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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지하 정원의 주인공. 식물학자로서 자신의 삶을 망친 똬리나무를 추적한다. 밑에서 계속 서술하겠지만, 꿈도 희망도 없는 세계관 내에서 미쳐버리지 않은 게 신기할 정도로 가혹한 여정을 견딘 인물이다.2. 작중행적
1092년 4월 7일 비뫼시 빈민굴 북쪽 외곽에서 식량 폭동이 벌어지는데, 시 당국에선 이례적으로 신속하게 계엄령을 선포한 뒤 잔혹한 유혈진압을 단행한다. 나중에 밝혀지길 로벨토街의 지하철 공사 현장에서 똬리나무가 발견됐기 때문인바(20), 이 사건은 계엄군에게 아버지를 잃은 얀코가 똬리나무에 복수심을 갖는 계기가 된다.[1]
이후 고아가 된 얀코는 몬세라토 수도원 부속 고아원으로 보내진다(76). 이곳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죽을 뻔하지만, 운 좋게 만난 난쟁이 참토의 조력을 통해 무사히 생존한다.
1096년 7월 2일 골상학적인 이유 때문에 프님 남작에게 선택되어 하인학교로 선발되고(144), 이후 세금징수인 닷제의 아파트로 팔려 간다. 그러나 이는 하인 생활이 아니라, 자신과 비슷하게 생긴 닷제의 아들 비나드의 대역 노릇을 하기 위함으로 밝혀진다. 이후 대입시험을 제대로 못 치르는 비나드를 위해 대학 입학증을 따준다.
1101년 무정부주의자가 된 참토와 재회하고, 이후 도시를 떠받치고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똬리나무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듣는다. 황화수소 누출, 지반 침식으로 인한 건물 붕괴 등 일련의 사건들이 모두 똬리나무와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491. 비뫼시를 건립한 이들은 정치인이나 건축가가 아니라 이름 없는 인부들이었다. 수년 전 하수도관 공사에 참여했던 인부들이 알려주길, 로벨토가 밑에선 건물을 주저앉힐 만큼 심각한 지반 동공(洞空)을 발견한 적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지하수가 아니라면 애당초 석회암 지반이 용해되어 내려앉는 일 자체가 일어날 수 없었다. 참토는 짧게 말했다: 똬리나무. |
얀코는 고틀러테 사립대학 식물학과에 들어간 뒤 Q교수와 함께 똬리나무를 연구한다(502). 동시에 이 시기에 비나드와 연인 관계가 되지만, 무정부주의자들의 테러가 본격화된 납의 시대에 휩쓸리면서 비나드는 살해되고 만다. 이에 대한 자세한 과정은 비나드 문서 참조.
비나드의 죽음으로 얀코는 삶을 의미를 통째로 잃어버리는데, 이때부터 똬리나무에 대한 집착이 본격화된 것으로 묘사된다. 똬리나무가 아니었다면 식량 폭동이 그렇게 진압되지 않을 테고, 그렇다면 자신도 고아가 되지 않았을 거며, 그렇다면 자신을 만난 비나드가 죽임을 당하는 일도 없었을 거란 식의 논리가 작동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원흉이란 신앙”이란 자가 진단처럼 얀코 본인은 이런 논리의 억지성을 잘 알고 있었으며, 자살하지 않기 위해서 어쩔 수 없이 택한 믿음에 가까웠다(764). 실제로 여러 단장에서 복수의 허무함이나 기만을 언급하는 구절들이 반복해서 등장한다.
865. 복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음을 증명하는 느릿한 과정이다. 적어도 내겐 그러했다. 혹시 모를 요행들 때문에 삶을 끊어내지 못하는 수많은 세인처럼, 나도 복수가 새로운 의미를 가져다줄 것이라 믿었던 것이다. 게걸스레 매달렸으나 절박함이 옳음을 보증해주는 건 아니다. 고백컨대 이해할 수 없는 암흑에 닿기 전부터 어렴풋이 허무를 느끼고 있었다. |
이후 얀코는 Q교수의 도움을 받아서 남방한계선 극남식물연구소로 들어간다.[2] 그곳에서 똬리나무에 대한 정보들을 수집하다가 참토와 재회하게 된다.[3] 이때 참토는 복수의 무의미함을 얘기하지만 얀코는 애써 무시한다.
1107년 1월 21일 드디어 검은나무의 모체가 발굴되는데, 조사단은 거기서 단순한 원뿌리가 아니라 돌의 형상을 한 어떤 신비로운 에너지원, 즉 누앗실을 뽑아낸다(869).[4] 그러자 누앗실과 연결된 검은나무 군락 전체가 무너져내리면서 지진과 거대한 먼지구름이 피어오른다. 그런 뒤 트롤떼가 누앗실을 찾기 위해 극남식물연구소가 있는 8호 요새를 습격한다. 참고로 이후 이 사건은 검은숲 대지진이라고 불리며 단순한 지진 사고로 조작된다.
트롤떼의 습격에서 얀코과 참토는 가까스로 생존하며, 폐허가 된 극남식물연구소에서 암합성이나 식물 무기화 계획이 담긴 기밀 서류들과 함께 누앗실을 획득한다(528). 이때 얀코는 비뫼시 밑을 떠받치고 있는 존재인 똬리나무와 그것이 1094년부터 죽어가고 있음을 공식 확인한다(992).[5] 이때 이후 방향성에 대해 참토와 얀코는 서로 엇갈린다.
참토 : 이제 어쩌려고? 얀코 : 다시 비뫼시로 돌아가려고, 그 밑에 뭐가 있는지, 정말로 ‘그게’ 있는지 확인해야겠어. 참토 : 만일 그 나무가 있으면? 얀코 : 글쎄, 원흉이니……불태워야 할까? 참토 : 그런 뒤엔? 너한텐 뭐가 남는데? (996) |
여기서 얀코는 참토와 갈라서며 끝까지 똬리나무를 직접 보기 위해 누앗실을 갖고서 비뫼시로 향한다. 그러나 똬리나무 관련 연구시설이 있는 것으로 추측되는 로벨토역이 촘촘히 요새화된 관계로 진입엔 실패하고, 그대로 모든 게 좌절되는가 싶었지만, 천우신조로 때맞춰서 전쟁영웅 릿챠의 쿠데타가 벌어진다.
반란군은 테제라스 평원에서 의회파 군대를 격파한 뒤(590), 그대로 진격하여 1107년 7월 6일 비뫼시에 입성한다(596). 이때 의회파 잔당들이 요새화된 로벨토역에서 최후의 결전을 준비하는데, 무정부주의자들이 릿챠의 진영에 가담하며 로벨토역 지하에서 땅굴 폭발을 일으킨다(907). 얀코는 바로 이때 드러난 로벨토역 밑의 지하 비밀시설로 진입한다.[6]
929. 승강기 입구 옆엔 ‘제5구역’이란 간판이 달려 있었다. 그렇다면 몇 구역까지 있다는 것일까? 애석하게도 승강기의 전력이 차단된 상태인지라 확인할 길이 없었다. 그러나 승강기 옆으로 난 비상용 회전 계단이 있었다. 계단을 밝으려는 순간, 멀리서 무언가 찢기는 소리 같기도 하고 짐승의 울부짖음 같기도 한 거대한 괴성이 들려왔다. 나는 떨어진 권총을 챙겼다. |
얀코가 진입한 곳은 제5구역이란 곳이며, 거기서 유출되는 황화수소를 막기 위한 유리관으로 덮인 똬리나무의 가지와 죽은 과학자들을 발견한다. 참고로 이때 정체불명의 괴성을 듣지만, 이것의 정체는 끝까지 밝혀지지 않는 떡밥으로 남는다. 이후 얀코는 땅에 묻힌 똬리나무를 발굴하기 위한 갱도를 발견하게 되지만, 어떤 이유에서인지 모두 밑층으로 도망친 뒤인지라 텅 비어 있음을 확인한다. “그런데 연구자들은 왜 도망가려고 했을까?”(958)
여하간 얀코는 결국엔 제5구역의 광부들이 파낸 똬리나무의 단면과 마주한다.
966.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이해되질 않았다. 햇볕도 없는 지하 밑바닥에 넓은 잎사귀를 늘어뜨린 나무가 어떻게 존재하는 걸까? 얼핏 보기엔 목본류 같은 나무껍질을 두르고 있는 것 같았지만 한편으론 구근처럼 울퉁불퉁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게다가 근본적으로 다시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똬리나무는 도대체 무엇을 위해 이곳에 이토록 거대한 크기로 자라난 것인가? |
그러나 이 시점에서 얀코는 자신이 똬리나무에 대한 비밀을 파헤치기보다는 죽을 자리를 찾아온 것에 가까움을 인정한다(968). 문제는 이후 행적이 뚝뚝 끊어진다는 데에 있는데, 일단 황화수소 중독으로 의식이 끊긴 얀코는 누군가에 의해 가까스로 구출된다(827). 그리고 나울란 수용소에서 온 총영사의 편지에서 드러나듯, 비뫼시를 떠받치고 있는 똬리나무는 고사를 멈춘다. 누앗실의 용도가 “특정 개체의 수명을 눌리는 용도”라는 말이 옳다면, 죽어가던 똬리나무는 얀코가 가지고 온 누앗실을 이식해서 되살아났다고 볼 수 있다.[7] 하지만 이 대목에서 얀코가 누앗실을 이식한 것인지 아니면 그녀를 구출하러 온 제3자가 이식을 한 것인지는 명확히 서술되지 않는다.[8]
다시 깨어난 얀코는 붙잡혀서 포누그놈 감옥 심문실로 보내지지만(391), 여기서 만나 게티자는 자신이 Q교수와의 관계부터 롬보와의 접촉, 극남식물연구소의 비밀 문건, 그리고 참토와의 재회까지 모든 걸 물밑에서 파악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려주거나 넌지시 암시해준 뒤, 얀코를 무죄 방면해준다(762).[9]
이후로도 얀코는 로벨토 교차역에 진입하려고 시도하거나(고발장) 나울란 수용소에 갇힌 총영사와 접촉하는 등 똬리나무에 대한 비밀을 밝히기 위해 지속적으로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납의 시대에 벌어진 비나드의 죽음을 둘러싼 진상 파악을 위해서 발품을 팔기도 한다. 그렇게 십수 년이 흐른 뒤, 류머티즘과 뇌질환으로 죽어가면서 지금까지의 기록을 정리해보겠다고 나선 것이 『지하 정원』의 현시점, 즉 단장 1번이다.
마지막 단장 1000번에서 죽음을 암시하는 듯한 문구를 적은 뒤 사망한 것으로 보인다.
1000. 잠이 왔다. 가지런히, 죽어가고 있다. 임시방편, 그 수첩의 여백을 마저 채우고픈 강박증마저 손을 떠나려 한다. 나는 누앗실이 든 자루를 짊어지고서 홀로 걷다가 길을 잃었다. 어둠이 내려앉았지만 그렇다고 마냥 어둡다고만 하긴 힘든 밤, 그 밤공기에 휩싸여 한참을 헤맸다. 마침내 철로에 닿았지만, 따라갈 길은 보이되 정작 그 끝은 희미한 암흑 속에서 끊겨 있었다.[10] |
[1]
그렇지만 작중 얀코의 아버지 두코는 가혹한 현실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식량 폭동을 일종의 자살 방법으로서 택한 것으로 묘사된다. “내 아버지는 자살한 걸까?”(61)
[2]
그러나 이 시점에서 Q교수는 알도 게티자에 의해 감시당하던 상태였기 때문에 얀코의 존재 역시도 이미 파악된 상태였다(507). 이후 게티자는 롬보의 사례처럼 얀코를 불온 세력들을 파악하는 용도로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자기가 발각된 줄 모르는 간첩만큼이나 효과적인 것도 없지. 알아서 골칫거리들을 찾아주잖아?”(760)
[3]
이는 게티자의 계략으로 밝혀진다. 자세한 내용은
참토 문서 참조.
[4]
얀코는 이 이름을 코포가 들려준 전설에서 빌려왔다. 그러나 총영사의 편지에서 밝혀지듯 똬리나무 같은 종은 단일종이 아니며, 미지의 에너지원을 가리키는 이름 역시도 저마다 다른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총영사는 이를 ‘대지석’이라고 명명한다.
[5]
공공 임대주택 연쇄 붕괴를 고발한 베저타인 포스트의 기사에서 드러나듯, 가시적인 붕괴는 1106년 여름부터 진행된 것으로 보인다.
[6]
이 대목에서 땅굴 폭발에 대한 자세한 정보를 준 건 그고 대위이다. “잘 들어. 로벨토가 72번지로 가. 내일, 거기에 있는 주류창고에, 그 나무로 가는 길이 날 거야. 고블린 가롬이 운영하는 곳이야……분명, 분명 틈이 있을 거야, 놓치지 마.”(399) 그러나 그고가 어떤 경위로 얀코를 찾아오게 된 것인지의 과정은 소설 내에 서술되지 않는다. 그고 대위의 자세한 행적은
지하 정원 2.2.조역 문서 참조.
[7]
비밀시설로 진압하면서 “메고 온 가방이 무사한지 확인하고서”(917)라는 구절이 있는 것으로 미뤄 보아 누앗실을 가지고 온 것으로 보인다.
[8]
얀코 본인이 직접 이식했다는 고백이 없는 것으로 보아선 후자의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9]
얀코의 안전은 참토와 게티자가 맺은 협상의 조건이었을 심산이 크다. 자세한 내용은
참토 문서 참조.
[10]
마지막 문장은 얀코의 심리를 적나라케 보여주는 건지도 모른다. “따라갈 길”(=똬리나무를 향한 복수의 길)은 명확히 보이지만, 그런다고 하여 죽은 비나드가 살아 돌아오는 건 아니라는 점에서 그 결말은 “희미한 암흑 속에서 끊겨”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서 이는 얀코가 번호를 붙이고서 정리한 메모 꾸러미의 마지막이 비나드의 편지라는 점에서 더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