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
브라이언 뱅크스 Brian Banks |
본명 |
브라이언 키스 뱅크스 Brian Keith Banks |
출생 | 1985년 7월 24일 ([age(1985-07-24)]세) |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 |
국적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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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 | 191cm / 102kg |
포지션 | 라인배커 |
학력 |
롱비치 폴리 고등학교(2000~2002) 롱비치 시티 칼리지 (2007) |
드래프트 | 2009년 NFL 드래프트 미지명 |
소속팀 |
라스베가스 로코모티브(2012) 애틀랜타 팰컨스(2013) |
현직 | NFL 자문 위원, 인권운동가 |
가족 | 어머니, 남동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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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미식축구 선수. 1985년생으로 미국에서 고교 미식축구 명문으로 뽑히는 롱비치 폴리 고등학교에서 선수로 활약하며 미식축구 장학생을 목표로 대학진학을 앞두고 있었지만, 2002년 7월 학교 급우 와네타 깁슨에게 강간죄 및 납치로 고소를 당해 5년형을 받고 학교에서 퇴학조치를 당했고, 선수 자격이 박탈되었다.
출소 후에는 캘리포니아 무죄 프로젝트를 통해 무죄를 밝히는데 앞장서다가 2011년 4월 깁슨이 허위신고를 인정함으로써 다음 해인 2012년 5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상고 법원에서 무죄를 최종 선고받았다.
무죄 판결 이후에는 늦게나마 NFL 드래프트를 신청했지만 너무 늦은 나이였기에 NFL 지명은 받지 못하고 2012년 9월 독립리그 UFL의 라스베가스 로코모티브 캠프에 연습생 자격으로 계약했지만 2경기만 뛴 후, NFL 애틀랜타 팰컨스의 오퍼를 받아 계약한 뒤 프리시즌에 출전하며 NFL 정식선수가 되기 위해 경쟁했지만 8월 30일 최종 로스터컷을 통과하지 못하고 방출되었다.
2014년부터는 선수 생활은 사실상 접고 로저 구델의 부탁을 받고 2014시즌 드래프트 대상 신인들을 상대로하는 심포지엄에 강연자로 참석해 연설했고 그 이후 NFL 자문위원이자 무고죄를 알리기 위한 인권운동을 하고 있다.
2. 생애
1985년 7월 24일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에서 출생하였다. 가족은 어머니가 있는데, 아버지는 뱅크스가 어릴 때 범죄를 저질러 수감되었고 이 때문에 아버지가 없는 공허함을 견뎌내기 어려웠다고 한다. 이 후 부모는 이혼하였다. 초등학생 때부터 미식축구를 시작, 2000년 미국 고등학교 미식축구 명문으로 뽑히는 롱비치 폴리테닉 고등학교(Long beach Polytechnic High School)에 진학, 라인배커로서 최고의 기량을 선보이며 전성기를 누렸다.[1]2003 클래스로 rivals.com의 junior to watch에 선정되며 미시간, USC, UC버클리 등에서 접촉을 해왔고 롱비치 폴리 고교의 교장은 뱅크스를 학교의 스타이자 영웅으로 매일 같이 띄우기 바빴다
2.1. 체포
2002년 7월 8일 뱅크스는 학교 교무실에서 대학 진학 관련 상담 및 서류 제출을 하고 교실로 향하던 중 자신보다 한 학년 아래의 와네타 깁슨과 복도에서 마주친다. 둘은 예전부터 알고 있는 사이였고 서로 대화를 나누다가 학교의 은밀한 장소로 가기로 결정하였다.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간 두 사람은 합의하에 애무와 키스를 나누었으며, 그 후 성관계를 맺으려고 했지만 교사가 복도에서 걸어오는 인기척이 들리자 브라이언은 황급히 자리를 떠나며 와네타를 내보낸다. 뱅크스는 그 때만 해도 별 걱정하지 않고 당시 풋볼팀을 찍으러 온 다큐멘터리 팀과의 인터뷰에 참여했다. 그러나 와네타는 기분이 무척 상했고, 자신이 무시당한 기분을 느꼈다. 분을 풀리 못한 깁슨은 경찰에 브라이언에게 강간을 당했다고 허위신고를 하게 된다.깁슨은 경찰에게 브라이언이 오전 11시 45분 쯤 역사수업 중간에 화장실을 사용하려 나온 자신을 엘리베이터 안으로 밀어넣고 다음 층에서 체육관까지 복도에서 자신을 끌고 몇 m을 움직인 뒤 강당에서 그녀를 강간한 뒤 다시 복도로 끌고와 계속에서 사정했다고 주장했고, 복도에서 다친 흔적등을 보여주며 경찰에게 진술한다. 경찰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고 곧바로 브라이언의 체포 영장을 발부, 그 날 저녁 브라이언은 자신의 집에서 체포되어 롱비치 경찰당국에 압송당하게 된다.[2]
뱅크스는 조사에서 애무와 키스는 합의하에 이루어졌으며 성관계는 없었다고 진술했다. 경찰은 7월 25일 뱅크스를 chino state prison juvenile에 수감시키고 본격적인 수사에 들어간다.
2.2. 양형거래
브라이언을 조사에서 애무와 키스를 합의하에 했을 뿐 성관계는 없었다고 주장하였고, 실제로 DNA 검사 결과 깁슨의 몸에는 뱅크스의 DNA가 발견되지 않아 이 진술이 신빙성을 부여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검사 쪽에서는 이 DNA 조사 결과를 수사에 사용하지 않았고 브라이언을 강간 및 납치 혐의로 기소하게 된다.이 때 브라이언의 변호사는 브라이언에게 양형거래를 권유했다. 브라이언의 인터뷰에 따르면 변호사는 그에게 "브라이언 내가 네가 만약 이 양형거래를 받아들이면 18개월 징역을 살고 석방될 수 있을 거야. 니가 좋아하던 풋볼도 다시 할 수 있어. 이걸 받아들이는 건 너의 선택이지만, 만약 법정에서 끝까지 싸운다면 넌 최대 41년형을 선고받게 될거야. 니가 배심원을 고르기 위해 법정에 들어가면 법관들과 배심원들은 6피트 2인치, 225파운드의 흑인 남자애를 보게 될 거고 바로 널 유죄라고 판단할 거야" 라고 말하며 사실상 강요를 했고, 이걸 단 10분만에 결정하라고 그에게 통보했다. 어머니와는 상의나 대화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한다. 그렇게 브라이언은 유죄를 인정하는 방향으로 가기로 결정, 양형거래를 받아들인다.[3]
브라이언의 말에 따르면 양형거래를 받아들일시 치노 감옥에서 90일 보호 관찰을 받고 유무에 따라 5년 징역형을 살 지, 집행유예를 받을 지 결정될 예정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상담사들은 애초에 브라이언이 결백을 주장하는 것이 자신의 잘못을 반성하지 않고 빠져나가려는 위증이라고 판단했고, 법원에 최고형을 선고할 것을 요청했다.
2004년 11월 미국 캘리포니아 롱 비치 법원은 브라이언에게 징역 6년과 전자발찌 부착 5년, 신상정보공개를 명령했으며 롱비치 교도소에 수감되었다가 2007년 가석방되었다.
2.3. 출소 후
출소 후 롱비치로 돌아온 브라이언은 복학 및 NFL 드래프트를 신청하기 위해 훈련을 받기 시작했지만 어떤 NFL 구단도 성범죄로 징역을 받은 브라이언을 데려가려고 하지 않았고, 결국 NFL 드래프트를 미룬 체 취업을 위해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그러나 모든 이력서마다 그가 강간죄로 5년을 선고받았으며, 전자발찌를 부착했다는 사실을 기재해야 했고 이 때문에 취업도 쉽지 않았다. 겨우겨우 창고 일을 하나 얻어 먹고 살 수 있었지만 독립을 하기에는 무리여서 어머니의 집과 친구 집, 과거 롱비치에서 함께 뛰던 동료선수 집등을 전전하며 의탁해야 했다.브라이언은 자신의 결백함을 입증하기 위해 2010년 캘리포니아 무죄 프로젝트(California Innocence Project)의 대표 저스틴 브룩크 변호사를 찾아간다.
2.4. 무죄 입증 과정
브룩크와 힘겹게 첫 만남을 가지고 사건을 풀어가려고 했지만 깁슨의 주장을 무효화시킬만한 물증 증거가 없어 해결은 쉽지 않았다. 브룩크는 롱비치 폴리 고교를 사적으로 방문하여 깁슨이 강간을 당했다고 진술한 계단과 복도등을 조사했고, 여기서 깁슨이 브라이언에게 끌려다녔다는 복도는 여러 교실과 붙어있었고 이 때문에 소음이나 비명 등을 금방 알아챌 수 있는 구조라는 걸 알게 된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는 유죄 판결을 뒤엎기 힘들었고 결국 브루크는 물증증거를 구하지 못하면 가망이 없다며 브라이언에게 중단 의사를 밝히게 되고, 브라이언 역시 좌절하고 브룩크와 연락을 끊은 뒤 돌아갔다.그렇게 살아가던 2011년 3월 어느 날, 깁슨이 브라이언의 페이스북으로 친구 요청을 보냈다. 브라이언은 처음 그걸 알고 "얘가 무슨 정신으로 이러는 거지?" 라고 소리를 쳤다고 한다. 깁슨은 "지나간 일은 지나간 일이다. 이제 오해를 풀자" 라고 했으며 브라이언은 친구 추천을 거절하는 대신 자신의 무죄를 밝히는 걸 도와달라고 부탁하게 된다. 이 후 브라이언은 저스틴 브룩크에게 다시 연락을 취해 그녀를 만났다. 당시 브라이언은 피고인으로서 전자발찌 상태로 피해자를 만나는 건 제제를 받을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었지만 결백을 위해 이를 감안한다.
깁슨은 저스틴과 브라이언을 만난 자리에서 자신이 모든 스토리를 조작했으며 브라이언이 자신을 강간하거나 납치하지 않았다고 자백한다. 브라이언은 깁슨과 같이 법정으로 가서 증언을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깁슨은 자신의 어머니가 2004년 롱비치 교육청을 상대로 내건 소송에서 얻은 돈을 잃기 싫다며, 무죄를 증언하는 대가로 $10000를 요구한다. 이에 브라이언과 저스틴은 계획을 짜서 저스틴 혼자 깁슨을 2차로 만난 뒤, 거기에 몰래카메라와 녹음기를 설치하고 깁슨의 증언을 몰래 받아낸다.
No he did not rape me. (Did he kidnap you?) No.
깁슨이 증언한 이 두 문장.
깁슨이 증언한 이 두 문장.
2.5. 자유
증언을 받아낸 저스틴은 2011년 12월 롱비치 법원에 이를 제출하였고 2012년 5월 24일 브라이언은 최종적으로 무죄를 선고받고 전자발찌 부착을 해제했다. 참고로 이 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내린 판사는 한인판사였다고 한다.[4]무죄 판결문을 들으며 브라이언은 눈물을 흘렸으며, 어머니 역시 오열했다고 한다.
판결이 끝나고 법정을 나온 브라이언은 저스틴 브룩크와 함께 기자회견을 통해 입장을 밝혔으며 빠른 시일내로 NFL 드래프트를 신청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2.6. 이후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과거 롱비치 폴리 고교 스카우터로 인연이 있던 라스베가스 로코모티브의 코치가 연락을 해왔고 그는 입단테스트를 가졌다. 무죄 판결을 받을 당시 기자가 “계획이 있냐” 라는 질문에 구단에서 불러주기만 한다면 가겠다고 자신만만하게 답을 했는데 그걸 보고 연락했다고 한다. 사실 당시 코치는 브라이언이 10년간의 공백 때문에 바로 필드에서 뛸만한 몸 상태가 아니라는 걸 알았지만, 브라이언의 상황을 본 뒤 성적과 상관없이 기회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고 한다. 입단테스트를 통과한 뒤 2012년 8월 훈련 캠프에 입소했고 3~4개의 연습경기를 뛰었지만 최종 테스트는 통과하지 못했다.다음 시즌인 2013년에는 애틀란타 팰컨스의 입단테스트를 받고 연습생 계약을 하면서 NFL 데뷔찬스를 얻게된다. 당시 나이는 만 27세로 OTA까지 통과해 프리시즌 경기에 출장하게 된다. 프리시즌 4경기를 뛰었지만 8월 30일 최종 53인 로스터컷을 통과하지 못했으며, 방출된뒤 프랙티스 스쿼드 계약으로 남지 않았다.
선수생활의 꿈을 접은 뱅크스는 2014년 NFL 자문위원을 맡아 애틀란타 팰컨스에서 고문으로 활동했고 현재도 이 직을 맡고 있다. 또한 무고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촉구하는 인권운동가로도 활동, 책도 집필하고 강연을 하는 중이다.
2015년 5월 결혼하여 득남했으나 2년만에 이혼, 현재는 아들을 홀로 키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2.7. 영화화
2017년 8월 자신의 자서전을 <Brian Banks: let me set free> 를 출판하였고, 이를 바탕으로 영화가 제작되었다. 186cm 키를 가진 동년배 배우 알디스 호지가 뱅크스 역을 맡는다.영화는 2019년 7월 개봉하였고 미국 11개 도시에서 시사회를 가졌다.
3. 인물
3.1. 와네타 깁슨
깁슨은 2002년 사건 당시 만 15세, sophomore였으며 브라이언과는 중학생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 사이였다. 브라이언와 애무를 한 뒤 그의 행동이 마음에 들지 않자 그를 강간죄로 고소하였는데, 깁슨은 그 때 왜 허위신고를 했는지 지금까지도 명백하게 밝히지 않았다고 한다. 브라이언 역시 깁슨이 허위신고했다는 사실은 인정했지만, 왜 자신을 고소했는지에 대해서는 명확하게 말해주지 않았다고 밝히기도 했다.[5]브라이언이 자서전 <What set me free> 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깁슨은 학교에서도 일진이자 불량학생으로 이미 악명이 높았다고 한다. 학교폭력이나 폭행을 저지른 적도 있고, 담배나 마리화나를 피다 걸리기도 했다.
그렇게 깁슨은 브라이언을 고소했고 그것도 모자라 깁슨의 어머니는 “우리 아이가 안전한 환경에서 학교를 못 다니는 게 이번 사건에서 증명되었다” 라고 말하며 롱비치 교육청에 100만 달러의 소송을 내었고 승소하여 돈을 챙겼다.[6] 깁슨은 2004년 폴리 고교를 졸업하였다.
7년 뒤인 2011년 브라이언에게 페이스북 메세지를 보내 다시 친구를 하자고 제의했고, 깁슨은 자신이 이 모든 걸 조작하였다고 진술하였다. 또한 깁슨은 브라이언의 무고를 돕는 일을 계속 해주겠다고까지 말했었다. 물론 순순히 해준 건 아니고 자신이 교육청과의 재판 끝에 받은 돈을 다시 뺏기기 싫다며 법정에 출두하여 증언하는 대가로 100만 달러를 요구하며 버티다가 브라이언이 주지 않자 나중에는 협박에 의해 허위사실을 말했다며 또 거짓말을 치려고 했다. 이미 증언을 받아낸 브룩스가 녹취파일을 법원에 제출했기에 뒤늦은 발악이 별 소용이 없긴 했지만...
2012년 5월 브라이언이 무죄를 선고받은 뒤 깁슨과 그녀의 부모는 교육청으로부터 역고소를 당했고 이에 법원은 8년 전 소송에서 보상받은 100만 달러와 무고죄로 200만 달러를 보상하라고 판결했다. 이 때문에 깁슨 집안은 벌금을 감당하지 못해 파산신청을 했으며 벌금 납부를 차일피일 미루고 있다.
2013년 5월 밝혀진바에 따르면 법원은 깁슨의 집안이 벌금을 낼 형편이 안 된다고 판단하여 징수를 기각했다고 한다.
3.2. 폴리 고등학교의 반응
당시 폴리 고등학교에서는 브라이언을 말 그대로 학교의 수치 취급하면서, 사건이 발생하자마자 가차없이 그를 퇴학시키고 재입학 불가라고 못 박아두었다. 폴리 고교의 부교장이었던 shawn ashley는 “법적 조치가 끝나서 그가 무죄를 받아도 결코 그는 폴리 고교로 돌아올 수 없다” 라고 밝혔다.[7][8]이 말인 즉슨 법적으로는 무죄가 나와도 학교 내에서 성행위를 하는 건 교내처벌의 대상이기에 그것만으로도 퇴학 사유라는 것이었는데, 그들 아무도 깁슨의 무고 가능성에 대해서는 관심도 없었고 누구도 그렇게 주장하지 않았다.단 폴리 고교에서 같이 뛰었던 팀 선수들이나 사람들은 그의 결백을 어느 정도 믿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브라이언이 출소 후 실직 상태였을 때 도움을 주기도 했다.
3.3. 제롬 존슨
브라이언이 자서전 등에서도 꾸준히 감사의 뜻을 표했던 인물로, 브라이언이 소년원에 있던 시절 만난 교사였다. 브라이언은 누명을 쓰고 수감된 이 후 한동안 적응을 하지 못해 방 안에서 거의 갇혀 지내다시피 하며 다른 죄수들과도 어울리지 않았다. 우울증으로 하루하루 힘들게 보냈고 심지어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는 듯.그 와중에 소년원 내 학교에서 소년범들을 가르치고 있던 제롬 존슨을 만나게 되었고 그는 브라이언의 소년원 생활 내내 그에게 여러 조언들을 해주며 그의 삶을 돌아보게 만들었다. 브라이언은 제롬 존슨을 자신의 인생을 바꿔준 남자라며 지금도 감사의 마음을 품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브라이언은 그 다음 해인 2003년 성인 교도소로 이감된 이 후 존슨과 헤어졌고, 그 후 지금까지 만남은 못 가진 듯 하다.
4. 여담
- 2013년 은퇴한 이후에는 NFL 자문위원을 맡아 원래 본인이 입단 예정이었던 시애틀에 강연을 가기도 하고 유소년 팀을 코치해주는 등 여전히 미식축구계와 인연을 놓지는 않았다.
-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자신을 고소했던 와네타 깁슨에게 더 이상 악감정은 없으며, 지금은 어느 정도 마음을 내려놨다고 밝히기도 했다.
- 브라이언의 아버지는 6.25 전쟁 참전 용사였다. 자서전 <what set me free> 에서 밝혔으며, 본인은 아버지에 대해 그닥 원망은 하지 않는 듯 보인다. 자서전에서도 아버지를 "용감한 남자였다" 라고 표현했다.
- 2002년 7월 퇴학당한 이후에는 한번도 폴리 고교를 방문한 적이 없다. 인터뷰에서도 미식축구 얘기를 할 때는 보통 무죄 판결 이후 뛰었던 팔콘스나 라스베가스 시절 얘기를 주로 할 뿐, 폴리 고교 선수로 뛰던 시절 얘기는 잘 하지 않는다. 자신의 최대 전성기 시절이었지만 누명을 쓴 이후 자신을 내버리고 쫓아낸 학교 측에 여전히 감정이 풀리지 않은 듯 하다.
- 아들이 하나 있는데 아들 역시 풋볼을 좋아한다고 하며, 최근 들어서는 아들과 풋볼을 하는 모습을 가끔 올리곤 한다. 개인 인스타도 있으며, 부모가 관리 중이다.
- 상당히 노안이다. 실제 고등학교 시절 찍은 걸 보면 왠 20대 성인 남자가 서 있다(...) 그러나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그 때의 외모를 유지하고 있어서, 동안이라고 봐도 될 지도....
- 퇴학당한 뒤의 고등학교 과정은 소년원에서 이수했고, 최종 학력은 고졸이다.
[1]
이 학교는
PFR 기준으로 NFL 역사상 2번째로 많은 NFL 선수를 배출한 고등학교이다. 테네시 타이탄스의 디펜스 태클 제럴 케이시나, 피츠버그 스틸러스의 와이드리시버
쥬쥬 스미스-슈스터등 현역선수 6명이 NFL에서 활동중이다.
[2]
한 인터뷰에서 밝힌 바에 따르면 그 날 저녁 풋볼 연습을 마치고 하교하던 중 학교 교무실 앞에 경찰들과 함께 깁슨과 그녀의 어머니가 나오는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을 숨길 수 없었지만 별 일 없다고 생각하고 집에 돌아와 자신의 방에서 낮잠을 자던 중 경찰이 들이닥쳐 체포해갔다고 한다. 끌려가는 아들을 보며 어머니는 실신했다고.
[3]
최근 들어서는 나아졌다고는 하나 여전히 미국 사법계에서 죄수의 인종에 따라 차별하는 경향이 많이 남아있다.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보통 백인이 흑인과 동양인보다 형을 더 적게 받고 흑인과 동양인은 차별받는 경우가 많다. 특히 브라이언의 경우 흑인 남성이었고, 거기에 운동 선수라는 신체적 특이성까지 지니고 있었으니 더더욱 차별받은 것이다.
[4]
이름은 Mark Kim.
[5]
일각에서는 당시 같은 학교에 다니고 있던 그의 친언니가 브라이언과 애무를 했다는 걸 알게될까 두려워 거짓말을 했다는 추측도 나온다.
[6]
한편 브라이언의 어머니는 아들의 변호사 비용을 부담하느라 집과 차까지 팔았다고 한다.
[7]
근데 이 인간, 2달 전만 해도 그를 스타로 추켜새우며 빨리 대학교 보고 데려가라고 부추기던 인간이었다.
[8]
이 사람은 2009년에 교장으로 승격해서 일하다가 2014년 경 쯤 폴리 고교를 떠났다.