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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08 21:10:11

시원하다

"저 배신감은 우주 공통인가 보구만. 어른들 시원하다 그러는거."
오늘은 자체 휴강 46화 중.
“플립을 만드는 스윙을 한국 선수들은 '시원하다(shiwonhada)'라고 말한다. 마땅한 영문 번역어가 없지만 차들이 없는 고속도로를 달리거나 부드러운 골프 스윙을 할 때, 시원한 산들바람이나 속을 풀어주는 국을 먹을 때 표현하는 것이다. 지금 여기선 아주 차가운 맥주를 한 잔 들이키고 만족스럽게 내뱉는 말이라는 게 가장 적절할 것 같다."
Bat Flipping Draws Shrugs in South Korea but Scorn in America(미국에서는 경멸의 대상, 그러나 한국에서는 어께를 으쓱하게 만드는 배트 던지기)
배트 플립에 대한 미국 기사 중에서.
한국어의 범용성의 좋은 예. 맛과 감정과 온도를 두루 표현한다. 보통 감탄사 '어흐'와 같이 쓰인다. 어원은 중세 한국어의 "싀훤ᄒᆞ다"에서 왔다.[1]

으로서의 시원하다는 음식을 먹었을 때 차갑지만 그래도 산뜻하거나[2] 아니면 뜨겁지만 비위를 가라앉히고 속을 개운하고 후련하게 하는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멸치 가쓰오부시, 홍합 등의 어패류, 콩나물, 다시마, 로 만든 국물[3]이 시원한 맛을 가진다. 영어에 대응되는 표현으로는 Refreshing, Comforting 등이 있지만, 한식의 맛을 묘사할 때는 한국어 발음 그대로 "siwonhan-mat" 이라고 적기도 한다. #

온도로서의 용법으로는 낮은 온도에서 말 그대로 서늘하여 시원하다는 의미와, 높은 온도에서 근육의 이완에 의해 몸의 긴장 피로 등이 풀어진다(나른해진다)는 의미가 있다. 후자의 경우 한국적 문화에 익숙지 못한 이들에게는 자칫 오해를 살수 있으니, 외국인에게 사용할 때는 충분한 설명이 필요할 듯.[4] 둘의 공통점은, 몸의 다양한 긴장이나 불편감이 어떤 방식으로든 해소된다는 점이다. 후자의 표현은 한국어만 보면 '상쾌하다' 같은 말로 치환할 수 있지만, 정작 상쾌하다 역시 직접적인 번역이 까다롭다. 그나마 전술한 Refresh가 비교적 가까운 표현이긴 하다.

감정으로서의 '시원하다'는 어떤 행위를 보거나 느낄 때에 답답하지 않고 개운하고 후련한 느낌을 받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자면 축구 경기에서 마지막 1분을 남겨놓고 동점골을 넣었다거나, 약체팀이지만 자신이 응원하는 야구팀이 우승했다거나 등이 있다. 이와 관련된 신조어로 사이다가 있다.

시각적인 '시원함'은 현대 영어에서 oddly satisfying의 일종으로 취급된다. 방해 받지 않고 부드러우며 규칙적인 움직임으로부터 무언가 쾌감과 안정감을 느끼는 정서는 거의 인류 공통이다.

섭섭하다는 표현과 합쳐 시원섭섭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대충 정의해보자면 "뭔가 고민거리였던 것이 사라져서 더 이상 마음 졸일 일이 없어졌지만, 그것이 없어진 것에 허전함을 느끼는 것"이라고 보면 된다. 흔히 그것에 대해 붙이고 있던 미운 정 탓에 생기는 일인데,[5] 츤데레 유형의 인물들은 이에 대해 일부러 "없어져버려서 속이 다 시원하다."는 식으로 일부러 못된 말을 내뱉으며 자신의 쓸쓸함을 감추려 하기도 한다.


[1] 을 이렇게 번역했는데, 이 한자는 '화창하다', '통쾌하다', '후련하다'를 뜻한다. [2] 꽤 범주가 넓은데, 으레 떠올릴법한 차가운 음료수 혹은 물 같은 것을 먹거나 마실 때 느끼는 "시원한 맛"에 해당하는 것에 아이스크림, 셔벗과 같이 달달한 종류도 있지만 열무김치 오이소박이, 냉국, 냉면처럼 맵거나 신 맛을 동반하는 것도 여기에 포함된다. 이런 경우는 영어로 cool 아니면 thirst-quenching 정도에 해당한다. 그런가 하면 민트사탕이나 새콤한 과일 등 수분을 떠나서 상쾌한 맛을 내는 경우도 해당된다. [3] 주로 뉴클레오타이드 아미노산 계열이 이런 맛을 낸다. 일종의 감칠맛. 멸치의 이노신산이나 콩나물의 아스파르트산, 다시마의 글루탐산 등. [4] '온탕에 들어가니 시원하다.' 같은 표현이 유명하다. 여기서 '시원하다'는 '온도가 알맞게 따뜻하니 몸의 피로가 풀린다'는 의미이다. [5] 인간은 물리적으로 가까이 있는 존재에 대해 자신도 모르게 정을 붙이게 되어 있다. 그래서 아무리 싸우던 견원지간이라도 막상 없어지면 허전함과 서운함을 느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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