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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즈키 아이리/하로프로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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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헬로 프로젝트 키즈
2.1. 연예계 입문
3. 헬로 프로젝트 활동 시절
3.1. 큐트3.2. Buono!3.3. 연기 활동3.4. 솔로 참여 곡
3.4.1. 정식 수록곡3.4.2. 기존 그룹 곡 솔로버전3.4.3. 2011년 아이튠즈 헬로 커버곡3.4.4. 기타

1. 개요

스즈키 아이리 헬로! 프로젝트에 재적해있던 시절의 활동을 분리한 문서.

2. 헬로 프로젝트 키즈

아이리는 무지 어렸을 때부터 춤추고 노래 부르는 걸 좋아했다고. 본인도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그저 남들 앞에 서서 노래하고 춤추는 게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당시 일본에서 인기를 끌던 아무로 나미에, 보아, 모닝구 무스메, SPEED를 특히 좋아했다고 한다. 워낙 노래하고 춤추는 걸 좋아하면서 방송에서 나오는 보아나 모닝구 무스메의 동작을 따라 하고 동경하며 가수 되길 원하니 아이리의 부모님은 당시 모닝구 무스메의 인기로 전성기를 구가하던 기획사인 업프런트 프로모션이 만든 어린이들을 위한 음악학원 업프런트 뮤직 스쿨에 아이리를 보냈다.

우파가 만든 업프런트 뮤직 스쿨은 수업료가 상당한 고액인데 비싼 수업료에 걸맞게 가창, 댄스의 기초 외에 특전도 상당히 많았다. 모닝구 무스메가 전성기로 활발히 활동할 때라 모닝구의 방송에 엑스트라로 출연할 수도 있었고 심지어 하로 소속 가수들의 앨범에 녹음 참여도 가능했다(물론 후렴 합창 수준이었지만). 아이리는 2002년 헬로 키즈 오디션에 참여하기 직전까지도 업프런트 뮤직스쿨에 수년간 다니고 있는 상태였다.[1] 큐트로 같이 활동한 우메다 에리카도 업프런트 뮤직스쿨에 아이리와 같이 다녔는데 에리카 말로는 아이리는 이 당시에도 또래들 중 댄스와 노래를 잘해서 업 프런트 뮤직스쿨의 우등생 그룹에 속했다고 한다.

업프런트 뮤직스쿨에 다니던 중 하로 키즈 오디션이 2002년 6월에 개최됐는데[2] 아마 당시 수도 근교의 연예인을 꿈꾸는 초등학생들은 대부분 신청했을 듯. 수천 대 1의 경쟁률 속 모닝구 무스메 멤버들이 지켜본 가운데 층쿠가 뽑은 인원은 15명이었다. 원래 마지막 회에 15명 중 여기서 최종 합격자를 또 가려낼 생각이었지만, 층쿠는 15명 전원 합격 판정을 내렸다. 당시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던 모닝구 무스메와 하로프로의 인기를 고려하면, 이 오디션에 합격한 것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 수 있다. 무려 1864 대 1의 경쟁률[3]을 기록했다.

아이리는 오디션에서 보아를 일본에서 주목받게 한 일본 3번째 싱글 気持ちはつたわる를 불렀는데 도저히 초등학생 2학년 만 8살 나이로는 믿기지 않는 가창력을 선보였다. 아이리가 노래를 부를 때 지켜보던 모닝구 무스메 멤버들이 놀라서 감탄할 정도였다. 층쿠는 당시 키즈 오디션에 대해 노래에 음정, 박자를 제대로 인식하고, 맞춘 아이는 아이리와 미야비 뿐이라고 밝혔다.

2.1. 연예계 입문

헬로! 프로젝트 키즈 오디션 합격 직후부터 연예계 활동을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큐트로 데뷔하기 이전부터 판매용 개별 사진이나 헬로 프로젝트 키즈 오디션 합격자의 명의로 방송에 출연한 영상기록이 남아있어 오디션 합격직후 부터 푸쉬를 받은 것으로 알려져있다.

하지만 유망주를 모아두는 선발팀으로 알려진 ZYX라는 유닛에 합류하지 못했으며, 스스로 이 시기에 자존심이 매우 높았다는 발언을 해 ZYX에 합류하지 못한 것에 대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그러나 2003년 나츠야키 미야비, 다나카 레이나와 함께 아아!(あぁ!)라는 유닛에 선발되어 데뷔하게 되었고, 당시 초등학교 3학년막내임에도 중심 멤버로 활동한다. 무려 뮤직 스테이션에 최연소 참가자라는 기록도 세웠다. 비록 대중적으로 뜨지는 못했지만 하로 팬들에게 아이리가 미래의 에이스감이라고 눈도장을 찍을 기회가 되었다. 더군다나 키즈 오디션 때 부른 게 아직 뇌리에 남아 있었을 때라 키즈 오디션 때의 실력이 거짓이 아니라는 게 증명이 되면서 키즈들 중 가창력 하나만큼은 아이리라는 인식이 생겼다. 키즈 오디션, あぁ!에서의 실력 발휘로 아이리는 당시 일본 팬들에게 키즈 4대 천왕이라는 평가를 얻게 되면서 기대주로 인식되었다.

아이리의 헬로 프로젝트 일생에서 분하다는 느낌을 가진 건 2004년 1월 결성된 베리즈코보에 선발되지 못한 것. 나중에 큐트 멤버들에게 당시 심정을 인터뷰로 물었을 때 분하다고 말한 멤버는 아이리 뿐. 키즈 4천왕 중 아이리와 메구미 탈락은 당시에도 말이 많았다. 사실 베리즈코보 멤버들의 나이를 보면 아이리 탈락은 어찌 보면 당연한데, 베리즈코보는 전체적으로 다 언니조에 막내인 리사코 같은 경우 비주얼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 베리즈코보가 메이저 데뷔 후 아이리는 남은 하로 키즈, 비 베리즈 멤버라고 불리는 상황이 됐는데 분했다는 마음이 들었다는 것처럼 당시 아이리는 자존감이 높은 아이였다고 나중에 스스로 밝혔다. 2004년 1월 베리즈코보 결성 이후 무려 메이저 데뷔 첫 해에 5개의 싱글을 발매 할 정도이니 베리즈코보가 결성되면서 하로 키즈의 모든 스포트라이트는 베리즈코보에 집중 될 수밖에 없었고 남은 키즈에 속했던 아이리는 소외될 수밖에 없었는데, 자존감이 높았던 아이리는 베리즈코보의 활동 중 방송이나 DVD 출연 때 가끔 비치는 모습을 보면 스스로 카메라를 멀리하는 모습을 보인다. 베리즈코보가 데뷔했을 때에는 서러움에 울면서도 그네들의 안무를 무대 뒤에서 연습하곤 했다고 한다.

2005년 6월 11일, 베리즈코보에 선발되지 않은 헬로 프로젝트 키즈 멤버들이 결성한 큐트의 멤버가 되었지만, 정작 하는 것은 CD팔이 소녀 생활이었다.
쇼핑몰이 몰린 곳에서 길거리 공연을 하고, 그자리에서 CD를 파는 이벤트를 반복한다.

3. 헬로 프로젝트 활동 시절

3.1. 큐트

(자세한 내용은 큐트 문서 참조)
인디즈 데뷔 싱글 맛사라 블루진(まっさらブルージーンズ)
큐트의 센터이자 비쥬얼 멤버. 남은 헬로 키즈, 비 베리즈 멤버로 불리던 아이리는 큐트가 2005년 6월 11일 결성되면서 큐트 멤버가 되었고, 결성 초기부터 에이스를 맡았다. 큐트 인디즈 활동의 첫 오리지널 곡은 わっきゃない(Z)인데[4] 큐트가 결성되면서 인디즈 싱글을 발매하고 오리지널 활동 곡으로 わっきゃない(Z)를 부르면서 헬로 합동 콘서트나 헬로 그룹 콘서트의 게스트로 활동했다.
2007년 2월 21일 발매된 큐트의 메이저 데뷔 싱글 桜チラリ(사쿠라 치라리)는 아이리 원탑 체제였다. 메이저 데뷔 싱글 발매를 기념해 2007년 2월 큐트의 첫 단독 콘서트가 열렸는데 여기에도 개인 솔로 무대가 있는 멤버는 아이리 뿐이었다. (고토 마키의 サヨナラのLOVE SONG을 불렀다) 큐트의 초기 대표곡으로 레코드 대상 최우수 신인 그룹상의 영광을 안겨준 都会っ子 純情도 아이리 원탑 곡이었고 확실히 2007년은 큐트 내에서 아이리 원탑을 내세운 해이다.
하지만, 헬로! 프로젝트 쪽이 큐트를 개밥에 도토리만도 못한 취급을 하고 있어 대중적 인지도는 바닥. 대규모 설문 조사에서 네이밍 퍼센트란 게 있는데 그래프에 이름을 올릴 칸을 받는 최저한의 수치다. 이걸 채우지 못하면 그래프에 이름을 못 올리고 리스트에 이름을 올리게 된다. 이걸 채우지 못해 권외 표기를 받는 등 영 좋지 않은 취급을 받았다. 그나마 다행히 데뷔 7년차인 2013년부터 큐트가 제대로 된 푸쉬를 받기 시작했다. 일본무도관 공연 발표[5]와 함께 싱글 판매량도 6만장 내외로 올랐으며 일본 무도관 공연, 요코하마 아레나 공연 등을 성공시켰다.
라스트 싱글 To Tomorrow / Final Squall / The Curtain Rises
2017년 6월 12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 큐트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다. 팀 큐트[6]와 함께 유종의 미를 거두며 12년 간의 아이돌 활동이 막을 내리게 되었다. 헬로 프로젝트 졸업 후, 아이리는 솔로 가수, 모델 활동을 비롯해 다양한 미디어 활동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3.2. Buono!

데뷔곡 ホントのじぶん(진정한 자신) MV
메이저 데뷔 이후 활발히 활동하면서 인기도 더 높아진 가운데 2007년 7월에 열린 페스티벌에서 가을에 TV 도쿄에서 방영될 새 애니인 수호캐릭터의 애니송 담당으로 헬로의 새 유닛 보노가 결성된다는 소식이 발표됐다. 베리즈코보의 멤버인 나츠야키 미야비 츠구나가 모모코도 함께 선발 되었다.
보노의 음악은 최초로 층쿠의 손을 벗어난 음악으로 음악 퀄리티가 락을 기반으로 상당히 좋았고 키즈들의 에이스만 모은 유닛이라 음악 퀄리티 못지 않게 실력도 좋아서 공연에서 백 밴드인 Dolce(돌체)를 기용, AR 반주가 아닌 생라이브를 한 것도 호평. 유닛으로 정규 그룹들 못지 않게 단독 콘서트 투어를 이어갈 정도. 보노는 캐릭캐릭체인지 애니 종영 후 유닛도 해체할 운명이었지만 이후 재결성 되어 유닛을 벗어난 인기로 재활동했는데 PIZZA-LA 사장이 보노 팬이라 가능했다는 소문이 있다. PIZZA-LA 사장이 보노 곡도 써주고 뮤비 제작할 때도 장소를 제공했다는 소문. 나중엔 보노 라디오 프로그램을 후원해 만들고 콘서트 공연도 메인 업체로 PIZZA-LA 명의로 후원. 보노가 찍은 PIZZA-LA 광고
대표곡 初恋サイダー (첫사랑 사이다) 일본무도관 라이브
보노의 노래는 아이돌 특유의 경쾌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커플링이나 정규 앨범 수록곡은 층쿠의 노래가 아니기 때문에 층쿠 스타일에 질린 팬들도 보노의 노래를 높게 평가한다. 특히 큐트에서 부를 수 없는 타입의 노래들이 많아 팬들은 오히려 보노의 명의로 활동하는 것을 좋게 보고 있었다고. 본인도 본업이랑 부업을 구분 못 하기도.. 실제로 큐트 명의가 아닌 개인 행사에서 종종 자신을 큐트와 '보노의 멤버'로 소개하기도 한다. 또한 보노로서 활동할 기회가 적었던 것에 대한 아쉬움이 있다고도 자주 언급했다. 그래도 정규 그룹이 아닌 파생 유닛이 10년간 거의 아무것도 안한 4년이 있긴 했지만활동한 건 대단한 생명력이다. 아이리는 솔로 콘서트에서도 보노의 대표곡을 꾸준히 부르고 있다.
보노는 2017년 5월 22일, 사실상 해산 라이브였던 'Buono! LIVE 2017~Pienezza!~'을 마지막으로 10년간의 활동을 종료했다.[7] 라이브는 요코하마 아레나에서 개최되었으며, 약 1만 5000명을 관객을 모았다. 이 날 스페셜 게스트로 큐트도 출연했는데, 멤버들은 '평소 큐트에서는 볼 수 없는 아이리의 보노에서의 즐거운 모습에 조금은 서운했다'라고 말하기도 했다.

3.3. 연기 활동

제대로 된 대사를 받아 비중을 가진 연기를 하게 된 것은 2007년 큐트 명의의 연극 '자는 아이는 큐트' 부터로 매년 계열사 소속의 연극인, 다른 멤버들과 함께 아이돌 연극을 치러온 경험이 있다.

DVD용 공포물인 왕게임 등의 하로프로 멤버들과 소소한 공포영화에 출연한다. 그런데 왕 게임의 경우는 평가가 망작 of 망작이라고 할 정도로 쓰레기로 취급받는다.

3.4. 솔로 참여 곡

3.4.1. 정식 수록곡

3.4.2. 기존 그룹 곡 솔로버전

3.4.3. 2011년 아이튠즈 헬로 커버곡

3.4.4. 기타



[1] 2002년 5월 발매된 고토 마키 싱글에 업프런트 뮤직스쿨 소속 아이들 5명이 참여했는데 이 속에 아이리도 포함되어 있었다고. [2] 헬로 키즈 오디션이 열린 이유는 모닝구의 새 멤버 오디션에 연령제한이 중학생부터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생들의 신청이 많아서 오직 초등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오디션을 한번 열어보자 해서 열린 것이다. 처음에는 몇 년간 단련 시킨 뒤에 모닝구 무스메의 멤버로 영입할 계획이었다는데, 이 계획이 실행되진 않았지만 나중에 하로 에그라고 불리는 연습생 시스템이 만들어진 건 이 계획의 영향이었다고 한다. [3] 총 27,958명이 지원했고 15명이 합격했다. [4] 실제 큐트 첫 오리지널 활동 곡으로 먼저 녹음한 곡은 큐트 메이저 데뷔 1집 앨범에 실린 As ONE이라고 한다. [5] 층쿠 목소리의 등장부터 초반 4분정도까지는 멤버 전원이 안 좋은 일이 있는 줄 알고 엄청나게 긴장하고 있었다. [6] 큐트 멤버, 스태프, 그리고 팬들을 합쳐서 부르는 말 [7] 2017년 6월30일 츠구나가 모모코의 연예계 은퇴와 멤버들의 헬로 프로젝트 졸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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