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명 |
알란 드 팡티에브르 Alain de Penthièvr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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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명 |
검은 백작 알란 Alain Le Noi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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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도 | 1107년 ~ 1146년 9월 15일 | |
출생지 | 브르타뉴 공국 팡티에브르 백작령 | |
사망지 | 브르타뉴 공국 비가드 | |
아버지 | 에티엔 1세 드 팡티에브르 | |
어머니 | 하와이즈 드 갱강 | |
형제 | 앙리 1세, 조프루아 2세, 마르그리트, 올리브 | |
배우자 | 베르테 | |
자녀 | 코난 4세, 콩스탕스, 에노겐 | |
직위 | 초대 리치먼드 백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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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잉글랜드 왕국의 귀족, 군인. 초대 리치먼드 백작. 무정부시대에 스티븐 왕의 편에 서서 마틸다에 대적했다.2. 생애
브르타뉴 공국에 속한 팡티에브르 백작 에티엔 1세와 하와이즈 드 갱강의 막내 아들이다. 형제로 조프루아 2세[1], 마르그리트[2], 올리브[3]가 있었다. 1135/1136년경 아버지가 사망한 후, 팡티에브르 영지는 형 조프루아 2세가 물려받았고, 그는 잉글랜드 왕국 내 영지를 물려받고 스티븐 왕으로부터 초대 리치먼드 백작에 선임되었다. 이후 무정부시대가 발발했을 때 스티븐 왕의 편에 서서 마틸다에 대적했다.1140년, 스티븐 왕의 지시에 따라 콘월로 가서 콘월 백작이며 마틸다 추종자인 레지널드 드 던스턴빌을 공격했다. 그 결과 레지널드가 버티는 론서스턴 성을 제외한 콘월 대부분을 장악하고 콘월 백작을 칭했으며, 콘월의 주도인 보드민에서 궁정을 열었다. 이후 스티븐 왕으로부터 체스터 백작 라눌프 드 제농의 성들을 접수하라는 지시를 받고 체스터 백작이 최근에 접수했던 보부아르 성을 접수했고, 뒤이어 하우덴과 리폰 성을 점령한 뒤 수비대를 배치했다. 이후 요크 백작 윌리엄 르 그로스의 도움을 받아 요크셔 군대를 동원한 뒤 링컨에서 스티븐 왕과 합세했다.
1141년 2월 2일에 벌어진 링컨 전투에 참여했지만 패배를 면치 못했고, 스티븐 왕은 생포되었다. 헥섬 수도원의 수도자이자 연대기 작가 헥섬의 존에 따르면, 그는 전투가 시작되기도 전에 달아났다고 한다. 전투가 끝난 후의 행적에 대해서는 2가지 버전이 전해진다. 한 기록에 따르면, 그는 체스터 백작을 매복 공격을 통해 생포하려 했지만 오히려 생포된 뒤 보부아르 성을 돌려주고 체스터 백작에게 충성을 맹세하는 조건하에 풀려났다고 한다. 헥섬의 존의 따르면, 그는 체스터 백작이 보부아르 성 앞에 와서 협상하자는 제안을 받자 이에 따랐다가 체스터 백작의 함정에 빠져 생포된 뒤, 그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보부아르 성을 돌려주는 조건으로 풀려났다고 한다. 그가 체스터 백작에게 붙잡힌 동안, 레지널드 드 던스털빌은 콘월 백작령의 통제권을 다시 확보했다.
1142년, 그는 체스터 백작에게 복수하기 위해 군대를 일으켜 요크셔를 침공했다. 스티븐 왕은 요크셔로 향한 뒤 두 사람을 뜯어말려서 전쟁을 벌이지 않도록 했다. 1143년, 더럼 교구를 찬탈한 윌리엄 커민을 도와 합법적인 계승자였던 성 바바라 주교 윌리엄의 세력에 맞서 더럼을 지켰다. 한편, 그는 교회와 종종 마찰을 겪었다. 1140년 말 요크 대주교의 교회 재산을 파괴하는 일에 연루되었으며, 1144년 리폰 교회에 손상입혔다. 또한 1143년 어린 영주인 아담 2세 드 브루스의 영지를 관리하는 역할을 놓고 요크 백작, 체스터 백작과 갈등을 겪었다. 1146년 9월 15일에 비가드에서 사망했고, 비가드 수도원에 안장되었다.
3. 가족
- 베르테(1114 ~ 1156): 브르타뉴 공작 코난 3세와 잉글랜드 국왕 헨리 1세의 사생아인 마틸다의 딸. 브르타뉴 여공작. 알란이 사망한 뒤 포허 자작 에우돈 2세와 재혼했다.
- 코난 4세(1138 ~ 1171), 브르타뉴 공작, 제2대 리치먼드 백작.
- 콩스탕스(? ~ 1195): 로앙 자작 알란 3세의 부인.
- 에노겐(? ~ 1187): 렌에 있는 생 쉴피스 수도원의 수녀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