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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01-29 18:43:39

서상락

<colcolor=#fff><colbgcolor=#0047a0> 이명 서영윤(徐永潤), 서영임(徐永林)
자(字) 정우(政禹)
본관 달성 서씨
출생 1893년 3월 23일
경상북도 달성군 성북면 산격동
사망 1923년
상훈 건국훈장 애국장

1. 생애2. 주요 활동3. 주 참고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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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생애

경북 달성(達城) 출신의 독립운동가 서상락(徐相洛/서영윤徐永潤/서영임徐永林)은 서봉기(徐鳳綺)의 아들로, 대구공립소학교의 재학 시절 근대적 학문 토론을 목적으로 한 계몽운동 단체인 개진협회(開進協會)를 조직하였다. 학교의 졸업 후 만주로 망명한 그는 통화현(通化縣)에 소재한 독립군 양성 기관인 신흥무관학교(新興武官學校)를 수료한 후 교관으로 활동하며 독립군 양성에 기여하였다. 그 과정에서 동교생인 김원봉(金元鳳), 양건호(梁健浩, 의열단원 李鍾岩의 이명), 김옥(金玉, 의열단원 金相潤의 이명) 등과 교류하였다.

2. 주요 활동

1919년 11월, 서상락은 김원봉과 양건호 및 12명의 동료와 항일 비밀결사 단체인 의열단(義烈團)을 조직하여 조선총독과 일제고관, 군부수뇌, 매국노 그리고 친일파 거두 등 일제의 주요기관을 와해하기 위한 활동을 이어 나갔다.

동년의 11월, 조선총독부, 동양척식주식회사, 경성일보사 등의 파괴와 밀정, 친일파 등의 주살을 계획한 의열단은 황상규(黃尙奎), 곽재기(郭在驥) 등과 폭탄 13개, 권총 2정을 중국에서 반입하였다. 1920년 6월에 밀양경찰서를 폭파하고자 폭탄을 보관하는 과정에서 그 사실이 일경에게 발각되었음을 알아챈 그들은 중국의 동삼성(東三省)으로 피신하였다. 이어 1920년 봄에는 국내에서 모금한 군자금 2,000원을 의열단에 제공하였으며 1922년 4월에는 중국 상해(上海)로 의열단의 본부를 이전하였다. 당시 재호단장(在滬團長)으로 임했던 서상락은 그 무렵의 여름, 해외 독립운동 기지 확보를 위해 독일로 향해 베를린에서 활동하기도 하였다. 그는 항일 투쟁에 공헌하던 끝에 병마, 또는 괴한의 습격으로 작고하였다.

서상락에게는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 주 참고 출처

공훈전자사료관-서상락
우리역사넷-의열단
대구역사문화대전-서상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