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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7:34:07

아타고(중순양함)

타카오급 중순양함 高雄型重巡洋艦
1번함
타카오 高雄
2번함
아타고 愛宕
3번함
마야 摩耶
4번함
초카이 鳥海
파일:아타고.jpg
1. 함생2. 매체에서의 등장3. 기타4. 관련 링크

1. 함생

원래는 일본 해군의 88함대 계획의 일환으로 자매함의 이름인 타카오와 함께 아마기급 순양전함에 사용될 이름[1]이었지만, 워싱턴 조약으로 계획이 증발하면서 아카기는 항공모함이 되었고 아타고와 타카오는 중순양함 이름으로 재활용되었다.

타카오급 중순양함 2번함으로 건조되었으며, 1930년 5월 12일에 진수된 타카오에 이어 1930년 6월 16일에 진수되었다. 그러나 아타고는 1932년 3월 30일에 배치되었고, 타카오는 1932년 5월 20일에야 배치되었으므로 언니보다 빠르다. 이 때문에 타카오급은 흔히 아타고급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일본 해군 답지않게함교가 너무 커서 배의 안정성에 문제가 생긴다는 이유로 개장을 받게 된다.

개장을 끝낸 아타고는 1940년부터 중국 해안 순찰임무에 투입되었으며, 타카오급 4척으로 구성된 제4전대의 기함을 맡게 되었다.

태평양 전쟁이 일어나자, 제4전대 기함 겸 제2함대 기함이 된 아타고는 말라야와 필리핀 침공을 지원했다. 이후에는 남방작전에 가담, 네덜란드령 동인도 제도를 점령하는데 기여했다. 자바해 해전에도 참전했으며, 이후 일본에 돌아왔다가 둘리틀 특공대가 도쿄를 공습하자 홀시 제독의 함대를 추적하는 임무에 투입되기도 했다.

파일:external/s-media-cache-ak0.pinimg.com/6336eb7a2a64203fbdd0aeef247704df.jpg

89식 12.7cm 양용포를 탑재하는 개수를 받은 후, 아타고는 미드웨이 해전에 투입되어 미드웨이 침공군을 엄호하기도 했으며, 피해 없이 귀환했다.

1942년 8월, 제2함대 기함 아타고는 제4전대를 데리고 과달카날 전투에 가담하게 된다. 이후 동부 솔로몬 해전에 참가하지만, 수상정찰기로 수색임무를 실시한 것 외에는 별다른 기여를 할 수 없었다. 여담으로 나가토급 전함 무츠도 제2함대의 일원으로 이 해전에 참가했지만, 너무 느려서 낙오된다. 결국 무츠는 구축함 3척과 함께 함대에서 분리되었고, 아무 것도 못한 채 귀환했다. 산타크루즈 해전에서도 아타고는 별다른 기여를 하지 못했고, 10월 11일에 트럭에서 출항해서 핸더슨 비행장 포격전을 지원한 정도.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Japanese_cruiser_Atago_in_1939.jpg

과달카날 해전에서 아타고는 타카오와 함께 공고급 순양전함 기리시마와 동행했다가 미군의 사우스다코타급 전함 1번함 사우스다코다, 노스캐롤라이나급 전함 워싱턴과 조우한다. 마침 사우스다코다가 고장으로 힘을 못 쓰고 있었기에, 아타고는 기리시마, 타카오와 함께 사우스다코다를 집중포격하고 워싱턴에게 산소어뢰를 발사한다. 그러나 어뢰는 모두 빗나갔고, 워싱턴은 기리시마를 7분만에 대피시켰다. 당시 워싱턴은 이미 기리시마를 상대로 수 km밖에 안되는 초근거리에서 조준을 마치고 철갑탄을 장전하는 등 발포 준비를 다 마쳐놓은 상태였다. 단지 사우스다코타가 정전으로 무전이 나간데다 레이더에도 안잡혀서 포격을 미루고 있었는데 아타고의 탐조등이 사우스다코타를 비추면서 피아식별을 끝내고 바로 포격을 개시했다. 아타고는 필사적으로 저항했지만 피격당해 후퇴했고, 기리시마는 가라앉았으며 해전은 일본군의 참패로 끝났다. 아타고는 수리를 위해 1942년 12월 17일에 구레로 귀환한다.

1943년 1월 25일, 아타고는 트럭으로 귀환한 후 과달카날 철수작전을 지원한다. 철수는 성공적이었고, 아타고는 일본에서 개수작업을 받은 후 트럭으로 귀환한다. 이후 길버트 섬을 공습한 미군 함대를 추적했지만 성과는 없었다.

1943년 11월, 아타고는 부건빌 전역하기 위해 (아타고 본인을 포함한) 중순양함 7척, 경순양함 1척, 구축함 4척을 이끌고 라바울로 갔지만 여기서 미군의 공습을 당해 3발의 지근탄을 맞고 함장을 포함한 22명의 승조원이 전사한다. 이후 요코스카에 들러 수리를 받고 대공화기를 증강한다.

1944년 1월, 아타고는 트럭으로 돌아왔고 2월 10일에 미군 잠수함의 어뢰 공격을 받지만 4발 모두 피한다. 이후 제4전대와 함께 팔라우로 이동했고, 다바오와 링가 정박지를 거쳐 타위타위에 도착한다.

필리핀 해 해전에서는 제2함대 기함으로 참가했다. 치토세, 치요다, 즈이호로 이뤄진 C부대가 되었으며, 미군의 공격을 받아내는 역할을 할 예정이었지만 미군은 그런 거 없고 일본군의 A,B,C부대 전부를 격퇴했다. 아타고는 피해를 입지 않았고, 이후 대공화기를 더욱 증강한다.

레이테 만 해전에서도 아타고는 제2함대 기함을 맡아 구리다 타케오 제독을 태우고 출전했으나, 1944년 10월 22일 미군 가토급 잠수함 USS 다터의 공격으로 4발의 어뢰를 맞고 6시 53분에 침몰했다. 구리다 제독을 포함한 529명이 생존했으나 360명이 전사했다. 피격 후 21분만의 일이었다.

2. 매체에서의 등장


파일:external/wiki.gcdn.co/Atago_wows_main.jpg

3. 기타

아타고라는 이름은 아타고급 이지스함의 네임쉽인 아타고로 이어진다.

4.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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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아마기, 아카기, 아타고, 타카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