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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21:06:10

소니 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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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0><colcolor=#fff> 소니 빈
Sawney Bean[1]
파일:sawneybean2-1.jpg
소니 빈 일가를 묘사한 그림 그림 출처.
본명 Alexander "Sawney" Bean
알렉산더 "소니" 빈
출생 출생일 미상
스코틀랜드 왕국 이스트로디언[2]
사망 1459년? (향년 ??)
스코틀랜드 왕국
국적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 왕국
]][[틀:국기|
행정구
스코틀랜드 왕국
]][[틀:국기|
속령
스코틀랜드 왕국
]]
거주지 스코틀랜드 왕국, 갤러웨이 해변 동굴
사인 사형 - 능지형으로 사망
범죄 유형 연쇄살인( 식인)
슬하 8남, 6녀
부모 아버지
1. 개요2. 실존 인물 여부3. 일생(생애)
3.1. 체포3.2. 최후
4. 전설과 영향 받은 창작물5.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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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15세기~ 16세기에 살았다고 알려진 스코틀랜드 살인마.

소니 빈의 이야기는 에든버러의 필수 관광코스로 재조명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런 식으로 소니 빈의 동굴을 찾아가는 관광객들도 있다.

2. 실존 인물 여부

사실 그의 존재가 확실하지는 않은 도시전설로, 많은 역사학자들은 소니 빈의 실존여부를 부정적으로 여기고 있다. 설령 실존했더라도 그의 일화가 실제에 비해 어느정도 과장되었을 수도 있다. 우선 여러 요소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부분이 많다.[3] 문제는 몇몇 유튜버들이 과장을 마치 확실한 실화인 양 어그로를 끌어 방송하거나 영상을 만든다는 것이다.[4]

3. 일생(생애)

이스트로디언에서 출생 했다.

소니 빈의 아버지는 하수구 청소를 하는 사람이었으나, 소니 빈은 그런 삶을 살지 않기로 결정하고 같은 생각을 가진 여자 하나를 데리고 갤러웨이 해변에 정착했다.

소니 빈이 집으로 선택한 곳은 베넨 헤드(Bennane head) 해변가 동굴이었다. 이 동굴은 매우 깊고 길어서 내부가 넓은 데다가 조수의 흐름에 따라 이틀에 한 번 꼴로 입구가 물에 잠기기 때문에 숨어 살기에는 더없이 적합했다. 소니 빈은 이 동굴에서 살림을 차리고 강도질을 생업으로 삼았다. 입막음을 위해 자신이 잡은 희생자는 반드시 죽였고 꽤 많은 양의 재물을 모았다. 하지만 주인이 누군지 티가 날 만한 비싸고 값진 물건은 내다팔기가 어려웠고, 티가 안 나는 옷가지나 잔돈 따위로는 먹고 살기에 부족했다.

결국 소니 빈은 동굴 구석에 방치해뒀던 희생자의 시체를 식량으로 삼는 방법을 택했다. 소니 빈 부부는 동물을 잡아 도축하듯 사람을 잡으면 배를 갈라 내장은 바다에 버리고. 팔다리는 소금에 절여서 동굴 벽에 걸어두기도 했다. 먹고 남은 뼈는 동굴 구석에 던져놓았다.

소니 빈 부부는 동굴 속에서 14명의 자식들(8남6녀)를 낳았는데, 그 자식들이 서로 근친상간하여 더 많은 아이를 낳았으며, 여러 번의 근친상간을 거듭한 결과 소니 빈 일가는 27명의 남자와 21명의 여자로 이루어진 대가족을 이루게 됐다. 이들 역시 자신의 부모를 따라 강도살인과 식인을 서슴지 않았으며, 군대처럼 조직적으로 움직이면서 희생자 무리를 앞뒤로 포위한 후 죽여서 잡아먹고 재물을 약탈하곤 했다. 같은 가족들끼리는 결코 잡아먹지 않았다. 아이들은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한 탓에 원시적인 회화 수준의 언어 능력만 가지고 있었다.

그 후 20년간 그 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실종되자 지역사회에 큰 불안을 안겨주었고, 당국에서도 조사에 나섰지만 증거가 거의 없는 탓에 소니 빈 일가의 범행임을 알아낼 수 없었다. 그들의 은신처도 찾아보려고 했으나 동굴 같은 곳에 사람이 살 수는 없다고 여겼기 때문에 발각되지 않았다. 간혹 동굴에 접근한 사람들도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자신들이 알아낸 사실을 바깥 세상에 전하지도 못하고 잡아먹혔기에 결국 소니 빈을 찾으려는 시도는 번번이 실패로 돌아가게 된다.

당국은 계속 이어지는 실종사건을 수사해 의심가는 사람들을 조사했지만 그저 피해자와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알려진 것 뿐인 엉뚱한 사람만 잡을 뿐이었다. 물론 피해자가 정말로 마지막으로 만난 자는 소니 빈 일당이지만,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그들을 제외하고는 아무도 없었다.

3.1. 체포

그렇게 약 25년 동안 살아가다가, 어느 부부를 습격한 날에 큰 실수를 하게 되어 정체가 드러나고 만다. 시장을 보고 돌아가던[5] 한 부부를 습격해 부인은 죽이고 남편까지 죽이려던 차에 무장 용병들을 호위로 동행한 상단이 나타난 것. 스무 명이 넘는 용병들과 맞닥트린 소니 빈 일당은 맞서 싸웠으나 결국엔 패배했고, 동굴로 운반하기 위해 옷을 벗기고 배를 갈라 내장을 들어내어 "손질"을 마친 부인의 시체를 남겨둔 채 달아나고 만다. 이 남성은 기록상 소니 빈 일행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유일한 사람이다.

살아남은 남편과 용병들은 즉시 글래스고로 가서 소니 빈 일당의 존재를 증언했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관리들은 끔찍하게 훼손된 아내의 시체를 보고 경악해 영주에게 보고했으며, 영주 역시 사태의 심각성을 알고 곧바로 창과 검, 방패로 무장한 군인 400여 명과 훈련된 군견 여러 마리를 보내 범인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지역 주민들 또한 가세했다고 한다.

소니 빈의 거처는 워낙 은밀했기 때문에 수색대가 처음 한동안은 수색에 허탕만 쳤다. 하지만 어느 날 군인들이 소니 빈 일가가 숨어 지내던 동굴 근처를 지나던 중, 군견들이 시체 냄새를 맡아 결국 찾아내고 만다.

이때 군인들은 그곳에서 소니 빈 일당 48명을 모조리 붙잡았다. 군인들은 동굴을 수색했을때 25년 간 산더미처럼 쌓인 사람의 시체와 백골, 약탈물, 그리고 벽에 걸린 인육들을 보았고, 그 자리에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나중에 나온 자료에 의하면 피해자 수만 무려 5,593명에 달했다고 한다.

3.2. 최후

체포된 소니 빈과 그의 일당들은 에든버러로 끌려왔다. 이 사건은 당시 스코틀랜드 전체를 충격에 빠뜨렸다. 특히 소니 빈 일당의 행각이 너무나 잔혹하고 악랄했기 때문에, 국왕과 관리들은 별도의 법제를 적용하여 범인들을 모두 사형에 처했다.

전설과 가장 비슷하다고 평가되는, 1696년에 출판된 너새니얼 크라우치(Nathaniel Crouch)의 책에 따르면 그들은 스코틀랜드 왕 제임스 2세[6]가 죽기 1년 전인 1459년에 붙잡혀 남자들은 오체분시[7]을 당했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죽는 것을 지켜본 이후 화형에 처해졌다고 한다. 어린아이들도 한 살의 여자아이를 제외하고 모두 동일한 형벌에 처해졌다. 유일하게 살아남은 여자아이는 나중에 나이가 들어 가족사를 알게 되자 죄책감으로 인해 스스로 목을 매달아 목숨을 끊었다.

사형 당시 소니 빈은 유언으로 "이것은 끝이 아니며, 절대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라는 말을 남겼다고 전해진다.

소니 빈 일가는 사형받지 않은 여자아이를 제외하고 모두 자신들의 악행을 후회하지 않았다고 한다. 정황상 강도와 살인, 식인 행각을 벌인 이후 자식들을 낳은 걸로 보이는데, 당연히 이런 짓들로 먹고 사는 소니 빈 부부가 자기 자식들에게 살인과 식인 등의 행위가 나쁜 짓이 아닌 먹고 살기 위해 하는 행위라는 등 비정상적인 교육을 했을 테니 그게 악행이라는 것 자체를 몰랐을 아이들이 애초에 죄책감을 느낄 수가 없었을 것이다. 부부를 제외한 자식들은 막장 부모의 피해자인 셈이지만[8], 어쨌거나 이들도 부모에 동참해 너무나 큰 피해를 입혔고, 당시 15~16세기에 인권이나 아동 학대 같은 개념도 없었던 시기이니 아이들도 피해자라고 생각할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만약 안 죽었어도 이미 일반인과 전혀 다른 과정을 거쳐 자라난 이들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 설령 현대였어도 이런 사건이 터지면 최소한 재사회화 과정을 거칠 수도 있으나, 교정하는 과정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동반되었을 것이고 성공도 불확실했을 것이다.[9]

4. 전설과 영향 받은 창작물

5. 관련 링크


[1] Alexander "Sawney" Bean(e). 보통은 Sawney Bean으로 불린다. [2] 기록에는 이스트로디언 출신으로 기록되어 있다 [3] 대표적으로 그들의 거처와 희생자의 숫자이다. 어린 아이와 임산부를 포함한 일가족이 이틀에 한번씩 입구가 잠겨오는 천연 동굴에서 산다는 것과 20년 넘게 6천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냈다는 것, 그리고 그 고기를 식용으로 삼아 연명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가능성이 매우 낮다. 특히나 "6천명에 가까운 희생자"를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실제로도 자백을 통해 좋은 교도소로 가려고 거짓말을 일삼았던 헨리 리 루카스의 사례만 봐도 이를 알 수 있다. 소니 빈 전설이 전해 내려오는 그대로 사실이라고 보긴 힘들고 구전으로 전해져 내려오는 지역 혹은 그 근처에 식인을 했거나 식인을 한다는 소문이 날 만큼 악랄한 인물or무리가 있었고 이 전설의 모티브가 되었다고 보는 것이 합당하다. [4] 사실 이 경우처럼 전설인지 실존 인물인지 구분이 안되거나 사실보다 부풀려진 인물들이 생각보다 전 세계적으로 많기 때문에 팩트 체크를 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5] 축제를 보고 돌아갔다는 말도 있다. [6] 잉글랜드왕 제임스 2세(스코틀랜드 왕으로는 제임스 7세)의 7대조 조상에 해당한다. 제임스 7세의 증조할머니인 메리 1세가 제임스 2세의 고손녀이다. [7] 팔다리와 생식기를 절단하고 과다출혈로 죽게 내버려 두었다. [8] 크메르 루주 집권기의 캄보디아에서 고아를 훈련시켜 만든 친위대원들도 어렸을 때부터 살생을 하면 보상을 하도록 키워져 살인에도 죄책감은 커녕 오히려 쾌감을 느끼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9] 현대시대에도 이들과 비슷한 경우인 버림받아 야생동물에게서 자란 이들을 교정하려는 시도를 했으나 전부 재사회화에 실패했다. [10] 납치와 식인, 근친상간, 동굴 거주 등 유사한 점이 매우 많기 때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