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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ré Coelho Matos 앙드레 코엘료 마토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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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생 | 브라질 , 상파울루, 1971년 9월 14일 |
사망 | 2019년 6월 8일 (향년 47세) |
장르 | 파워 메탈, 네오 클래시컬 메탈, 프로그레시브 메탈 |
활동 기간 | 1985년 ~ 2019년 |
활동 밴드 | Viper(1985년 ~ 1989년, 2012년 ~ 2016년) |
앙그라(1991년 ~ 2000년) | |
Shaman(2000년 ~ 2006년, 2018년 ~ 2019년) | |
Synfonia(2010년 ~ 2011년) | |
포지션 | 보컬, 키보드, 피아노 |
1. 개요
브라질 출신의 헤비메탈 보컬리스트.브라질 상파울로 출신인 그는 10대 때부터 친구들과 음악을 들으며 밴드를 꿈꿔왔다. 이후 1985년 바이퍼를 만들고 공연을 시작했는데 그때가 13세였다고 한다. 앙드레 마토스는 이후 피아노와 키보드를 사용하며 공부와 작곡을 공부했고 특히 클래식에 심취하여 밴드 음악에 접목시키고자 노력했다.
바이퍼는 이후 독일에서 불어친 헬로윈의 영향을 받아 1집 "Soldiers of Sunrise" 1987년 발매하였으나 개성이 두드러지지 않은 앨범이라 큰 주목은 받지 못하였다. 하지만 클래식을 접목한 독특한 어프로치가 담긴 2집 "Theatre of Fate"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성을 내 보였으며 특히 일본에서 큰 사랑을 받았다. 앙드레 마토스의 미성[1]이 널리 알려지기 시작한 것도 이 앨범을 통해서였다. 하지만 클래식 공부에 더 몰두하고 싶었던 앙드레는 밴드를 탈퇴하여 음악공부에 몰두 하였고 1991년 밴드 앙그라를 조직해 화려한 복귀를 꿈꾼다.
앙그라의 1집 "Angels Cry"는 1993년도에 발매가 되었고 유럽과 특히 일본에서 성공을 거두게 된다. 당시 일본에서만 10만 장 이상의 판매고를 올려 골드 레코드로 등록되었으며 특히 클래식을 상당히 차용한 이 앨범의 발표로 헬로윈의 뒤를 잇는 신진 밴드 중 최고의 기량을 가진 밴드로 불리며 주목을 받았다. 1996년 발표된 앨범 "Holy Land"에서는 더 나아가 클래식 바탕에 브라질의 토속적인 분위기를 더하려 노력하며 역시 이 계열 팬들에게 큰 사랑을 받았다. 동연 EP "Freedom Call"에서는 2집의 연장선상의 곡들과 함께 Painkiller를 리메이크하여 주목받았다.[2] 1998년 3집 "Fireworks"에서는 프로그레시브적 요소도 많이 가미하려 하였고 평단에서 헬로윈의 그늘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정체성을 잘 살린 밴드로 많은 지지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2001년 밴드주도권 및 음악적 견해 차이로 자신이 만든 밴드를 탈퇴하고, 이 때 앙그라의 드러머 히카르두 콘페소리와 베이시스트 루이스 마리우티를 함께 데리고 나가 Shaman이라는 별도의 밴드를 조직한다.[3][4]
2001년-2002년 에는 독일의 차세대 뮤지션 토비아스 사멧의 아반타시아에 가담하여 최초 2장의 앨범 "Avantasia – (The Metal Opera) Parts I & II"에 참여를 하였고 이후 2010-2011년에 "The Wicked Symphony"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앙그라 탈퇴 후 2001년 샤먼을 조직하여 2장의 앨범을 발매하였는데 특히 2002년 발매된 1집 "Ritual"을 발매하고 20만 장 이상의 판매고와 150여회의 투어를 하는 등 성공적인 복귀를 하게된다. 이때쯤에 같이 음악을 작업했던 샤샤 패스의 조언으로 중음역대가 강조된 스타일로 보컬 방식을 바꾸게 된다.
Shaman 결성도 그렇게 쉬운 결정은 아니었다. 앙그라에서 10년 가까이 활동하면서 자신의 이름과 명성을 떨쳤지만 앙그라라는 기반이 다져질대로 다져진 밴드를 떠나 새로 시작하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심지어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진데다가 지난 10년 가까이 계속된 공연일정으로 혹사된 바람에 보컬리스트로서 전성기가 슬슬 끝날 때쯤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같이 탈되한 멤버들과 같이 새 밴드를 꾸렸다.
Shaman의 성공으로 승승장구하나 했더니 이번엔 밴드 명의를 가지고 있던 드러머인 히카르두 콘페소리와 금전적인 문제로 다투게 되면서 히카르두를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을 이끌고 다시 탈되를 하게 된다. 그 이후 앙그라 시절 때부터 자신과 같이 해줬던 루이스 마루이티와 그의 동생이자 기타리스트인 휴고 마루이티는 개인 활동을 하면서 결별을 하게 된다.
밴드 활동에 염증을 느꼈는지 아에 솔로 앨범으로 황동 재개를 하였고 2011년에는 이 계열 수퍼밴드 프로젝트 심포니아에서 티모 코티펠토, 헬로윈, 마스터 플랜 출신의 드러머 울리 쿠쉬 등과 함께 앨범을 발매하기도 한다.
2007년 잠시 자신의 뿌리였던 바이퍼 앨범 "All My Life"에서 1곡에 피쳐링을 하는 등 친밀도를 높이더니 2012년 4월에는 바이퍼 결성 25주년 기념을 맞이하여 잠시 보컬로 투어를 감행하였다. 특히 자신의 솔로밴드와 바이퍼는 세계에서 가장 큰 락 페스티벌 중 하나인 락 인 리오에서 헬로윈과 아이언 메이든의 스페셜 오프닝을 담당하며 다시금 팬들 앞에서 그들의 1집, 2집 수록곡들을 연주하기도 하였다.
바이퍼, 앙그라, 그리고 샤먼 같은 브라질 대표 밴드를 창설하였지만, 정작 그는 여러 이유로 밴드에 오래 있지 못하였고 자신이 만든 밴드를 떠나는 수모를 겪었다. 오히려 그가 떠난 밴드들은 그가 없어도 꾸준히 잘 활동중이다. 이러한 연속된 경험 때문인지 샤먼을 마지막으로 별도의 밴드는 안 만들었고 개인 솔로 활동으로 이어지게 만들었다. 하지만 마약 복용으로 인한 성량 저하와 모든 역량을 과거 밴드에서 다 쏟아부었는지 솔로 앨범의 평가는 밴드 시절 때 만큼은 좋지 않았다.
2012년 브라질판 Rolling Stones에서 "List of 100 Greatest Voices of Brazilian Music(브라질 음악의 가장 위대한 목소리 100선)에서 77위에 랭크되었다.
2019년 6월 8일,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인해 향년 47세로 세상을 떠나서 많은 메탈 팬들을 안타깝게 하였다. 아반타지아 브라질 투어에서 게스트 보컬로 6월 2일에 활동한 것이 그의 마지막 공식적인 활동이 되었다. 공연장에서 건강한 모습으로 노래했던 걸로 보아 정말 갑작스러운 죽음인 듯. 브라질 국영방송에서 특집 형태로 그의 죽음을 알렸다. 그리고 한 때의 동료였던 키코 루레이로가 그에 대해 회상하는 내용이 영상으로 올라왔다. 이후 브라질에서 6월 8일을 헤비메탈의 날(dia do heavy metal)로 정해 그를 기리는 기일로 삼는 법안이 통과되었다.
2. 디스코그라피
Viper- Soldiers of Sunrise – 1987
- Theatre of Fate – 1989
Angra
- Angels Cry – 1993
- Holy Land – 1996
- Freedom Call (EP) – 1996
- Fireworks – 1998
Shaman
- Ritual – 2002
- Reason – 2005[5]
Symfonia
- In Paradisum – 2011
솔로 앨범
- Time to Be Free – 2007
- Mentalize – 2009
- The Turn of the Lights – 2012
- Moonlight: The Best of Andre Matos
- "Life Goes On" (싱글) – 2020(사후에 발매)
3. 여담
- 시력이 안 좋지만 브루스 디킨슨처럼 활발하게 공연해서 기타리스트와 베이시스트가 고생이 많은 타입이라고 한다.
- 브라질의 메탈 뮤지션 중 손에 꼽히는 인재지만 정작 본토 팬들에게는 평가가 앙그라 2대 보컬 에두 팔라시보다 박한 편인데, 에두는 적어도 앙그라 탈퇴 이후로 목관리를 잘한 편에 속했는데 앙드레는 코카인을 빤 뒤로 목이 맛이 가서라고(...). 코카인의 부작용 중 심장에 무리를 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심장마비의 원인 중 가장 큰 것이 아니었냐는 추측이 있다.
- 평소 모습은 단정한 편인데 2005년 자기 고향 브라질에서 수염을 기르고 롭 핼포드 복장을 입었을 때는 완전 브라질 마피아 갱 포스를 보여주는 충격과 공포를 보여주었다(...). 말이 필요없이 직접 보면 안다(...). #
- 일본 록밴드 Unlucky Morpheus가 2020년 앨범 Unfinished에 앙드레를 추모하는 곡인 Carry on singing to the sky를 수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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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드의 방향성을 두고 키코/하파엘과 다투고서 앙그라를 탈퇴한 뒤 자기 없는 앙그라는 수준 떨어지는 허접 밴드이며 해체해야 한다고 언플을 하고 다녔다. 앙그라에 에두가 들어온 뒤 오히려 전성기를 맞으면서 그냥 언플에 불과한 것처럼 보였으나, 2010년대 이후 앙그라의 부진과, 최근 2기 드러머 아킬레스에 의해 하파엘과 키코의 집단따돌림 문제를 포함한 앙그라 밴드 내부의 치부와 불화가 드러나면서 그의 선견지명이 옳았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이후 앙그라의 전권을 집단따돌림과 언론플레이로 장악한 하파엘 사단이 추하게 과거의 영광으로 얻은 돈과 명성을 방만한 적자 운영이 의심되는 수준으로
시궁창에 버려버리는 걸 보면 갑작스러운 사망이 아니었더라면 최악의 경우 소송전까지 일어났을 가능성이 높다.
[1]
미성이 주로 알려졌다고는 하지만
주다스 프리스트 커버를 보면 탁성도 자유자재로 낼 줄 아는 재능 넘치는 보컬리스트였다.
[2]
이곡은 A Tribute to Judas Priest: Legends of Metal Vol. II 앨범에
헬로윈,
감마레이,
레이지,
테스타먼트 등의 밴드들과 함께 실리게 된다.
[3]
이 때 앙그라에 남은 키코와 하파엘과는 서로 안 좋은 감정이 오래 남았는지,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앙드레는 자신이 없는 앙그라는 수준 떨어지므로 활동해서는 안 되고 해체해야 된다고까지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20여 년이 지난 후 올드 멤버들이 다시 공연을 하는 방향으로 매니저들끼리는 이야기가 오가면서 화해 분위기가 조성되나 했더니, 앙드레의 갑작스런 사망으로 무산되었다.
[4]
하지만 2017년 하파엘이 앙그라 명의를 쓰지 말라고 2대 보컬 에두 팔라시에게 일방적으로 법적 조치 통보를 날리는 바람에, 그 과정에서 에두가 자기 전성기 당시 소속사가 금전 관리와 일정 관리를 막장으로 해서 자신의 목이 상하는 데에 일조했다고 구체적으로 폭로하는 바람에, 앙드레도 똑같은 문제를 겪고 실망해서 나간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제기되었다. 이는 당사자가 에두와 하파엘의 법적 분쟁에 인터뷰를 하지 않고 심장마비로 사망하였으니 증언을 들을 수 없게 되었기에 추측으로만 남았다. 에두의 증언이 사실이라면 매니저들끼리 자기들이 보조하는 멤버들을 화해시키려고 노력해도 소속사의 막장 금전 관리와 혹사를 강요하는 일정 계획에 질린 것이기에 설사 앙드레가 살아 있어도 온전한 화해가 불가능했을 가능성이 높다.
[5]
동명의 밴드와 법적 문제로 Shaaman 이름으로 발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