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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수정 시각 : 2024-11-18 14:43:25

비랩 역사왜곡 소설 수입 논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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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의. 사건·사고 관련 내용을 설명합니다.

사건 사고 관련 서술 규정을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1. 개요2. 청룡도등
2.1. 논란
2.1.1. 비판: 소설 원문에 "신라가 항복했다"는 서술이 존재한다.2.1.2. 반론: 해당 문장은 "신라에게 항복했다"로 번역해야 옳다.2.1.3. 기타2.1.4. 작가에 대한 비판
2.1.4.1. 항미원조전쟁2.1.4.2. 북한 사람은 조선족이다
2.2. 여파 및 결론
3. 이합화타적백묘사존: 바보 허스키와 그의 흰 고양이 사존
3.1. 논란
3.1.1. 비판1: 하나의 산을 '백두산'과 '장백산'이라 나누어 썼다.3.1.2. 반론1: 원문에서 쓰인 '백두산'과 '장백산'은 별개의 산이다.3.1.3. 비판2: '장백산'이라는 명칭의 사용 자체가 잘못되었다.3.1.4. 반론2: '장백산' 명칭 사용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다.3.1.5. 그 외: 원작과 관계 없이 비랩에 과실이 있다.3.1.6. 비판3: 소설에 나오는 '삼계탕'은 문화공정이다3.1.7. 기타
3.2. 여파 및 결론
4. 천보복요록
4.1. 논란
4.1.1. 비판 : 만리장성이 요동에서 시작한다는 서술은 동북공정이다.4.1.2. 반론 : 당나라 만리장성은 진-한 장성에서 이어진 것이다.
4.2. 여파 및 결론

[clearfix]

1. 개요

2020년 디앤씨미디어 BL 소설 전문 레이블 비랩에서 수입한 중국 소설에서 역사 왜곡과 동북공정적 사관이 담긴 서술에 대하여 논란이 일었다.

해당 문서는 비랩과 관련된 논란을 다루는 문서이므로, 비랩과 출판을 계약한 소설과 그 작가에 대한 논란만을 기재한다.

2. 청룡도등

2.1. 논란

2.1.1. 비판: 소설 원문에 "신라가 항복했다"는 서술이 존재한다.

2020년 10월 27일, 트위터를 통해(원문: 디미토리) 소설 원문에 왜곡된 역사를 기반으로 한 서술이 존재한다는 비판이 제기되었다.
청룡도등 번역본에 신라의 항복을 받았다는 내용 있어?
중국어 원문엔 있는데

사성 원년에 당 중종 이현은 여릉왕으로 폐위되어(684년 2월 26일에 폐위 당함) 위씨 일족과 함께 영남으로 유배되고, 기왕 이단 (후의 당 예종)은 별궁에 즉위하여 별궁에서 지내며, 모든 일을 하늘에 맡긴 무씨(측전무후) 및 섭정왕이 단초결정을 듣고 연호를 수공으로 바꿨다(685년).

이듬해, 당은 안동에 군사를 보내어 고려를 평정하고(고구려의 당시 이름=고려), 신라의 항복을 받았다.

嗣圣元年, 唐中宗李显被废为庐陵王, 与韦氏一族流放岭南 ; 冀王李旦即位, 居于别宫, 凡事皆听天后武氏及摄政王单超裁决, 改年号垂拱。

次年, 唐发兵安东, 征平高丽, 纳降新罗

번역기 돌렸어 #

해당 문단은 ‘6권 제 110장 칭제稱帝’ 후반부에 등장한다. 한국 정발본에선 “이듬해 ~ 항복을 받았다.”라는 문장이 존재하지 않는다.
中國東北與東北亞古代交通史에 당의 고구려 정복 당시 가물성 부분 서술

唐收复辽东,并纳降高句丽哥勿城后,乃置为“哥勿州”。
당은 요동을 수복함과 아울러 고구려 가물성의 항복을 받아낸 후 '가물주'를 두었다.

- 중국동북여동북아고대교통사 제6장 中[1]

唐发兵安东,征平高丽,纳降新罗
唐收复辽东,并纳降高句丽哥勿城

주어는 둘다 唐, 纳降의 서술대상은 뒤에 위치한 신라/고구려가물성
당이 신라/고구려가물성의 항복을 받았다

위에 서술된 中國東北與東北亞古代交通史 제6장 "수, 당, 5대(발해왕국 포함) 시대(8~10세기) 중국동북여동북아의고대교통" p249을 보면 정확히 같은 내용이 서술되어 있으며 문맥과 번역 둘다 '당이 고구려가물성의 항복을 받았다/무너뜨렸다'라고 표현될 수밖에 없다. 그렇기에 문제가 된 문장이 똑같이 '당이 신라의 항복을 받았다/무너뜨렸다'라고 표현되며 하단의 옹호론은 신뢰하기 어렵다.

2.1.2. 반론: 해당 문장은 "신라에게 항복했다"로 번역해야 옳다.

@:征平高丽,纳降新罗
고구려를 정벌하여 신라에 투항케했다.

나당연합 얘기인데 신라를 목적어로 오역해서 신라도 항복했다라고 하는건가

▲중국어 존잘님께 허락받은 트훔이고 난 중국어 1도 모르는 사람이라 문법설명도 못하지만 번역기를 너무 맹신하지 말자. 번역기 오역이 많으니까... #

2.1.3. 기타

2.1.4. 작가에 대한 비판

이 작가의 다른 작품 <난득정심>에서 6.25 전쟁을 '항미원조'라고 표현하며, 북한인을 중국의 소수민족 중 하나인 조선족과 동일하게 표기하여 발생한 비판이다. 이 책은 대한민국에 출판된 적이 없다.
2.1.4.1. 항미원조전쟁
항미원조 抗美援朝

군신으로 불리는 린뱌오(林彪)가 이끄는 이 군대는 해방전쟁 때부터 절대 주력 전투부대로 한때 27만 명에 달했다. 제4야전군의 3개 '조선사단'은 항미원조전쟁 중 무기를 소지한 채 북조선에 넘겨져, 직접 조선 제1호 지도자인 김일성에게 관할되었다.
这只由有军神之称的林彪所带领的军队,从解放战争时期开始就是绝对的主力战斗部队,总兵力一度达到27万人之多。在抗美援朝战争中,第四野战军的三个“朝鲜师”被连人带武器移交北朝鲜,直接受辖于北朝鲜第一号领导人金曰成。

이명우는 살짝 숨을 내쉬며 "-내가 처음 입대했을 때조차 4야라는 배경 때문에 대비가 됐었는데…. 북한군은 사실 중국군을 두려워하는 군대다. 항미원조 전쟁은 맥아더의 거만함뿐 아니라 북조선 민족의 중국군에 대한 오만한 마음을 무너뜨렸다."라고 말했다.
李明羽轻轻吐出一口气,“——甚至连我刚刚参军的时候,也因为有着四野的背景而倍受防备……北朝鲜的军队,其实是相当畏惧中国军人的。抗美援朝战争不仅仅打垮了麦克阿瑟的高傲,也打垮了北朝鲜民族对于中国军队的轻慢之心。”

항미원조라는 단어 외에도, '중국군의 위대함'이란 말이 나오며, 6.25 전쟁 당시 유엔군 총사령관으로서 한국을 위해 싸웠던 맥아더의 거만함을 무너뜨렸다고 작중에서 얘기하고 있다.
2.1.4.2. 북한 사람은 조선족이다
작품 속에서는 북한 리명우 참모장(北朝鲜李明羽参谋长)이 나온다.

리명우 북한 군사총장은 최근 몇 년간 동남아시아 정치지형의 주목을 받아온 인물로, 그의 강경 수단은 많은 미국유럽 국가들로 하여금 그를 극도로 꺼리게 했다. 몇 년 전부터 원씨 집안은 그와 많은 거래를 했지만 원성을 제외하고는 그와 개인적인 왕래가 거의 없었다.
北朝鲜军事总长李明羽,是近几年来东南亚政治格局里备受瞩目的人物,他的强硬手段让很多欧美国家都对他甚为忌惮。早几年袁家就和他有很多生意往来,但是除了袁城之外,几乎没有其他袁家人跟他有私人来往。

새하얀 눈썹 끝이 살짝 떨리네! 그러나 추궁을 당하기도 전에 리명우는 "당신은 내가 순수한 조선족 사람이 아니라는 걸 모를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는 중국에서 군사를 한 적이 있다"고 말했다.
朗白眉梢微微一跳!但是还没等他追问,李明羽开口打断了他:“你恐怕不知道,我并不是个纯粹的朝鲜族人。我的祖父以前在中国当过兵。”

작중에서는 북한을 지칭함에 있어 北朝鲜이라는 말을 쓰며 북한 사람을 北朝鲜的军, 즉 북조선민족이라고 지칭하는데 북한 사람인 리명우 참모총장이 자신을 朝鲜族, 즉 조선족이라고 일컬으며 자신의 할아버지가 중국인이라는 걸 암시하는 말을 하고 있다. 이는 북한 사람을 중국의 소수민족인 조선족과 동일하게 보는 관점을 작중에서 드러내고 있다고 판단할 수밖에 없다.

2.2. 여파 및 결론

2020년 8월 3일, 비랩에서 공지를 게시했다. 아래는 원문.
안녕하세요. 비랩 편집부입니다.

<청룡도등>에 대하여 공지 드립니다.
<청룡도등>은 6권 완결이며, 현재 출간된 분량은 삼 분의 일 정도입니다. <청룡도등>은 당태종과 당고종이 통치하던 당나라 시대(약 626년~683년)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입니다. 역사적으로는 우리나라 삼국시대에 해당합니다. 측천무후를 비롯해 당나라의 역사적 인물은 등장하나 우리나라 삼국시대의 역사적 인물은 따로 등장하지 않습니다.

작품 5, 6권에서 ‘고구려’나 ‘신라’ 그리고 ‘나당전쟁(670년~676년)’ 등이 일부 등장하나 왜곡된 역사관이라기보다 역사적 사실에 기반한 서술로 등장합니다. 당나라 황실의 암투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당시 당나라가 맞닥뜨린 지형적인 정세나 그에 따른 인물의 행동을 설명하기 위한 정보 정도로 파악됩니다.

우려하는 점이 많으시겠지만, 비랩 편집부는 중국 작품을 국내 소개하면서 왜곡된 역사관을 전달하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이고 있습니다.

작품에 관심 주신 점 진심으로 감사드리며, 앞으로도 다양한 의견에 귀 기울이는 편집부가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비랩 편집부의 공지

그러나 이후에도 민원이 거세지자 국민신문고에서는 디앤씨미디어에서 한국사적 관점에서 역사적 오류로 보여지는 사안이라 원작자와 협의하여 해당구절을 한글판에서 삭제했다고 소명하였다는 답변이 돌아왔다. 국민신문고 민원 답변

즉, 비판 측이 주장한 역사 왜곡이 맞다.

3. 이합화타적백묘사존: 바보 허스키와 그의 흰 고양이 사존

3.1. 논란

이 문서에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문서가 설명하는 작품이나 인물 등에 대한 줄거리, 결말, 반전 요소 등을 직·간접적으로 포함하고 있습니다.


지난번 채접진 천열때 장백산 자락의 마을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크게 다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중략)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장백산은 매년 예외 없이 혹한이 닥치는 곳이니 대강 넘기지 말고 마을을 잘 재건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이합화타적백묘사존: 바보 허스키와 그의 흰 고양이 사존 7권⌋ - 제125장 사존에겐 동반자가 필요 없다' 중에서 [2]
그는 막북 지역의 보리수나무와 장백산의 안개와 노을을 초만녕에게 보여 주지 못해서, 오늘 맛본 간식을 종이에 숨겨 뒀다가 초만녕이 깨어나면 함께 먹을 수 없어서 한스러웠다.
'⌈이합화타적백묘사존: 바보 허스키와 그의 흰 고양이 사존 7권⌋ - 제131장 사존의 독서' 중에서

소설 7권(한국 정발본 기준)에 등장하는 장백산이라는 이름의 산에 대해 한 트위터 유저가 "장백산=다케시마와 같이 백두산을 중국만의 영토로 편입시키려는 중국식 명칭"이라 주장하며 논란이 일었다.[3] 이에 국내에서 민감한 동북공정 이슈와도 연결되어 하루종일 트위터의 실시간 트렌드에 오를 정도로 사태가 커졌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문제 제기부터가 잘못된 논란이다.

한국 정발본이 아닌 소설 원문에서 7권 제 125장에 등장하는 산 이름은 ‘백두산’으로, 7권 제 131장에 등장하는 산 이름은 ‘장백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정발본에서는 모두 ‘장백산’으로 번역되어 버린 것. 즉, 오히려 백두산이라는 이름을 명확하게 표기하고 있는 셈이다.

이후 한국 에이전시인 비랩의 입장문에서 편집 실수임이 확실시되었다.
안녕하세요. 비랩 편집부입니다.

<이합화타적백묘사존> ‘장백산’ 표기 관련하여 독자분들께 큰 심려를 끼친 점 진심으로 사과드립니다.
비랩 편집부는 작가님의 의견을 확인하고 정확하게 전달하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하여 작가님께 연락하여 현재 논란이 되는 해당 내용을 확인받았습니다.

작품 7권에 등장하는 ‘백두산’과 ‘장백산’은 같은 산의 다른 명칭이 아니며 별개의 다른 산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명칭으로 표기된 점은 번역과 상관없는 편집부의 명백한 실수입니다. 이점 다시금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작가님의 설명에 따르면, <이합화타적백묘사존> 원문에 나온 두 번의 ‘백두산’은 ‘채접진’의 설정에서 따온 이름으로 추운 날씨를 표현하려고 눈 덮인 산봉우리를 떠올리며 ‘백두’라고 임의로 지은 명칭입니다. 그리고 ‘장백산’의 경우 중국의 산 명칭을 그대로 따온 것입니다.

작가님은 <이합화타적백묘사존>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가상이며 산 이름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논란이 된다면 한국어판에서 두 산의 이름을 ‘백설산’과 ‘한빙산’으로 변경해도 괜찮다고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비랩 편집부는 독자분들의 많은 지적과 비판을 겸허히 받아들이고 이후 유사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도록 성심껏 노력하겠습니다. 심려를 끼쳐드린 점 거듭 사과드리고, 송구하다는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비랩 편집부 올림
해당 표기와 관련한 비랩 편집부의 공지

백두산 백두산정계비부터 국경을 나누었던 산으로, 장백산이라는 명칭 역시 조선왕조실록에도 등장하는 백두산의 여러 이름 중 하나일뿐 다케시마처럼 후일 인위적으로 붙여진 명칭이 아니다.

소설 내에는 동북공정의 관건인 수나라, 당나라, 발해, 고구려는커녕 한사군이나 광개토대왕릉비도 등장하지 않을뿐더러, 만주족이 나와 청조의 삼선녀설화를 얘기하는 것도 아니고 숙신계 민족의 발상지의 논리를 프로파간다하지도 않는다. 즉 어떠한 동북공정적인 내용도 존재하지 않는다.[4]

애초에 중국 연예인들조차 이미지 관리는커녕 당당하게 하나의 중국을 지지하고 혐한, 동북공정을 설파하며 보상으로 푸시를 받는 마당에 작가가 정말로 그런 사상을 지니고 있다면 굳이 부정할 이유가 없다. 그냥 당당하게 주장하면 되고, 이미 그런 작가들이 한 트럭이다(...). 오히려 전면으로 부인한 작가의 신변을 걱정해야 할 판. 심지어 외전에서는 문화대혁명'1966년에 시작된 재난'이라고 표현하기까지했다.이건 진짜 걱정되는데?

별개로 소설 6권(한국 정발본 기준)에 '삼계탕'이 등장하여 중국의 한국 문화 예속화 시도라는 비판이 있다.

아래로는 자세한 전개 과정.

3.1.1. 비판1: 하나의 산을 '백두산'과 '장백산'이라 나누어 썼다.

지난번 채접진 천열때 장백산 자락의 마을이 하루아침에 폐허가 되었고 겨우 살아남은 사람들도 크게 다쳐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닌 모양이었다.

(중략)

날씨가 점점 추워지는데 장백산은 매년 예외 없이 혹한이 닥치는 곳이니 대강 넘기지 말고 마을을 잘 재건하라고 전해 주십시오.
'⌈이합화타적백묘사존: 바보 허스키와 그의 흰 고양이 사존 7권⌋ - 제125장 사존에겐 동반자가 필요 없다' 중에서 [5]
그는 막북 지역의 보리수나무와 장백산의 안개와 노을을 초만녕에게 보여 주지 못해서, 오늘 맛본 간식을 종이에 숨겨 뒀다가 초만녕이 깨어나면 함께 먹을 수 없어서 한스러웠다.
'⌈이합화타적백묘사존: 바보 허스키와 그의 흰 고양이 사존 7권⌋ - 제131장 사존의 독서' 중에서

작중 마을이 폐허가 되었을 때는 한국식 명칭인 백두산, 평화로운 분위기일 때는 중국식 명칭인 장백산이라고 부르므로 이는 혐한을 표출한 것이라는 주장.

3.1.2. 반론1: 원문에서 쓰인 '백두산'과 '장백산'은 별개의 산이다.

앞의 장백산(원문:백두산)은 154p에 나오는 채접진, 즉 촉 땅(쓰촨지역)에 있는 산이고요. 뒤의 255p에 나오는 장백산(원문:장백산)은 막북지역(몽골 쪽 고비사막)에 있는 산입니다...! 가상의 세계여서 딱 들어맞게 표현할 수는 없지만 위치가 달라요 #

비판의 전제부터가 잘못되었다.

위 설명에 따라 지도에 각 지역을 대략적으로 표시해 보자면 다음과 같다. 파란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쓰촨 지역, 붉은색으로 칠해진 부분이 막북 지역(외몽골 지역)이다.

파일:비랩/논란 문서 내 이합화타적백묘사존 관련 지도.jpg

보다시피 거리가 멀다. 즉 백두산이라 표기된 쓰촨 지역의 산과 장백산이라 표기된 막북 지역의 산은 엄연히 다른 산으로, 이렇게 되면 비판의 논지 자체가 무용해진다.

다시 비랩의 공지문을 살펴보자.
작품 7권에 등장하는 ‘백두산’과 ‘장백산’은 같은 산의 다른 명칭이 아니며 별개의 다른 산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의 명칭으로 표기된 점은 번역과 상관없는 편집부의 명백한 실수입니다. 이점 다시금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 #
작가님은 <이합화타적백묘사존>의 세계는 어디까지나 가상이며 산 이름에는 아무런 의도가 없다고 거듭 강조하셨습니다. 하지만 이 부분이 논란이 된다면 한국어판에서 두 산의 이름을 ‘백설산’과 ‘한빙산’으로 변경해도 괜찮다고 흔쾌히 허락하셨습니다. #

작가 역시 각각을 ‘백설산’과 ‘한빙산’이라 변경해도 된다면서 두 산을 별개의 것으로 취급하고 있다.

3.1.3. 비판2: '장백산'이라는 명칭의 사용 자체가 잘못되었다.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사용한 것 자체가 동북공정 의도를 담고 있거나, 최소한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냐는 주장.

요약: 중국이 고구려사를 자국 역사로 편입하고자 그 일환중 하나로 백두산이라는 명칭을 배제하고, 장백산을 고집하고 있다. 백두산이라는 명칭은 8세기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측되는 정통성 있는 이름이다. [ ]
중국 정부는 ‘장백산문화론’을 통해 ‘백두산=중국 것’이라는 논리를 들이대어 ‘백두산=한민족의 발상지, 한국사의 발원지’라는 논리를 부정하고 백두산을 매개로 한 만주와 한반도의 역사문화적 관련성을 제거하려고 한다.
시사IN : "백두산을 장백산으로 바꾸려는 중국의 야욕" (윤휘탁(국립한경대 교양학부 교수) 승인 2010.01.01 09:39)

3.1.4. 반론2: '장백산' 명칭 사용 자체에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다.

'장백산' 명칭 사용만으로 동북공정 시도로 간주하기는 어렵다.

상기 비판에 인용된 윤휘탁 교수의 논설부터가 ‘백두산은 우리 것도 중국의 것도 아니다. 역사적으로도 백두산 지역은 고조선·부여·고구려·발해의 관할권 속에 있었지만, 그 후에는 요·금·청의 관할권에 속해 있었다.’고 역사적 맥락을 설명하며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가 공동 자연 유산으로 관리하는 알프스 몽블랑 산의 사례를 본보기로 삼아 남북한과 중국이 함께 백두산을 지혜롭게 관리해야 한다'고 끝마치고 있다. 첫 번째 영상과는 맥락이 다르다.

또 윤 교수는 역사적 차이로 중국에선 장백산이라는 용어를 보편적으로 쓰니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가 없다고도 말한 바 있다.
장백산 문화론은 2007년 동계 아시안게임 때 가장 크게 한-중 갈등을 빚은 사안이다. 당시는 백두산에 관련한 길림성 정부의 움직임이 2020년대보다 더 활발하게 비추어진 시기였다. 2007년의 연변지역의 학교 명칭 변경, 동계 아시안 게임과 2010년 백두산에서 동북공정에 관련한 행사 주최, 2011년 장백산문화건설공정 사건, 그 일환으로 한-중간의 갈등이 재점화된 것이 2014년도다. '장백산'이란 명칭이 중국 정부가 90년대부터 추진한 동북공정의 일환'이라고 주장하며 논란을 키웠다. (중략) 당시 중국학 교수 등 전문가들이 "백두산을 장백산이라고 하는 것은 동북공정의 일환이 아니라 언어와 역사적 배경이 서로 다른 민족간의 호칭·표기 문제일 뿐"이라고 밝혔다. #

애초에 장백산은 우리나라에서도 사용된 백두산의 여러 명칭 중 하나로, 다케시마처럼 나중에 갖다붙인 명칭이 아니다. 백두산 문서 참고.
백두산 장백산 논쟁과 관련해 조선 시대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는지 확인하고자 자료들을 좀 찾아 봤습니다. 그 결과 생각 이상으로 많은 ‘장백산’이라는 명칭의 사례들을 찾아냈는데 다음과 같습니다. (중략) 정약용의 글들을 보아도 역시 백두산과 장백산이라는 명칭을 혼용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박지원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백두산을 가리키며 그냥 장백산이라고 부릅니다. #

해당 글에서 언급된 논쟁은 2014년 김수현과 전지현이 모델로 기용된 헝다생수 광고 원산지 표기 논란으로, 당시에도 학계에서는 지나치게 민감한 반응이라고 평한 바 있다.

따라서 장백산이라는 단어를 사용했다는 이유만으로 작가의 사상을 짐작하는 건 다소 단편적인 사고 방식이다.

3.1.5. 그 외: 원작과 관계 없이 비랩에 과실이 있다.

위 주장들과 별개로 원문에서 엄연히 다르게 표기된 지명을 임의로 장백산이라 번역한 번역사와 출판사에 대한 비판도 있다. 비판하는 측과 반론하는 측을 가리지 않고 제기되었다.

출판사는 소설에서 쓰인 백두산의 명칭을 장백산 백두산을 최소한의 지명의 변화도 없이 그대로 동일시하여 표기하였다.[7] SNS의 특수성과 민감한 시기에 맞물려 다소 크게 설왕설래된 문제긴 하나 민족정서를 고려하지 않은 번역과 로컬라이징은 출판사로서 최소한의 리스크 매니지먼트를 소홀히 하고 역사 문제에 대한 인식이 낮았다는 걸 알 수 있다.

3.1.6. 비판3: 소설에 나오는 '삼계탕'은 문화공정이다

작중 삼계탕이 등장하여 문제가 제기되었다.
"삼계탕 한 그릇 끓이고 볶음 몇 접시를 볶았어요."
사매는 헝겊을 싸서 그릇을 사이에 두고 온도를 시험해 보았다.
"다행히도 따뜻해."

“我炖了一碗参鸡汤,炒了几碟小炒。”师昧将菜布好,隔着碗试了试温度,“还好,都还暖着。”  #

파일:비랩/논란 문서 내 이합화타적백묘사존 삼계탕 논란 관련 발췌.jpg

한반도에서 삼국시대부터 먹던 닭백숙에 20세기부터 인삼을 넣어서 만든 것이 삼계탕이다. 이런 삼계탕이 한국 요리라고 명시되지 않고, 가상의 고대 중국이 배경인데 삼계탕이 나온다는 점에서 중국의 문화침탈이 아니냐는 비판이다.

실제로 중국 바이두 백과에 삼계탕을 '중국 광둥성의 민간요리가 한국으로 건너가 궁중요리가 되었다'고 기재되고 중국 드라마 # 소설 #에서 삼계탕을 중국 요리처럼 등장시키는 등 삼계탕에 대한 문화공정이 벌어지는 중이라 간과할 수 없는 부분이다.

3.1.7. 기타

명확한 근거자료가 부족한 비판 및 반론 또한 아래로 기록한다.

3.2. 여파 및 결론

4. 천보복요록

4.1. 논란

만리장성이 요동에서 시작한다는 서술이 본문에 등장한다.
만리장성은 요동에서 시작되어 굽이굽이 발해, 노구, 하북, 진양, 관중을 지나...... 끝없이 이어져 백 개에 가까운 현을 지났다. 진나라의 밝은 달빛과 한나라의 관문, 오래된 시간들을 이어오는 동안 여러 제왕들이 어지러이 등장하여 불후의 공업을 세웠고 오호五胡를 이곳저곳 도는 장성 밖의 노래가 이어졌다. 시간을 잇고 아득히 넓은 땅을 이어온 신주(중국을 뜻하는 말)의 대지는 여기까지 이르러 몹시 추운 겨울 속의 망망한 대지를 향해 뻗어나가 종국에는 허무함으로 돌아갔다. - 천보복요록天宝伏妖录 62장 鬼王苏醒 중에서 #

만리장성 논란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만리장성 문서 참고.

4.1.1. 비판 : 만리장성이 요동에서 시작한다는 서술은 동북공정이다.

원래는 산해관(산하이관)이 만리장성 동쪽 끝이었음. 만리장성 길이를 늘려서 다른 나라 역사도 자기네 거로 편입하려는 일환(서북공정, 동북공정)으로 만리장성에 포함된 지역이 요동지역임. 산해관은 하북(허베이)에 있음. 산해관 바깥에 요동지역, 요동반도가 있음. #

파일:명대 만리장성 길이 논란.jpg

4.1.2. 반론 : 당나라 만리장성은 진-한 장성에서 이어진 것이다.

『사기』 흉노전 등에 기록된, 장성이 임조(臨洮)에서 시작되어 요동에 이르렀는데 만여 리에 이른다는 내용을 중심으로 제기되고 있다.(노태돈, 2000) 한편 요동지역의 고고학적 발굴성과를 통해서 요동의 위치를 살피기도 한다. 현재 북경 교외에 있는 오늘날의 장성은 진(秦)의 만리장성이 아니라 명(明)대에 새로 쌓은 장성이며, 연진장성은 보다 북쪽에 있다. 또한 명대 장성의 동단을 난하에서 그리 멀지 않은 산해관(山海關)으로 보기도 하나, 이는 명대의 구변장성(九邊長城) 중 수도인 북경을 지키기 위한 계진장성일 뿐, 명대 장성 중 가장 동쪽에 있는 것은 산해관에서 시작되는 요동진 장성이다.(서영수, 1988)

명대 만리장성과 명 이전 만리장성은 다르다. 현재 산해관에서 시작하는 만리장성은 명대에 만든 것이며 천보복요록은 당나라를 배경으로 서술되었다.『사기』에서는 만리장성을 "요동에서 끝난다"고 기록하고 있다.

고대의 요동 지역과 현재의 요동 지역은 아래 지도와 같이 차이가 있다.

파일:갈석산과 갈석산의 위치.jpg

당대에는 만리장성의 입구가 임유관(지금의 산해관)이었다. 그러므로 당대 만리장성이 요동에서 시작된다는 서술을 동북공정이라고 문제를 제기하긴 어렵다.

4.2. 여파 및 결론

비랩은 앞선 두 작품의 논란에 대해 입장문을 내놓은 것과는 달리 천보복요록의 논란에 대해서는 따로 입장을 내놓지는 않았다. 이는 작품이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한창 과열되었던 2020년이 아닌 어느 정도 사그러든 2021년에 발매되었으며, 해당 논란을 제기한 디미토리 내에서 주로 회자되었던 논란이기 때문으로 보인다.
[1] 출처는 王綿厚, 朴文英이 저자로 2016년에 발간한 中國東北與東北亞古代交通史, <第六章> 隋唐五代(含渤海国)时期(8-10世纪)中国东北与东北亚的古代交通 p249이다. [2] 각각의 '장백산'은 원문에서 '백두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3] 현재는 삭제되었다. [4] 의외로 중국인들은 북-중 경계의 산임을 명확하게 알고 있다. 당연한 것이 중국 입장에서 북-중간의 국경조약은 유효하며 현재 영토분쟁지역이 아니다.이런 장백산문화론은 듣도보도 못했다 [5] 각각의 '장백산'은 원문에서 '백두산'이라고 표기되어 있다. [ ] 조선왕조실록에는 백두산보다 장백산이라는 표기가 더 자주 나오나 현대 한국에선 거의 쓰이지 않는다. 백두산 문서의 명칭 항목 참고. [7] 디앤씨미디어의 원래 사업이 무협출판이었던 점과, 해당 소설이 무협소설인 점을 보면 클리셰적인 필법으로 백두산이라는 명칭을 보고 무협 특유 중국풍 분위기에 맞춘 번역으로 보인다. [8] 조선왕조실록에 등장하는 또 다른 장백산, 전라북도 남원시의 장백산 [9] 단 베스트셀러 순위 등 공정성을 요구하는 목록에는 여전히 표기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