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olbgcolor=#dddddd,#000000><colcolor=#000000,#dddddd> 빅토리아 눌런드 Victoria Nuland |
|
|
|
본명 |
빅토리아 제인 눌런드 Victoria Jane Nuland |
출생 | 1961년 7월 1일 ([age(1961-07-01)]세) |
미국 뉴욕주 뉴욕시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NNNcm, NNkg, 혈액형 |
가족 | 로버트 케이건(남편) |
학력 | 브라운 대학교 |
종교 | 종교 |
직업 | 외교관 |
소속 | 소속 |
서명 |
|
[clearfix]
1. 개요
미국의 외교관으로, 2023년 7월 웬디 셔먼이 퇴임한 후 국무부 부장관 대행(acting Deputy Secretary of State)을 맡고 있다.2. 생애
눌런드는 1961년에 몰도바-벨라루스계 유대인 2세 외과의사 셔윈 B. 눌런드[1]와 기독교인 영국계 어머니 로나 맥칸(Rona McKhann) 사이에서 태어났다. 1983년 브라운 대학교(Brown University)에서 문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러시아 문학, 정치학, 역사학을 공부했다.딕 체니 부통령 국가안보 고문, 2005년부터 2008년까지 제18대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대사를 역임했고, 유럽 재래식 무기 감축협상 담당 특사, 2011년에는 미국 국무부 대변인, 2013년부터 2017년까지 미국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담당 차관보,2021년부터 현재까지 국무부 정무차관(Under Secretary of State for Political Affairs)을 맡고 있다. 2023년 7월 웬디 셔먼이 퇴임한 후에는 국무부 부장관 대행도 하고 있다.
미 정부에서도 대표적인 대러 강경파로, 오바마 행정부 시절 시절 유로마이단에 깊이 연관개입되었다. 외교관 신분으로 키이우에 나타나 시위대를 적극 독려하여 친러정부를 전복하는데 일조했다. 그리고 2022년 러우전쟁이 개전되기 전까지 미국에서 계속 대러강경책을 입안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2024년 3월 우크라이나 전쟁의 전황이 악화되자 이에 책임을 지고 퇴임하였다. 후임에는 커트 캠벨이 지명되었다. #
3. 성향 및 혼맥
그 여자에게서 좋은 건 결코 나오지 않는다.
- 마리야 자하로바
- 마리야 자하로바
러시아에 대한 대표적인 매파로, 유로마이단과 그 이후에도 꾸준히 러시아에 대한 강경책을 주장한다. 나토 대사 시절 2008년 부쿠레슈티 나토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절차와 일정을 규정한 ‘회원국행동계획’(MAPs)을 독일과 프랑스의 반대를 제압하고 관철했다. 이에 반발한 러시아는 조지아 전쟁을 감행했다. 오바마 행정부 때 국무부 유럽·유라시아 차관보로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발점인 2014년 우크라이나의 친러 정권을 붕괴시킨 유로마이단 사태에 깊숙이 관여했다. 직접 시위 사태의 현장에서 시위대들에게 샌드위치를 나눠 주며 독려했다. 또한 당시 제프리 파이엇 우크라이나 주재 미 대사와의 통화에서 미온적인 유럽연합에 비속어로 욕을 퍼붓고, 우크라이나의 후임 대통령을 누구로 해야 할지를 말하는 녹음 파일이 폭로되기도 했다. 러시아는 눌런드를 ‘어둠의 공주’라며 부르면서 미국이 쿠데타를 사주했다고 비난한다. 어떻게 보면 미러관계 악화와 러-우 분쟁의 원흉이라볼 수 있는 인물.
남편 로버트 케이건(Robert Kagan)은 브루킹스 연구소의 선임 연구원인 학자인데, 네오콘이다. 이라크 전쟁에서 대량살상무기(WMD)를 못 찾자 그런다고 없는 게 아니라는 주장을 했었다. # 2016년 대선에서는 도널드 트럼프에 반대하여 공화당을 탈당하고 힐러리 클린턴을 지지했다. # 빅토리아 눌런드의 동서[2] 킴벌리 케이건은 전쟁 지역 기사에서 국내 언론에서도 많이 인용하는 "전쟁 연구소(Institute for the Study of War)"의 창립자이며 의장이다. #1,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