 투수 리드나 블로킹은 당시 미숙한 부분이 많았다.

타격 면에서도 비록 홈런은 지난해에 비해 크게 줄어든 4개[2]를 쳤지만, 113개의 안타를 쳐서 3할 타율(0.301)을 기록하는 등 정교함은 향상되었다. 소포모어 징크스 등을 감안한다면, 타율 등에서 이러한 성적을 내는 것을 보면 무난히 해주는 편이었다.

군 문제도 없고, 나이도 어린 편이어서 부상이나 실은 2010~2011년이 내 평생의 커리어하이임ㅋ 같은 일이 생기지 않는다면, 장기간 두산의 안방마님 자리를 차지할 확률이 높아지게 되었다.[3]

4. 관련 문서



[1] 최승환과 용덕한 같은 경우에는 투수리드 나 수비면에서는 양의지보다 다소 앞서지만 공격력에서 상당히 아쉬운 모습을 보여줬다. [2] 2011 시즌 양의지의 홈런 기록은 6월 10일 잠실 SK전 만루홈런, 6월 17일 대전 한화전 투런홈런, 8월 2일 잠실 KIA전 솔로홈런, 8월 23일 문학 SK전 투런홈런. [3] 몇년 뒤 이런 일이 없고 큰 부상 없이 성실하게 훈련한 결과 대한민국 최고의 포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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