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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11-01 16:57:47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슈테른베르크 라슬로의 감독직 및 기타 직책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헝가리 축구 국가대표팀 역대 주장
샤로시 죄르지
(1934)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1934~1936)
투러이 요제프
(1936)
}}} ||
파일:Sternberg László.jpg
이름[1] 슈테른베르크 라슬로
(Sternberg László)
생년월일 1905년 5월 28일
사망년월일 1982년 7월 4일
국적 파일:헝가리 국기.svg 헝가리
출신지 불명
포지션 풀백
신체조건 불명
등번호 -[2]
소속팀 AS 노베세 (1925-1926)
안드레아 도리아 (1926-1927)
우이페슈트 FC (1927-1928)
뉴욕 자이언츠 (1928-1929)
브루클린 하코아 (1929-1930)
하코아 올스타 (1930-1931)
뉴욕 아메리칸스 (1932)
우이페슈트 FC (1932-1936)
레드 스타 파리 (1936-1937)
감독 우이페슈트 FC (1937-1938)
국가대표 19경기 0골 (1928-1936)

1. 개요2. 생애
2.1. 선수 생활2.2. 감독 생활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4. 수상
4.1. 클럽4.2. 감독

1. 개요

헝가리의 전 축구인.

2. 생애[3]

2.1. 선수 생활

2.1.1. 클럽

슈테른베르크는 축구 선수 생활 초기에 헝가리의 몇 클럽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1925년의 뇌물 사건에 연루되어 슈테른베르크는 헝가리에서의 축구 선수 자격이 일시 정지되었고 이탈리아에서 2시즌을 보내게 된다. 처음에는 2부 리그 소속의 AS 노베세에서 뛰었고 그 다음 시즌에는 안드레아 도비아[4]에서 기량을 인정받아 주전이 되었다.

하지만 이탈리아에서도 1927년부터 외국인 출전 제한 정책을 펴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고 우이페슈트에서 1년간 뛰고 미국으로 건너갔다. 당시 미국 축구계에는 헝가리 선수들이 꽤 있었고 그 중에는 나중에 감독으로 더 유명하게 될 벨러 구트먼도 뛰고 있었다. 미국에서도 슈테른베르크의 파란만장한 축구 인생은 계속 되었는데 뉴욕 자이언츠에서 뛴지 얼마 되지 않아 이번엔 축구 전쟁으로 미국 리그가 쪼개졌다. 슈테른베르크는 이민자가 많던 하코아로 팀을 옮겼고 이 곳에서 컵 대회 우승을 차지했다.

그러다 미국 리그가 재정적으로 어려워지자 슈테른베르크는 다시 헝가리로 건너갔고 우이페슈트에서 우승의 주역이 되며 활약하였다. 슈테른베르크는 이후 프랑스의 레드 스타 파리에 건너가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냈다.

2.1.2. 국가대표팀

슈테른베르크의 국가대표팀 출전 기록은 1928년 3월 중유럽 컵 이탈리아전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미국 생활 4년간 대표팀에 소집되지 못했고 1934년에서야 다시 뽑힐 수 있었다.

1934년 월드컵에서 슈테른베르크는 주장으로 출전했고 헝가리의 8강 진출을 이끌었다. 그의 마지막 출전은 1936년 5월 이탈리아전으로 헝가리는 1대3으로 패했다.

2.2. 감독 생활

레드 스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고 잠시 위페슈트에서 감독으로 일하기도 했다. 그 이후엔 다시 미국으로 건너갔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양발 사용이 가능하고 육체적으로 강한 수비수였다고 전해진다.

4. 수상

4.1. 클럽

4.2. 감독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서양식 이름으로도 이 항목에 들어올 수 있다. [2] 이 시대에는 등번호가 존재하지 않았다. [3]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4] UC 삼프도리아의 전신. 1946년 산피에르 다베네세와 안드레아 도비아가 합병하여 지금의 삼프도리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