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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0-29 00:03:44

스티븐 제라드/특징

파일:상위 문서 아이콘.svg   상위 문서: 스티븐 제라드
1. 개요2. 리더십
2.1.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욕과 정신력2.2. 감독들의 동반자 면모2.3. 선수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섬세함2.4. 감독과 선수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2.5. 리더십에 대한 현지의 큰 지지2.6. 주장들의 주장
3. 큰 경기에서의 미스
3.1. 그럼에도 결승전의 사나이

1. 개요

스티븐 제라드의 특징을 서술한 문서.

2. 리더십

구단을 향한 비난은 옳지 않다고 생각해. 구단주가 떠나고, 베니테즈 알론소를 팔고, 마스체라노 바르샤에 가고 싶어한대서 리그 우승을 못한다고 불평해봤자 소용 없어. 그것들이 구단의 방해요소일지도 모르고, 우승을 하지 못했다며 그들을 비난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 하지만 우리가 2위로 끝을 맺었던 시즌에, 우린 분명히 우승을 할 수 있었어. 그 책임은 일부 나도 져야하지. 그런 불평을 하기 전에 자신을 반성해야 돼. 축구에서 남을 비판하는 것은 너무나도 간단한 일이야. 물론 리그 우승컵이 없는 것은 내 경력에서 크나큰 구멍이고, 앞으로 절대 우승을 할 수 없을지도 몰라. 하지만 나는 이미 많은 것을 성취했고, 후회따위 없어. 분명히 나는 프리미어리그에서 우승하고 싶어. 나는 아직 배 고프니까. 하지만 현실적이어야지. 이 클럽이 다시금 우승을 이룩할 때쯤 이미 나는 현역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것 쯤은 알고 있어. 하지만 어쩔 수 없잖아? 이적하고 싶다고 말하는건 간단해. 충분할 정도로 이 클럽에서 뛰어왔지만, 아직 충분하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아직 이루고 싶은게 많으니까. 나는 이 클럽에서 최고의 우승컵을 따냈어. 남들은 내가 리그 우승컵이 없다고 할지는 모르지만, 리그 우승컵이 있어도 챔피언스 리그컵이 없는 선수도 무진장 많아. 나는 이 클럽의 주장이고, 여기서 이루고 싶은 것들의 90%는 이뤄냈어. 대표팀에서도 100경기 출장이 눈 앞이고, 대표팀 주장도 해봤으니까.
2012년, 데일리 메일과의 인터뷰

'주장' 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선수이며, 주장 생활을 24세부터 소화한 리버풀 FC의 영원한 정신적 지주이다. 그의 리더십이 돋보이는 일화는 여러가지가 있다.

2.1.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승부욕과 정신력

AC 밀란과의 챔피언스 리그 결승전에서 3대0으로 뒤진 상태로 전반을 마친 상황이었다. 그때 라커룸에서 풀이 죽은 선수들을 분위기 살린 일화는 유명하다. 그 뒤에도 제라드는 몸소 최선을 다하며 선수들의 사기를 이끌며 파이팅을 외쳤고 직접 골도 넣고 페널티 킥도 얻어낸다. 특히 리버풀의 첫 골을 득점한 후 제라드의 세리머니는 선수들과 리버풀 관중들 모두에게 기죽지말고 아직할수 있다고 팔을 힘껏 위로 올리는 세리머니를 했다. 결국, 그에 대한 결과가 우승이었다.

파일:이스탄불의 기적.gif
그리고 트로피를 가장 맛깔나게 드는 주장 제라드였다. 이 사건을 이스탄불의 기적이라고 부른다.[1]

2.2. 감독들의 동반자 면모

물론 중원 어느 포지션에서나 뛸수있다는 팔방미인적인 요소 때문일수도 있으나 그 정신적인 지주 역할과, 감독에 자기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하는 스타일이 아닌 묵묵히 따르면서 자기의 의견을 조금씩 제시하면서 절충하는둥, 감독과 같이 가는 동반자의 스타일 성향이기 때문에 좋아한다. 그렇기에 감독과의 불화가 전혀없다.[2] 거기다 대부분의 감독들은 꼭 제라드의 리더십에 대해 한 마디씩 한다. 물론 그가 주장이라 립서비스를 했을 수도 있겠으나, 그러기엔 다른 선수와 비교했을때 제라드의 리더십과 관련된 기사가 많이 나온다.

같은 리그 내 유명 구단들 정신적 지주들과 상당히 비교되는 부분이다. 첼시의 경우 존 테리가 정신적 지주인데, 인성 논란이나 구설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리더십 하나만큼은 뛰어나다는 점이 제라드와 비슷하지만 감독과의 불화설이 많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맨유의 루니는 감독들이 꾸준히 치켜세워주긴 했으나 본인의 기량 하락과 더불어 7개월간 모예스와의 불화 등이 있었다. 아스날의 경우는 매 시즌마다 주장이나 정신적 지주가 떠나서 팀의 확실한 간판 선수를 내세우기 힘들다. 토트넘은 마이클 도슨이나 레들리 킹 같은 선수들이 정신적 지주를 맡았지만 제라드에 비해 인지도가 부족했다. 그나마 맨체스터 시티의 주장이었던 뱅상 콤파니가 감독과의 불화설도 없고 오랜 기간 뛰어난 실력과 리더십을 보여주었지만, 외국인 이적생 출신이라 잉글랜드 내에서 큰 주목을 받지 못하였다.

2.3. 선수들을 하나하나 챙기는 섬세함

주장으로서 당연한 거지만 입증이 되는 사진과 기사들이 많다. 갓 국가대표에 승선한 선수들이나 리버풀로 갓 이적해온 선수들은 새로운 선수로서 사진이 많이 찍히는데 그 옆엔 항상 제라드가 있다. 선수들을 적응시켜주려고 신입들을 잘 챙기는 듯하다.

2012년 9월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 자서전에 의하면 페르난도 토레스의 첼시 이적 때문에 마음 고생이 심했던 듯하다. 애초에 토레스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리버풀로 온 것도 챔피언스 리그 출전 등 유럽 대회에 나가고 싶었던 것이었지만 하필이면 우승을 위해 라이벌 클럽인 첼시로 가고 싶다고 한 것이다.[3]

당시 리버풀 보드진과 케니 달글리시 감독 대행이 토레스 이적에 반대하자 토레스는 제라드에게 자기가 이적할 수 있도록 말 좀 잘 해달라고 부탁까지 했다. 그것도 제라드에게 직접 "나는 충분히 했고 클럽을 떠나고 싶다.[4] 주된 라이벌팀 중 하나로 가고 싶다"라고 말했다. 오랜 시간 동안 리버풀의 주장으로서 자신을 포함해 많은 선수들의 사건 사고를 겪었지만, 그때만큼 충격적인 일은 없었던지 토레스의 그 말을 듣고 심장을 칼로 찔리는 기분이었다라고 회고했다. 어쨌든 이 말까지 듣고 나서는 자기도 포기했는지 케니 달글리시 감독한테 이적을 허락해 주자고 말했다고 한다. 그 전부터 조금씩 늘어나던 이마 주름은 이 때를 기점으로 선명해진다. 토레스 이적과 관련해서 많은 마음고생을 한 모양이다.[5]

웨인 루니가 힘들때 제라드와 상의했던 것도 유명하다. 제라드와 상의한 루니

그리고 수아레스도 이적설이 떴다. 토레스 만큼이나 파격이 컸으나[6] 결국엔 잔류를 했다. 거기엔 제라드의 역할이 아주 컸다고 수아레스가 직접 말했다. 하지만 FC 바르셀로나로 결국 이적했다. 하지만 제라드의 조언은 역대급 조언이었다.

실수를 해도 격려를 해서 감싸준다고 한다. 엠레찬이 보는 제라드

# 제라드가 경미한 부상으로 후반전에 빠졌었다. 그 경기가 끝나고 난 뒤에 선수들이 나가는 출구에 나가지 않고 기다리며 일일이 한명씩 고생했다고 챙기는 모습이다. 특히 그 시기에 부진했던 미뇰렛에게 격하게 챙겨주는 것이 포인트다.

2.4. 감독과 선수 사이의 중간다리 역할

수아레스가 이적 소동 때문에 브랜든 로저스와 사이가 무척이나 소원하고 어색해졌는데 제라드가 화해를 주선하며 둘의 사이를 잘 조절했다고 한다. 위의 토레스같은 경우도 같은 경우라 볼 수 있다.

2.5. 리더십에 대한 현지의 큰 지지

잉글랜드 대표팀에서 한때 존 테리가 주장일 때가 있었는데, 그 전에 누가 주장이 어울리는지 여론 조사를 했다고 한다. 거의 제라드와 테리가 양분하면서 압도적이었고 퍼디난드가 그 뒤를 잇다시피 했다. 당시 테리가 근소한 차이로 제라드를 앞섰다. 게다가 당시 감독인 파비오 카펠로는 수비수에게 주장을 주는 성향이 있어서 주장은 테리에게로 넘어갔다. 하지만 테리의 어떤 이유 때문에 주장직이 박탈돼 제라드에게로 넘어갔고, 대표팀의 세대교체가 이뤄진 현재까지도 잉글랜드의 주장 하면 제라드부터 떠올리는 경우가 많다. 선수들에게도 많은 지지를 받는 듯하다.

2.6. 주장들의 주장

과거 리버풀에 몸담았던 선수들의 면모를 보더라도 각 팀의 주장들의 주장이라는 점에서 위엄이 느껴진다. 원래 굴러온 돌이 박힌돌을 빼기 힘든 법이라 이런 현상은 당연하다. 하지만 아무리 제라드가 리버풀의 프렌차이즈 스타이고 터줏대감이지만,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고 이런 리더 출신들을 뛰어넘는 리더십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주장 대접을 받긴 힘들다. 하지만 그들 모두가 제라드를 인정하며 따른다.
제라드를 제외한 팀원들간이라도 자기 목소리를 내지 싶은데 그런것도 전혀 없다. 오히려 팀 분위기는 파벌같은 것도 없으며 두루두루 친하다.[10][11] 리버풀 팬들은 많이 봐서 잘 알겠지만 경기 전 트레이닝 사진들을 볼때 감독[12] 코치 포함해서 95%이상이 웃고 있다. 카메라 비칠 때마다 항상 찡그리는 표정의 제라드 마저도 그냥 잘만 웃는다. 하도 이런 좋은 분위기라 그런지 이적생이 14/15 시즌엔 8명이나 영입이 되었는데도 트레이닝 사진보면 어색한거 전혀 없이 서로 부둥켜안으며 잘만 웃고 있다. 이만 하면 팀 분위기 조성에도 한 몫하는 듯하다.
2014년 4월 13일 리그 우승으로 가는 길목 중 가장 중요한 맨시티전을 승리로 장식한 후, 제라드의 퍼포먼스( 현장음 버전, 한국 중계 버전)[13]는 전세계의 축구팬들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동시에 그의 뛰어난 리더십을 보여주었다. 박문성의 감탄사는 덤이다.
우승으로 가는 길목 중 제일 큰 고비를 아슬아슬하게 승리로 장식하면서 복받치는 눈물을 금방 자제하며 승리에 흥분하는 선수들을 한데 모아놓고 앞으로의 방향에 대한 정신교육을 시켰다.
이 영상에서 볼 수 있는것은 선수들의 단합력과, 그가 팀에서 차지하는 위상, 팀 멤버들이 그에게 보내는 신념이다.
그리고 일단 영상을 보면 우는 모습을 볼 수 있는데[14] 그동안 그가 얼마나 리그 우승에 목말라했는가와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가,[15] 그가 얼마나 리버풀을 사랑하는가를 볼 수 있다. 이런 리버풀을 위해 축구 인생을 바쳐왔으니 선수들이 굳이 그의 리더십을 안 보더라도 따를 수밖에 없을것이다.
또한, 상술하였듯 이 경기는 '힐스브로 참사 25주기' 헌정 경기였다.[16] 이 당시 희생된 96명의 희생자 중, 제라드의 사촌[17]이 있었기에 제라드 본인은 힐스브로 참사를 겪은 유가족 중 한 명이기도 했다. 그런 의미 깊은 날에, 의미 깊은 승리를 거두어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고 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곧 마음을 다잡고, 들떠있는 선수들을 진정시키는 리더십이 돋보였다고 할 수 있겠다.
제라드의 역대급 명장면이 된 씬이었고, 실제로 다음 경기인 노리치 전에서도 리버풀이 승리를 거두었지만 첼시 전에서 다름아닌 제라드가 미끄러져 우승컵이 멀어진 실수를 한 후에는 타팀팬이자, 리버풀 안티들이 비웃는 의미로 이 씬을 언급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주로 제라드가 설레발을 떨었다면서 비꼬는데 이것은 사실 위의 제라드의 언급에도 보듯이 오히려 설레발을 자제하고 다음 경기에 신경쓰라는 뜻이다.
2015년 2월 20일, 베식타스전에서 부상당한 제라드를 대신해 주장으로 조던 헨더슨이 나왔다. 리버풀이 PK 골로 1:0으로 승리했지만 옥에 티가 있었는데, PK 차기 전에 헨더슨과 발로텔리 사이에 본인이 서로 PK를 차려는 신경전이 있었다. 로저스가 이 사건에 대해 말하길, 주장이 없으면 부주장이 주장을 하는 것처럼 PK도 그와 비슷하다는 규칙과 제라드가 없으면 발로텔리가 두 번째 키커라는 # 규칙이 모순이 되어서 해프닝이 난 것이다. 제라드는 헨더슨의 손을 들어주며 발로텔리에게 일침을 가하였다. # 발로텔리가 PK 경험이 많지만 헨더슨이 주장이기에 주장에 힘을 더 실어주는 듯하다. 주장이 힘이 없어지면 리버풀 분위기를 잡을 구심점이 약해지기 때문에 주장에 힘을 실어줌으로써 확실히 질서를 지키려고 하는 마음이 엿보인다. 제라드가 경기 도중 직접적으로 리더십을 발휘한 것은 아니지만, 어찌보면 제라드가 없음으로 인해 벌어진 일이기에, 그의 존재 유무의 차이를 보여준 해프닝이라 볼 수 있다.

3. 큰 경기에서의 미스

물론 누구나 실수는 할 수 있지만 그게 하필 결정적인 것 들이라 여러모로 회자된다. 거기에 일반적인 선수면 욕을 실컷 하고 말겠지만, 리버풀 팬들에게 매우 상징적인 선수라 차마 욕을 하지 못하며 리버풀의 상징이란 점 때문에 실수를 하게 되면 더더욱 지구 반대편 조선맹구들에게 조롱거리가 되곤 한다. 대표적으로 리버풀의 우승이 좌절된 2013-14 시즌 막판이나 교체 투입된 지 38초 후 퇴장 등이 있다.

3.1. 그럼에도 결승전의 사나이

다만 이런 실수들에도 불구하고, 스티븐 제라드는 리버풀에서 자신의 커리어 전체를 통틀어 10개의 우승컵을 들어올렸으며 리버풀이 결승전에서 패배해 준우승에 그쳐버린 모든 대회들을 포함하더라도, 팀이 진출한 모든 결승전에서 골을 터트린 선수이기도 하다.

실제로 제라드가 결승전에 득점해서 건져올린 메이져 트로피만 해도 00-01 UEFA 컵, 02-03 EFL컵, 04-05 챔스, 05-06 FA컵 등이 있으며, 제라드는 챔피언스리그, 리그 컵, FA컵, 유로파 컵 결승전에서 모두 득점한 경험이 있는 유일한 선수이다. 종합해보면 새가슴이라는 비난은 다소 억울한 면이 있으며 사실 중요경기에 강한 선수였다는 평가가 더 어울리는 선수이다.사실 이때 안 미끄러지기만 했어도 지금 듣는 조롱의 반도 안 들었을테지만...


[1] 이 때의 인상적 세리머니 때문인지 축구팬들은 흔히 우승 세리머니가 잘 어울리는 주장으로 제라드를 많이 꼽는다. 상남자 스타일이고 기럭지도 길쭉하고 머리가 작다. 비율적으로보나 외모로 보나 뛰어나서 멋있게 보이는 것도 있다. [2] 에릭센, 로이 호지슨, 케니 달글리시의 낮은 성적과 함께 해도 불화 한번 없었다는 것은 잘하든 못하든 감독의 위치를 존중하는 듯하다. 심지어 브렌던 로저스 토니 크로스 등의 영입을 위해 제라드에게 영업을 해 달라고 요구하자, 그게 바보 같은 짓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군말없이 문자 보내고 전화했다고 한다. [3] 마이클 오언 또한 리버풀이 챔피언스 리그 진출을 하지 못한 시즌에 이적했지만, 그래도 다른 리그인 레알 마드리드로 가서 그 당시에는 어느 정도 동정을 샀다. [4] 당시 리버풀은 매각이 진행중이었고, 토레스의 존재는 팀의 브랜드 가치 상승에 중요했다. 그렇기에 토레스는 여름 이적 시장에 이적하지 않았고 결국 리버풀은 FSG에 매각될 수 있었다. [5] 제라드의 두 번째 자서전에서 이 대목을 읽은 리버풀 팬들은 화가 날 대로 나서 그때까지도 조금이나마 갖고 있던 토레스의 리버풀 리턴 가능성을 스스로 접어버렸다. [6] 레알하고 아스날 이적설이 끊임없이 돌았다. 거기다 이적하고 싶어서 본인이 직접 기자를 불러서 인터뷰까지 하고, 팬들이 수아레스 유니폼도 불태우는 등 말도 아니었다. [7] 현재 제라드의 유일한 리버풀 주장의 후계자이다. [14-15시즌] 다니엘 아게르의 이적으로 부주장으로 임명되었고 바로 다음시즌에 제라드가 떠나며 주장으로 임명되었다. [9] 이적 후에 리버풀로 다시 왔는데도 쭉 제라드가 주장을 했다. [10] 남미 선수들끼리 특히 친하긴 한데 이들은 남미가 아닌 다른 선수들 하고도 친하게 지낸다. 단지 같은 남미 출신들끼리 더 친하다는 그런 개념이다. [11] 세레머니 때에도 알 수 있는데, 특히 플라나간이 첫골을 넣었을때 미뇰렛(골키퍼)을 제외한 모두가 우르르 몰려와서 본인들이 넣은 양 아예 인간 햄버거를 만들었다. [12] 감독부터가 위트나 조크를 잘하며 선수들을 친자식처럼 대한다고 한다.(제라드가 인터뷰 中) [13] 페예그리니의 행동도 화제거리다. 맨시티 선수들은 끝나고 라커룸으로 들어갔지만, 페예그리니는 리버풀 선수들의 세레머니가 끝날 때까지 라커룸 입구에서 기다리며 한 명씩 승리를 축하해주었다고 한다. [14] 마침 또 힐스브로 참사 25주년이다. [15] 함께했던 A~S급의 선수들이 이적 하는것을 지켜보고, 리버풀 암흑기인 중위권으로 시즌을 마치는 기간을 몸소 체험한 산증인이다. [16] 그래서 이 주, FA가 주관하는 전 경기가 7분씩 늦춰져서 킥 오프하였다. [17] 참고로 희생자 중 가장 어린 희생자였다. [18] 37라운드까지 첼시와 리버풀의 승점은 동률이었고 첼시가 득실차로 4위를 차지하고 있었던 상황이다. [19] 이 경기의 결과는 비단 첼시의 다음 시즌 챔피언스 리그 티켓 뿐만 아니라 첼시의 역사와 유럽 축구사에 엄청난 스노우볼을 굴리게 된다. 당시 첼시는 재정적으로 어려웠고 챔피언스 리그에 진출을 하지 못하면 클럽이 암흑기를 맞이할 것이라고 선수들조차 통보를 받은 상황이었다(참고로 제라드도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었다고 한다). 첼시는 이 경기를 이기고 챔피언스 리그 진출 티켓을 확보하게 되면서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구단을 인수하게 되었고 이것은 첼시와 유럽 축구의 역사를 크게 바꿔놓는 전환점이 되었다. [20] 이 때 드록바의 움직임이 라인을 깨려는 공격수들의 움직임과 별반 차이가 없었던 지라 제라드는 "명예첼시인"이라고 조롱성 별명이 붙어버렸다. [21] 정확히는 타 팀끼리의 경기 결과에 관계없이 자력으로 우승할 기회를 날렸다. 당시 경쟁 상대였던 맨시티가 잔여 경기를 모두 이긴다고 가정해도, 리버풀은 이 경기를 포함한 남은 3경기 중 2승 1무만 하면 맨시티의 경기결과와 관계없이 자력으로 우승을 확정지을 수 있었으나 이 경기에서의 패배로 그 기회를 사실상 놓쳐버린 것. 결국 리버풀은 이 경기에서 0:2로 패배, 이어지는 크리스탈 팰리스 전에서 3골 먼저 넣어놓고선 후반 15분 동안 3골 먹혀 3:3으로 무승부를 거뒀고, 맨시티가 남은 경기에서 모두 승리를 거둠으로써 해당 시즌 또한 준우승에 그치게 되었다. [22] 위에 나온 첼시전때는 뎀바 바가 슈팅을 빗맞추거나, 시몽 미뇰레가 막아줄 희망을 조금이나마 가졌지만, 이번에는 상대가 수아레스인 만큼 수아레스에게 볼이 연결되자마자 체념해버렸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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