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1] |
셔시 페렌츠 (Sas Ferenc) |
생년월일 | 1915년 8월 16일 |
사망년월일 | 1988년 9월 3일 (향년 73세) |
국적 | 헝가리 인민 공화국 |
출신지 |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부다페스트 |
포지션 | 아웃사이드 라이트 포워드 |
신체조건 | 168cm | 69kg |
소속팀 |
MTK 헝가리아 FC (1934-1938) CA 보카 주니어스 (1938-1942) AA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 (1942-1948) |
국가대표 | 17경기 2골 (1936-193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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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의 전 축구 선수.2. 생애[2]
2.1. 어린 시절
셔시의 원래 이름은 손 페렌츠(Sohn Ferenc)[3]이다. 손은 독일에서 유래한 성씨이고 독일어로 아들이란 뜻이다. 셔시는 유대인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레오폴드는 셔시가 어렸을 때 전쟁으로 인해 사망했다. 셔시는 어릴 때 의사를 꿈꾸기도 했지만 축구를 더 좋아해서 축구 선수가 되었다.셔시는 헝가리어로 흰머리수리이다. 원래 성인 손과는 아무 관련이 없지만 헝가리 대표팀에서 뛰려면 헝가리식 성씨가 필요해서 셔시라는 성을 쓰게 되었다.
2.2. 선수 생활
2.2.1. 클럽
1934년에 MTK 헝가리아에서 데뷔한 셔시는 티트코시 팔 등과 공격진을 이뤘고 MTK 헝가리아는 1935-36, 1936-37 시즌에 연속 우승을 차지했다.1938년 월드컵이 끝난 후 셔시는 아르헨티나로 이민을 떠났다. 당시 헝가리 왕국의 유대인 정책에 불만을 느끼고 떠난 이민이었고 이에 헝가리의 축구 팬들의 서운함이 있었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르헨티나로 건너간 셔시는 프란시스코 손이라는 이름으로 CA 보카 주니어스에서 뛰게 되었다. 보카 주니어스에서도 리그 우승을 차지하기도 했지만 1940-41 시즌에는 출전 경기 수가 많이 줄었다. 1941년 3월의 친선 경기가 그의 마지막 보카 주니어스 출전 경기였고 1942년에 AA 아르헨티노스 주니어스로 이적했다.
2.2.2. 국가대표
1936년 4월 5일, 셔시는 오스트리아와의 시합에서 헝가리 대표팀에 데뷔했다. 이 경기에서 헝가리는 5대3으로 승리했고 셔시는 4주 후에 열린 다음 경기인 5월 3일 아일랜드 자유 주전에서 첫 골을 넣었다.셔시는 그 이후 2년간 헝가리 대표팀의 주전으로 활용되었고 1938년 월드컵에서 헝가리의 4경기를 모두 뛰었다. 헝가리는 준우승의 결과를 냈고 이것이 셔시의 대표팀 경력의 전부이다.
1938년에 셔시가 아르헨티나에 건너간 이후엔 대표팀 경력이 없다.
3. 플레이 스타일 & 평가
스피드와 볼컨트롤이 인상적이었지만 몸싸움에 약점이 있어서 수비수를 제치는 데에는 그만큼의 능력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한다.4. 사생활
셔시는 헝가리에서부터 사귀던 약혼자와 아르헨티나에서 결혼했다.5. 수상
5.1. 선수
5.1.1. 클럽
- 넴제티 버이녹샤그 I 우승 2회: 1935–36, 1936–37( MTK 헝가리아 FC)
- 아르헨티나 프리메라 디비시온 우승 1회: 1940( CA 보카 주니어스)
5.1.2. 국가대표
[1]
헝가리 출신 인물은 성+이름의 조합으로 이름을 표기하고 항목명도 그에 따랐다. 다만 인터넷 검색을 하려면 서양식으로 이름+성의 순으로 검색하는 게 더 찾기 쉽다.
[2]
출처: 위키피디아, 11v11
[3]
셔시는 헝가리 태생이므로 성+이름 순서로 기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