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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3-05-09 08:26:58

사무엘 샤이트


파일:Samuel_Scheidt.jpg
Samuel Scheidt
1624년의 동판화
출생 1587년 11월 3일 화요일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Flag_of_Electoral_Saxony.svg.png 작센 선제후국 할레
사망 1654년 3월 24일 화요일 (향년 67세)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Flag_of_Electoral_Saxony.svg.png 작센 선제후국 할레
직업 작곡가, 오르가니스트

1. 개요2. 생애3. 음악세계


Samuel Scheidt(1587~1654)

1. 개요

바로크 초기의 독일의 작곡가 독일 오르간음악의 기초를 만든 사람이다.

2. 생애

샤이트는 독일의 할레출신이며 교육을 위해 네덜란드에 잠시 있었던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 할레에서 살았다. 그의 아버지는 맥주 포도주의 생산과 보관을 담당하는 사람이었다. 샤이트의 어린 시절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으나 당대 최고의 오르가니스트였던 스벨링크에게 오르간 교육을 받기 위해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으로 갔으며 17살때인 1604년에 할레의 성 모리스(St. Moritzkirche) 교회의 오르가니스트가 되었다. 여기서 능력을 인정받은 샤이트는 1609년경 브란덴브루크 후작의 궁정 오르가니스트가 되었고 이후 궁정 악장이 되었다.

안정된 직장을 얻은 샤이트는 각지로 연주활동을 다녔으며 자신의 작품집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런데 그가 왕성하게 활동하던 시기에 하필 30년 전쟁이 발발하였으며 1625년 브란덴부르크 후작이 덴마크로 원정을 떠나면서 샤이트는 월급을 받지 못하게 되었다. 이 시기 샤이트는 음악교사와 필사 등의 부업을 하면서 근근이 생활을 이어갔는데, 브란덴부르크 후작이 소속된 덴마크 군대가 알브레히트 폰 발렌슈타인이 이끄는 신성로마제국 황제군에게 박살이 나는 바람에 샤이트는 밀린 월급도 받지 못한 채 사실상 해고되었다.

다행히 1628년 샤이트는 할레에 속한 개신교파 교회 연합의 음악 감독 자리를 얻었으며 1654년에 죽을 때까지 이 자리에 있었다. 생활의 안정을 찾은 샤이트는 다시 왕성하게 활동하면서 많은 작품을 남겼다.

3. 음악세계

샤이트가 살았던 할레는 개신교가 우세한 지역이었기 때문에 샤이트의 음악 역시 개신교 성향을 가지고 있는데, 이런 성향은 카톨릭이 우세해서 이탈리아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던 독일 남부의 음악성향과 대비가 된다. 특히 샤이트는 오르간 음악에 큰 족적을 남겼으며 북독일 오르간 음악의 시조로 일컬어진다. 샤이트 이후 북독일 오르간 음악은 하인리히 샤이데만(Heinrich Scheidemann, 1595 – 1663), 디트리히 북스테후데, 요한 아담 라인켄(Johann Adam Reincken, 1643-1722), 요한 파헬벨 등을 거쳐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로 계보가 이어진다.

1624년에 출판된 그의 작품집 《신보표(Tabulatura nova》는 그 당시의 가장 중요한 오르간곡집 중 하나인데, 스승인 스벨링크의 영향이 느껴지면서도 자신만의 독자적인 작법이 잘 나타나 있다. 이 곡집에는 오르간 미사, 토카타, 환상곡, 코랄 변주곡 등이 있는데 이 중에 특히 코랄 변주곡이 주목할만 하다. 그는 루터교회의 찬송가, 즉 코랄에 있는 음악적 가능성을 최대한 활용했는데, 코랄을 일종의 정선율(cantus primus)로 사용해서 성부 위치, 성부 수 등을 바꾸면서 변주를 하고 있다. 이처럼 코랄의 선율과 리듬을 대위법적으로 활용한 변주 양식은 바흐까지 이어지는 독일 오르간음악의 기초가 되었다.

아래의 "Vater unser im Himmelreich(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에 의한 오르간 변주곡"은 이와 같은 그의 작법을 전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Vater unser im Himmelreich, SSWV 104)》

샤이트는 오르간곡 외에도 현악합주와 같은 기악곡이나 종교음악도 많이 남겼는데, 사실 샤이트가 생전에 주력했던 분야는 오르간곡보다 종교음악이었다. 1620년 그가 최초로 출판한 작품집은 라틴어로 된 성가집이었다. 1630년부터는 영적인 협주곡(Geistliche Konzerten)이라는 제목으로 10년에 걸쳐 4개의 작품집을 출판했는데 통주저음이 붙어 있는 다성양식의 합창곡이다.

샤이데의 종교음악 중에는 카톨릭의 종교음악에 사용되는 다성양식(polyphony)에 코랄의 선율을 적용한 작품이 많은데 오늘날 들어보면 나름 이채롭다. 오르간을 위한 코랄 변주곡과 비슷하게 코랄을 일종의 정선율로 사용하고 있는데, 아래의 Christ lag in Todes Banden(그리스도께서 죽음의 포로가 되어도)[1]라는 합창곡이 샤이트식 코랄과 다성양식의 결합의 전형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의 포로가 되어도(Christ lag in Todes Banden)》




[1] 참고로 이 코랄은 바흐의 칸타타 4번의 주제로도 사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