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개요
브리지트 바르도에 대한 생애을 정리한 문서.2. 젊은 시절
활동 당시엔 미국에 MM이 있고 이탈리아에 CC가 있다면 프랑스에는 BB가 있다는 말이 돌아다닐 만큼 유명한 섹시심벌이었으며 본인 입으로 "나는 젊은 시절에 하루라도 남자가 없으면 잠을 못 잤다"고 말했을 만큼 엄청난 남성편력을 자랑했다. 이는 후술할 친부의 아동 학대의 영향인 듯하지만 결국 남자와 잠자리를 해도 아름다움과 명성을 얻어도 행복하지 않았다고 한다.
3. 전성기
전성기 때 키는 166cm에[1] 쓰리 사이즈는 36(B)-20-35. 10대 시절에는 거의 18인치에 가까운 허리를 지녔으며 그 때문에 염문도 많이 뿌렸는데 그 중에서도 세르쥬 갱스부르와 했던 연애는 꽤 유명하다.배우로는 장 뤽 고다르의 《 경멸》이라든가 《그리고 신은 여성을 창조했다》 같은 걸작 영화에도 출연했다. 공식적으로 처음 비키니를 입은 영화배우로 알려져 있으며 프랑스 외에 유럽과 미국에서도 미녀로 인지도가 있다. 가수 활동은 주로 세르주 갱스부르의 곡을 받아 프랑스를 비롯한 유럽에서 히트를 쳤다. 프랑스의 국민 여배우이자 여신인 이자벨 아자니의 데뷔 초기 수식어가 '제2의 브리지트 바르도'였으니 사실상 말 다 한 셈이다.
4. 청년기
청년기에도 이런 이미지(좋게 말하면 당돌함)였다. 한국에선 그녀가 이러한 행동을 보인 가장 큰 이유가 제법 부잣집에서 태어나 고생 없이 자라 어릴 적부터 고집이 셌다고 알려졌지만 실은 보수적인 가톨릭 가정에서 자랐는데 이마저도 친부의 근검성실한 가톨릭 정신을 빙자한 아동 학대에 지속적으로 노출되어 불안정한 정신상태 때문에 어릴 적부터 친구를 사귀지 못했다. 어릴 적 그녀가 꽃병을 실수로 깨뜨렸는데 그녀의 친부가 잘못하지 않은 그녀의 자매까지 연대책임으로 20번이나 채찍질해 거의 절연 수준으로 자신의 자매에게 원망을 산 적이 있으며 그녀가 자신에게 반항하면 오븐에 어린아이였던 그녀의 머리를 밀어넣어 화상까지 입히려고 한 적도 있었다. 조부도 정상과 좀 거리가 멀었는데 그녀가 배우가 되려고 했을 때 지지해 줬긴 했지만 '이 애가 창녀가 된다면 배우가 원인은 아니겠지'라는 훈육에 전혀 좋지 않은 이상한 단어를 쓴 적이 있다. 결국 그녀의 친부가 그녀에게 한 번도 자상한 아버지가 되지 않고 1975년에 사망하여 트라우마의 봉합이 어렵게 되었다.다행히 그녀의 친모는 그녀를 지지했으며 성격적인 문제도 없었지만 이마저도 친부의 가정폭력을 막기에는 역부족이었으며 친부가 사망한 지 3년이 지난 1978년에 사망했다. 그녀는 유일하게 아무 조건없이 자신에게 다정하던 "어머니"라는 존재가 사라진 것에 대해 매우 충격을 받고 원래도 제정신은 아니던 그녀의 정신머리는 더 악화되었으며 몰상식한 기행을 일삼기 시작했다.[2]
5. 배우 시절
배우 시절에는 사생활 문제 빼면 별 비난거리도 없었으나 은퇴한 뒤부터 사람이 아예 바뀌었다. 이로 인해 영화계와 연락을 일체 끊고 지냈는데 정황상 그녀 쪽에서 먼저 끊거나 영화계가 먼저 그녀를 외면할 만한 원인을 제공했을 가능성이 높다. 지금은 노망난 노친네 취급을 받지만 만약 그녀의 친부와 조부가 정상적인 사람들이었고 어린 시절 학대받지 않았다면 그녀가 아무리 미쳐봤자 이렇게까지 정신나간 사람이 되지 않았을 거란 말이 많다.
[1]
21세기에도 여자 키가 이 정도면 작은편이 아닌데 바르도는 1934년생이다. 동유럽 남성 평균신장에 가까웠던
이오시프 스탈린이 168cm이니 굉장한 장신이다. 다만 19세기 말~1930년대생 여배우들 중에는 키가 170cm를 넘기는 사람들이 많은 편이었으며, 지금으로 치면 180cm 정도 된다고 할 수 있다.
[2]
어떻게 보면 아버지의 가정폭력이 바르도가 친아들 니콜라 사리에를 혐오하는
막장 어머니
가 되는 원인이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본인이 부모로 인해 불우한 어린 시절을 경험했다면 자신의 아이에겐 그러지 말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많다. 사실 막장 부모에게 학대를 받은 피해자가 나중에 부모가 되어서 과거 자신의 부모와 똑같은 막장부모가 되어
역으로 자기가 자식을 학대하는일이 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