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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08:53:37

SECI 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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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설명
2.1. 폴라니의 지식 이론
2.1.1. 노하우로서의 암묵적 지식2.1.2. 과학의 암묵적 측면
2.2. 노나카의 SECI 모델
3. 관련 문서

1. 개요

SECI model

한 조직 내의 지식이 명시적(explicit)인 측면과 암묵적(tacit; implicit)인 측면을 순환한다는 이론으로, 지식순환 이론으로 불리기도 한다. 일본 경영학자 노나카 이쿠지로(野中郁次郎)가 자신의 저서 《지식창조기업》(知識創造企業)을 통해서 창안하였으며, 국내에도 《노나카의 지식경영》 이라는 제하에 번역되어 소개되었다.

SECI 모델은 과학철학자 마이클 폴라니(M.Polanyi)의 암묵적 지식(tacit knowledge)에 대한 논의를 기초로 하고 있다. 폴라니의 철학적 기초 위에 이론이 세워지자 노나카는 대번에 전세계 경영학계의 구루가 되었으며, 1990년대에서 2000년대에 이르기까지 경영정보학 분야에서는 지식경영(knowledge management)이라는 화두가 하나의 슬로건이 되어 휘몰아쳤을 정도였다.

2. 설명

2.1. 폴라니의 지식 이론

2.1.1. 노하우로서의 암묵적 지식

마이클 폴라니의 여러 학문적 업적들 중 하나는 인간의 지식이 무엇인지 그 범주를 새롭게 밝혔다는 데 있다. 폴라니는 "우리는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고 말한다. 흔히 사람들은 자신이 '안다' 고 생각하는 것들이 자기 지식의 전부라고 믿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지식은 명시화될 수 있어서 우리가 '안다' 고 말할 수 있는 것만 존재하지는 않으며, 알고 있음에도 어떻게 그것을 알고 있는지 말로써 설명할 수 없는 지식도 존재한다. 물론 이런 종류의 지식에도 주의를 기울이면 명시화 가능해지기는 하지만, 이는 지적인 노력을 쏟아서 의미에 이름을 붙이는 과정이 전제되어야 한다.

폴라니는 이와 같은 종류의 지식을 암묵적(tacit)인 종류로 분류하였는데, 그의 구분법은 길버트 라일(G.Ryle)이 말했던 "Knowing-what" 과 "Knowing-how" 의 구분법과도 대응되는 것이다. 인간은 보통 명시적인 쪽의 지식에 주의와 관심을 기울이는데, 이 경우 암묵적인 쪽의 지식에는 어렴풋이 파악할 뿐이며 자신이 그것을 파악하고 있다는 것조차 알기 어렵다. 비유하자면 어딘가에 초점을 맞추었을 때 그 주변의 다른 대상들은 주변시에 들어와 있음에도 잘 느껴지지 않는 것과도 같다. 폴라니는 주의가 맞춰지는 지식을 근위항(proximal term, 近位項), 주의에서 벗어난 지식을 원위항(distal term, 遠位項)이라고 표현했는데, 실제로 이것은 생리학 및 해부학에서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

폴라니는 암묵적 지식에 네 가지 측면(aspect)들이 존재한다고 하였다. 첫째 측면은 기능적 측면(functional aspect)이다. 이것은 사람들이 총체적이고 높은 수준의 지식에만 주의를 기울이며 세부적이고 근원적인 측면에는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 것과 관계가 있다. 둘째 측면은 현상적 측면(phenomenal aspect)이다. 이것은 세부적이고 근원적인 어떤 지식이 우연히 외견상 드러나면 갑자기 그것에 주의가 쏠리게 되어서 비로소 그 암묵적인 무언가를 깨닫는 것을 말한다. 셋째 측면은 의미론적 측면(semantic aspect)이다. 원위항에 속하는 암묵적 지식에도 마치 근위항에 하듯이 주의를 기울이면 그것이 자신에게 의미 있는 지식으로 자리잡게 된다는 것이다. 마지막 넷째 측면은 존재론적 측면(ontological aspect)인데, 이것은 암묵적 지식이라 할지라도 근위항에 의해 구체화되고 특정화되어 드러날 수 있음을 말한다.

암묵적 지식은 인간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경험과 관계가 있으며, 주어진 외부 환경을 자신의 신체와 여러 사물들을 통해서 헤쳐나가는 '삶의 방식' 에 가깝다. 따라서 암묵적 지식은 신체를 사용하는 방법, 혹은 신체의 연장선으로서의 각종 사물과 도구들을 활용하는 방법에 해당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신체와 주위 물건들을 거쳐 전달되는 '외부 세계' 에 대한 지식을 얻는다. 이러한 과정을 폴라니는 착화(in-dwelling)라고 불렀으며, 이때 암묵적 지식이 생성되면서 끊임없이 서로 의미 있게 통합되는 것은 내부화(interiorization)라고 하였다. 폴라니에 따르면, 암묵적 지식의 통합은 명시적 지식의 연결보다 더 강력하다. 백날 책상 앞에서 운전에 대해 배우는 것보다, 한번 도로에 나가서 운전하는 경험이 훨씬 더 생생하고 많은 지식을 제공한다. 전자를 학(學)이라 한다면, 후자는 습(習)이라고도 할 수 있다.

2.1.2. 과학의 암묵적 측면

여기서 폴라니는 과학철학에서 중요한 기여를 했다. 언뜻 순수한 명시적 지식 그 자체로 보이는 과학적 발견들조차도 사실은 암묵적 지식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폴라니는 "모든 지식은 개인의 인간적 경험과 따로 떨어져 있지 않으며 분리될 수도 없다" 고 말하며, 그 인간적인 경험은 자기 내면에서 여러 요소들을 내적으로 통합시키는 암묵적 지식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았다. 이 점에서, 폴라니는 과학 연구에서 기초연구와 응용연구의 구분법이나 학문의 '순수성' 에 대한 집착을 경계했으며, 실제로 그는 기초연구를 경시하던 소련 관료들과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폴라니의 이론 속에서 과학적 지식이란 일차적으로 명시적 지식으로 소통되는 면이 분명히 있지만 한편으로는 암묵적 지식으로 소통되는 면도 존재한다는 것이다. 문제는 과학적 지식이 그 자체로 명시적 지식이라거나, 과학적 지식에 암묵적인 측면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할 때이다. 그는 과학적 지식을 객관적이고 명시화 가능한 것들로만 한정하려는 시도가 종국에는 모든 지식을 파괴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고 보았다. 그의 저작 《암묵적 영역》[1] 에 등장하는 표현을 그대로 옮기자면, 그것은 "근본적으로 잘못된 것이며 지독한 오류들의 원천"(p.49)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다. 그는 소위 '사회 구성주의' 따위에 경도되어서 과학의 주관성을 주장한 것이 아니다. 그렇기에, 폴라니의 이론을 두고 ' 앨런 소칼 선생의 팩트폭력으로 때려잡아야 할 반과학' 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폴라니를 크게 오해한 것이다. 폴라니가 과학적 지식을 '인간적' 이라고 표현할 때, 그것은 '자의적인', '엄밀하지 못한', '주관적인', '실증적이지 못한' 같은 의미가 아니라, '인간다운', '경험이 녹아 있는', '사람 냄새 나는', '우리의 삶과 관련이 있는' 등의 의미를 갖는다. 당장 폴라니 본인의 경력부터가 화학 박사 출신이고, 이미 200편이 넘는 논문을 발표하여 노벨상 후보로 거론될 정도로 명성을 얻은 바 있는 물리화학자였다.

그렇다면 '뼛속까지 이과였다가 갑작스레 문과로 전향한' 폴라니의 눈에 비친 암묵적인 과학적 지식은 무엇이었을까? 이것을 쉽게 말하면 과학자로서의 연구 경험의 노하우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폴라니가 지적했던 몇 가지 중 하나는, 연구주제의 설정 단계에서 암묵적 지식이 작동한다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과학 연구뿐만 아니라 뭇 사람들이 하루하루 살아가는 과정 전반에서, 무엇을 '풀어야 할 문제' 라고 규정하기 위해서는 암묵적 지식이 반드시 필요하다. 새로운 문제를 발견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이미 역설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폴라니는 이 지점에서 플라톤이 제시한 메논의 역설(Meno's paradox)을 소개한다. 이 역설의 핵심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것들은 아무 문제가 없고, 우리가 아직 모르는 것들은 뭐가 문제인지도 모른다면, 우리는 무엇이 문제임을 어떻게 깨닫는가?" 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플라톤 본인은 "우리는 과거의 생애를 회상함으로써 이 역설을 해결한다" 고 답변을 내놓았지만, 폴라니의 해결책은 암묵적 지식에 있다. 어떤 문제에 대해 우리는 이미 암묵적으로 알고 있지만, 단지 처음에는 주목하지도 않고 관심을 갖지도 않다가, 어느 순간 주의가 쏠리면서 그 문제의 존재를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폴라니의 또 다른 중요한 강조점은, 과학이 과학답기 위한 중요한 요소로서 과학자사회 동료평가를 강조했다는 데 있다. 칼 포퍼 토머스 쿤을 비롯하여 수많은 철학자들이 과학과 비과학을 구분하는 결정적 기준을 찾고자 하였는데, 폴라니는 이 주제에서 '과학함의 내적 경험' 을 제시한 것이다. 과학을 한다는 것은 과학자들이 과학을 수행하는 동안 내면에 누적되는 개인적인 부분들을 공유한다는 것이고, 따라서 과학계에서 종사한다는 경험은 엄밀한 명시적 용어로는 전달할 수 없다. 어떻게 보면 "과학은 무엇인가?" 에 대해 과학철학자들이 머리를 쥐어뜯다 나온 답변이 아니라, 현장에서 뛰던 과학자가 내놓은 답변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과학적 지식이 만들어지기 위해서는 엄밀한 실험설계 통계적 방법 및 각종 실험 도구도 물론 중요하지만, 학술대회 다이닝 파티에서 낯선 코쟁이 학자에게 말을 거는 아시아인 대학원생의 용기 혹은 낯선 원고의 가치를 평가하는 저널 에디터의 눈썰미도 그 못지않게 중요하다. 과학함은 논문이라는 명시적 지식의 매체로도 소통되기도 하고, 논문의 게재 가능성이 높은 저널을 고르는 안목을 제자에게 전수하는 지도교수의 암묵적 지식으로도 이루어진다. 이와 같은 인간적 측면을 과학의 과학다움에서 애써 배제하려 하는 것이야말로 과학에 대한 잘못된 이해인 것이다.

2.2. 노나카의 SECI 모델

이상의 과학철학적 이론을 경영학 분야에 접목시킨 것이 바로 노나카의 SECI 모델이다. 그의 이론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조직에 소속된 개개인이 갖고 있는 암묵적 지식을 순환시켜 축적 및 증폭시킬 때 조직의 역량이 증가하게 되며 새로운 지식의 창조가 비로소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이 이론적 조망에서 직원들이 가진 업무 경험은 조직의 자산이며, 조직은 학습의 주체이고, 직원들로부터 산출된 노하우가 축적됨에 따라 그 조직은 경쟁력을 갖게 된다. 따라서 직원들의 노하우를 적극적으로 수집하지 않는다면, 그 조직은 아까운 내부적 자산을 있는 줄도 모르고 썩히는 셈이다.

노나카가 폴라니의 이론을 수용하면서 새롭게 덧붙인 것은, 명시적 지식과 암묵적 지식이 순환적으로 변환되며 상호작용한다는 것이다. 노나카는 암묵적 지식의 속성을 '비언어적이고 개인적이며 아날로그적이고, 경험·이미지·숙련도·조직문화·풍토·신체 등에 관련되어 있는' 것으로 보았다. 반면 명시적 지식의 속성은 '언어적이고 공식적이며 디지털적이고, 구조·프로그램·논리·체계 등에 관련되어 있는' 것이라고 하였다. 노나카는 두 종류의 지식이 서로 만나는 순간에 주목했다. 그 순간에 암묵적 지식이 명시화되고, 명시적 지식이 암묵화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을 노나카는 지식변환(knowledge conversion)이라고 하였다.

지식변환은 지식을 창조하기 위한 프로세스의 메커니즘이라고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보면 다음의 4가지 기본 유형이 있다.

여기서 결정적인 요체는 위에서 서술했듯이 어떻게 해야 암묵적 지식을 명시적 지식으로 외부화할 수 있는가라고 할 수 있다. 노나카는 각자가 갖고 있는 암묵적 지식을 서로 공유하는 '공동체험' 의 과정을 강조한다. 특히 그 구체적인 수단으로, 개인적 경험을 언어적으로 외부화하는 은유(metaphor), 개인적 경험을 시각화하는 디자인(design), 개인적 경험을 체계적인 인과적 연결망으로 추상화하는 체계적 사고(systems thinking)를 거론했다. 이는 각각 언어적인 외부화, 물리적인 외부화, 추상적인 외부화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다.

3. 관련 문서


[1] Polanyi, M. (1966). The tacit dimension. Routledge. (김정래 역, 암묵적 영역, 박영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