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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2-26 22:06:18

야마사키 오사무

1. 개요2. 경력3. 특징4. 인맥5. 작품
5.1. 감독5.2. 참여작

1. 개요

山崎理(やまさき おさむ) #트위터
일본의 애니메이터, 애니메이션 감독, 애니메이션 프로듀서. 1962년 2월 19일 생. ([age(1962-02-19)]세) 구마모토현 출신. 본명은 山崎 理이지만 자신의 이름을 인터넷에 검색하면 다른 사람이 많이 뜬다며 ヤマサキオサム 표기를 주로 쓴다.

대표작은 박앵귀 시리즈 정령환상기다.

아내는 성우 코모리 마나미.[1]

2. 경력

정치인, 의사, 교사, 학자를 연이어 배출한 명문가 출신. 다만 엘리트의 인생이 싫어서 고등학교 졸업 후 대학 진학할 생각을 안 했고 학교도 공업 고등학교였다고 한다. 고등학교 선배 와타나베 히로시의 권유로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알게 되었으며 와타나베가 간단하게 애니메이터가 되는 것을 보고 "그럼 나 정도면 바로 되지 않을까." 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진로를 정했다고 한다.

와타나베 히로시와 코지나 히로시의 소개로 아시다 토요오를 알게되었다. 애니메이터는 별 거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아시다 토요오는 이런 그림으론 애니메이터 못한다고 혼쭐을 내었다고 한다. 그 말에 좌절했는데 또 그래도 해보고 싶어져서 수행했다고 한다. 아시다 토요오와 지속적으로 교류를 가지며 작화와 연출, 올바른 정신을 배웠다며 아시다 토요오를 자신의 스승으로 꼽는다. 다만 아시다의 회사 '스튜디오 라이브'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이유는 불명.

대신 카게야마 시게노리의 작화 스튜디오 '카나메 프로덕션'에 들어갔다. 여기서 주로 유야마 쿠니히코 감독 작품에 참가하며 연출을 배웠다고 하며 유야마를 또 다른 스승으로 거론한다. # 카나메 프로덕션은 굉장한 천재만 모여있던 곳이라[2] 자신의 작품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시대극과 여성향 작품 연출에서 특히 재능을 발휘하는 인물. 1987년 시대극 작품 전국기담 요도전 으로 감독에 데뷔했다. 당시는 SF 애니메이션 붐이라 주변에선 시대극 애니메이션을 하면 망할 것이라고 했는데 이 작품으로 여성 팬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미형 시대극 애니메이션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박앵귀 시리즈도 여성 팬들에게 열광적인 지지를 얻으며 11년 이상 시리즈가 이어지고 있다.

아시다 토요오와 뜻을 같이해서 아시다가 애니메이터 권위 향상을 위해 설립한 단체 JAniCA를 아시다의 사후 이어받았다.[3] 가난한 애니메이터를 돕고 애니메이터들의 위상을 높이기 위한 협회 활동을 하고 있으며 제자를 키우는 강사 활동도 많이 해서 연출 작품은 많지 않다. 야마사키는 애니메이션 업계에는 생각보다 많은 돈이 돌고 있으며, 감독, 각본, 연출, 음향, 촬영엔 상당한 임금을 지불하면서 애니메이터에게만 돈을 주지 않는 이상한 구조가 정착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3. 특징

박앵귀 시리즈 같은 시대극 작품이 대표작이지만 만능 연출가라 현대물이나 메카물도 연출할 수 있다. 레이아웃과 성우 연기를 중시한다고 하며 음향과 성우에 신경을 많이 쓰는 감독이다.

명문가 출신이라 그런지 예절 바르고 기품있는 귀족, 엘리트 캐릭터의 묘사, 연출에 특히 강점을 보인다. 시대극의 검술 액션을 제대로 연출하고자 검도를 배웠으며 꾸준히 수행한다고 한다.

애니메이터 권위 향상 활동을 하고 있기도 해서 애니메이터를 잘 챙기는 감독이라고 한다. 스즈키 슌지 말로는 야마사키 오사무가 감독을 하면 스태프에게 수상할 정도로 돈을 많이 챙겨줘서 처음 같이 일하는 사람들은 굉장히 놀란다고 한다. 다만 그렇다고 해서 야마사키 작품의 작화 퀄이 크게 늘어나진 않는다는 것이 애니메이션 업계의 씁쓸한 점.[4] 일반적으로 한국에선 돈 많이 들이면 작화가 좋아진다고 생각하지만 애니메이터에게 돈 많이 준다고 애니메이터가 특별히 잘그려준다는 보장은 없어서 꼭 그렇게 되는 건 아니다. 야마사키 오사무는 오직 선의로 이러고 있는 것이다. JAniCA를 좋게 보지 않는 업계인도 많아 그의 작품에 참가하지 않는 사람도 꽤 있다고 한다.[5] 야마사키 작품은 작화에 편차가 있으므로 연출을 중심으로 보는 것이 좋다. 물론 애니메이터를 잘 챙기는 게 아주 의미가 없는 건 아니라 작화가 좋은 작품은 좋다.

시대극을 중심으로 작품 활동을 하기 때문에 야마사키 오사무의 작품은 왜색이 강하며 왜색에 거부감이 강한 한국에서는 그의 작품은 수입도 잘 되지 않았고 별로 인기를 끌지 못했다. 반면 일본과 중국[6]에선 의외로 팬이 꽤 많으며 2020년대 들어선 중국에서 스폰서를 받으며 작품을 만들고 있다.

4. 인맥

같이 작업하는 애니메이터는 오오바리 마사미[7], 오오누키 켄이치, 사노 히로토시[8], 니시이 마사노리(西井正典)가 있다. 친한 연출가로는 타니구치 고로 야마사키 미츠에[9]가 있으며, 타니구치는 야마사키 오사무의 연출력을 칭찬하기도 했다.

자신을 애니메이션 업계로 끌어들인 학교 선배 와타나베 히로시하곤 여전히 연락 중이라고 한다. 다만 같이 만든 작품은 많지 않다.

5. 작품

5.1. 감독

5.2. 참여작



[1] 코모리 마나미도 명문가 출신이다. [2] 다만 개성과 자기 주장 강한 사람들을 너무 많이 모아놓은 탓에 빨리 망했다고. [3] 2016년부터는 이리에 야스히로가 이어받았다. [4] 애니메이션 업계가 일반적인 회사 윤리를 적용하기 힘든 주된 이유이기도 하다. 자세한 것은 애니메이터 문서 참고. [5] 애니메이터의 임금 인상을 요구하는 단체이므로 제작측 입장에선 곱게 보지 않으며 애니메이터들도 눈치를 보는 것이다. [6] 중국은 한국과 달리 의외로 왜색을 문제시하거나 거부감을 가지지 않는 나라이다. 그래서 전국기담 요도전, 박앵귀 같은 작품도 인기가 있다. [7] 야마사키 오사무는 신인 시절 오오바리를 처음 봤을 때 "이 녀석 그림 잘 못 그리네." 라고 생각했는데 다른 선배의 작화를 따라하면서 몇 달 만에 순식간에 실력이 늘어 기억에 남는다고 한다. # [8] 개인적으로 친하다고 하며 사노의 그림이 너무나도 멋져 따라 그리려고 노력했지만 불가능했다고 한다. 그걸 바로 따라한 오오바리는 천재라고. [9] 성이 같은데 같은 집안인지는 불명이다. 자녀는 아닌 걸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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