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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29 03:59:04

아키타 유타카

아키타 유타카의 수상 이력
{{{#!folding [ 펼치기 · 접기 ] 둘러보기 틀 모음
개인 수상
베스트팀
파일:J1리그 엠블럼.svg
1997 · 1998 · 2000 ·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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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치 유나이티드
高知ユナイテッド
파일:batch_1秋田豊監督-768x1024.jpg
이름 <colbgcolor=#ffffff,#191919> 아키타 유타카
秋田 豊| Yutaka Akita
출생 1970년 8월 6일 ([age(1970-08-06)]세)
일본 아이치현 나고야시 나카무라구
국적
[[일본|]][[틀:국기|]][[틀:국기|]]
신체 180cm | 체중 78kg
직업 축구선수( 수비수[1] / 은퇴)
축구감독
기업인
소속 선수 가시마 앤틀러스 (1993~2003)
나고야 그램퍼스 (2004~2006)
교토 상가 FC (2007)
감독 교토 상가 FC (2008~2010 / 코치)
교토 상가 FC (2010~2011)
도쿄 베르디 (2012 / 코치)
FC 마치다 젤비아 (2012~2013)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 (2020~2022)
고치 유나이티드 SC (2025~)
국가대표 44경기 4골 ( 일본 / 1995~2003)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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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 축구인으로 J3리그 고치 유나이티드 SC의 감독이다. 현역 시기 일본 축구 국가대표팀 경력의 수비수( 센터백)이었으며 행정 경력으로 2022년부터 2024년까지 J3리그(당시)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의 구단주를 역임하였다.

2. 선수 경력

1970년 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태어났으며, 중학교 때부터 선수생활을 시작했다. 1993년 아이치가쿠엔 대학을 졸업하고 J리그 가시마 앤틀러스에 입단했다.

프로 초반에는 라이트백으로 시작했다가 센터백으로 옮겨갔으며, 1995년부터 대표팀에 후보 센터백으로 소집되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가모 슈 감독이 선취점을 뽑은 경기에서 포메이션을 4백에서 3백으로 전환하면서 보강 센터백으로 투입되는 경기가 많았는데, 대표적인 것이 1997년 도쿄대첩에서 포워드 로페스 바그너와 교대하여 투입된 경기이다. 이후 주전을 차지하게 되어 프랑스 월드컵에서는 세 경기를 모두 선발로 플레이하였다. 키 180cm로 당시 일본에서는 흔하지 않은 맨마크와 공중전을 겸비한 수비를 강점으로 하였다.[2] 2002년에도 소집은 되었으나 이 때는 필립 트루시에 감독이 플레이 자체보다는 선수단의 형님 역할을 기대하고 소집한 것이고 경기에 나서지는 못했다.[3]

가시마 앤틀러스에서는 부동의 센터백으로 활약하다가 2004년 고향팀인 나고야 그램퍼스로, 2007년 J2리그 교토 상가로 이적하여 선수 생활을 마무리했다.

3. 지도자 경력

은퇴 후 교토에서 코치로 지도자 경력을 시작했다. 2010년 7월 가토 히사시 감독의 경질로 감독으로 승격되었으나, 극심한 부진에 이은 강등으로 교토 감독 재임은 4개월여만에 끝이 난다.[4]

이후 도쿄 베르디 코치, 2013년 JFL FC 마치다 젤비아 감독을 거쳤으나 모두 단명에 그쳤다.

2020년에는 이와테 그루야 모리오카 감독에 취임하였다. 일단 첫 해는 18팀 중 11위로 그렇게 좋지는 않게 마무리하였으나 당장의 경질은 면하였다. 2021년에는 J3 2위로 클럽 사상 최초로 J2리그 승격을 이루어내었으나, 2022년 최하위로 재강등되는 부진으로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시즌이 끝나기 전 2022년 10월, 이와테의 모기업인 NOVA로부터 33.4% 지분을 인수하여 이와테 구단주 겸 사장으로 취임하였다.

구단주가 된 이후 재정이 열악한 이와테의 흥행 향상을 위해 구단주의 해설을 들으면서 관전하는 '아키타 유타카 존'을 만들었다. 그러나 2024 시즌 후 J3리그 최하위로 이와테가 JFL로 강등되자 지분을 NOVA에 다시 매각하고 클럽을 떠났다.

2025년 J3로 승격한 고치 유나이티드의 감독에 취임하였다.


[1] 센터백, 라이트백 [2] 일본 대표팀의 수비 구성은 아키타 외에는 리베로 스타일의 이하라 마사미(182cm)와 아키타 이전의 주전인 오무라 노리오(181cm) 정도였다. 사실 이 시기에는 한국 수비진에서도 180cm대 초반의 이민성이나 이상헌이 공중전 담당이었던 때여서 일본과 고작 한끗 차이인 정도이긴 했다. [3] 트루시에는 같은 목적으로 미우라 가즈요시 나카야마 마사시도 대표팀 합류를 타진하였으나 미우라는 선수단 등록이 아니어서 거절하고, 나카야마는 본선 출장을 했다. [4] 이 해 교토의 성적은 4승 7무 23패 승점 19점으로 경기당 승점이 0.6점도 되지 않았다. 쇼난 벨마레가 더 심각해서 최하위는 면했지만 16위 FC 도쿄(역시 강등)와 17점이나 차이가 났다. 이후 교토는 2021시즌까지 승격을 못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