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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2-12-02 10:44:28

비르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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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르잔드 성채와 구도심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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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아크바리예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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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의 첫 근대 학교 중 하나인 쇼우카티예 마드라사

1. 개요2. 역사

1. 개요

페르시아어: بیرجند
영어: Birjand

이란 동부 남호라산 주의 주도. 케르만에서 동북쪽으로 300km, 마슈하드에서 남쪽으로 320km, 자볼에서 서북쪽으로 240km떨어진 협곡 분지에 위치한다. 인구는 약 20만명이다. 특산물은 사프란으로, 이란을 대표하는 양질의 사프란 산지로 명성이 높다. 그외에 수제 카펫 제조업이 이어지고 있다. 전통적으로 이란 고원 호라산 지역과 발루치스탄 및 인도 대륙을 잇는 교통의 요지였다. 현재까지도 인도, 아프가니스탄과의 교역을 담당하는 관세청이 설치되어 있다. 시가지 북부의 구도심에는 비르잔드 성채 등의 유적들이 있고, 남부에는 페르시아 정원의 대표격으로 2011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아크바리예 정원을 비롯하여 카자르 왕조 시기에 세워진 옛 정원들이 여럿 남아있다.

비르잔드에는 인구에 비해 대학이 많은 편이다. 시가지 남부에 비르잔드 의대, 서남부에 비르잔드 기술대, 동남부에 아자드 이슬람 대학교 비르잔드 캠퍼스, 도시 동쪽 외곽에 비르잔드 대학교가 있다. 동북쪽 외곽에는 비르잔드 샤히드 카으웨 국제공항이 자리한다. 주민들은 대부분 페르시아인이나 호라산 아랍인들도 일부 있다. 출신 인물로 16세기의 천문학자 압달 알리 알비르잔디, 이스파한 철강 회사의 창립자이자 팔라비 왕조 시절 경제부 장관을 지낸 아미르 알리 칸 셰이바니, 1962-64년 이란 총리를 지낸 아사돌라 알람, 이란을 대표하는 지리학자 모하메드 하산 간지, 이란 전통 음악가 시마 비마 등이 있다. 해발 1500m의 고지대에 위치하여 여름에도 40도를 잘 넘지 않고 겨울에는 영하 15도까지 떨어진다.

2. 역사

동남쪽으로 20km 떨어진 산간 지역인 쿠치에서는 기원전 5천년 경의 문자 기록으로 추정되는 라크 마자르 유적이 발견되었다. 그외에 아케메네스 제국, 파르티아, 사산 제국 시기의 고대 문자와 이슬람 정복 후의 아랍어 / 페르시아어 명문까지 지속적으로 명문이 새겨진 것으로 보아 일대에는 지속적으로 인마의 왕래가 활발했던 것을 알 수 있다. 다만 비르잔드 도시 자체에 대한 언급은 13세기 야쿠트 알하마위의 기록이 처음이다. 중세 시기 비르잔드는 이란 중동부에 해당하는 쿠히스탄 (코헤스탄)의 중심 도시로 번영하였다. 다만 지진으로 수차례 파괴되는 불운을 겪었다.

사파비 제국기 비르잔드에는 아미리야 가문이 태수직을 세습하며 설립된 아미리야 토후국이 세워져 수세기간 자치를 유지하였다. 19세기 헤라트 분쟁 및 영국-카자르 전쟁 후 비르잔드는 이란 동부의 요충지로 각광받았다. 1865년 비르잔드에는 이란에서 테헤란의 다르올푸난과 타브리즈의 루슈디예에 이어 세번째로 세워진 근대 교육기관인 쇼우카티예 마드라사가 세워졌고,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19세기 말엽에는 영국과 러시아가 영사관을 두었다. 1912년에는 영국계 사흐네샤히 은행이 설립되었고, 1933년에는 테헤란- 부셰르에 이은 이란의 3번째 공항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