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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육군
제21보병사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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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충일
徐忠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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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무 | 대한민국 육군 |
기간 | 1967년 ~ 1993년 |
임관 | 육군사관학교 23기 |
최종 계급 | 소장 |
최종 보직 | 제21보병사단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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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 육군의 군인. 최종 계급은 소장. 제21보병사단장을 역임했다.2. 생애
서울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사범대학 부설고등학교를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한 모범생이다. 고등학생 시절부터 강직한 품성으로 주위의 믿음을 받았다.1963년 육군사관학교 23기로 입교하여 1967년 졸업과 함께 육군 포병 소위로 임관했다. 위관장교 시절에는 수도경비사령부에 근무하였다. 초급장교 근무 시부터 남다른 책임감과 지휘능력을 발휘하여 부하에 대한 애정이 깊은 군인으로 기억되고 있으며, 이 시기부터 이미 동료들로 부터 장군감이라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회 출신 장성으로 대령 시절 20사단 포병연대장을 역임하였으며 장군으로 진급 후 하나회 선배들인 이종구 장군과 이진삼 장군이 육군참모총장으로 재직 시 비서실장을 지낸 육사 23기의 선두주자 중 한명 이었다.
1993년 1월 소장 진급과 함께 21사단장에 임명되었으나, 1993년 8월 사생활과 관련된 투서가 청와대에 접수되었다는 이유로 급작스럽게 보직해임 당하고 전역하였다. 최전방의 핵심 상비사단장을 투서 하나 때문에 강제 예편 시키는 경우는 상식적으로 이해가 안된다는 점에서, 서충일 장군이 하나회 멤버이기 때문에 김영삼 정부의 군내 사조직 해체를 목적으로 하는 군개혁의 일환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견해도 있다. 관련 언론보도
하나회 관련자라는 불명예에도 불구하고 일부 후배 및 동료들로부터 국방에 이바지 할 아까운 인재가 중도에 하차됐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